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4
64 작품번호
* * *
심장이 고동친다.
그 두근거림이 내 귀에 선명히 들린다.
내 안에 남아 있던 여운은 조금 전 연주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었다.
아직까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피아노 건반.
찰나 간 생겼던 고요의 순간.
그리고.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관객들의 얼굴.
뭔가···.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들어봤더니 호프만 지휘자님이었다.
“······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니?”
“네?”
“하하. 역시 그런 것 같더구나. 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단다. 관객들도 슬슬 한계거든. 저 소리 들리지? 너무 늦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거든.”
“······ 아!”
“해야 할 일이 생각났지?”
정신이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피아노 리사이틀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아쉬운 마음에 끝까지 박수를 쳤던 기억.
그러다 보면 연주자는 다시 무대에 돌아와 몇 번이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해줬다.
그 공연장에서, 그 연주자를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설렜고 행복했었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지금 내게······.
“커튼콜은 해줘야지 않겠니? 최소 두세 번은 말이야. 이만 가보자꾸나.”
“그래야겠네요···.”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프만 지휘자를 따라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관객들은 여전히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호프만 지휘자님이 무어라 독일어로 이야기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곤 더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호프만 지휘자님은 내게 영어로 다시 설명을 해주셨다.
“오늘 새로운 꼬마 베토벤을 보게 된 건, 무척 운이 좋은 일이라고 말을 했단다. 거기에다가 굉장히 저렴한 티켓으로 만났으니 그것도 행운이라고 했지.”
“······.”
“아이야. 이 순간은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네가 가는 길에 있어 오늘은 큰 밑거름이 될 거란다. 우리 음악가는 이 순간을 위해,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힘이 들 때면 언제나 이 순간을 떠올리려무나. 그러면 못 이겨나갈 일이 없을 테니.”
“······.”
나는 관객들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내 심정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어설프더라도 독일어로 관객들에게 말을 해봤다.
약간은 큰 소리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다행히 관객들은 내 뜻을 이해를 해준 것 같았다. 오히려 더 큰 박수를 보내준다. 중간중간 ‘브라보’를 외치는 분들도 있었다.
커튼콜은 총 3번 반복됐다.
관객들과 교감을 나눈 뒤 나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오늘 공연에 앙코르는 없었다.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
보통 베토벤의 합창 같은 대곡을 연주하고 나서는 앙코르를 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해당 음악이 주는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할 수 있도록, 다른 곡을 굳이 연주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오빠아아아!”
드레스를 양손으로 올려잡고 도도도 뛰어오더니 그대로 내 품에 안긴다.
수연이였다.
“오늘 공연 재미있었어?”
“응! 너무 감동이었어! 특히 첫 번째 곡이 무척 따뜻했어!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서······”
수연이는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나는 그런 수연이의 등을 가만히 토닥거려줬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오빠가 앞으로도 연주 많이 들려줘야겠다.”
“······ 꼭 그래야 해. ······ 무조건 약속이야. ······ 10년 뒤에도 그렇게 해야 해.”
“당연하지.”
“그리고 오빠 오늘···”
수연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진짜 멋있었어.”라고 속삭인다. 사뭇 진지한 표정. 그 모습이 귀여워서 괜히 수연이 볼을 한번 잡았다가 놔줬다. 그게 뭐가 좋은지 배시시 웃는다.
부모님도 오늘 공연은 인상 깊게 보신듯했다.
내 연주를 오랜만에 들으신 두 분.
예중 실기 시험 때는 나 혼자 들어갔기에 연주를 들을 기회는 없으셨다.
연습하는 거야 몇 번 보셨겠지만, 연습이란 대부분 파트를 나눠 무한 반복을 하는 게 보통이라서 이런 공연의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연신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셨다. 으으음. 이건 정말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어머니 습관이었다.
“서진이 실력 좋은 건 여름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완전 반하겠어!”
여기에 아버지도 한마디 거드신다. 연습을 대체 얼마나 한 거냐고. 음악을 잘 모르는데도 그게 느껴져서 뭉클하셨단다.
“그냥 평소대로 했던 거예요. 교수님께서도 잘 알려주셨고, 피아노야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하여간. 너도 대단하다. 나는 네 나이 때 그렇게까지 못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아버지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셨다.
곧이어 강유한 교수님과 호프만 지휘자님, 그리고 몇몇 다른 분들이 대기실로 찾아오셨다.
내게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넨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노년의 신사였다. 80세도 훌쩍 넘기셨다는 분. 내가 합창 연주를 끝냈을 때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주신 분이었다.
“베토벤··· 그 어려운 곡을··· 네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아이들하고는 다른 것 같더구나···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어. 음악이란··· 이런 거지···”
독일어 통역은 강유한 교수님과 호프만 지휘자님께서 도와주셨다. 나는 어르신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옆에 있는 분들은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계신 음악가분들이라고 하셨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대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다양하셨다.
콰르텟(현악 사중주단)에서 비올라를 하고 계신 분.
성악가.
교향악단 객원 첼리스트.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등등.
그분들 중에는 내게 명함을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음에 독일 올 일 있으면 꼭 나한테 연락해라. 내가 밥이라도 사줄 테니.”
“독일에서 공부하면 좋을 텐데. 만약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고. 내가 추천서 정도는 써주마.”
“오랜만에 울림이 있는 연주를 들었습니다. 실러도 베토벤도 분명 좋아했을 겁니다.”
“덕분에 옛날 친구가 생각났단다. 잊어버린 기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네게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구나. 음악이란··· 그래. 이런 게 음악이겠지.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축복이니까.”
마지막에 내게 말을 건네신 분.
나이가 지긋하신 바이올리니스트는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더니, 명함을 한 장 건네주셨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려무나.”
“아··· 감사합니다.”
“다만, 욕심이 생기더라도 너무 과하게 연습하지는 말거라. 사람에게 있어 가장 우선시 돼야 하는 건 건강이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만 가보마. 정말 훌륭한 연주였다.”
조금 특이한 분위기를 내뿜는 분.
왠지 눈길이 더 가는 사람이었다.
‘으음······.’
나는 그 분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말았다. 다른 분과도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교회 관계자분들.
고액 기부자들.
지역 유명 인사.
대기실에 찾아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데에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교회 식당으로 갈 수 있었다.
식사까지는 아니지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샌드위치와 까나페, 비스킷.
참치 까나페를 하나 먹어봤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사람들은 교회 여기저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힘이 남아도는지 뛰어놀기 바쁘다.
나는 교회 복도를 걸어가다가 유독 시선이 가는 곳을 발견했다.
노란 꼬까옷 중심으로 모여있는 4, 5명 정도의 꼬마아이들.
꼬까옷의 주인공은 말도 잘 안 통하면서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손짓과 발짓을 하며 소통한다.
아이들끼리는 말이 통하나 보다.
“우리 오빠 피아노 연주가 좋긴 좋았지. 우리 오빠거든. 패밀리야. 나는 동생이고.”
“오··· 빠? @$@#$ 피아노 @#$? 패밀리?”
“원래도 잘했는데 오늘은 유독 멋있었어. 마음이 찡했어.”
“%^& 여기 근처에 고양이 있어!”
“그 고양이 같은 제스쳐는 뭐니? 조금 더 명확히 표현을 해보도록 해.”
“#$% 어디에서 왔어? #@$?”
“오빠 이름이 뭐냐고? 한서진.”
“@#$@?”
“다시 말해 줄래?”
“%?!@#”
“······ 하아. 우린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아. 슬픈 일이야. 지구는 둥근데···. 혹시 영어는 할 줄 알아? 두 유 노 스핔 잉글리쉬?”
“왓? 공부! 싫어! 노!”
“한국에선 이 정도는 유치원에서 기본인데. 너는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저··· 너랑 친해지고··· #@$”
“잉글리쉬. 플리즈.”
“······.”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잘들 노네.
나는 수연이 어깨를 슥 잡으며 남자아이에게 대신 독일어로 대답을 해줬다.
“동생이··· 영어로··· 대화하고 싶다는데?”
“오! 그런데 #$% 영어 @#$ 안 돼요.”
“그렇지?”
“형! 연주 #@$ 멋졌어요! 최고 $#%”
“고마워. 너··· 그런데··· 전에···”
“맞아요! 연습 @#$ 저한테 피아노 #@$”
“아~”
“기억나요?”
“응.”
알고 봤더니 저 남자아이, 내가 교회 연습실에 있을 때 놀러 왔던 애였다.
“그런데 오빠··· 독일어도 해?”
“아주 조금?”
“와! 대박! 오빠는 못 하는 게 뭐야?”
“없지. 그러니까 이런 것도 가지고 오잖아.”
나는 가족들이랑 먹으려고 식당에서 가져온 비스킷을 보여줬다. 곧바로 눈을 빛내는 아이들. 노느라 먹지도 못했나 보다.
아이들에게 각각 하나씩. 그리고 저 뒤에서 수연이를 지켜보고 계시는 부모님께도 비스킷을 드렸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붙잡혀버렸다.
결국 교회 연습실이 있는 곳까지 끌려가게 됐다. 이 남자아이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던 그곳 말이다.
남자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왔단다.
매년 연말이면 꼭 오는 교회라고 한다.
내가 피아노 의자에 앉자 꼬마애들은 내 주위에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수연이는 그 와중에도 내 옆에 딱 붙어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연주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기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내긴 조금 그랬다.
‘선곡은···.’
이 세상 어느 아이들이라도 알만한 곡으로 골랐다.
W. A. Mozart – 12 Variationen über ein französisches Lied “Ah, vous dirai-je, maman”
모차르트의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그보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 노래 제목은···.
“와! 반짝반짝 작은 별이다!”
수연이가 말했듯 ⌜작은별 변주곡⌟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독일어로, 한국어로, 그리고 영어로.
각기 언어는 달라도 뜻은 통했다.
아이들의 노랫말을 들으며 나는 제시부를 끝까지 연주했다.
동요로 부르는 부분은 보통 여기까지다.
하지만.
⌜작은별 변주곡⌟의 하이라이트는 변주가 시작되는 지금부터였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변주.
16분음표와 정교한 반음계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부분.
그 연주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와!”
“멋있다!”
“^&&% 피아니스트 #@$”
“모차르트 같아요!”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주’를 했던 곡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정말로 작은 별이 된 것처럼 눈을 빛냈다. 수연이도 환하게 웃어준다.
아이들은 내 연주를 무척 좋아했다.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거린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내 연주의 관객이 되어 줬다.
정식 리사이틀도 물론 좋지만, 이런 소소한 연주 역시 내게는 너무나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작은 별 변주곡⌟이 끝나고, 수연이와 젓가락 행진곡까지 같이 치고 난 뒤, 아이들은 하나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벤 리히터라는 남자아이는 내게 악수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내가 알아듣기 쉬운 말을 골라서 해줬다.
“형처럼. 저는. 꼭. 피아니스트. 될 거예요. 오늘. 많이. 감동. 했어요. 고마워요.”
벤 리히터.
자기 이름을 잊지 말아 달라는 아이.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며 작은 손을 맞잡아줬다.
아이는 이내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내 연주를 듣고,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여러모로···.
내게는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 * *
강유한 교수님의 리사이틀이 끝났다.
가족들과 함께 두 공연을 모두 보러 갔는데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1,000명이 넘는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연주.
피아노 한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한 시간 반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모든 에너지를 불태우신다.
이곳 독일에서 불리는 강유한 교수님의 별명은 ‘동양의 사자’였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연주.
쉼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관객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사자 앞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숨 막히는 연주 끝에서 생기는 잠깐의 이완은 정말··· 전율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베를린에서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드레스덴으로 떠났다.
자동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거리.
호프만 지휘자님과 강유한 교수님의 첫 번째 공연이 있는 장소였다.
드레스덴은 베를린하고 완전 달랐다.
진짜 유럽이라고 느껴질 만한 호화로운 건축물들이 즐비했고, 드레스덴을 관통하는 기다란 엘베강은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낸 덕분에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와 함께 강변을 따라 가볍게 조깅을 했다.
그러고 나선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강유한 교수님을 따라가 오케스트라 연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나는 피아노 연습을 쉬지 않았다.
호프만 지휘자님의 배려로 연습실을 하나 빌릴 수 있었고, 하루에 4, 5시간씩은 매일 연습할 수 있었다.
유럽풍 건물 안, 위아래로 열리는 창문이 있는 방에서.
나는 엘베강을 바라보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번에 유럽에 오게 되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있었다.
배운 것도 많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영감도 많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는 이 멜로디는 내 손끝을 거쳐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애를 써서 생각해낸 멜로디가 아니었다.
이곳에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멜로디.
그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하며,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던 노래가, 저절로 매듭이 풀리듯 너무나 쉽게 풀려버렸다.
클래식 음악에서 작곡가들 곡에 순번을 메길 때 Opus라는 단어를 쓴다.
한국어로 바꿔 말하면 작품번호.
약자로는 Op.
작곡가가 출판한 곡을 시기 순서로 배열했다고 보면 된다.
한 마디로 Op.1은 그 작곡가가 첫 번째로 출판한 곡이다.
베토벤의 첫 번째 작품이 ⌜Op. 1 – 1, Piano Trio in E Flat Major⌟이고, 쇼팽의 첫 번째 작품이 ⌜Rondo in c minor, Op.1.⌟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작년에 ⌜TEST⌟라는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 작품 번호를 따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 예외로 둬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천희태 감독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쓰일 이 피아노곡이.
내 클래식 음악의 작품번호 1번이었다.
나는 한 시간 만에 악보를 완성한 뒤에 녹음을 했고, 곧바로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