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전방! 작전지다!”
마누스 왕국의 그리핀 부대 소속 통신담당관 쥬리핀.
그는 고개를 고글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의 뒤를 따라 도시 셰리오를 향해 날아가는 그리핀들. 그 수가 50마리다.
그리고 그 위에 앉은 그리핀 라이더와 마법사들.
그리고 쥬리핀의 옆에서는 금수를 놓은 화려한 로브를 입은 사내가 타고 있었다.
그리핀 부대의 지휘관이자 왕실 마법사 중 한 명인 일레인 모르지에였다.
그저 전령으로서 그리핀을 타고 다니는 자신과는 급부터 다른 이.
‘마법사가 무려 50여 명이라니······.’
지난 페르딤 공화국과의 전장에 동원된 마법사의 숫자와 거의 비슷했다.
전장에 이만한 마법사 부대를 끌고 간다면 웬만한 전장은 손쉽게 이길 터.
심지어 그 마법사들이, 마누스 최고의 전술 병기로 불리는 그리핀에 타 있다.
‘그간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적어도 쥬리핀 자신이 목도한 바는 없었다. 전령으로 수많은 전장을 오고 갔음에도.
‘내가 왜 여기 있더라?’
긴장하여 새하얘진 쥬리핀의 머리에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이드.’
쥬리핀은 이 무리의 길잡이로서 참여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길잡이보다는 제이드의 얼굴을 안다는 이유가 더욱 컸으리라.
쥬리핀은 제이드를 기억하고 있다.
‘마운틴 놀들의 소초 급습 사건 이후이니 꽤 오래되긴 했군.’
당시 화살을 보급하러 전해주었던 그리핀 라이더가 바로 쥬리핀이었다.
그때는 고작 말단 병사였던 제이드다.
에르뒴 산맥의 협곡을 따라 이백여 마리의 마운틴 놀들을 막아내던 광경은 온갖 전장을 다닌 쥬리핀으로서도 잊기 어려웠다.
한 명의 기사도 없이 경비병들과 사냥꾼들로 막아낸 전설적인 수비 아닌가.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풀며 술집에서 술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럴 때면 술집에는 제이드의 다른 전장의 영웅담도 전해지곤 했다.
성벽에서 페르딤 군을 막아낸 이야기, 그랑힐 시에서 마수를 잡았다는 이야기, 회색 숲에서 트롤을 쓰러트렸다는 이야기까지.
하나 같이 전설적인 이야기들.
전후방을 오고 가며 커다란 명성을 쌓고는 용병이 된 사내.
그런 이의 첫 번째 행보를 목격했다는 건 쥬리핀에게 일종의 자긍심마저 생기게 할 정도였다.
“허, 이게 진짜란 말이야?”
그렇기에 쥬리핀은 도시 셰리오에 도달했을 때. 아래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하얀 물결이 꿈틀거리며 성벽으로 파도치는 모습.
저게 다 개미들······ 아니 악마종이란 말인가?
거대한 흰개미 천여 마리가 성벽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시 안으로 침범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
“물 원소 마법을 전개해라!”
함께 온 마법사들이 온갖 마법을 전개하며 개미들을 향해 날렸다.
“메마른 갈증의 파도여, 저들을 꿰뚫어라!”
“들끓는 태양의 눈물이여, 분노의 화살을!”
날카로운 물의 창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물의 화살이 되어 쏟아졌다.
지상에서 폭음과 함께 흰개미들이 터지고 뒤집어지는 게 보였다.
“쥬리핀! 가서 제이드를 찾아라! 그리고 어명을 전달해라!”
“예!”
일레인 모르지에의 명령에 쥬리핀은 고삐를 늘어트렸다.
느슨해진 고삐에 그리핀이 도시 아래로 하강했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성벽.
이미 반쯤 무너진 성벽.
쥬리핀은 그나마 견고해 보이는 자리에 착지했다.
쿠웅!
그리고 인간과 오크들, 그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이곳에 마누스의 전쟁 영웅, 제이드가 있다고 들었다! 그는 어디 있지?”
한편 쥬리핀의 말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이드라니······.”
“전쟁 영웅? 그게 누구죠?”
모하드와 후세인은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을 착각한 게 아닌가?
“도우러 온 건 고맙지만,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여기엔 제이드라는 친구가 없다고.”
검은 뱀 형제 자라크는 저 이름 모를 그리핀 라이더가 하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이드라면 여기 없다.”
끝이 양뿔처럼 휘어있는 특이한 활을 든 사내, 로빈이 나서기 전까진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그리핀 라이더가 눈을 크게 끔뻑였다.
“자네는······ 로빈! 분명 제이드의 부하였던 로빈 맞나?”
“맞다. 키텔로 레인저 출신의 로빈이지.”
“키텔로를 입에 달고 다니는 걸 보니 확실하군!”
“······아무튼, 제이드라면 사막의 심부로 나아갔다. 이 재앙을 끝내기 위해서.”
로빈의 설명에 그리핀 라이더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로빈의 말에 검은 뱀 형제들의 눈살이 구겨졌다.
“잠깐 로빈, 그게 무슨 소리지? 네 두목이라면 드이제······.”
“······제이드?”
중얼거리든 두 오크 형제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마누스 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드이제. 그리고 그의 용병대.
전쟁 영웅으로 활약했다는 제이드. 그런 공신이 전후에 제대하여 용병대를 창설했다는 이야기.
“크, 크크크. 크하하하핫!”
“하, 세 살배기 오크가 농담해도 이것보다 더 웃기겠군.”
너무나 성의 없는 이름에 오히려 추측도 안 했다.
“거인의 발밑이 가장 숨기 좋다더니 그게 이런 거였나.”
실소를 내뱉은 자라크가 고개를 저었다.
오른팔이 없어 손뼉을 칠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
드이제, 아니 이제는 제이드라고 불러야 할 녀석.
영웅이라 불리기에 자격이 충분한 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이드. 녀석은 이미 영웅이었던 건가.”
두 영웅의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 * *
“그게 무슨 소립니까!? 루퍼스 그자······, 크흠! 총사령관이 그리핀 부대를 이끌고 사막으로 진출했다니요!”
“저도 방금 들은 터라······.”
한편 마누스 왕성에서는 루퍼스의 출진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루퍼스.
그자가 50여 마리의 그리핀 부대와 왕실 전투 마법사 50여 명을 데리고 사막으로 출진했다.
심지어 기병들까지 데려갔다고 하니······.
“왕실의 최정예 전력 중 하나가 아닌가!”
“무단으로 병력을 이끌고 나갔단 말인가?!”
“그, 그것이 전하께서 허하셨답니다.”
“뭐라?”
친 제국파의 관료들은 정보책의 말에 믿을 수 없어 책상을 두드렸다.
쿵!
대체 어째서?
말도 안 됩니다!
관료들의 말에 어수선해진 회의장.
글레바 백작은 제 고운 아미를 구기며 생각했다.
‘뭔가 있다.’
최정예나 다름없는 전력을 루퍼스가 이끌고 나갔다.
왕자가 자신의 입지가 위태롭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무모하고 과격한 움직임을 보일 이유는?
“총사령관께서는 제이드랑 연통을 주고받았다 했지?”
“예? 예 그렇습니다, 글레바 백작님.”
특히 제이드. 그자의 이름이 들려올 때면 항상 예측 밖의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거슬리는군.’
분명 제이드는 루퍼스의 의뢰로 태양의 재림을 찾으러 사막으로 갔다.
그런데 루퍼스도 전력을 이끌고 갔다는 건······.
‘설마, 사막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가?’
재앙. 그렇게 불리고 있는 악마종의 준동.
만일 루퍼스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거대한 개미들, 집결하는 약탈자 무리들 등 혼란스러운 사막의 정세 덕분에 왕국 내로 제국의 병력을 들여와서 왕권을 약화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있던 참이 아니던가?
만일 루퍼스가 이를 해결한다면 제국의 군대가 들어올 이유가 사라진다.
‘더군다나 그 왕자의 입지가 단단해지겠지.’
왕권은 더욱 드높아질 것이고, 차기 왕으로서의 내실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거기에 만약 그 왕관을 정말 찾는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잔뼈 굵은 그녀는 이럴 때 할 일을 알고 있었다.
‘흐름을 끊어야 한다.’
상대의 수가 망가지기를 기도하는 건 하수다.
최대한 흔들어서 실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글레바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국왕에게 향했다.
루퍼스의 무단 행동을 트집 잡아서 소환 명령을 내리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미 왕의 집무실에는 이미 코하르펜 공작과 그의 측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희미한 적색의 머리를 가진 풍채 좋은 노인이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그래. 글레바 백작까지 왔군.”
“전하를 뵙습니다.”
글레바 백작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국왕 루브릭 2세.
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코하르펜 공작의 형이었고, 말년의 나이였지만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글레바 백작. 그대도 혹 내 아이가 내린 결정에 불만을 가지는 건가?”
“불만이라 하시면······.”
“최정예 병력을 이끌고 사막으로 간 것 말이지.”
“······.”
국왕 루브릭의 말에 글레바 백작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녀의 옆에 선 코하르펜 공작은 이미 들었던 것인지 얼굴이 반쯤 구겨져 있었다.
“전하. 페르딤과 휴전을 맺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갑자기 병력을 이끌고 사막으로 향한 것이 페르딤에게 명분을 쥐어 줄 수 있음을 모르십니까?”
“······저 역시 같은 생각이옵니다. 그를 불러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코하르펜 공작이 천천히 읊조렸고, 글레바 백작은 그 옆에서 보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루브릭은 콧방귀를 뀌며 피식 웃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소. 이미 총사령관하고는 이야기가 되어있네.”
코하르펜 공작은 국왕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야기되었다고?
그 말은 국왕이 루퍼스의 출전을 허했단 말인가?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내각 관료 중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왕정이라지만, 정책과 전략 등 중대 사항은 내각 관료들의 회의를 거쳐야만 했다.
그게 이 나라가 굴러온 방식이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니 말이네······. 이 내가 승인했으니 신경 쓰지 말도록.”
“에퀘르 경. 그대는 알고 있었소?”
코하르펜 공작의 가라앉은 시선이 국왕의 옆으로 향했다.
루브릭의 호위 기사이자 마누스 왕실의 기사단장 에퀘르.
그는 코하르펜 공작의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나지요.”
순순히 물러나는 코하르펜 공작에 글레바 백작 역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코하르펜 공작이 입을 다시 연 건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다음이었다.
“······왕도 한 통속이었나.”
너무나 당연한 소리겠지만, 루퍼스와 가장 뜻이 맞으며 왕권을 견고히 만들려는 이는 현 국왕이다.
아마 저 두 부자간의 이야기는 끝이 났으리라.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려 할 것이다.
좋지 않다.
친 제국파인 그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공작, 이제 어쩌시렵니까?”
“국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움직였다면······ 이미 우리를 도려내려고 준비하는 거겠지.”
코하르펜 공작은 집무실에 걸려 장식된 갑옷과 검을 한번 바라보았다.
“우리를 내칠 준비를 하고 있다면······.”
갑옷에 난 흠집과 군데군데 찌그러진 부분은 이 갑옷이 단순히 장식용 갑옷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스릉.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을 한번 들어 돌리자, 코하르펜의 적회색 눈동자가 비쳤다.
“고결한 방식으로 대할 수는 없는 법이지.”
* * *
죽음에서 돌아온 망자. 언데드.
그 형태는 썩은 살점으로 움직이는 좀비부터 영체만으로 움직이는 스펙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언데드라 하면 백골로 만들어진 스켈레톤일 것이다.
딱딱딱딱!
캐스터네츠처럼 턱뼈로 소리를 내는 스켈레톤들이 우리 앞으로 달려들었다.
흑마법사 여인의 마기를 받아 갑옷을 이룬 녀석들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점의 근육도 없는 것들이!”
바바크가 괴성을 지르며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와자작!
그러자 스켈레톤들은 박살이 나며 허공으로 뼛조각들이 우수수 터져 나갔다.
그 옆에서 카일은 허리춤의 검들을 전부 꺼내 들고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둡고 시커먼 기운을 흩날리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카일이 푸른 장검으로 받아 쳐냈다.
뒤이어 붉은 레이피어로 갑옷을 꿰뚫었고, 다음은 초록색 비도를 던져 머리를 맞췄다.
일격에 푸르른 얼음이, 이격에 타오르는 불꽃이, 삼격에는 터져 나오는 뇌전이 데스나이트를 집어삼켰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카일의 별명이 떠올랐다.
소드마스터.
제 몸처럼 다루는 검술 실력에 붙은 별명.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데스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서진 뼛조각들이 다시금 재조립되며 해골 기사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저것이 스켈레톤이 까다로운 점이다.
소환사의 마력을 먹고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
“번거로운 놈들이군!”
“바바크, 진정해! 우리 계획은 놈들만 쓰러트리는 게 아니야. 이 아래에 있을 악마까지 잡아야 한다고.”
또다시 뛰쳐나가려는 바바크를 향해 카일이 꾸짖었다.
하지만 그런 카일의 얼굴도 좋진 못했다.
나는 둘을 바라보다가 데릭에게 소리쳤다.
“데릭, 그거 갖고 있지? 꺼내서 돌려.”
내 명령에 데릭이 주머니에서 다섯 개의 유리병을 꺼냈다.
은은한 푸른 빛이 흐르는 액체.
나는 그걸 카일에게 던졌다.
“이봐 카일, 받으라고.”
“이건······?”
“이름하여 ‘영혼의 눈물.’ 언데드를 상대할 수 있게 해주는 물약이지.”
영혼의 눈물.
언데드를 상대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물약.
찰랑이는 액체를 바라본 카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달머금꽃의 눈물인가? 더 가공된 것 같긴 한데······.”
역시나 알아본다.
1회차 당시 저걸 최초로 전파한 게 바로 카일이었으니까.
“이걸 어떻게······ 이건 로데인 부족의 주술사들만 아는 방법인데?”
로데인 부족. 에이온 왕국 근처 북방의 부족이다.
카일은 그들과 연이 있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마왕군과 전투를 치를 당시, 로데인 부족이 카일을 따라서 움직였었다.
어안이 벙벙한 카일을 향해 웃어 보이곤 나는 영혼의 눈물을 마기 포식자에 발랐다.
정신을 차린 카일 역시 검에 영혼의 눈물을 바르곤 말했다.
“드이제. 나와 바바크가 데스나이트를 상대할게. 그때까지 개미들을 상대로 버텨줘.”
“무슨 소리야, 카일. 우리가 개미를 다 잡을 때까지 너희가 버텨야지. 이쪽은 우리가 전문가인데.”
나와 카일은 서로를 향해 피식 웃어 보이곤 땅을 박찼다.
띠링!
[영혼의 눈물이 영계의 힘을 빌려옵니다.] [눈물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 언데드들을 상대할 때 전투력이 상승합니다.]떠오르는 메시지를 지우며 나는 떨리는 마기 포식자를 강하게 쥐었다.
크르르르.
옆에선 칼라마르가 날카로운 제 비늘을 키우며 앞발을 휘둘렀다.
키이이이!
머리가 세 개인 케르베로스 흰개미의 가운데 머리가 짓이겨지며 터져 나갔다.
나는 오러를 피워올리며 달려드는 흰개미들을 향해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붉은 폭풍.”
검보라빛 오러의 폭풍이 놈들을 향해 쏘아져 찢어발겼다.
흑마법사 중 한 명의 것으로 분명한 실험 도구가 박살 나 허공을 나는 게 보였다.
연기를 뚫고 달려드는 흰귀신개미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집게턱으로 다리가 대체된 녀석이었다.
“데릭!”
“걱정 마라!”
[돌격대장 ‘데릭’이 스킬 – 괴력(LV. 6)을 사용합니다.]놈을 향해 데릭이 뛰쳐나가 도끼를 크게 내려찍었다.
콰앙!
철퍽 튀기는 누런 진액을 닦는 데릭의 옆으로 거대한 개미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나 녀석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룬의 화살이 개미의 눈을 꿰뚫었고, 벌어진 턱을 드렌트의 창이 관통했다.
파직! 파지직! 콰아아앙!
창에서 터져 나온 번개가 개미를 튀겼다.
키이이이익!!
흰개미의 외골격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며 탄내와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풍겼다.
그러는 사이 카일과 바바크도 데스나이트들을 수월하게 쓰러트리고 있었다.
푸르른 오러가 흘러나오며 데스나이트들을 뼈째로 절단시키고 있었다.
절단면은 얼어붙고, 녹아내리며 카일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쾅! 콰앙!
그 옆에선 바바크가 맨주먹으로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뽑아 박살 냈다.
“자! 또 부활해 보아라! 크하하!”
바바크의 팔에서 흘러나오는 불그스름한 기운, 용력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저쪽도 장난 아니구만.
나는 혀를 내두르며 흑마법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박살 나는 개미들과 데스나이트에 두 남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 말도 안 돼······ 고작 여덟 명일 텐데······!”
“자 이제······, 어쩔 거지?”
데릭과 드렌트가 착실하게 개미들을 죽이고 있었고, 데스나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남은 건 두 흑마법사뿐.
“원래는 인형으로 만들어 이뻐해 주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여왕의 먹이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뭐? 여왕?
그때 여자가 벽에 달린 장식 하나를 당기자 덜컹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서 있던 위치의 바닥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젠장! 이 방 전체가 함정이었던 건가?
깨닫기에는 이미 늦었다.
모두가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우와아악!”
“드, 드이제 씨!”
균형을 잃고 떨어지는 트루디아와 라니스가 내 시선에 들어왔다.
“칼라마르!”
크르륵!
내 외침과 함께 녀석이 벽을 박차고 트루디아와 라니스, 대원들을 등에 태운 채 안전하게 착지했다.
쿵─ 쿵─
나와 카일, 바바크는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충격을 줄였다.
“여긴······.”
발을 타고 올라오는 충격에 이를 악물며 주변을 살폈다.
공기가 이질적이다.
어두워서 잘 분간이 안 되지만, 방안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위쪽 구멍에서 내려오는 빛줄기를 따라서 넘실거리는 검은 흐름들.
“이거, 설마······.”
그때, 위에서 흑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이 어딘 줄 아느냐? 여왕의 산란실이다!”
“악마의 숨결을 한가득 채운 공간이다! 너희 놈년들이 버틸 공간이 아니지!”
악마의 숨결이라고?
녀석들의 외침과 동시에 대원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쿨럭, 쿨럭! 목, 목이······! 숨쉬기가 힘들어!”
“머, 머리가 너무 아파! 으으으!”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뱉는 대원들이 이를 악물었다.
[악마의 숨결과 접촉했습니다!]투두두두.
투두두두.
여왕의 산란실이라더니, 저 앞에서 흰귀신개미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야 원······ 육지동물이 상어 우리 안에 빠진 꼴이라고 해야 할까?
질식하는 와중에 달려드는 포식자들과 맞서야 한다.
“드이제. 놈들이 고맙게도 여왕한테 바로 데려다줬군. 오히려 좋지 안 그래?”
“뭐?”
“딱 보니까 여왕이 이 재앙의 원흉 아니겠어? 우리의 목표가 코앞이란 소리지. 지름길이었던 거야.”
카일은 아무렇지 않은 척 기세등등하게 말했지만, 주춤주춤 걷다가 결국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코와 입을 막은 바바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들은 아마 ‘영웅’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지녔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드이제, 잘 들어. 우리의 계획은 개미들이 우리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콜록!”
카일 이 녀석은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열심히 궁리하는 듯했다.
검을 뽑아 들고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주변을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용사.
위기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한 줌의 희망일지라도, 반드시 움켜쥐어서 역전한다.
카일이라면 이런 위기를 수도 없이 겪었을 테고, 기어코 이겨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도 반드시 그러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애초에 위기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카일. 계획은 간단해.”
나는 콜록거리는 카일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누가 사냥감인지 제대로 각인시켜주는 거야.”
“드, ······이제?”
파르르 떨리는 카일의 시선에 나는 씨익 웃으며 걸어 나갔다.
후읍.
하─
나는 크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상쾌한 기분이군······ 칼라마르, 너도 기분 좋지?”
크르르르.
옆에 선 칼라마르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검보라빛 비늘이 날카롭게 솟았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이곳의 사악한 공기.
“후우우──”
그것이 내게는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흑암성의 오러.
마기를 흡수하여 마나로 치환하는 기이한 특성.
그것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고 있었다.
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막대한 연료가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즉, 마기가 가득한 악마의 숨결은······ 오히려 내게 버프나 다름없다.
[악마의 숨결과 접촉했습니다!] [특성 – 영웅이 악마의 숨결을 일부 저항합니다.] [특성 – 흑암성의 오러가 악마의 숨결을 흡수합니다.]두근! 두근!
심장에 각인된 흑암성의 오러가 마기를 만나며 크게 뛰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이 50% 상승합니다!] [마력 회복력이 300% 상승합니다!] [흑암성의 오러의 효과가 200% 상승합니다!] [‘칼라마르’의 신체 능력이 50% 상승합니다!] [‘칼라마르’의 마력 회복력이 200% 상승합니다!] [마기 추적의 반경이 200% 상승합니다!]“단순한 개념이야. 먹이사슬.”
충만감을 넘어 희열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포식자는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