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6
76 무명
* * *
박훈 과장님은 신이 나 있었다.
– 네 목소리, 꽤 느낌이 있거든. 마음 같아서는 널 무대에 한번 세워보고 싶긴 한데 그건 부담스럽다는 거잖아?
“······ 조금 그렇죠.”
– 그렇다면 지금 네 노래를 뉴튜브나 SNS 같은 매체를 중심으로 세일즈 포인트를 잡으면, 잘 될 것 같거든?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고. 젊은 세대에 먹힐 노래이기도 하니까. ‘부담 없이’ 시작을 해보자는 거지. 네 정체는 잘 숨기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보자고.
“······.”
사실, 무인도에서 밀러 아저씨와 지낼 때도 노래를 많이 부르기는 했었다.
기본적인 보컬 트레이닝도 아저씨에게 받았었다.
밤이 어둑해지거나 일하다가 지쳤을 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낙이었다.
‘밀러 아저씨와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렀었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엘튼 존과 같은 가수들의 노래도 다 그때 배웠었다.
특히 아저씨와 함께 만든 나무배 안에 들어가 기타를 치며 노래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느낌도 들었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배경음 삼아, 야자나무 그늘을 이불 삼아, 오롯이 내 목소리를 낸다는 건···.
피아노만 쳤었던 내게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직접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무인도에서 만든 노래 역시, 언젠가 내가 직접 부르고 싶은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목소리는 그때보다 어렸다.
그 때문에 무인도에서 만든 노래를 지금 부를 수는 없었다.
조금 더 내가 성장한 뒤, 지금보다 목소리가 더 굵어진 뒤에 부를 노래들.
평소의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이번에 곡을 만들 때 ‘내가’ 노래를 할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작곡을 했고, 작사와 편곡을 했다.
내 노래를 불러줄 가상의 가수를 떠올리며 가이드 녹음을 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박훈 과장님은 내 목소리가 이 노래에 어울린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있었다.
그렇다면······.
‘까짓거 한번 해볼까?’라는 치기 어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냉정한 생각도 든다.
내가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진짜로 내 보컬이 이 노래에 어울리긴 하나?
지금 내 실력은?
세상엔 실력 좋은 가수들이 많다.
그렇다면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내 욕심 때문이지. 음악하고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
단순히 거절해도 됐을 일을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다.
문득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작곡이든 피아노든 노래든 다 해보고 싶었다.
사실, 잘 안되면 또 어떤가.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건데.
나는 그런 마인드로 지난 어린 시절을 버텨왔었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시간은 그렇게 오래 흐르지는 않았다.
박훈 과장님께서는 말없이 가만히 있는 내게 첨언을 해주셨다.
– 싫은데 억지로 하라는 건 아니야. 강요하는 건 아니거든.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로서 고려를 해보라는 소리야.
“알겠어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 그 대답이면 충분해. 나도 그사이에 네가 부탁한 신인 가수는 찾고 있을게. 참 그리고······
박훈 과장님은 가감 없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내 보컬이, 내 목소리가, 100점은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 더 나은 가수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이드 녹음을 들어봤을 때, 이만큼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 우리가 항상 100점을 찾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100점이 아니라고 해도 그 가수만의 매력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박훈 과장님과 통화가 모두 끝났다.
조용한 학교 연습실.
그 구석에서 악보 너머로 나를 힐끗 쳐다보던 애가 시선을 돌린다.
악보에 얼굴을 숨기고 있는 이하은.
내 눈치를 보다가 결국 알아서 이실직고를 했다.
“저기··· 전화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들리긴 했거든? 요즘 스, 스마트폰 스피커 성능이 좋나 봐! 아하하하···.”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거기에 네 귀도 좋은 것 같네.”
“그, 그렇지? 요즘엔 작은 소리도 잘 들리더라고.”
“그런데 통화 내용 들었어도 괜찮아. 오늘 네가 가이드 녹음하는 것도 도와줬었고, 통화도 내가 여기에서 멋대로 받은 거잖아. 사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네 연습을 방해한 거지.”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감사와 사죄의 의미로 편의점에서 미리 사 온 코코팜 캔 하나를 이하은에게 건네줬다.
“··· 음료수 고마워.”
“별말씀을.”
음료수 캔을 몇 번 홀짝거리던 이하은은 내게 슬쩍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너는 어떤 것 같은데? 노래. 직접 부를 거야?”
이하은이 눈을 반짝인다.
“아직 생각 중이야.”
“왜? 너 방금 노래 잘했잖아? 나도 그렇게 들렸다니까! 조금 설레······”
“뭐?”
“크흠! 조금 풋풋한 느낌도 있었다고. 네 작곡 의도와 맞는 보컬이잖아. 거기에 기회가 찾아왔는데 안 할 이유가 있어?”
“나 안 한다고는 안 했어. 생각 중이라 그랬지.”
“······ 앗. 그랬네?”
“그러면 너는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
“······.”
이하은은 괜히 악보를 보는 척하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있는데 그냥 놔두는 건 아깝잖아.”
하은이의 말 때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 노래 그렇게 잘 부르는 거 아니야. 참고로 지금은 프로들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거거든.”
“나도 알아. 그렇게 생각해보고 말해준 거야.”
“친구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아니고?”
“글쎄. 내가 듣기에는 그랬어. 어쨌든 나도 한 명의 리스너잖아. 내 의견을 말한 것뿐이야.”
“그렇다면······”
“할 말 없지?”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물론 ‘일반 리스너’가 아니라, ‘친구’로서 평가를 해야 한다면 더 좋은 말을 해줄 수도 있는데. 해줄까?”
“큭큭. 괜찮아. 이만하면 충분해.”
“어쨌든 나 깜짝 놀랐어! 작년에 새봄 초등학교 음악실에서 네 목소리 들었을 때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거든. 떨리는 것도 없어졌고.”
“그땐 가이드 녹음을 처음 해보는 거였으니까. 지금은 2번째고.”
“이래서 경력이 중요한가 보네.”
“그런가 봐.”
경력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풍조.
중1, 우리는 사회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야. 내 목소리가 조금 어리게 들리긴 하잖아. 분명 그런 느낌이 있거든. 대중적이지 않다고도 볼 수 있어. 한번 고민해 봐야 해.”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하은은 그걸 반대로 해석했다.
“오히려 그래서 네 노래랑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그래?”
“그렇다니까? 친구 말 좀 믿어봐. 내가 이래 봬도 귀가 꽤 정확하다고.”
“맞네. 너 지난번에 청음 시험 잘 봤었지. 선생님도 칭찬하시더라.”
“그······ 너보단 아니었지만.”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피아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양우주 선생님께서 내준 과제 곡이 있었기에 오늘은 그 연습이 주된 목표였다.
조금 전에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잠깐 가이드 녹음을 했을 뿐이다.
연습이 모두 끝난 뒤.
이하은은 새봄동으로 먼저 돌아갔고, 나는 한국 뮤직스튜디오에 들려 조금 더 연습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돌이켜봤다.
그중에서도 내 노래의 ‘보컬’에 관련된 일들.
지금까지 내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준 사람은 총 세 명이었다.
박훈 과장님.
차리나 대리님.
이하은.
물론, 차리나 대리님의 경우 박훈 과장님을 통해 전달된 의견이었지만, 그게 거짓은 아닐 것이다.
‘3명이 좋다고 했고, 나 혼자만 긴가민가하고 있다는 건데···.’
3 대 1의 상황.
다수결로만 보자면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다수결이라고는 해도 그 숫자가 너무 적긴 했다.
‘그러면···.’
그 순간.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숫자가 적어서 문제라면 그 숫자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
예전처럼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월광⌟이라는 든든한 백도 있다.
다음날, 나는 박훈 과장님께 다시 연락을 드렸고.
“어때요?”
– 그럴듯하네. 그렇게 한번 해보자. 단, 이번 주 안에 해결하는 걸로. 시간 끌어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물론이죠.”
내 의견은 곧바로 반영됐다.
* * *
나는 당장은 보컬트레이닝을 따로 받지 않기로 했다.
하루 이틀 연습한다고 해서 내 목소리가 바로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노래를 반년, 또는 일 년 뒤에 발표할 것이 아니라면 트레이닝의 효과를 바로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있는 그대로 본 녹음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곡을 바로 발표할 것도 아니었다.
만들어진 곡을 이용해 일단 저작권 등록을 먼저 해두고.
⌜월광⌟ 사내 평가와 몇몇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평가를 받아 볼 생각이었다.
대략 100명에서 200명 정도.
일종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였다.
만약 대중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면?
예정대로 새로운 가수를 찾으면 된다.
이미 리스트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대중들의 반응이 좋다면?
“네가 가수로 데뷔하는 거지. MJ가 아닌 또 다른 이름으로.”
박훈 과장님의 말씀.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상황이었다.
괜히 가수 이름도 MJ라는 예명을 썼다가 나중에 복잡한 일이 생길까 봐, 아예 가수용 예명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덕분에 나라는 한 사람이 ‘작곡가’와 ‘가수’와 ‘피아니스트’로 나뉘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뭐 어떤가.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매스컴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람들의 눈치도 안 볼 수 있으니 나한테는 훌륭한 선택지였다.
지난번 ⌜TEST⌟ 녹음 때 한번 신세를 졌었던 오정희 디렉터님께서 오늘 녹음을 도와주시기로 했다. 녹음실도 지난번과 똑같은 곳이었다.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디별로 잘라가며 테이크를 쌓아갔고, 디렉터님과 나는 틈틈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그러면 이번엔 호흡을 조금만 더 짧게 가져가 보죠. 방금하고는 느낌이 다르게요.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프로만에 모든 녹음을 끝냈다.
“허허. 이젠 가수까지 하겠네?”
“곡 엄청 잘 나온 거 같은데요? 진짜로 설레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흐. 좋다. 나는 충분히 잘 될 거라고 봐.”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살짝 나서 더 좋았네. 덕분에 풋풋함이 더 잘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박훈 과장님께서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신 줄 알겠다.”
꽤 괜찮은 반응을 보여주시는 분들.
그중에서도 차리나 대리님은 내게 한가지 질문을 해오셨고.
“그러면 작곡가님은 누구한테 먼저 평가를 받아보고 싶으세요?”
내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요.”
* * *
모 방송국 근처의 어느 연습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한 사람이 나를 반겼다.
“서진아! 잘 왔어! 좀 자주 놀러 오라니까!”
이젠 발목에 깁스도 하지 않고 잘도 걸어 다니시는 분.
권설하 누나였다.
“이제 깁스 완전히 푸셨나 봐요.”
“응! 어제 병원에서 풀었어. 이제 쌩쌩해. 한번 볼래?”
가뿐하게 한 다리를 들어 올리시는 분.
에너지가 넘쳐 보여서 다행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네가 나를 다 보자고 그러고? 혹시 누나 보고 싶었어?”
“그럼요. 그래서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왔죠.”
“크흐! 우리 동생이 이제 립서비스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실제로도 많이 컸습니다.”
“큭큭. 그래. 작년 보다는 많이 컸지. 목소리도 조금 더 남자다워졌고. 이대로 무럭무럭 자라거라.”
설하 누나는 내게 연습실을 소개해줬다.
꽤 비싸 보이는 음향 장비들.
기본적인 녹음 같은 경우에는 여기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신기한 장비들이 몇 개 보여 누나에게 물어봤더니,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신다.
“누나가 사줄까? 필요해?”
“······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요?”
“너도 슬슬 작업실 마련해야지. 어때? 이참에 누나가 네 작업실 하나 만들어 줄까?”
“······.”
너무 해맑게 저런 말씀을 하시네.
장난인지 아닌지, 도통 모르겠다.
그런데 누나는 농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내가 너한테 뭘 못 해주겠니? 언제든 말만 해. 내가 너 진짜로 놀이동산이라도 데려가 주겠다니까?”
“지난번부터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혹시, 누나가 놀이동산 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 에이~ 설마~”
분명 누나의 대답이 늦었다.
내가 봤다.
‘놀이동산에서 놀고 싶으신 거구나.’
아직도 동심을 가지고 계신 분.
참 순수하시다.
잠깐 수다를 떨다가,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밥을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USB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제 이번 노래, 가수가 대충··· 정해졌거든요. 한번 들어봐 주셨으면 해서요.”
“엇. 그것 때문에 온 거야?”
“어느 정도는요.”
설하 누나에게 내가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
물론, 노래를 들으면 단번에 내 목소리를 알아채시겠지만, ‘조금이라도 더’라는 부분이 중요한 거였다.
내게 USB를 건네받은 설하 누나는 곧바로 연습실 컴퓨터에 음원 파일을 옮겼다.
그리고 내게 한 가지를 확인한다.
“솔직하게 평가해도 돼? 너도 그게 좋지?”
“네. 그래야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한번 들어보자.”
설하 누나가 재생 버튼을 눌렀는지, 거대한 스피커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짝 놀라는 듯 보이는 설하 누나.
작곡과 편곡을 전부 끝낸 상태였기에 음질도, 퀄리티도 훌륭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인트로가 끝나고.
마침내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어?”
설하 누나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나를 획 돌아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고, 설하 누나는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조금은 옛날 생각이 나네.’
피아노를 배우고 1년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새봄동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무대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피아노를 쳤었는데 나는 꽤 긴장했었다.
음도 많이 틀렸고, 박자도 엉망이었다.
악보를 보면서 연주했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건반을 누를 뿐이었다.
‘겨우겨우 멜로디처럼 들리도록만 연주했었지.’
그래도 그때.
내가 무사히 완곡을 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박수를 쳐줬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박하선 선생님께서 다가와 대신 인사를 시켜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환호.
아마 그 기억 덕분에 지금까지 피아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도 그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를, 내 목소리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하은이나 ⌜월광⌟ 분들과 달리, 설하 누나는 ‘가수’였으니까.
조금은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무척 길게 느껴지는 4분 15초가 끝난 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설하 누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러곤 내게 담담히 말했다.
“일단. 이 가수는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아. 분명 지금보다 더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거든. 다만, 지금 보다 더 성장하게 되면 성대 모양도 조금 바뀌게 될 텐데, 이 시기에 무리해서 연습해서는 안 돼. 아직 어리니까.”
“그렇군요.”
“크흠! 그리고···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
“이 가수가 신인인데 지금 데뷔해도 괜찮을까 해서요.”
“음. 그건······.”
설하 누나는 내게 엉뚱한 걸 물어봤다.
“서진아.”
“네.”
“평소에 네가 나 부를 때 뭐라고 하지?”
“누나라고 하죠?”
“그렇지. 그런데 이제부터는 호칭을 조금 바꿔보자.”
설하 누나는 내 양어깨를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 따라 해봐.”
얼굴엔 금방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선배. 이제는 내가 네 선배야. 알겠지?”
“······ 네?”
“뭐라고 부르라고 했지?”
“······ 선배님이요?”
“꺄앜! 서진아! 너 노래 왤케 잘 불러! 진작 말을 하지! 누나가 많이 알려줬을 텐데! 지난 번에 ⌜TEST⌟ 가이드 할 때도 좋긴 했는데, 그때보다 더 좋아졌다! 혹시 연습한 거야? 그런 거야?”
“그건······.”
“서진아,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많다. 갑자기 이런 귀여운 후배님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네? 선배로서 든든하다! 든든해!”
“······.”
“내가 하나하나 다 알려줄게. 모르는 거 있으면 무조건 전화하고. 여기도 자주 찾아와. 알았지?”
“어······ 네.”
“원래 보컬은 목 관리부터가 시작이거든. 오늘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알려줄게. 일단 보컬이란 말이야······”
“······?”
어째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설하 누나.
아니······.
설하 선배였다.
* * *
⌜월광⌟의 사내 평가가 마무리됐다.
몇몇 방송 관계자나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의견도 물어봤다.
고로 결정이 났다.
MJ 작곡가의 노래 ⌜왠지 모르게, 봄⌟.
그건 이름도 모를, 무명의 가수가 부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