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무릇 대장장이라면 한 번쯤은 동경하게 되는 것이 있다.
드워프.
정확히는 드워프의 타고난 손재주다.
조각, 세공, 야장 등 세심한 작업을 쉽게 해내는 그 능력은 대장장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손재주라는 말은 틀렸다.
드워프들이 타고나는 것은 예민한 감각이었다.
재질, 경도, 촉감, 온도.
드워프의 예민한 손 감각은 만지는 어떤 물건이라도 자연스레 분석하고 이해하게 된다.
마치 곤충의 더듬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타고난 대장장이라는 말은 틀린 거지. 손을 쓰는 다른 모든 일에도 뛰어나다고. 알겠냐, 애송이?”
“어······ 조금은요?”
마리온은 헤파이토의 설명에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드워프의 태생적인 감각이라던가, 낚시할 때 손맛마저도 훨씬 끝내준다던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전혀 모르겠으니까.
무엇보다도······.
“제가 물은 건 왜 그러고 계시냐는 거잖아요?”
마리온은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헤파이토를 바라보았다.
현재, 헤파이토는 네발로 기며 손바닥으로 흙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거인의 대수림, 탐사해야 할 구덩이를 앞에 두고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리온의 되물음에도 헤파이토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한탄할 뿐이었다.
“쯧쯧. 대장장이 일에는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 드워프는 전혀 이해 못 하는군.”
뒤뚱뒤뚱 몸을 일으킨 헤파이토가 손바닥의 흙을 털며 말했다.
“말했지? 드워프의 손바닥은 무엇보다도 예민하다고.”
“예. 그랬죠?”
“그리고 내가 누구지?”
“어······ 헤파이토님이시죠?”
“4대 블랙핸드! 그리고 드워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워프지! 그 말을 뒤집으면 뭐겠어?”
그러며 자신의 손바닥을 보이며 마리온에게 설명했다.
“내가 그 어떤 드워프보다도 손의 감각을 잘 다룬단 뜻이다.”
헤파이토는 단순히 흙장난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게 아니다.
손바닥에서 미세한 마력을 흘려보내, 저 구덩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감지한 것이다.
“이 아래. 무언가 있다. 제이드 녀석들이 말한 영원한 불일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다.”
헤파이토가 눈을 반짝이며 두꺼운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그때였다.
콰과과광!
저 멀리, 거대한 불덩이가 치솟으며 밤하늘이 잠시 밝아졌다.
“저기는······.”
“쯧, 칼테르 요새 방향이로군.”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거인의 대수림.
칼테르 요새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인다니······.
어지간한 마법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큰 힘을 쏟아부었단 뜻이고, 그런 일을 벌일만한 상황이라면······
“······악마의 군대. 놈들이 들이닥쳤군.”
헤파이토의 미간이 한가득 구겨졌다.
“안 그래도 촉박한 시간이 더욱 부족해지겠군. 마리온, 너도 얼른 준비해라.”
“넵!”
다시금 시가를 문 헤파이토가 마리온을 향해 턱짓했다.
그리고 마리온이 달려가는 기계를 바라보았다.
마치 거대한 통나무를 옆으로 눕힌 듯한 기계의 외형.
그 두께만 오두막과 맞먹는다.
겉 부분엔 두툼한 철판이, 그 안쪽엔 복잡한 마력 회로와 마정석 그리고 실린더들이 빼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기계 8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흡사 강철로 만든 거대한 지렁이처럼 보이는 이 기계의 이름은 스틸로 어스웜.
고대 드워프의 진전을 이은 헤파이토가 만들어 낸 마법공학 기계장치였다.
본래의 목적은 광물 채굴용이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땅의 가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 굴착 기계이자 탐사 기계다.
그 이유는 고위 악마들의 생명 그릇을 없애기 위해.
영원한 불이라는 것을 찾아내어 생명 그릇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것이 헤파이토와 마리온의 임무였다.
“영원한 불이라······ 혹시 그 기술들은······?”
다만 한가지.
헤파이토에겐 묘한 의문이 있었다.
세계 관측자로 입단하고 100년.
그간 고대 드워프 왕국의 기술들을 답습한 헤파이토다.
고대의 기술 중에는 채굴 장비가 유독 많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특수한 환경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튼튼한 내구도, 단단한 암석도 날려버릴 파괴력,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행력.
마치 아주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갈 작정이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채굴 장비들은 제아무리 깊은 광산일지라도, 너무 과도한 성능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고대의 선조들도 이 영원한 불을 찾아 헤맸던 건가?’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모종의 이유로 멸망한 것이고?
“흐, 재미있군.”
헤파이토의 단순한 추리일 뿐이다.
하지만 고대의 기술을 이용해 선조의 숙원을 풀어낸다.
꽤 재미있을 이야기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 영원한 불이란 것. 대장장이 일에 쓸 수 있을지도 궁금하니 말이다.
“헤파이토님! 준비 끝마쳤어요!”
때마침 준비를 끝낸 마리온이 브리투스에 탑승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시작해보자고.”
씨익 웃은 헤파이토가 피우다 만 시가를 구덩이에 튕겼다.
시가 끄트머리에 남은 불이 환하게 타오르며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붉은 궤적을 바라보던 헤파이토는 고글을 꺼내 쓰고, 능숙하게 브리투스의 조종석에 올라탔다.
헤파이토의 우악스러운 손이 브리투스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덜컹!
콰가가가가!
이내 커다란 소음을 내며 브리투스의 엔진이 작동했다.
“꽉 잡아라, 애송이! 전속력으로 갈 테니까!”
“네, 네엡!”
“가자, 대륙의 가장 낮은 곳으로!”
헤파이토의 외침과 함께 브리투스가 빠른 속도로 구덩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퀘스트 정보]– 이름 : 종장(終章) – 3
– 설명 : 혼돈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당신은 모두를 하나로 모아 맞서 싸워야 합니다.
부디 승리하십시오.
– 보상 : ???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
그걸 보며 많은 감상이 떠오를 것만 같았지만.
‘지금 이걸 신경 쓸 때가 아니라서.’
나는 손을 휘저어 퀘스트창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곧장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캬아아악!
크르륵! 크르르륵!
도로시가 날렸던 아그니의 불꽃 세례에 치솟은 화염.
적잖은 마수들이 한 방에 산화했다.
하지만 그 폭발을 뚫고 달려드는 마수들도 있었다.
시커멓게 탄 털.
녹아내린 가죽.
하지만 포악한 이빨과 발톱은 여전히 여길 향하고 있다.
마치 검은 강물 같다.
요새 앞의 협곡까지 물밀듯 달려드는 광경.
‘이제 시작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도로시의 마법은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걸.
‘막아야 해.’
마수들이 어느새 요새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 아그니의 불꽃 세례의 재시전까지 10분 59초 남았습니다.]사정거리가 가장 길고, 막강한 파괴력을 가졌지만 쿨타임 역시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성벽에 선 하프 드워프, 다그너를 향해 소리쳤다.
“다그너 씨! 바위산을 폭발시키세요!”
“아, 알았네!”
[다그너의 비전 폭탄이 폭발합니다.]콰아아앙!
전방의 협곡, 양쪽의 바위산이 터져나갔다.
콰르르릉!
바위산 일부가 무너지며 산사태가 발생했다.
쪼개지고 갈라진 바위들은 그대로 마수들을 덮치고, 짓눌렀다.
쾅! 콰직! 쾅!
산사태에 휩쓸려 매장된 마수.
그 숫자가 적어도 1천 마리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마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의 잔해들을 타고 넘어서 달려들었다.
옆에서 루퍼스가 그 광경에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티도 안 나는군······.”
“말 그대로 악마의 군대니까요. ······아니, 악의 파도라고 지칭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1천여 마리의 마수를 죽인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높은 성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에선 좀 달랐다.
놈들은 바다다.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의 한쪽을 막았다고, 그걸 막았다고 할 수 있는가?
옆에선 막지 못한 파도가 지나가고, 저 멀리서는 다시 한번 파도가 밀려온다.
지금 감상이 그랬다.
거대한 물결의 극히 일부만 사라졌을 뿐.
저 멀리, 바위산에 뚫린 터널로 계속해서 마수들은 흘러들고 있었다.
마수뿐만이 아니었다.
그으으─
그억- 꺽. 끄억.
대륙 곳곳에서 희생된 주민들.
그들은 언데드가 되어 뒤틀리고 부서진 몸으로 기어와 적진에 서 있었다.
애도할 여유 따윈 없다.
더는 피해가 생기지 않게 막아야 할 뿐이다.
“지금이다, 쏴라!”
마수들이 성벽 100미터 이내로 도달했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성벽 곳곳에 설치된 병기들이 각자 머금었던 무기를 토해냈다.
쾅!
투석기가 바위를 던졌고.
퍼엉!
발리스타가 캐슬 브레이커를 쏘아냈다.
──!
한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터져 나왔고,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산화했다.
하지만 물은 베고 찌를 수 없듯.
악의 파도는 잠깐 출렁거릴 뿐 다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벽까지 50미터.
마수들이 더욱 간격을 좁혀 달려왔다.
“듀크마 마탑주!”
“알고 있네! 푸른 의지를 가진 마법사들이여! 지금일세!”
지팡이를 든 듀크마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마력광이었다.
이내 듀크마의 뒤로 도열한 고위 마법사들의 두 눈 역시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빠르게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휘둘렀고, 잠시 후.
[푸른 마탑의 비전 마법, 플레임 스톰이 발동합니다.]바닥에 숨겨두었던 마법진들이 하나둘씩 번쩍였고.
콰아아아아아!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화염의 소용돌이들이 치솟았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열 개의 화염 기둥.
화염 기둥은 점차 서로 합쳐지며 몸을 불렸고, 이내 하나의 태풍이 되어 주변을 전부 집어삼켰다.
달려들던 마수들과 언데드들의 몸뚱이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화마 속으로 집어삼켜진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불의 정령이 마수를 잡아먹는 것 같다.
밀려오던 악의 파도를 증발시키는 것이다.
허나.
캬아아악─!
쿠어억! 쿠어어억!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어떻게든 틈을 찾아내어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마수들이 기어코 태풍을 뚫었다.
아니, 오히려 소형 마수들을 걸러냈다는 듯 중대형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놈들은 전신에 붙은 불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달려들었다.
성벽까지 20미터.
가장 먼저 엘프들이 반응했다.
“여러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새벽의 한줄기 이슬아, 저 괴물들의 목을 꿰뚫어줘!”
“엘프 궁수대, 화살을 쏴라!”
엘프들은 정령의 힘을 빌리고, 화살을 날리며 저격했다.
순식간에 벌집이 된 마수 수십 마리가 풀썩 쓰러졌다.
그러나, 더 많은 마수가 화염의 태풍을 뚫고 달려들었다.
백. 백오십.
이백. 삼백.
그 수가 늘어난다.
엘프들로는 저격할 수 없을 정도로.
“안 되겠어요! 저희끼리는 역부족이에요, 제이드씨!”
“전원, 일제 사격 준비!”
엘프, 카야의 보고에 나는 성벽의 모든 궁수에게 소리쳤다.
성벽까지 10미터.
성벽에 있던 모든 궁수가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뿌드득.
팽팽히 당겨진 시위 소리들이 성벽에 울려 퍼졌고.
“발사!”
피잉! 피잉! 피잉!
수천 발의 화살들이 일제히 마수들을 요격했다.
화살들이 마수들의 살갗을 헤집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동시에 대다수의 마수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모든 마수가 그러진 않았단 뜻이다.
온몸에 수십 발의 화살을 박아 넣고서도 달려든 몇몇 마수들.
트롤이었다.
“그레이 트롤이다!”
“트롤들이 성벽에 도달했다!”
성벽까지 0미터.
기어코 놈들이 성벽과 맞부딪혔다.
쿵!
쿠웅!
충격은 크지 않았다.
미리 엘프들이 성벽에 거대한 넝쿨들을 만들어 둔 덕분이다.
트롤들은 흉포한 울음을 내지르며 넝쿨을 잡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이에요!”
카야의 신호에 엘프들이 일제히 성벽 위 넝쿨을 향해 손을 얹었다.
그러자 트롤 앞의 넝쿨들이 꿈틀거리더니 트롤을 꽁꽁 묶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넝쿨들은 날카로운 가시들을 뿜어내며 트롤들을 난자했다.
거대한 넝쿨에 알맞은 커다랗고 날카로운 가시.
이미 화살 범벅이나 다름없던 트롤들은 그보다 배 이상은 큰 가시들에 순식간에 꿰뚫려 떨어져 나갔다.
그 중엔 회색 피부가 검게 푸르죽죽해진 놈들도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 속박하는 넝쿨, 치명적인 맹독까지.
그레이 트롤들의 돌격은 한풀 꺾이는 듯 보였다.
“숫자가 너무 많아요······!”
“놈들이 시체를 타고 온다!”
하지만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자, 어느덧 쌓인 시체는 언덕이 되었다.
그러자 성벽의 넝쿨은 효율이 떨어져 갔다.
트롤들과 이름 모를 마수들, 언데드들은 넝쿨을 타고 오르는 대신, 성벽에 쌓인 발판을 밟았다.
마수들의 얼굴이 더욱 가까워졌다.
“핸드 캐논!”
궁병들 사이로 핸드 캐논을 든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철컥! 철컥! 철컥!
병사들은 그대로 성벽 아래를 향해.
성벽으로 손을 뻗는 마수들의 얼굴을 향해 조준했다.
사거리는 비교적 짧지만, 범위와 위력은 화살을 ‘화살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핸드 캐논.
쾅! 콰앙! 콰아아앙!
그것이 일제히 불을 뿜어내자, 매캐한 연기가 성벽 위를 뒤덮었다.
동시에 성벽의 마수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성벽 아래의 시체밭에 뒤섞였다.
그 위로 새로이 달려든 마수들이 밟고 섰다.
“진짜 더럽게 징그럽군······.”
정작 적의 수와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수비에 문제가 생겼다.
방금 같은 전투가 몇 차례 반복되자, 사체로 이루어진 오르막길이 생긴 것이다.
놈들은 그걸 밟고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젠장, 우선 저 시체부터 치워야 한다.
“카라크! 자라크! 아래의 사체들을 치워야 한다!”
샌드윈드스의 헥토르.
그의 경호원인 검은 뱀 형제를 향해 외쳤다.
“알겠다, 제이드! 우리에게 맡겨라!”
“샌드윈드스! 비전 주술을 사용할 때다!”
카라크와 자라크가 소리치자, 오크 주술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후!
그 가운데 카라크가 제 피를 묻힌 도끼를 지팡이처럼 휘둘렀다.
“모래 속에 숨어든 굶주린 자여! 눈앞의 모든 걸 삼키고 갉아먹어라!”
[오크 주술사들의 비전 주술 ‘모래 아귀 지옥’이 발동합니다!]휘오오오오─!
그러자 성벽 곳곳에서 회오리바람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오크 주술사들이 일제히 손을 뻗자, 성벽에 설치된 항아리에서 모래와 쇳조각들이 바람에 섞여들기 시작했고.
카가가가각!
전방의 모든 걸 전부 산산이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쌓여 있던 사체들도, 성벽을 타고 오르려던 마수들도 전부다.
마치 수백 개의 톱날이 회전하며 전진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고, 그 위력은 일순간 성벽 앞이 텅 빌 정도였다.
그렇게 모래바람이 요새 앞 협곡을 짓이기며 휘몰아친 덕분에 아주 잠시나마 우리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사막의 주술인가?”
“마법과 달리 매개체를 사용하는 건가······ 하지만 위력을 더욱 극대화했군.”
“오크 주술사들, 너희들도 대단하잖아?”
그에 푸른 마탑의 마법사들이 감탄하는 그때.
음?
나는 모래바람의 기류가 묘하기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컥!”
“쿨럭!”
동시에 오크 주술사들이 한순간 피를 토하며 풀썩 주저앉는 게 아닌가?
그건 검은 뱀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제, 제이드······ 주술에 문제가 발생했다!”
“자라크?”
“모, 모래를 빼앗겼다, 통제권이 놈들에게······!”
각혈하는 두 형제를 부축하며 나는 전방의 모래바람을 응시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대체 누가······?’
마수들을 향해 쇄도하던 모래바람이 다시 성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위를 바라보자, 일전에 보았던 고위 악마들이 하늘에 떠 있는 걸 발견했다.
그중 붉은 피부와 박쥐 같은 날개를 가진 여인이 피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피눈물을 모래바람에 섞고 있었다.
‘저 방법으로 주술을 빼앗은 건가?’
몇 가지 추측이 떠올랐지만, 우선 주술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카가가가각!
마치 사막의 뱀처럼 꿈틀거린 모래바람이 성벽 위를 휩쓸었다.
“넷이서 등을 맞대고 방패를 들어라! 모든 방향을 막아야 한다!”
“발리스타를 지켜! 모래바람이 전부 갈아버릴 거다!”
지휘관의 말에 병사들이 곧장 기민하게 움직였다.
“아아악!”
“뒤로 물러서! 막으려 했다간 그대로 산산조각이라고!”
하지만 모래 아귀 지옥은 주술사들의 비전 주술.
날카로운 모래와 쇳조각들이 병사들의 육신과 방패를 전부 갈아버렸다.
“제이드. 이건 내게 맡기게─!”
그때 듀크마가 푸른 로브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섰다.
푸른 오브와 지팡이, 반지와 목걸이 등.
듀크마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아티팩트가 일시에 번쩍이더니 거대한 바람이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힘겹다는 듯 이를 악무는 듀크마가 내게 눈짓했다.
나는 고갤 끄덕이며 혼란해진 병력들을 다시 통제했다.
“각 지휘관은 자시 병력을 정비해라! 여유가 되는 마법사와 주술사는 듀크마를 지원할 수 있도록!”
부서진 곳을 정비하고, 공성병기를 재장전한다.
부상자를 후열로 보내고 다른 병력이 성벽에 올라섰다.
그러던 그때.
짙은 어둠이 성벽에 드리웠다.
라웨굴.
그 거대한 악마가 양손을 벌린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붉은 십자가 같아 불쾌하고 오싹한 기분이 솟았다.
– 경배하라, 너희의 주인이 찾아왔도다.
놈의 거대한 목소리가 곳곳에 울리는 순간.
라웨굴의 머리 위로 붉은 균열이 벌어졌다.
쩍! 쩌저적!
“포탈이다! 다들 대비해!”
몇 번이나 본 적 있었던, 라웨굴의 포탈이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건, 시체들로 엮인 골렘들.
하나하나가 트롤과 맞먹는 크기를 가진 존재들.
플레시 골렘.
세 마리의 플레시 골렘이 성벽 위로 내리꽂혔다.
쾅! 쾅! 쾅!
“플레시 골렘이다!”
“마법사! 화염 마법을 날려! 기름과 불을 가져와!”
지휘관과 병사들이 다급히 대응하는 그때.
나는 포탈에서 뒤늦게 나오는 한 존재를 발견했다.
천천히 날아 라웨굴의 옆으로 안착하는 인간.
“······마이어스!”
녀석이 거대한 책, 레메게톤을 펼친 채 플레시 골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허나 놈의 입술이 달싹이는 걸 내 눈이 해석했다.
시체 폭발.
그걸 이해한 순간.
나는 골렘을 향해 달려가는 병력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다가가지마! 뒤로─”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비명도, 자욱한 피 냄새도, 썩은 살점의 악취도.
전부 지워버릴 거대한 폭발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러로 겨우 깎았으리라 추측되던 칼테르 요새의 성벽.
마법으로 강화하고 철갑을 두르고, 엘프의 도움을 받아 보강한 그 성벽이.
쩌저저적!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