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흑암성의 오러.
내가 달맞이꽃의 눈물을 제조하던 중 얻은 우연의 산물.
정확히는······.
달맞이 꽂.
별의 조각.
마기포식자.
이 세 가지가 융합되면서 열린 ‘히든 특전’이라고 해야 할 듯했다.
그렇게 얻은 이 특별한 오러의 능력은 간단하다.
마기를 마력으로 변환하는 것.
즉 흑마법사를 상대할 때만큼은 강력한 동력 기관이 된다.
쿵. 쿵. 쿵. 쿵.
빠르게 뛰는 심장. 미친 듯이 돌아가는 마나 하트.
마기를 집어삼켜서 소화하고 마나를 생성한다.
나는 마치 폭주 기관차가 된 것만 같은 고양감을 느낀다.
“후······.”
숨을 내뱉으며 감각을 끌어올리자 온몸에 압도적인 힘이 감돌고 있음 체감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역시도 마기 포식자와 함께 카일이 1회차에 얻었어야 할 능력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겐 흑암성의 오러가 없다.
슬쩍 카일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카일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허탈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놀람과 경악에 찬 표정.
너무나 잘생긴 얼굴이기에 그마저도 화보에 들어갈 법한 외모다.
그런 카일이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대체 넌······ 어디에서 뭘 하던 놈이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온 거야.”
카일은 새삼스럽게도 내 목적을 묻고 있었다.
그간 그저 우연히 마주친 인연이라고 여겼나 본데, 지금은 사뭇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제 내가 제대로 신경 쓰이나 본데.’
한편 ‘무슨 이유로 여기에 온 것이냐는’ 마치 내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듯이 묻는 그 말이 어딘가 재미있었다.
1회차에서는 농담으로도 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있을 곳이 아닌데.
– 친구, 당신은 당신이 필요한 곳에 있으면 돼. 적어도 여기는 아니야.
설산에서 카일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블랙 드래곤의 토벌, 대수림 속 거인의 기상, 깊은 숲의 대화재 등등
세계에 커다란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카일은 항상 선두에 섰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카일은 내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마력을 깨우쳤고, 흑암성의 오러를 얻었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강하게 박동하며 진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마기 포식자의 검날을 타고 흘러나오는 오러.
멈추지 않고 흘러나온다. 마치 둑이 터진 듯이.
고오오오!
검보라빛의 불길이 검신을 집어삼키고 어느새 내 몸을 집어삼킨다.
온몸에서 피어나오는 오러가 마치 거대한 화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포근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인걸.’
칼라마르 역시 더욱 날카로워진 비늘을 세우며 제 몸을 크게 세웠다.
테이밍 스킬 덕분일까?
녀석의 마나 하트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응축되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용을 닮은 날카로운 입가로 내 오러와 비슷한 기운이 마치 입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심지어.
[‘칼라마르’의 마나 하트가 팽창합니다.] [‘칼라마르’의 잠재력이 일시적으로 개화합니다.] [스킬 – 브레스(LV. 1)가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브레스라.
이건 예상 밖의 선물인데.
작게 감탄하는 사이 저 멀리서 어두운 연기를 헤치고 흰귀신개미들이 바닥과 벽을 타고 기어 왔다.
크르르르!
키이익?
키이이익!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러 때문일까, 아니면 칼라마르의 위압감일까.
칼라마르의 울음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더듬이가 쫑긋 서더니 멈칫하더니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드이제’의 명성이 제이드의 명성으로 이전됩니다.]띠링!
[드이제 용병단의 활약이 제이드 용병대로 합쳐지기 시작합니다!] [사막정의단을 궤멸시킨 소문이 퍼집니다!] [콜로세움을 제패한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바티스타 시의 재앙 토벌대를 창설했습니다.] [셰리오 시의 모든 종족에게 ‘제이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갑자기 시야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나는 첫 번째 메시지의 내용에 집중했다.
지금껏 사용해왔던 드이제라는 가명이 제이드로 합쳐진다니.
‘내 정체가 까발려진 건가?’
그걸 알아 차릴만한 일이라면······. 루퍼스, 그의 지원군이 셰리오 시에 제때 도착했음이 틀림없다.
내가 설계한 대로 판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아니, 그보다 더욱 잘 흘렀음이 틀림없다.
마누스의 정예 병력이 도착했을 테니, 셰리오 시는 버텨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저 앞의 여왕개미를 족치는 것.’
그런데 메시지는 멈추지 않았다.
[사막정의단을 궤멸시켜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콜로세움의 챔피언을 달성하여 명성이 (+250) 상승합니다.] [재앙 토벌대를 창설하여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셰리오 시의 모두가 당신을 찬양하여 명성이 (+350) 상승합니다.]·
·
·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멈칫했다.
‘비전 창안?’
분명 비전 창안은 용병대 시스템의 기술 전수와 함께 개방되지 않았던 시스템 아닌가.
‘제이드 용병대로 활동하며 얻은 명성이 2천 언저리였을 텐데.’
드이제로 활동하며 얻은 명성이 그 절반에 근접했다는 거다.
비전(祕傳)은 대대로 전승되는 비법이라고 해야 할까.
한 조직의 정체성이나 비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창안이라 한다면 내가 만드는 건가?
이어지는 의문에 대답하듯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용병대 비전(祕傳)을 창안할 수 있습니다.] [용병대원 전체가 해당 특성을 습득합니다.] [자신이 가진 특성과 스킬 중 한 가지를 선택하세요.] [제이드]– LV. 32
– 힘: 36
– 체력: 35
– 마력: 37
– 직위: 제이드 용병대 대장
– 칭호 : 주신교단 – 실버 크로스, 하급 악마 사냥꾼
– 특성: 용맹함[D], 영웅[A], 카일룸 연공법[B], 흑암성의 오러[S], 영력(靈力)[A]
– 보유 스킬: 용병술(LV. 6), 화술(LV. 5), 검술(LV. 11), 사이코메트리(LV. 3), 안목(LV. 2), 붉은 폭풍(LV. 3), 테이밍(LV. 2)
그러자 상태창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특성과 스킬 목록이 빛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전을 고르라니.’
당황스러웠지만, 고민은 짧았다.
‘전에 열린 기술 전수의 한 수 위의 개념이다.’
예전에 ‘기술 전수’가 열렸을 때부터 한 번쯤 생각해본 일이었다.
만약 특성들을 대원 전체에게 전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중에서도, 단연 전수하고 싶은 건······.’
저 뒤에서 콜록거리는 카일, 그리고 뒤의 대원들.
악마의 숨결로 가득 찬 공간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유유히 활보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단 한 가지.
유일한 S급 특성.
흑암성의 오러.
‘······이것도 될까?’
나는 고민 없이 흑암성의 오러를 골랐다.
연이어 메시지가 떠올랐고.
고통과 무기력함을 호소하던 대원들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콜록, 콜록! 크흑! 으, 음?”
“뭐, 뭐지? 몸이 좀 괜찮아졌는데?”
“여기에 적응이 된 건가?”
드렌트가 떨어트린 창을 쥐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괜찮아?”
“이, 이거도 네가 한 거야, 대장?”
갸웃거린 그룬이 말했다.
질문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녀석의 말과 동시에 녀석의 입에서 아주 미세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이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기에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마기가 빠져나오고 있네.’
나는 그걸 보며 비전 창안의 사기성을 단번에 깨달았다.
정확히는 용병대 고유 특성이 된 마기 저항에 대해.
‘앞으로 마기를 가진 적들과 수없이 부딪칠 거야.’
흑마법사, 악마들, 그리고 마왕군까지.
필연적으로 마기가 가득한 전장으로 돌격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1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단들의 신성력을 선봉으로 앞세워야만 했지.’
하지만 교단의 수는 제한적이었으며, 마기에 노출된 사후 조치라는 한계가 있었다.
즉, 연합군은 언제나 마기 노출에 인한 피해를 달고 싸워야만 했다.
그런데 앞으로 함께할 대원들까지 마기 저항이 기본 옵션이라면?
더 나아가 비전 스킬이 성장하여, 모두가 흑암성의 오러를, 마기를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면?
‘대마왕군 특수부대가 될 수 있다.’
1회차에서는 오로지 용사에게 의존해야 했던 일들을 해결할 수단이 하나 더 생긴다는 뜻이었다.
역전의 와일드카드가 되어서 말이다.
“데릭, 드렌트, 그룬. 준비 끝났으면 슬슬 시작하자.”
나는 칼라마르와 함께 마기를 헤집고 나아갔다.
내 뒤로 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따라왔다.
어둠 속,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놈이 떨고 있음이 느껴졌기에.
[하급 허기의 악마 – 포르미나를 마주했습니다.] [퀘스트 정보]제목 : 망령왕의 시험
설명 : 어둠의 근원을 탐하는 마기 포식자를 진정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어둠에서 태어난 괴물들을 사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상 : 마기 포식자 3단계 개방, 흑암성의 오러 특성 진화
[망령왕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악마 사냥 – 0/3]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여왕, 악마의 존재를 느끼며 나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 * *
– 먹잇감이구나······.
짙은 어둠 속 저 너머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마다.
노인과 아이의 목소리가 여럿 겹친 듯한 악마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깊게 울렸다.
– 그것도 아주 맛있는 먹잇감이야······.
귓가를 어지럽히는 악마의 목소리에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안 그래도 가쁜 숨이 더욱 가빠졌고, 욱신거리는 두통은 더욱 지끈거렸다.
마기 중독의 증상이었다.
투두두둑.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흰귀신개미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점차 그 모습을 드러냈다.
키리리릭!
십여 마리의 흰귀신개미들 뒤로, 몇 배는 더 큰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이제의 록 드레이크보다도 족히 두 배는 커다란 몸집······ 돛 한 개짜리 선박 크기는 될법했다.
등에 자라난 커다란 피막의 날개.
사마귀의 앞발처럼 생겨서,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앞다리까지.
다른 개미들과는 전혀 다른 외형을 가진 괴물.
여왕개미······ 아니, 악마였다.
– 나는 허기의 악마 포르미나. 너희들의 몸을 바쳐 내 양분이 될 영광을 주겠다.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는 포르미나의 목소리에 카일은 얼굴을 구겼다.
‘상황이 최악이군.’
마기에 중독된 지금, 온전히 힘을 끌어내기는 어려웠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신성력이 담긴 검부터 찾아둘 걸 그랬나?’
신의 힘이 온전히 깃들었다는 성검.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카일은 환상 속의 그 검이 무척 절실하게 느껴졌다.
분명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텐데······.
그렇게 계산에 빠진 자신과 달리, 움츠러들지도 않고, 악마를 향해서 나아가는 이들. 카일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드이제.”
짙은 마기는 인간을 약하게 만들고, 반대로 악마들을 강하게 만든다.
세상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드이제가 풍기는 존재감은 오히려 한 층 더 강해져 있었다.
주인의 마력을 닮는다는 록 드레이크 역시 더욱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역시. 드이제는 그 힘을 가지고 있어.’
대륙에는 온갖 종류의 힘이 있다지만, 마기를 상대로 우위를 가지는 힘은 단 한 가지로 알려져 있다.
신성력.
신앙을 통해 얻는 신비의 힘 중 하나.
마기와 상반되는 정화의 힘.
그렇기에 주신교단을 비롯한 교단들이 흑마법사들과 악마들의 처리를 도맡는 게 아닌가.
‘─라고 알려진 게 일반적이지.’
카일은 마기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알고 있었다.
파마(破魔).
악의 힘을 흡수하고 군림하는, 가장 이질적인 힘.
크롸라라─!
달려들던 흰귀신개미들이 록 드레이크의 포효에 자지러졌다.
심지어 몇몇 개미는 몸을 뒤집더니 즉사했다.
로데인 부족 주술사들이 만들어 뿌리던 제충제에 맞은 벌레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완벽한 파마의 힘이다.
카일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힘이, 드이제에게 있던 것이다.
– 어리석은······! 한 줌의 물이 되거라!
그러는 사이 포르미나는 입에서 녹색의 산성을 뿜어냈다.
마치 물줄기처럼 뿜어나오는 산성은 부서진 천장 잔해를 단숨에 녹여버리곤, 드이제를 향해 쏘아졌으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호흡을 내뱉으며, 움켜쥔 검을 휘둘렀다.
“마기 폭발.”
드이제가 검을 휘두르자 오러의 폭발이 일어나며 산성액을 날려버렸다.
콰아앙!
그러자 거대한 화마가 폭포수에 맞닿은 것처럼 막대한 증기가 터져 나왔다.
쿠구구구구!
그 증기는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모두 급히 입과 코를 가렸으나, 숨을 계속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큭. 유리가루를 들이마시는 기분이군.”
얼굴 전체가 아리고, 폐까지 쿡쿡 쑤셨다.
마기와 악마의 기운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 강산성의 증기까지 더해지자, 정말로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카일은 충격을 받았다.
“대장! 우리도 간다!”
“데릭 멍청아, 도끼 크게 휘두르면 우리도 맞는다고!”
“드렌트! 잡졸 개미부터 죽여! 여왕을 호위하는 개미다!”
포르미나를 상대로 맞서 싸우는 드이제.
그의 뒤로 부하들까지 합류하여 몰아붙이고 있었다.
거대한 낫과 같은 여왕의 앞발 공격을 튕겨내는 드이제.
키이이익!
드이제를 공격하려 달려드는 개미들을 향해서 드렌트가 벽을 박차고 나아가, 창을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사방에서 날아드는 집게턱과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앞다리를 전부 피했다.
마치 어디서 공격해올지 안다는 듯 일체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재(懋才)다.
뛰어난 거리 감각으로 홀로 춤을 추듯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재능.
‘하지만 힘이 부족해.’
한꺼번에 달려드는 개미들을 일시에 상대할 수는 없으리라.
“바바크······ 몸 상태가 별로지만, 우리도 나선다.”
“그래. 대단한 녀석들이지만 충분치 않아 보이는군.”
그를 돕기 위해 녹빛의 비도를 꺼내는 그때, 드이제가 먼저 외쳤다.
“데릭! 드렌트를 보조해서 새끼들부터 처리해!”
“드렌트! 알아서 도끼 피해라!”
데릭이 던진 손도끼가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갔다.
곧 드렌트의 옆구리를 향해서 집게턱을 벌렸던 흰개미의 머리가 좌우로 갈라졌다.
퍼석!
데릭과 드렌트가 등을 맞댄 채, 도끼와 창을 휘두르며 새끼 개미들을 도륙했다.
하지만 여전히 둘만으로는 모든 방향을 신경 쓸 수 없었고, 때때로 위태로운 틈이 드러났다.
“그룬!”
푹! 푹!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재빠르게 쏘아진 화살들이 흰귀신개미의 입으로, 눈을 관통하며 움직임을 막았다.
키이이익!
키이이익!
후방에서 전투를 보조하는 궁사, 그룬이었다.
“염병! 데릭, 드렌트! 개미 똑바로 막으라고!”
화가 난 듯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룬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신이 난 듯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실로 완벽한 호흡이었다.
오랫동안 등을 맡겨왔다는 게 느껴졌다.
“······대단해.”
카일은 저들의 활약이 묘하게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는 드이제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데릭이라는 거구의 사내가 괴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바바크와 비교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릇 범인(凡人)들에겐 한계가 있는 법 아닌가.
‘이 세상은 불공평하게도, 날 때부터 주어지는 게 다르니까.’
비상한 힘이나 재능을 타고난 존재들.
바바크와 자신과 같은, 그런 운명과 능력을 지닌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드이제를 눈여겨보았다.
반대로 나머지는 그저 들러리 정도로만 평가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드이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세 명의 범인.
그들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저 개미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카일은 판단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 이상의 용기를 발휘하고 있었다.
좋게 포장했을 뿐, 자살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저 범인들은 거침없었다.
‘드이제의 명령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움직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 앞에서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 주저함을 이기는 건 객기, 분노, 사랑 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취기에서 오는 객기.
가족을 잃은 이의 분노.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랑.
카일은 그런 주저함을 이기는 한 가지가 더 있음을 깨달았다.
‘신뢰.’
리더에 대한, 서로에 대한 완벽한 신뢰.
그것이 오래되고, 숙달된다면······
‘하나의 몸.’
타고나지 못한 한 사람의 능력을 상쇄할, 강력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
홀로, 아니면 바바크와 둘이서라도 꽤 까다로웠을 일들을 저들은 서로의 등에 기대며 적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만약······ 내가 바바크에게 악마에게 돌격하라고 말한다면, 과연 바바크가 망설임 없이 뛰쳐나갈까?’
카일은 그 답을 어렴풋이 있었다.
그렇기에 저들 사이의 견고한 신뢰에 감탄했다.
그때, 멍하니 드이제 일행을 바라보는 카일 옆으로 한 사내가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라니스였다.
그는 물에 적신 기다란 가죽 주머니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트루디아가 지팡이를 쥔 채 주술을 외우는 것이 보였다.
“큭, 계속 그렇게 구경만 할 겁니까?”
라니스는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검을 꽉 쥐고 있었다.
“······의외네.”
카일이 말했다.
“네?”
“별로 의욕이 없어 보였는데 말이지.”
유적에 들어온 뒤, 라니스는 언제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말이다.
카일이 본 라니스라는 인물은 언제든 도망치려는, 겁쟁이 같은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도망치는 걸 본 적은 없다.
싫은데도,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맞아요. 원하지도 않는 여행길이었거든요. 그런데······.”
카일의 말에 피식 웃은 라니스가 드이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랑 지내다 보니까, 이상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라니스는 다시 카일을 향해 물었다.
“그쪽도 지금, 나랑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럴지도.”
라니스의 물음에 카일은 작게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동공에 검을 든 자신이 반사되었다.
카일은 다시금 드이제 일행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여왕을 호위하던 개미들은 다 죽어 있었고, 포르미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쾅! 콰앙! 쾅!
카일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토록 힘을 찾아다녔는데······.”
강대한 제국을, 흑마법사들을 없애기 위해선 특별한 재능과 힘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저런 것도 힘이었군.”
카일은 다시금 검을 쥐며 저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을 돕기 위해서.
그러다가도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아 헛웃음을 뱉었다.
“그냥 용병단이라더니······ 저게 무슨 그냥 용병단이야?”
카일은 잠시 고민했다.
저들을 무어라고 칭해야 할지.
기사단? 아니 그러진 않겠지.
특공대? 결사대? 원정대?
거대한 악에 맞서는 끈끈한 신뢰로 뭉친 집단.
한 명의 강력한 영웅과 믿음직한 그의 동료들.
그에 관한,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