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5
75 갑자기?
* * *
방과 후.
오늘은 피아노 학원도, 한국 뮤직스튜디오도, 학교 연습실도, 어학원도 가지 않고 미리 시간을 다 비워놨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은 Star 악기점에서 신디사이저가 배송 오는 날이었으니까.
덕분에 살짝 들뜬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악기. 이제 새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곧바로 작곡에 써먹어 볼 수도 있겠고. 그냥 가지고 놀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흐응~ 흐으응~”
“수연아, 오늘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꽃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연이는 길을 걷다가 나를 힐끗 올려다봤다. 배시시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그거야 오늘은 오빠가 하루종일 집에 있겠다고 했으니까. 요즘 오빠 무척 바빴잖아.”
“내가 그랬었나?”
“응. 주말에도 거의 밖에만 있었고. 평소엔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늦고. 아침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들어. 중학생이 되면 그렇게 힘들어지는 건가 봐. 바쁘기도 하고.”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수연이 입장에서는 내가 힘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설화 예중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시간도 많이 벌고 있었다.
예중 수업의 절반 정도가 음악과 관련된 수업이었다. 그 외에도 예술 관련된 수업도 많았기에 큰 도움이 됐다.
거기에 피아노과 선생님들 역시 내게 어느 정도 맞춤(?) 수업을 해주셨으니 그것도 무척 좋았다.
하물며 방과 후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연습과 독일어 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기에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거니까.
‘오히려 즐거움에 가깝지. 바쁘다기보다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거고.’
다만, 수연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긴 했다.
“그러면 수연이는 오빠랑 같이 있으면 좋아?”
“그거야 물론이지!”
0.1초 만에 대답이 나왔다.
그러면서, 나와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오빠가 바쁜 것도 이해를 해. 그러니까 방해는 하지 않을 거야. 대신 가끔씩은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오늘 같은 날?”
“응.”
“그런데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작곡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지?”
“······.”
수연이는 고개를 획 돌리며 “에휴.”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두부랑 베를린이랑 놀고 있을게. 에휴···.”라며 기가 푹 죽는다.
슬쩍 장난을 쳐보고 싶어서 해 본 말이었는데, 계속 뒀다간 수연이 앞쪽 땅바닥이 꺼져버리겠다.
“그러면 오빠가 작곡하는 거 구경해볼래? 작업이 조금 오래 걸릴 거라 끝까지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헛. 진짜?”
“그 대신.”
“절대 방해 안 할게! 입 꼬옥 다물고 있을 거야! 그리고 두부랑 호떡이, 베를린의 출입도 막아 둘게!”
“굳이··· 걔들한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저번에 뉴스에서 봤어. 곡 발표하기 전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한씨 가문 곰돌이 중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 그런가?”
“흠! 오빠는 나만 믿고 있어! 우리 식구들은 내가 잘 관리할 테니까.”
뭔가 조폭 영화에서 나올법한 대사를 하는 수연이.
그래도 금방 밝아져서 다행이다.
애가 발걸음부터 달라졌다.
통통하고 뛴다.
집에 돌아온 뒤, 수연이가 서둘러 곰돌이들을 천으로 둘둘 감싸는 사이.
딩동-
시간에 맞춰 배송이 왔다.
“네. 나가요~”
집에서 미리 대기하고 계시던 아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오늘 집에 나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직도 나를 어리게만 보고 계신 듯했다.
수연이도 금세 현관문 쪽으로 쪼르르 달려 나온다.
현관문을 열자 꽤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서진아. 여기··· 엘리베이터 없었냐?”
“뭐, 그렇죠?”
“분명 아파트라고 되어있었는데···. 기사님이랑 신디 들고 계단으로 올라오다가 기절할뻔했다.”
“에이. 형이 그 덩치로 기절하면 말이 안 되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대성이 형이 피식 웃는다.
곧바로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는 대성이 형.
아버지께는 미리 ‘홍대’에 대해 말씀을 드려놓았던 터라 복잡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서진이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한선훈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서진이가 저희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걸요. 홍대성입니다.”
그런데 그때.
내 등 뒤에서 꼬물꼬물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 네가 수연이구나! 서진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진짜로 엄청 귀엽다!”
“······.”
“엇? 아저씨 나쁜 사람 아냐! 서진이가 말 안 하던?”
도리도리.
수연이는 내 뒤에 딱 숨어서 대성이 형을 경계했고, 용과 호랑이 문신이 인상적인 근육질 아저씨는 금방 서러움을 토로했다.
“흑. 나도 마음만큼은 가녀린 사람인데!”
“······?”
일련의 소동 끝에 신디사이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설치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대성이 형과 함께 온 해당 악기 제조사 관계자가 기본적인 제품 테스트를 해주고 가셨다.
“문제는 없네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성이 형은 우리 집에 조금 더 남아 있었다. 내게 상세하게 신디사이저 사용법을 알려주신다.
다행히 수연이도 대성이 형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금방 파악한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내와서 대성이 형에게 슬쩍 건넨다.
“고마워! 수연아!”
“······!”
그래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는다. 수연이는 내 어깨 너머로 빼꼼 대성이 형을 바라보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다음엔 뽀로로 티라도 입고 와야겠다.”
“그러면 오히려 더 무서워하지 않을까요?”
“앗. 그런가?”
대성이 형은 혼자서 큭큭 웃다가, 내게 다음에 홍대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Star 악기점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나 때문에 일부러 직접 배송을 와주신 거였다.
다행히 수연이는 대성이 형이 나갈 때는 배꼽 인사를 해주긴 했다.
“휴우. 오빠, 나 긴장했었어!”
“그런데 진짜로 좋은 분이야. 나 엄청 많이 도와주셨거든.”
“그래도 저렇게 큰 사람은 처음 봐. 이런 말은 실례일 수도 있는데, 사람이 곰··· 만했어.”
“그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출판사로 가봐야겠다며 잠깐 나가셨고, 나와 수연이는 새로 온 신디사이저 앞에 앉았다.
신디사이저 볼륨을 줄이고, 가볍게 건반을 눌러봤다. 딱 전자피아노의 느낌. 노트북과 연결한 뒤, 어제 샀던 가상악기를 하나 옮겨 넣어 봤다.
그러자.
“와! 바이올린 소리가 나!”
“신기하지?”
“신기해! 이걸로 연주도 가능해?”
“물론이지.”
지난번에 신주원과 함께 연주했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떠올리며 도입 부분을 연주해봤다.
세팅이 완벽히 끝난 상태가 아니라, 바이올린의 보잉이 조금 끊기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들을 만은 했다.
그러다가 아예 수연이를 내 무릎 위에 앉혀봤다. 수연이 손위에 내 손을 올린 뒤, 내가 작곡하고 있는 멜로디를 쳐보게 했다.
“꺄하하! 오빠! 손가락 간지러!”
“그런데 재밌지 않아?”
“응! 엄청 재밌어! 나도 작곡가가 됐어!”
수연이는 꺄르륵 거리면서도 내 노래를 연주해줬다.
미완성의 곡은 점점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도입부에 나오는 바이올린의 고조.
곧바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멜로디.
산과 바다와 들판 같은 자연이 느껴지다가도, 봄의 향기가 물씬 피어오른다.
시기가 주는 설렘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곤 한다.
내게 봄은 시작이었다.
학교, 친구, 선생님, 피아노, 바이올린, 가족, 형들,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에겐 새롭게 느껴졌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열정 가득한 여름에만 갇혀있던 내 감정은 조금씩 여유를 찾아갔다.
지나가는 버스의 불빛만 봐도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졌고,
지나가는 못생긴 고양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했듯.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벚꽃이 필 시기가 된다.
벚꽃을 보는 시기는 짧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벚꽃을 봤던 기억은 오래 남는다.
봄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오기 시작하는 계절.
나는 내 안에 가득 담긴 설렘을 멜로디로 만들어갔다.
“와! 오빠··· 노래가 다 만들진 것 같아!”
어느새 내 무릎에서 내려가, 의자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수연이가 말한다. 수연이는 눈을 반짝거렸다.
“수정할 게 조금 있긴 하지만, 수연이 덕분에 쉽게 만들어졌네.”
“내가 도움이 됐어?”
“응. 옆에서 지켜봐 줘서 그런지 힘이 더 났어.”
“히히. 그렇다면 다행이다. 내가 다음에도 도와줄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수연이에게 노래를 한 번 불러달라고 해봤다.
아직 가사가 없으니 허밍으로.
순전히 오빠의 욕심이었다.
수연이가 노래하는 걸 보고 있으면 괜히 흐뭇해지곤 했으니까 말이다.
“크흠. 오빠가 그렇다면야······.”
수연이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한 소절을 불러본다. “흐으으음~ 흐으음~”하고 그럴듯하게 운율을 섞는다.
다만, 동요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요즘 유치원에서 열심히 동요를 부르고 있다고 들었는데 딱 이 느낌인 듯싶었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가끔씩 보면 힘이 날 것 같은 영상. 그리고 한 10년쯤 세월이 지난 뒤, 수연이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그때는 또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약간씩 틀린 음정과 박자가 있었지만, 무사히 완곡을 한다.
“어때?”
“잘했어. 나중에 수연이 가수 해도 되겠다.”
“에이~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좋아하네.’
살짝 부끄러워하는 수연이.
보고만 있어도 진짜로 흐뭇했다.
수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방 저녁 시간이 됐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저녁 시간부터 늦은 밤까지는 혼자서 작곡을 했다.
멜로디를 몇 개 수정했고, 여러 가지 악기를 추가해가며 편곡을 시작했다.
틈틈이 가사를 적어보기도 했다.
조금 유치해 보일지도 모르는 가사.
그래도 이 노래엔 이런 가사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며칠에 걸쳐 노래에 디테일을 더해나갔다.
기본적으로 발라드에 가까운 곡.
조금 낭만적이면서도 풋풋함이 느껴지는 노래.
봄의 노래를 만들다 보니···.
내 입가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 * *
“⌜닿지 않는 편지⌟! 드디어 1위네!”
박훈 과장이 큰 소리를 낸다.
⌜월광⌟ A&R 1팀의 팀원들도 곧바로 환호성을 질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박훈 과장과 차리나 대리, 두 명의 정직원만 있었던 1팀.
나머지 세 인턴은 이제 김 사원, 이 사원, 박 사원이 되어 있었다.
차리나 대리는 박훈 과장에게 다가가며 상황을 물었다.
“그러면 ⌜13월의 이야기⌟ 관객 수는요?”
“어제 기준으로 500만. 이미 손익 분기점의 3배가 넘었단다.”
“와··· 우리 작곡가님은 손대는 것마다 대박이네요.”
“내가 말 했잖아. 얘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진짜 천재라니까.”
박훈은 보도 자료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볼 때마다 믿기지가 않았다.
‘2연속 음원 차트 1위? 이건 절대로 운이 아니지.’
작곡에 피아노 연주까지 훌륭히 소화해내는 아이.
심지어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는 전화도 받았다.
‘상점 5개를 1학년 중에서 제일 먼저 받았다고 했지.’
괜히 박훈이 다 흐뭇했다.
요즘에 이런 애가 어디 있겠나.
일을 하는데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1팀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아티스트를 담당하게 됐는데도 서진이가 하는 것만 보고 있다 보면 배가 불렀다. 평생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까짓거 굶지 뭐.
“과장님~ 저녁 뭐 드세요?”
“······ 난 제육볶음 도시락.”
“넵. 바로 배달부터 시켜놓겠습니다.”
“······ 응.”
물론, 사람이다 보니 먹기는 해야 했다.
배달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운 박훈은 1팀 소속 아티스트들 목록을 훑어봤다.
1팀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작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후속곡 발표 이후, 음원차트 10위권 안에 무사히 안착한 권설하도 1팀의 중요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실제로 박훈은 권설하의 후속곡 선정에 꽤 공을 들였고, 그게 잘 맞아떨어졌는지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했던가.
박훈은 이런 타이밍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서진이도 슬슬 작곡이 끝나간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곡에 잘 어울리는 가수를 찾아 좋은 노래가 만들어졌으면 했다.
서진이의 노래가 권설하와 천희태 감독을 만났듯이 말이다.
‘이번엔 풋풋하면서도 조금 귀여운 느낌이 나는 보컬이 노래에 어울릴 것 같다고 했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가수가 웬만하면 10대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금상첨화.
노래가 요구하는 음역대를 보아 성별은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았다.
늦은 저녁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던 박훈에게 톡이 하나 도착했다.
‘왔구나!’
박훈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톡 앱을 열었다.
[서진이 : 곡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돼서요. 한번 듣고 확인을······]서둘러 음원 파일부터 다운받았다. 파일을 PC에 옮긴 뒤에 곧바로 차리나 대리부터 불렀다.
혼자하는 평가보다는 언제나 둘이 더 나으니까.
다만, 평사원들에게는 곡이 완전히 픽스된 뒤에 노래를 들려줄 생각이었다.
차리나가 헤드폰을 쓰며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박훈에게 묻는다.
“무제? 제목이 아직 없나 보네요? 아니면··· 저번에 ⌜TEST⌟ 때처럼 제목이 ⌜무제⌟인 건 아니겠죠?”
“나도 그럴까 봐 다시 물어봤었는데, 그냥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제목이 생각이 안 났대.”
“그런데 ⌜무제⌟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느낌 있잖아요.”
“일단 곡부터 들어봐야지.”
박훈도 곧 헤드폰을 썼다.
‘조금 기대가 되네.’
그런 생각을 하며 박훈은 음악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곡의 도입부부터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유쾌한 바이올린의 연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 떠오를 것 같은 산뜻한 연주가 단번에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매력적이네. 경쾌하기도 하고. 서진이··· 악기도 다양하게 쓸 줄 아는구나.’
그리고.
그 바이올린 연주가 조금 아쉬운 듯이 서서히 사그라들 무렵.
‘어?’
무척이나 투명한,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보컬의 목소리가 멜로디와 함께 흘러나왔다.
박훈과 차리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지금 집중이 깨지면 아쉬워질 것만 같았으니까.
원래 음악이란 첫 감상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봄 내음이 물씬 묻어나오는 산뜻한 멜로디.
괜히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 같은 발랄한 코드 전개.
⌜TEST⌟나 ⌜닿지 않는 편지⌟하고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고개를 까딱거리는 차리나.
책상을 일정한 박자로 톡.톡. 두드리는 박훈.
4분을 조금 넘기는 노래가 모두 끝났을 때.
박훈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거······”
그리고 차리나도 입을 열었다.
“······ 그렇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둘.
박훈은 곧바로 한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래 좋네. 그런데 다른 게 아니라, 이거 네가 가이드 보컬 한 거지?”
– 맞아요. 방금 학교에서 녹음해서 바로 보내드린 거예요.
“학교?”
– 여기 연습실 많아서 편하게 써도 되거든요. 핸드폰 녹음이라 음질은 별로죠?
“그거야 상관없지. 어차피 분위기만 보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 봤더니 너 목소리가 조금 굵어지긴 했구나.”
– 아~ 그런 소리 듣긴 했어요. 조금 전에도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느끼기엔 여전히 앳된 목소리긴 하지만요.
“그런데 말이야. 내가 노래를 듣다 보니까 조금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
– 다른 생각이요?
“어. 네 노래가 안 좋다는 건 아니고. 네가 이번엔 나한테 가수를 찾아달라고 했었잖아?”
– 아, 그랬었죠. 10대 가수들이 대부분 신인이라서 고르기가 까다롭더라고요. 자료도 부족하고. 또 신인은 박훈 과장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아서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네.”
– ··· 그러면요?
박훈은 살짝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네 가이드 녹음 들어 봤는데 목소리 좋더라. 10대에 풋풋하고, 너무 어린 느낌은 아니면서도 적당히 앳되고. 조금 귀엽고. 네가 보낸 녹음본 듣다 보니 그런 느낌이 나더라고. 차 대리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
– 제가 풋··· 뭐요? 그리고 귀엽··· 뭐요?
박훈은 피식 웃었다.
“야. 중1이 안 풋풋하면 누가 풋풋하냐? 내가 아는 아티스트 중에서 네가 제일 풋풋해.
– ······.
“나 진심이야. 어때? 내 귀를 믿어 보는 건?”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너 얼굴 없는 가수 같은 거 한번 해보지 않으련?”
– ······.
10대. 풋풋함. 학생. 귀여움. 준수한 보컬.
가이드 보컬까지 훌륭히 소화해내면서도 이 곡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박훈은 갑자기.
MJ에게 가수 데뷔를 제안했다!
–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