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악마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대륙 모든 종족의 공통적인 의문이자 호기심, 그리고 공포였다.
부모에게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
신앙을 쌓으며 기도하는 신자.
마기를 다루는 흑마법사까지.
그 근원을 제대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과거에부터 존재한 악마들은 대륙을 유린했다는 것.
그리고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영혼을 포식하고, 자연의 생명을 취하는 존재들.
대체 놈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또한 이 대륙엔 왜 나타난 것일까?
그리고 그것들이······ 어딘가에 더 있을까?
악마에 관한 모든 건 미지였다.
그리고 미지는 공포를 일으킨다.
악마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아주 대륙에서도 아주 극소수.
진실을 아는 이들도 있었다.
제이드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과거, 제이드가 사용했던 검인 마기 포식자.
제이드는 그 검을 통해 태초의 기억을 읽었으니까.
우주 바깥에서부터 공간을 찢고 침투해온 마기.
그걸 흡수하며 정화하려 한 찬란한 별, 흑암성.
하지만 마기에 변질된 흑암성은 이내 산산이 조각나며 대륙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별의 조각의 기원이자······
‘······이 대륙에 퍼져 있는 악의 기원이지.’
그리고 이곳의 대륙과 달리, 바다 건너의 한 대륙은 마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악마에게 점령당하고, 일말의 생명조차 꽃피지 못하는 곳.
그곳이 바로 마계(魔界)였다.
그렇기에 제이드는 알고 있다.
악마들이 다른 대륙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악마들이 이곳, 니아브 대륙으로 넘어왔다는 것.
그 악마들 대다수가 ‘망령왕’에 의해 봉인 당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제이드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그런데 왜 지금껏 다시 넘어오지 않았을까?’
악마를 사냥하고, 봉인하던 망령왕.
숙적인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지 않았던가.
망령왕 사후에 넘어왔다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잠깐. 넘어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넘어왔던 거라면?’
– 17년간 레메게톤에 흡수한, 백구십팔만 칠천오백아흔아홉의 영혼을 모두 사용한다.
– 그리하여, 이 땅의 걸어 잠근 문을 연다.
땅의 걸어 잠근 문.
분명 마이어스는 그리 말했었다.
제이드는 그 말로 망령왕이 무언가 수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계의 악마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어떤 결계나 주문 같은 걸 걸어둔 모양.
제이드의 짐작대로였다.
마계의 악마들은 자의로 대륙을 넘어올 수 없었다.
방법이라면 단 하나, 니아브 대륙의 흑마법사들이 악마들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일시적일 뿐이었고, 소환된 악마들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이어스는 그 문을 우회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영혼을 이용하여 초대형 포탈을 열었다.
그 덕에 굴라그 산맥에 수천에 이르는 마수들을 준동시킬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순간에는 그 ‘문’이라는 것을, 니아브 대륙의 보호막을 완전히 해제한 것이었다.
즉.
“······더 이상의 금제는 없다는 것이다.”
마이어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균열을, 그리고 라웨굴을 비롯한 악마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계의 침공.
그 대업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 * *
악마들은 붉은 안광을 빛내며 각기 다른 권능을 발동했다.
– 만찬! 만찬을 시작하자!
– 인간─! 신선한 인간이다!
– 자, 너희 모두 나의 시종들이 되어라.
가오리를 닮은 악마가 무수히 분열하는 촉수를 휘두른다.
도마뱀을 닮은 악마가 거대한 입을 활짝 펼쳐 그대로 집어삼켰고.
천사를 닮은 악마가 환상을 풀어 스스로 다가오게 만들기도 했다.
그에 연합군은 대항조차 못 하고 악마들의 먹이로 삼켜졌다.
마수 떼의 습격과는 비교도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 모습은 한 폭의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인간이라는 미물은 대항조차 할 수 없는 포식.
불가항력적인 학살이자 재앙······.
‘이건······ 못 막는다.’
늘 어떻게든 적들을 쓰러트리는 공략법을 찾아내던 제이드다.
하지만 그런 제이드조차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하일! 카일! 이네스!”
제이드는 자신의 동료를 비롯한 연합군의 지휘관들을 부르며 소리쳤다.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
연합군을 학살하는 열 마리의 악마들.
그것들과 맞서 싸우는 건, 기름을 들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셈이었다.
우선은 이 위기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게 제이드의 판단이었다.
퀘스트 또한 제이드에게 살아남으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세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바.
제이드의 말에 그들은 즉각 움직였다.
“마누스의 전사들이여, 방패를 들어라! 협곡을 빠져나가야 한다!
“후퇴! 후퇴하라! 바바크, 낙오자들을 챙겨줘!”
“와이트 아울 기사단! 신성력을 최대로 펼쳐라! 길을 뚫는다!”
각자 맡은 병력을 통솔하고, 가로막는 언데드와 웨어울프들을 뚫어내며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이어스가 이곳으로 연합군을 이끌고 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협곡이라는 지형이 탈출하기에 최악이기 때문이었다.
“젠장, 비키라고!”
“씨발, 우리가 먼저 이동했다고! 당장 나와!”
대륙에서 모인 사만여 명의 병력?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탈출을 막는 장애물이나 다름없었다.
“허억! 허억! 나, 나는 죽기 싫어!”
“밀어! 밀고 들어가라고!”
많은 병력이 이리저리 뒤엉키면서 혼란이 일어났다.
넘어진 이들을 서로 짓밟으며 나아가려 애썼다.
쓰러지고 짓밟힌 이들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들의 비명 역시 짓밟히고 파묻혔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런 비명 속에서 악마들이 따라붙으며 학살을 벌였다.
– 크하핫! 듣기도 좋은 비명이 맛도 끝내주는군!
– 아름답고 맛있구나! 그야말로 산해진미로다!
– 만찬을 선사해준 라웨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랜만의 만찬에 신이 난 악마들.
그들 전원의 입가엔 붉은 피가 흘러, 섬뜩한 공포감을 자아냈다.
악마들은 인간의 피와 영혼을 포식해 나갈 때마다 변화가 두드러졌다.
꾸드드득!
콰드드득!
몸이 커졌으며, 새로운 신체가 자라나거나 권능이 강화되었다.
마치 실시간으로 진화해나가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고, 그럴수록 퇴각은 난항을 겪어갔다.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하늘의 균열 역시 점차 넓어져 가는 게 보였다.
점차 악화되는 상황에 제이드가 얼굴을 구겼다.
‘이대로면 제대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전멸이다.’
제이드는 연합군의 후퇴를 지휘하면서 세이비어 결사단을 소집했다.
“데릭! 로빈! 우리는 이곳을 막는다!”
“제이드! 너······!”
“오해하지 마, 데릭.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다고.”
“그, 그런 거야?”
묘한 표정을 짓는 데릭을 향해 제이드가 대꾸했다.
여기서 이길 수는 없다.
후퇴가 최선이라는 제이드의 판단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취할 건 취해야겠지.’
스윽.
제이드가 전장을 응시했다.
곳곳에서 수십 마리의 언데드 마수들이 날뛰고 있었다.
잡아챈 인간들을 죽이는 대신, 마수들은 악마들을 향해 끌고 가려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주인을 향해 음식을 진상하려는 시종처럼 보였다.
콰직!
잠시 후, 하늘에서 떨어진 망치 형태의 모노리스가 언데드의 머릴 부수고, 병사를 구해냈다.
“가, 감사합니다─”
“빨리 도망쳐! 시간이 없다!”
병사 한 명을 뒤로 보내며 제이드는 모노리스를 조종하여,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쳐냈다.
‘지금 여기서 취해야 하는 건,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는 거다.’
최대한 많은 아군을 보존하는 것.
이는 악마들이 생명을 포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도 같다.
그게 향후 전쟁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판단한 제이드가 단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준비해!”
두두두두!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언데드들.
그를 마주 보며 단원들이 어깨를 맞댄 채 방패와 무기를 들었다.
“핸드 캐논, 발사!”
콰과과과광!
일제히 발사된 탄환들이 언데드들의 다리를 으스러트렸다.
달려들던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고꾸라지며 작은 언덕이 생겼다.
하지만 그 언데드의 언덕은 후열의 다른 언데드들이 짓밟으며 달려들었다.
쿵─!
심지어 머리를 잃은 원숭이 악마, 모크니토 역시 언데드가 되어 제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데릭과 돌격대원들이 긴장하며 방패에 힘을 주는 그때.
콰과과광!
모크니토를 비롯한 언데드들의 머리 위로 빛의 화살과 섬광이 내리꽂히며 언데드들을 불태웠다.
이 기운은······!
그 공격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이네스와 주신교단의 병력들이 대원들의 뒤로 도열해 있는 게 아닌가?
그뿐 아니라, 카일과 바바크. 그리고 신궁 로빌리오까지 함께 서 있었다.
“제이드! 우리도 함께할게!”
“병사들에게 길은 알려줬어! 이제 우리만 남았다고.”
눈을 마주친 이네스가 제이드를 향해 결심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이드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왠지 모를 위안과 안도감을 느끼며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시간을 버는 거야. 무리해서 큰 희생을 치르진 않을 거야.”
하지만 제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마들이 이쪽을 향해 접근했다.
쿠구구구─
끈적거리는 마기 사이로 느껴지는 살기와 위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대열 모두가 직감했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악마들.
그들을 상대하게 되는 순간,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긴장한 이네스가 대검을 꽉 쥐었다.
“······희생을 최대한 면할 방법은 없을까?”
“······협곡의 지형은, 비좁고 막혀 있어서 병력을 분산시키는 게 불가능해.”
이네스의 물음에 제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양쪽의 절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조건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그렇기에 단숨에 섬멸하기에도 적합하단 뜻이다.
제이드는 은빛의 원형 방패를 꺼내 들었다.
[모노리스의 소유권을 확인했습니다.] [정령 병기 – 이프리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망령왕의 유산이자, 불의 정령의 힘이 깃든 장비.
정령 병기였다.
“소환. 이프리트!”
제이드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방패 중앙의 보석에서 거대한 화염이 솟구쳤다.
화염이 뭉치고 형태를 갖추며 몸을 일으키는 불의 거인, 이프리트.
이내 좁은 협곡으로 화염의 파도가 뿜어졌다.
콰아아아─!
작열하는 화염은 달려오던 언데드 대부분을 순식간에 잿더미처럼 만들었다.
사체에 붙은 불길은, 언데드들이 넘지 못하는 장벽이 되었다.
그 너머로 가오리를 닮은 악마와 사마귀를 닮은 악마가 주춤거리는 게 보였다.
‘좋아. 통한다.’
이대로 뒤로 물러서면 될 것이라고.
제이드가 판단하는 그때.
콱!
불길을 뚫고 거대한 손이 나타나 이프리트를 쥐어 터트렸다.
단숨에 이프리트가 역소환되며 방패 속으로 사라졌다.
“젠장······.”
지금껏 방관하던 놈이 손을 뻗어올 줄이야.
쿵──!
그 존재, 라웨굴이 협곡을 짓이기며 다가왔다.
압도적인 크기에 걸맞게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발아래의 언데드 무리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저것이 우리 위로, 아니 근처에 발을 내딪는 것만으로도 진영이 박살날 것이다.
『발악에 불과하다. 허나 그 태도는 훌륭하도다.』
라웨굴의 낮은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동시에 놈의 거대한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하자······
징─
······제이드의 몸이 굳었다.
당황한 제이드가 몸을 움직이려 애써보았지만,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된 듯 잘 움직이지 않았다.
‘피어.’
마치 칼라마르가 마수들을 향해 쓰는 피어와도 같았다.
“제, 젠장! 몸이······!”
“몸이 마비가 된 것 같아······!”
마치 포식자를 앞에 두고 공포에 질린 피식자처럼, 라웨굴의 시선에 모두의 몸이 굳은 것이다.
라웨굴은 그런 우리를 향해 공로를 치하하듯 말했다.
『첫 번째 만찬다운 강한 생명력들이도다. 좋다. 너희의 생명은 내 직접 취하리라.』
완전히 절체절명에 놓인 그때.
덜그럭─
병력들이 빠져나간 후방.
그곳에서 삐거덕거리는 바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웬 노새가 마차 한 대를 이끌고 오는 게 보였다.
“뭐, 뭐야? 저 마차는?”
“······잠깐, 저건?”
그 마차의 생김새가 제이드는 익숙했다.
아니 분명히 본 적 있는 마차였다.
사막의 재앙을 상대할 당시.
카일이 저 마차를 타고 왔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처럼, 마차를 끌고 있는 드워프는······
“······헤파이토?!”
카일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허, 미치겠군. 카일! 이게 무슨 상황이냐!?”
“보면 몰라요? 최악이죠.”
당황한 카일이 작금의 상황도 잊고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 말에 헤파이토는 입술을 구기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 최악이지. 그러니까 이판사판이야.”
“그 말은······?”
“세계관측자들이, 간만 보며 숨어 있을 때는 지났다는 거다. 이제는.”
세계관측자들.
그림자 속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던 결사단이다.
그들 중에는 이름을 떨쳤던 검사도, 혜안을 가진 현자도 소속되어 있었다.
뛰어난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이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악(惡)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최악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종국에 이르렀으니.
더는 은밀할 필요도, 조심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드러내기로 했다.
그간 축적해둔 그들의 힘을 말이다.
철컥! 철커덕!
헤파이토가 짐마차의 한쪽에 난 레버 몇 개를 뽑고, 당겼다.
그러자 짐마차가 변형되면서 마차 칸이 열리고, 이상한 기계 장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뒤이어 진동이 울리더니, 갑작스레 절벽 한쪽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무너진 절벽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커다란 기계였다.
전면부엔 나선형의 거대한 쇳덩어리가 달린 거대한 기계.
철컥! 철컥!
그것이 헤파이토의 짐마차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헤파이토.’
제이드는 그런 드워프 노인을 바라보며 이름을 곱씹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대장장이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블랙 핸드.
그것의 4번째 주인이 아닌가.
‘백 년 전 자취를 감추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저 드워프가?’
어찌 보면 합리적이었다.
한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존재.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곤, 세계관측자라는 조직에 들어간 것이다.
그 이유?
보면 알지 않나.
제이드는 헤파이토의 짐마차, 아니 이제는 기계들끼리 뒤엉키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캐논을 바라보았다.
‘종말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강력한 결전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 귀 틀어막고······ 엎드려라.”
제이드가 멍하니 바라보는 그때, 담배를 꼬나문 헤파이토가 중얼거렸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거대한 거인, 라웨굴을 노려보았다.
“고대 드워프의 마법공학을 맛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