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82
던전 안의 살림꾼 82화
희나는 눈을 부릅뜨고 바둑이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눈이 없어서일까? 안타깝게도 바둑이는 희나의 간절한 시그널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둑이는 그저 즐거워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뒤꽁무니에 달린 풀 잎사귀가 프로펠러처럼 펄럭펄럭 돌아갔다.
‘기분 완전 째진다!’라고 고함치는 것 같았다.
2m에 육박하는 크기인 만큼, 바둑이는 금세 희나와 강진현에게 가까워졌다.
바둑이가 거의 근접했을 무렵이었다. 강진현이 낮게 읊조렸다.
“눈 돌리고 계십시오.”
희나는 이 말뜻을 알았다. 바둑이를 공격해서 흔적도 없이 죽사발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
‘아, 안 돼!’
희원의 소중한 애완식물이 이렇게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오빠가 자식같이 기르고 있는 식물이었다.
희나도 바둑이와 산책을 하며 꽤 정이 든 상태기도 했다.
거기다 바둑이가 사라져 버리면 산책 퀘스트는 영원히 깨지 못하게 된다. 즉, ‘홈 스위트 홈’을 잃어버리는 데다 오색이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그럴 순 없어!’
거기까지 생각하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희나는 가히 초월적인 빠르기로 강진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안 돼요!”
강진현은 희나를 매단 채로 바둑이에게 손속을 펼치려 했다가, 희나의 고함에 몸을 멈칫했다.
“희나 씨?”
“바둑이 좀 살려 주세요! 우리 애는 안 물고 얌전해요!”
희나는 강진현의 허리를 꽉 붙잡아 안았다.
그의 힘으로 고작 C급 살림꾼 따위는 금세 내팽개칠 수 있을 테지만, 강진현은 그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는 희나를 몹시 중요하게 여겼고, 절대 자그마한 해도 끼치지 않을 만한 다정한 사람이었다.
“바둑아! 도망쳐! 도망가라고!”
잠시 그가 멈칫한 사이, 희나는 자기를 향해 신나게 달려오고 있는 바둑이를 쫓아냈다.
“저리 가! 혼자서 집에 돌아가! 오빠한테 가!”
바둑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 아니, 꽃봉오리를 몇 번 갸우뚱거리더니 뒤돌아 떠났다.
희나가 함께 가지 않는 것에 미련이 남는지,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희나는 그때마다 눈을 부리부리 뜨며 빨리 여길 떠나라고 눈짓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희나의 눈짓이 먹혀들었다.
차박차박, 바둑이는 풀 죽은 채 떠나갔다. 서서히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돼, 됐다…….’
희나는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강진현은 자기가 잡고 있고, 바둑이가 시야에서 사라졌으니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희나 씨.”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할 말이 많지만…… 우선 제 몸을 좀 놓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강진현은 조금 뻣뻣한 몸짓으로 희나의 등을 토닥였다.
“제가 놓으면, 바둑이 쫓아가시는 거 아니죠?”
희나는 일말의 의심을 놓지 못하고 강진현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머리 위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약속합니다. 쫓아가지 않겠습니다. 희나 씨를 혼자 두고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그러니…… 놓아주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무척 낮아져 있었다.
‘화난 거 아니야?’
희나는 주눅 든 채 강진현의 허리에서 팔을 풀었다. 그리고 스리슬쩍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강진현은 그제야 살겠다는 듯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희나는 그 앞에 서서 우물쭈물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상황은 급한 대로 해치웠는데,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희나 씨.”
“예에…….”
강진현은 제법 거친 손길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전에 본 적 없던 박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희나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몬스터가 어째서 희나 씨의 명령을 따르는 겁니까?”
그는 매섭게 추궁했다.
“그, 그건…….”
“그 전에, 어떻게 저 몬스터와 알고 있을 수 있지요? 특별한 우연이 아니면 던전과 접촉할 일 없는 평범한 비전투 각성계인 희나 씨가?”
“으음.”
희나는 차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하십시오.”
하지만 오늘의 강진현은 평소의 나사 빠진 듯한 모습과는 퍽 달랐다. 새카만 눈동자가 예기를 품고 희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희나 씨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모른 척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던전 몬스터와 직접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묵인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게…… 바둑이는 몬스터가 아니라 시스템이, 시스템이…….”
희나는 바둑이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몬스터가 아니라고 하기엔 겉모습이 특이했고, 그렇다고 또 몬스터라고 하자니 인간에 너무 친화적이었다.
어물거리는 희나를 한참 바라보던 강진현은 탄식처럼 말을 내뱉었다.
“거기다 바둑이라니, 몬스터에 그런 이름을…….”
강진현이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했다.
몬스터는 길들일 수 없는 존재였으며, 인간을 살육하기 위해 탄생한 존재였다. 적어도 지난 10년간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랬다.
많은 국가에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몬스터를 사육하고 길들이는 방법을 은밀히 연구 중이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몬스터를 ‘바둑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교감하는 희나의 모습은 정말로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이걸 설명하려면 어디부터 얘기해야 하는 거지? 아니,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희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민아 언니가 비밀은 꼭 지키라고 했는데…….’
하지만 우민아의 말을 따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뜬금없이 던전에서 마주쳐 던전 몬스터처럼 보이는 식물을 지키려 하는 모습까지 보여 줘 버렸지 않은가?
‘……그리고 진현 씨라면 믿을 수 있어.’
희나는 그동안 강진현이 보여 주었던 모습들을 믿었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는 희나의 비밀을 기꺼이 지켜 줄 게 분명했다.
적어도 강진현은 사리사욕을 위해 희나의 능력을 갈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반대, 희나의 신변을 걱정하여 더 싸고돌게 되면 모를까…….
‘그래. 얘기하자. 어차피 진현 씨와 오래 봐야 하는 사인데, 솔직한 편이 나을 거야. 매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지어낼 바엔…….’
그러면 실제로 옆집에 살지도 않으면서 사는 것처럼 굴 필요도 없고, 층간 소음을 없애는 이상한 스킬이 있다고 거짓말할 필요도 없었다.
“저…… 그게,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요.”
“시간은 얼마든 낼 수 있습니다.”
강진현이 단단한 표정을 하고 희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무섭거나 억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시선에 의심과 함께 걱정과 염려 따위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게 확연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강진현은 희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꼴깍. 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간 애를 쓰며 비밀로 해 왔던 사실을 밝히려니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제가 밝히지 않은 스킬이 있어요.”
“예. 짐작하고는 있었습니다.”
스스로 잘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강진현이 눈치챘을 정도면 영 잘 감춘 건 아니었나 보다.
희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제게는 ‘홈 스위트 홈’이라는 스킬이 있는데, 그건……”
입을 열던 순간이었다.
강진현이 힐끔, 뒤돌아보더니 예고 없이 희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억!”
덕분에 희나는 혀를 제대로 씹을 뻔했다.
“지, 진현 씨!”
강진현답지 않은 거친 손속에 항의하려던 찰나였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으아아.’
희나는 강진현에게 달랑 들린 채로 허공을 날았다. 급격한 고도 변화에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무지 불평할 수 없었다.
팟! 치지지지!
희나와 강진현이 서 있던 땅에 질펀한 액체가 튀더니, 바닥이 녹아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큼한 냄새가 퍼졌다. 산성 용액이었다.
쿠두두두두, 커다란 발걸음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몬스터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희나는 고개를 퍼뜩 들어 액체를 뱉어 낸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으악! 흉측해!’
직경이 가히 20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꽃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꽃대에는 촉수 같은 넝쿨이 달려 있어 그것으로 이동하는 듯했다.
또한 암술과 수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뾰족한 이가 빼곡했고, 꿀 대신 산성 용액을 뚝뚝 흘렸다.
같은 식물형 몸체를 가진 바둑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하고 징그러워 보였다.
[끄억, 꺽, 꺽, 꺽!]보스 몬스터는 커다란 트림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희나와 강진현이 있는 장소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모습에 강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그는 조금 의아해했다.
“여기는 보스 몹이 있을 장소가 아닌데…….”
그의 혼잣말에 희나는 급히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을 시전했다.
‘홈 스위트 홈’ 출입문과 게이트, 보스 몹의 위치를 개략적으로 보여 주는 지도 스킬이었다.
던전 지도를 연 희나는 깜짝 놀랐다. 희나가 서 있는 현 위치와 ‘보스 몹’ 표시가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헉! 진짜 보스 몬스터잖아?’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저 멀리 있던 보스 몹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은신의 로브를 입은 희나와 S급 헌터의 기척을 어떻게 알아채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나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챱챱챱! 타다닥! 탓!
거대한 보스 몬스터에게 쫓기는 다급한 발걸음이 있었다. 희나는 이 소리를 자주 들어 아주 잘 알았다.
“바둑아!”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