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제국 북부의 겨울은 냉혹하다.
엄동설한의 날씨에 식물은 모습을 감추고 동물은 겨울잠에 드는 것이다.
당연지사, 대부분 북부의 주민 역시 최대한 바깥을 나서지 않았다.
그런 탓에 굴라그 산맥에서 가장 가까운 텔리안 평원은 한가지 별명이 있다.
흰 접시.
동식물부터 사람까지 드나들지 않는 이 원형의 평원은 눈이 소복이 쌓이면 흰 접시 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올해 텔리안 평원의 모습은 달랐다.
– 굴라그 산맥에서 발생한 악마 무리를 처치하라.
제국에서 가장 준엄한 자.
황제의 명이 하달되었고, 그 명령에 따라 제국 북부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텔리안 평원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북부의 설원을 유영하는 얼음뿔 부족 전사들.
북방의 패자라 불릴 정도로 넓은 영토를 가진 글렌벨 백작.
황야에서 개척지를 홀로 일궈낸 것으로 유명한 보쿡 남작을 비롯한 제국과 공국의 인사들이 한데 모인 것이다.
그 병력의 숫자만 족히 3, 4천에 이르는 병력이었고, 흰 접시 같던 텔리안 평원이 순식간에 야영지로 변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응한 건 개비스 남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자리한 세력 중, 아니 제국 북쪽에서 수도까지 보아도 가장 약소한 세력이라 평가될 만한 개비스 남작령.
그 역시 황제의 명령을 받고는 있는 병력, 없는 병력을 전부 이끌고 텔리안 평원에 와 있었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뒤, 그가 맨 처음 한 생각은 ‘공을 세워 팔자를 고치겠다!’라는 것이었으나······.
정작 텔리안 평원에 도착한 뒤로, 그런 생각은 싹 날아갔다.
‘젠장, 여기에 있으려니 살 떨려 죽겠군.’
살이 에는 듯한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회의를 위해 준비된 원형의 막사 안으로 들어와 추위를 피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안의 구성원이 문제였다.
‘얼음뿔 부족 족장인 서리갈기 제리코······ 글렌벨 백작 뒤에 있는 자는 기사 아브렐인가? 사납기로 유명하다던데, 눈 마주치면 안 되겠어.’
개비스 남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세력들의 수장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서 있는 수준 높은 기사들의 기세에 절로 주눅이 든 것이다.
이제 개비스 백작의 머릿속에는 인생 역전의 야망보다, 자칫 밉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하지만 정작 막사 안의 그들에겐 개비스 남작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의 시선은 원형으로 된 막사의 상석을 향해 있었다.
황제의 명령에 위임된 총사령관의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그 총사령관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진 한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기껏 다 모였는데, 총사령관은 대체 언제 나타나는 거야?”
얼음뿔 부족의 족장, 서리갈기의 제리코였다.
그가 얼굴을 구기며 땋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팔짱을 꼈다.
반면 그의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자리는 악의 무리를 상대하는 군대라 들었는데. 왜 야만족이 있는 건지 모르겠군. 안 그러오, 보쿡 남작?”
“그러게, 말입니다. 글렌벨 백작님. 제국에게 운 좋게 복속된 야만족 녀석들이 협력이란 걸 알지······.”
권세만큼이나 거대한 체구의 글렌벨 백작과 눈이 부리부리한 보쿡 남작이 제리코 부족장을 비웃었다.
제리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디서 뒤룩뒤룩 살찐 돼지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군. 게롤트. 도끼날은 잘 갈려 있냐? 오늘 부하들 배불리 먹일 준비 해야겠다.”
“오늘 드디어 제국의 영토 한 곳이 쓸모 있게 되겠구나.”
제리코와 글렌벨 백작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자, 뒤에 서 있던 호위 기사들 역시 기세를 드높였고, 막사의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져 갔다.
‘갑자기 무슨 상황이야, 이게? 미치겠군······.’
두 고래 사이에 낀 새우나 마찬가지인 개비스 남작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두두두두!
설원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리에 서로 으르렁거리던 제리코와 글렌벨 백작 역시 고개를 돌릴 정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선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절그럭. 절그럭.
갑옷끼리 부딪치며 들리는 쇳소리.
그리고 잠시 후.
막사의 입구가 싹 걷히더니, 육중한 갑옷으로 무장한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 사내의 외형은 몹시나 특이했다.
얼굴은 화상자국에 뒤덮여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사내의 얼굴엔 눈썹을 포함해 작은 터럭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외형을 가진 기사는 제국에서 오직 한 명뿐이다.
‘조, 조르곤!’
개비스 남작은 깜짝 놀랐다.
어릴 적 사고로 얼굴엔 화상자국을 입고, 혀가 잘려서 벙어리가 된 기사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조르곤을 무시하지 않았다.
제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사였으니.
그를 무시했다간 그의 검에 찢겨 죽을 테니.
조르곤이 스윽 둘러보는 것만으로 어수선했던 막사는 삽시간에 고요에 물들었다.
좀 전과 달리 침묵만이 막사 안을 감도는 그때.
저벅. 저벅.
조르곤의 뒤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빛이 감도는 검푸른 머리, 날카로운 콧날과 턱선.
무엇보다도 차분해 보이는 눈빛까지.
어느 여인이라도 쉽게 마음을 내줄 것 같은 미형의 사내였다.
현 제국의 2인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
‘······마이어스 공작!’
재무관 마이어스.
아니, 지금은 총사령관이라는 직책에 오른 사내.
개비스 남작은 눈을 빛내며 마이어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개비스 남작 역시 마이어스 공작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다.
그런 만큼 과연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했다.
저벅. 저벅.
그런데 마이어스 공작은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자리에 가서 앉을 뿐이었다.
‘······응?’
개비스 남작뿐만 아니라 자리 모두가 상석을, 자리에 앉은 마이어스 공작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마이어스의 부관이 글이 적힌 양피지 뭉치와 잉크병을 들고 들어왔다.
마이어스 공작은 그를 받아, 자신의 책상 앞에 잘 정리했다.
그러고는 깃펜을 꺼내 잉크병을 열고 서너 번 찍더니, 천천히 양피지를 작성해나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막사에는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만이 들려왔다.
마치 눈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저 잡무를 처리하는 것만 같은 상황.
‘뭘 하는 거지?’
의아함이 개비스 남작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이어스를 향해 항의하거나, 묻지 못했다.
사각사각.
엄숙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류에 집중하는 마이어스 공작의 모습은 이곳이 토벌대 막사인지, 행정 집무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했다.
그때였다.
참석한 영주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연 것이었다.
“저, 마이어스 공작님?”
“기다리시오.”
하지만 그 용기가 무색하게 마이어스 공작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제지할 뿐이었다.
마이어스 공작의 손이 십수 장의 양피지를 부관에게 건넸다.
부관은 기다렸다는 듯 양피지를 각 세력의 수장들에게 건넸다.
개비스 남작 역시 그중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양피지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
그 아래에 찍힌 직인까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종이였다.
모두가 이 양피지를 슬쩍 바라보곤 마이어스 공작을 향해 바라보았다.
이게 무엇이냐는 물음을 시선으로 드러낸 채.
“이 토벌에 참여한 그대들을 위해 황제 폐하께서 보답을 약속하는 칙서요.”
‘치, 칙서!’
그 말에 개비스 남작은 눈을 크게 뜨며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자신이 원하던 부와 권력. 그것들이 이 종이 안에 담겨 있다는 뜻이니.
“자네들 중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자리의 의미는 매우 크다네.”
마이어스는 고개를 드는 대신, 계속해서 서류들을 작성해나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모두 알다시피 제국의 밖으로 악의 무리가 창궐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모였지. 하지만 누군가는 이 시점에 군대를 일으킨 게 미덥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물론이거니와 황제 폐하께서도 잘 아네.”
마이어스의 음성이 울리는 가운데에서도, 마이어스의 시선은 여전히 서류에 닿아 있었다.
그가 깃펜을 움직이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최근, 제국의 정서는 불안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부 정리된 상태지. 나는 이 자리가 새로운 제국의 화합으로. 나아가 황제 폐하와 제국의 안녕을 위한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군.”
그의 말을 끝으로 막사 내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그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칙서를 받아든 자신들은 크나큰 영예와 부,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니.
하지만 단 한 명은 달랐다.
“큭.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제와 가장 대립하던 당신이 황제를 대신해서 제국의 병력을, 아니 전 대륙의 병력을 이끌겠다고? 다른 속내가 있는 게 아니라?”
최근에 제국령에 편입된 얼음뿔 부족 족장, 제리코가 이죽거렸다.
그 모습에 글렌벨 백작은 야만스러운 부족이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마이어스 공작은 제리코의 시비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들리지 않았다는 듯, 서류 작업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얼음뿔 부족······ 분명 제국에 대항할 생각도 못 하고 항복한 약소 부족이었지. 자네의 아비가 백기를 들고 오던 게 떠오르는군. 그때 자네는 어렸지. 아직 마음에 담고 있나? 그때를.”
그 말에 제리코가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기며 크게 소리쳤다.
“이런 썅! 지금 뭐라고 했어!”
하지만 그의 물음에 마이어스 공작은 대답 없이 계속해서 서류 작업을 이어 나갔다.
기사 조르곤은 그의 뒤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 따위는 없었다.
그 태도가 제리코를 더욱 분노케 했다.
“공작, 당신들이 우리 부족 없이 이 설원과 산맥을 오갈 수 있을 것 같나?”
홀로 1천에 가까운 군대를 끌고 온 얼음뿔 부족의 군대의 규모는 이 중 제일 큰 편이었다.
심지어 이 설원에서 오래 살아온 부족으로써, 길잡이 역할도 겸할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빠진다면 토벌에는 난항이 펼쳐질 것이 뻔하였다.
그런데도 마이어스 공작은 그 대신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부관이 막사의 입구를 열어 보였다.
“하, 후회하게 될 거다!”
제리코는 책상을 한번 내리치고는 자릴 박차고 나갔다.
이내 텔리안 평원 바깥으로 어마어마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점차 멀어져갔다.
싸늘해진 막사의 분위기.
그 사이에 모든 서류의 작업을 마친 마이어스가 깃펜을 잉크병에 천천히 꽂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 그러면 1차 토벌대의 구성은 이렇게 정해졌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마이어스의 태도.
“내일 아침, 동이 트는 대로 출발하겠소. 그전까지 다들 문제없이 휴식을 취해놓길 바라지.”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마이어스의 모습에 개비스 남작은 마른침과 함께 불안감을 삼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총사령관 마이어스의 사전 설명대로, 아침 해가 뜨자마자 토벌군은 진군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악마 무리가 모여있다는 굴라그 산맥이었다.
“출발하라!”
진군을 시작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음? 저건?”
맨 앞의 선두에 선 개비스 남작은 길 한복판에 이상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나아가는 새하얀 눈길 한복판.
그 위로 붉은 무언가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나아가던 중, 개비스 남작의 얼굴은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머, 멈춰라! 모두 정지!”
길 한복판을 붉게 물든 인 물건들의 정체.
다름 아닌 한 무리의 시체들이었다.
그것도 개비스 남작도 잘 아는 이들이었다.
뒤로 묶어 넘긴 머리들.
얼굴 곳곳에 그려진 문신들까지.
얼음뿔 부족이었다.
다만 그들이 죽은 모습은 너무나 경악스러웠다.
제리코를 비롯한 얼음뿔 부족의 전사들. 그리고 그들이 타고 간 말까지.
전부 머리만 남아 뒹굴며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것이다.
“무, 무슨······.”
그 잔혹한 모습에 모두가 입을 다문 상황 속에서.
개비스 남작은 볼 수 있었다.
“악에게 당했군.”
어딘가 태연하게 말하는 총사령관의 얼굴.
그 속에 비친 희미한 기쁨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란 말인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개비스 남작은 고삐를 꽉 쥐는 수밖에 없었다.
* * *
제국에서 날아온 칙서.
그 내용은 마누스 왕성에서 곧장 긴급회의를 열기 충분했다.
나는 신전에 있던 사빌나르 주교와 함께 왕성의 회의실로 빠르게 도착했다.
대회의실에 들어서자 그 안에서 루퍼스와 관료들이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간략히 하지. 상황은 전해 들은 게 있나?”
“전하가 보낸 연락만 받아 보았습니다.”
내 말에 루퍼스의 옆에 있던 관료가 벽에 붙은 지도를 가리키며 간략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제국 북부, 굴라그 산맥에서 수많은 악마 무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황제 측에선 악마의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1차로 긴급 토벌군을 꾸려 보냈다는군요.”
“그 수는 어떻게 됩니까?”
“3천에서 4천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칙서에서는 2차 토벌대를 꾸리기 위해 파병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전 대륙의 모든 국가에 전해진 듯합니다.”
나는 관료의 설명을 들으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맨 위쪽.
흰색으로 칠해진 산맥을 따라 내려가면 넓은 평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 평원에 붙여진 이름.
브레딘.
‘하지만 곧 저기서 대학살이 벌어진다.’
브레딘 제노사이드.
산맥에서 내려온 악마의 무리와 대치하게 된 5만에 이르는 대륙 연합군.
그 병력이 허무하게 몰살당하는 사건이었다.
앞뒤로 포위당해서.
‘한쪽은 산맥에서 내려온 거고, 다른 한쪽은······.’
내 시선이 브레딘 평원을 아래로 향했다.
브레딘 평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숲이 그려져 있었다.
‘생명의 숲.’
엘프들이 살아가는 곳이자, 빽빽한 수림 안쪽으로 거대한 생명의 나무. 세계수가 있다고 전해지는 곳.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숲을 잘 아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분명 신궁의 고향이 여기라고 했었지.’
용사 카일의 마지막 동료, 신궁.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가 바로 이 사건 때였다.
즉 이 이벤트 자체가 신궁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자······.
‘······신궁의 고향이 마왕군에게 넘어가는 이벤트다.’
내가 1회차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그때.
갑자기 옆에서 설명을 듣던 사빌나르 주교가 벌떡 일어났다.
“오, 맙소사. 설마······!”
“사빌나르 주교님? 무슨 일이십니까?”
사빌나르 주교는 곧장 자신의 서류를 가져오더니 그를 뒤지며 나와 루퍼스를 향해 이야기했다.
“제이드 백작. 자네가 분명 봉인된 악마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었지. 놈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거라며 말이네.”
“그랬죠.”
“이제는 알겠네. 놈들의 다음 움직임이 어디에서 벌어질지!”
사빌나르 주교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그건 지도였다.
그것도 제국 북부가 묘사된 지도였고, 벽에 붙은 지도와도 거의 흡사했다.
“여기. 정확히는 여기 생명의 숲이네.”
“주교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생명의 숲은 엘프들이 사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 악마가 있단 말입니까?”
사빌나르 주교의 설명을 듣던 한 관료가 의문을 표했다.
“정확하네. 아주 오래전 봉인된 악마가 있지. 제이드 백작에게는 한번 설명했을 것이네. 이름 없는 왕에 대해 말이야. 그 왕이 강력한 악마를 봉인하기 위해, 이 숲의 세계수 안에 봉인했다고 하더군.”
사빌나르 주교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처음엔 나도 의아했네. 하지만 수년 전, 엘프들이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어서 기억하네.”
“도움이라면······?”
“세계수 안, 악마의 봉인이 느슨해졌다고, 내가 자문을 구해왔었지.”
사빌나르 주교의 말에 관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작, 자네의 말처럼 제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브레딘 평원에 병력을 모으고 있다면······ 나는 이 숲에 봉인된 악마가 의심되네.”
설명을 마친 사빌나르의 눈이 빛났다.
나 역시 주교의 설명을 되새기며 과거의 사건을 떠올렸다.
‘주교의 말대로야. 군대의 뒤쪽에서 나타난 악마들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만약 그게 봉인된 악마였다면 앞뒤가 맞아.’
그럴수록 더더욱 하나의 목표가 뚜렷해졌다.
‘제국의, 마이어스의 함정을 차단한다.’
대학살의 사태를 막아낼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지킬 수 있었다.
죽어간 5만여 명의 군대에서 탄생한 대량의 언데드 군대.
그리고 마왕군에게 넘어간 생명의 숲도.
‘전부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어.’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루퍼스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가서 놈들을 막겠습니다.”
“제이드 백작. 스스로 트롤의 입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인가?”
내 말에 루퍼스가 얼굴을 구기며 되물었다.
루퍼스 역시 나와 사빌나르 주교의 말을 들은바.
당연히 그 안에서 벌어질 사건과 영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학살의 이후로 벌어질 여파를 더욱 잘 알기에 나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나서야만 했다.
“전하의 짐작대로 제국은 분명 함정을 꾸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지켜보기만 한다면 그때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화가 되어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신 제이드. 놈들의 입으로 들어가 직접 보고 막아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루퍼스와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화염을 닮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좋다.”
루퍼스는 잠시 고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친우이자, 세이비어 결사단이 출정하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루퍼스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왕국 최고의 지원을 해주마.”
“교단 역시 최고의 지원을 해주겠네.”
사빌나르 주교 역시 내 옆에 서서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정보]– 제목 : 그림자의 음모 – 1
– 설명 : 제국은 대륙의 이름으로 악마 무리를 토벌할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속에 도사리는 음모를 자력으로 깨달았습니다. 악마를 토벌하십시오.
보상 : 칭호 ‘상급 악마 사냥꾼’, 별의 조각, 망령왕의 유산.
나는 떠오른 퀘스트를 바라보며 그들을 향해 화답했다.
“믿고 지원해주신다면,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은거하던 악이 도래했고.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