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솔튼의 마차 내부는 다른 귀족들의 마차들과 달리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수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검은색으로 된 마차 안에는 가죽으로 된 의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재들은 전부 고급이라 할 만한 품질들이었다.
내가 마차 안을 살피자 맞은 편에 앉은 솔튼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뇨. 이제야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아서요.”
전에는 코라스가 대역으로 나온다거나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마차에 태웠으니 그 대우가 천차만별인 셈이다.
‘마치 대기업 회장님이 고급 세단으로 마중을 나온 거 같은데.’
검은색의 무광 마차라서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에 피식 웃다가 부러진 늑골이 욱신거려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본 솔튼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안쪽에 포션이 있다. 마셔라.”
솔튼의 손짓에 옆의 의자 시트를 들자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보였다.
그런데 유리병이 화려했다.
상급 포션?
이거 하나에 1골드나 할 텐데?
1골드면 한 사람이 네다섯 달은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솔튼을 바라보자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돈 많은 사람은 남다르네.
포션을 열어 마시자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몸 안이 후끈해졌다.
상처가 드라마틱하게 아물진 않았지만, 남아있던 통증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이제 좀 살겠군.
그러는 사이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잠시 바라본 솔튼이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어딘가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아주 제대로 날뛰었더군.”
그의 손가락은 반쯤 부서진 첨탑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좀 많이 부수긴 했지.
선착장의 배와 하역장의 창고를 불태웠고, 첨탑과 그 주위의 도로는 부서졌다.
물론 후자는 타우로스가 한 셈이지만 저걸 보수하는 비용은 솔튼의 주머니에서 나가겠지.
하지만 이쪽도 할 말은 많았다.
“그만큼 제대로 뿌리 뽑았죠. 안 그렇습니까?”
내 손가락이 레드 혼 타우로스로 향했다.
이제는 멀어져 붉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저 마수를 잡지 않았다면 그랑힐 시는 쑥대밭이 되었을 거다.
그뿐만 아니라 선착장에서도 위장한 흑마법사와 내통자들을 잡아냈다.
내 몸의 뼈까지 부서지게 일한 셈이니 당당했다.
솔튼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 노인네는 천성이 장사꾼일 터. 날뛰었다고 말한 건, 농담인 동시에 거래에서 한 치라도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밑밥일 수도 있다.
물러설 수 없지.
“······.”
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고, 결국 솔튼이 피식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됐다. 내가 말할 대로 따랐을 뿐이니.”
솔튼이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
“어느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업 말이네. 먼저 제시하지 않았나.”
아 달머금꽃의 눈물.
나는 곧장 자세를 고쳐 앉고 그를 마주했다.
솔튼은 구질구질하게 캐묻지 않았다.
이 제조법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한 것인지······ 그의 조직이 있으니 캐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정보의 가치.’
솔튼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정보’다.
그렇기에 정보를 팔 때는 쉬이 모든 걸 공개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정보는 드러날수록 가치가 깎이는 법이기에.
그런 점을 나에게도 공평하게 적용해주는 걸 보아하니, 나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달까?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 조직은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직적이죠.”
두서없는 시작이었지만 솔튼이 계속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영감님이라면 아시겠지만, 지금껏 몸을 숨기던 흑마법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겁니다. 그것도 대륙 곳곳에서 말이죠. 이번 사건으로 교단은 몸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교단이 그 모든 곳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경단이 만들어지는 이유지. 이 대륙에서 여러 번 반복된 사건이고.”
솔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나는 그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나갔다.
“흑마법사들이 날뛰고, 언데드의 두려움이 일상이 된다면······ 이 물약은, 아니 ‘영혼의 눈물’을 모두가 원하게 될 겁니다. 아니 필수가 되겠죠.”
영혼의 눈물은, 내가 정한 이 상품의 이름이었다.
1회차 때 불렸던 ‘달머금꽃의 눈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가는 비법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니까, 독점을 위해서는 숨길 필요가 있었다.
이기적인 술수일지라도, 나는 카일 같은 용사가 아니라 용병왕이지 않은가? 캐릭터에 맞게 행동해야지.
“······나쁘지 않군. 아니 꽤 만족스러워.”
내 말을 들은 솔튼이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가 올랐다.
“지난번에 네 녀석이 말했던 대로 제품의 양산과 유통은 푸른잉어상단에서 제공해주지.”
“대신 이쪽은 수입의 30%만 가져간다, 맞죠?”
쉽게 내가 레시피를 가지고 대기업과 계약해서 상품을 내놓는 셈.
그에 대한 대가로 30%의 수익은 매우 큰 이득이었다.
물론 솔튼 쪽에 레시피를 전부 공개하지는 않는다.
내 쪽 사람을 푸른잉어상단에 파견해서, 핵심적인 제작 과정을 배타적으로 관리하게 할 생각이다.
정보는 반만 공개하는 게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이니까.
물론 솔튼이라면 어떻게서든 레시피를 빼내어 가겠지만, 한동안은 안전장치가 되어 주겠지.
‘그걸 맡길 사람은 이미 정해뒀고.’
솔튼과의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난 뒤 거래가 체결되었다.
여러모로 나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계약이었다.
‘게다가 내가 아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니까.’
1회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을 계책과 상품들. 이걸 솔튼의 손을 빌려서 나는 자금을 축적할 것이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잠깐.”
볼일은 다 마쳤겠다. 일어나려는데 솔튼이 나를 멈춰 세웠다.
“자네에게 사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네.”
“어느 걸 말입니까?”
나는 의아했다. 사고 싶은 거라니?
아직 공개한 거라면 영혼의 눈물 제조법밖에 없을 텐데?
내가 어중간하게 일어서 있자 솔튼이 지그시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주름진 눈가 위로 탁한 눈동자가 빛났다.
그 안에 내 모습이 담겼다.
“자네를 사고 싶은데 말이지.”
나를?
“그란디스 백작 밑의 백인대장을 맡고 있다고 했지. 직할 별동대라는 특수한 부대를 데리고 있고 말이지.”
“······.”
“하지만 평민 출신으로는 더 이상 한계가 있을 거다. 내가 그랬지. 그리고 오히려 평민 신분으로서의 이점을 찾아냈고.”
확실히, 저 노인네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음에도 계속 평민 신분으로 머물러 있었다.
충분히 공와 세를 인정받아서 남작위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괜히 공공연한 귀족 신분이 되어서 겉치레할 바에 그림자 속에 머무는 게 안전하다는 이유겠지.
“차라리 내 밑에 들어오는 건 어떻나? 원한다면 자네의 부하들도 함께 데려와 줄 수 있네.”
솔튼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며 나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기에 당황스러웠다.
좋게 봐주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저를 왜 원하시는 거죠?”
내 질문에 솔튼의 눈이 나를 훑었다.
“평화의 시대였지. 지난 수십 년은······ 그래서 그런가? 요즘 것들은 다 물러터졌더군. 근데 자네는 달라.”
솔튼이 지팡이를 들어서 내 가슴을 툭 쳤다.
“자네는 전쟁을······ 아니, 싸움을 알잖나? 머릿속에는 능구렁이가 다발로 들어차 있고, 상대의 목덜미를 효과적으로 잡아챌 방법부터 궁리하지. 아닌가?”
“하하.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다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죠. 그 기회가 전쟁에서 생긴다면 그건 어쩔 수 없겠죠.”
“흥, 혓바닥에도 능구렁이가 있었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돈을 벌려면 마름이 아니라 지주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튼은 내 사업 파트너지 상사로 둘 생각은 없었다.
솔튼은 방금 ‘자네를 사고 싶다’라고 했다.
나를 상품으로 여기며 은연중에 자신이 한참 우위에 있다는 은유를 담은 것이었다.
하여튼 뱀 같은 노인네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가스라이팅에 넘어갈 줄 알아?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갑니까?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내 속뜻을 알아들은 솔튼의 눈이 잠시 커지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란디스 백작 밑에도 내 밑도 만족 못 한다는 것이냐? 꿈이 크군.”
혀를 찬 솔튼이 축객령을 내렸다.
“쯧, 됐다. 필요한 건 다 얻었으니······ 이제 내려라.”
어느새 마차는 3구역의 치료소에 도착해있었다.
“내 이름을 대면 무료로 치료해줄 거다.”
“감사합니다, 영감님. 다음에 뵐 때도 이렇게 손님처럼 대해주시면 좋겠네요.”
솔튼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나를 내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는 만큼 큰 문제만 없다면 괜찮겠지.
‘앞으로도 이대로만 유지되면 좋겠는데.’
이대로 솔튼과 공생하면서 큰 부를 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마차를 닫고 나오니 마부석에는 코라스가 앉아있었다.
“어이, 그랑힐 시는 언제 나갈 생각이지?”
“글쎄? 우리는 아케르 요새의 선발대라서 말이지. 후발대가 오고 난 뒤에 생각해봐야 할걸?”
“조만간 어르신이 네놈을 다시 찾으실 거다. 다른 손님도 있을 테니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도록.”
이 자식이 지금도 내가 밑으로 보이나? 왜 자꾸 반말이야?
파트너쉽 제휴 맺은 게 언젠데.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다른 손님이라니?
“다른 손님?”
“묻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기다리면 알아서 그쪽에서 연락이 갈 거고.”
녀석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열 받네.
“누구 마음대로 손님? 누가 만나준다고 했나?”
“······”
“그리고 안 궁금하거든.”
“이, 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자, 등 뒤에서 코라스가 얼 타는 소리가 들린다.
“만날 수밖에 없을 거다!”
“응 아니야~.”
나는 이제 네놈 주인과 동등한 파트너인데, 고분고분하게 굴어줄 줄 아냐?
한편 나는 그 손님의 정체가, 나를 이끌어가는 시나리오와 연결이 되어 있음을 예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퀘스트가 내게 찾아오니까.
“아? 설마······ 운명이 연결된다던 그 퀘스트인가?”
[퀘스트 정보]– 제목 : 그림자 속의 망령들 –3
– 목표 : 당신은 그랑힐 시의 음모를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흑마법사와 마티스가 첨탑에서 마기를 이용하여 최후의 발악을 시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 결과 : 경험치, 주신교단 측 핵심 인물과 운명적인 연결
– 추가 보상 : 교단에서 명예 ‘실버 크로스 훈장(칭호)’
[현재 완료된 퀘스트입니다.] [곧 주신교단 측 핵심 인물과 운명적인 연결이 있을 것입니다.]퀘스트 보상이라면서 뭉뚱그려 알려준다니······.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그쪽에서 찾아온댔으니까, 기다리면 되겠지.
일단 치료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솔레른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10)] [현재 생각 : 그랑힐 시까지······. 역시 내게 필요한 인재다.] [미하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11)] [현재 생각 : 역시 제이드다. 녀석이 나와 함께한다면······.]“이 양반들은 대체······ 내가 없을 때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 * *
그날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5구역의 언데드 역병을 정화하고 거의 수복했고, 반파된 도시의 복구로 지원군까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별동대원들도 임무에 투입되었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 혼자 쉰다고 투덜거렸지.’
치료사가 절대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엄포를 놓자 일그러지는 대원들의 표정이 꽤 볼만했다.
덕분에 일주일간 푹 쉬면서 요양했지만······ 슬슬 좀이 쑤신단 말이지?
그리고 지금처럼 한가하게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쉽고.
물론 지금 내 성장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긴 하다.
나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었다.
[제이드]– LV. 23
– 힘: 24
– 체력: 23
– 마력: 22
– 직위: 아케르 요새 직할 별동대장
– 특성: 용맹함[D], 영웅[A], 카일룸 연공법[B], 흑암성의 오러[S], 영력(靈力)[A]
– 보유 스킬: 용병술(LV. 5), 화술(LV. 4), 검술(LV. 6), 사이코메트리(LV. 1), 안목(LV. 2)
“으흐흐.”
상태창에 찍힌 레벨을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레벨은 그저 무력의 척도를 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쌓은 격과 입지와 영향력까지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1회차, 기사까지 갔을 때가 21레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 입지와 영향력이 그때보다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었다. 지금 내 행동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제이드 백인대장님, 계십니까?”
그때 한 병사가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케르 요새의 그리핀 라이더였다.
“무슨 일이지?”
“그란디스 백작님으로부터의 편지입니다.”
그리핀 라이더를 보낸 편지라니.
그란디스 백작에게 내 가치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읽어드릴까요?”
“아니 그냥 주게.”
내 말에 그리핀 라이더가 조심스럽게 편지를 건네고 나갔다.
그란디스 백작가의 인장을 뜯어내자 그 안에 수려한 글씨가 드러났다.
어디 보자······.
[신임하는 나의 별동대장 제이드에게.] [나의 별동대와 제이드 자네가 언데드 퇴치에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네. 자네가 출정을 나간 뒤 많은 이들이 자네의 임무에 의심을 품었지만 나는 제이드 자네가 해낼 줄 알고 있었네. 별동대원들만을 이끌고 흑마법사를 퇴치하고 마수를 저지하는 공을 세우다니.]그리고 마지막 문단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으니······.
[제이드, 그대의 능력이라면 기사가 되어도 무리가 없겠지. 어떤가? 나의 기사가 되어보는 것이.]기사.
이 세계 최고의 무력 집단의 일원.
그리고 전장에서 최고의 공을 세울 기회다.
솔튼에 솔레른에.
다들 나를 가지기 위해서 최고의 패를 꺼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