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11)
제 112화
복잡하지.
그게 귀족 사회인데.
그레이 같은 돌연변이는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 내부까지는 잘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냥 거기까지지.
내가 귀족 사회에 편입해 흔한 귀족들처럼 사교계에 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건 다 안다.
내가 활약한 무대는 전 대륙이었고, 한 국가와 초월자들이 수십이 넘어가는 그 세상에서 나는 많은 것을 알아야했다.
그래서 귀족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권력을 가진 배불뚝이 아저씨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하는지.
그런 거.
대충 다 안다.
부탁인데 우리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말자고.
여하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건 생각 외로 간단한 거거든. 영감님은 알아. 누가 숙여야 하는 존재인지. 그러니 영감님한테도 시간이 필요한 거고.”
“시간…… 그렇군요.”
슬쩍 웃었다.
“왕국 연합이 만들어지면 나도 시간을 벌게 될 거고, 영감님은 두 아들놈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는 거고, 툴칸의 황태자는 내부적으로 단속할 시간을 벌게 되는 거고…… 여러 상황을 봐도 이 모든 걸 ‘소강상태’로 만들어 버리려면 연합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나한테는 시간 말고도 하나가 더 필요하니까.”
“더…… 라고 하시면?”
“뭐겠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명단은 테슬란 왕국에 한정되어 있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그럼 말 다 한 거지.
“난 위원회에 속한 모든 왕국 귀족들의 명단이 필요해. 그리고 그중 살아남을 수 있는 놈들은 손에 꼽을 정도겠지.”
“그 기준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못 말해 줄 것도 없다.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인물.”
이해했다는 듯 그레이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니까, 깊게 생각하지는 말고.”
천천히 기지개를 폈다.
어우.
이게 뭔 사서 고생인지.
현재까지는 머릿속으로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돛을 달고 바다를 헤치며 나아가는 순항 중인 배와 같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 모든 게 외부적인 일이라는 거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런 게 아니다.
이런 건 그냥 쉽게 하는 일이고, 진짜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의 남은 수명은 현재 13년.
이걸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쯤 집에서 혼자 궁상떨고 있을 우리 꼬맹이 드래곤. 걔는 어떻게 달래 줘야 할까.
때마침 스승님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춘다.
그간 상상만 했고, 생각만 했던 게 하나 있는데.
그걸 ‘시도’하면, 감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것이냐?]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내가 시도하려는 걸 스승님이 알게 되면, 아마…… 화를 좀 내실 거 같거든.
그리고 이거, 잘만 하면 우리 셀의 기분도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고.
웃음을 머금은 나를 향해, 스승님은 언젠가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Chapter 3
식사가 끝나고, 나는 셀과 스승님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셀이 묻는다.
-저는 왜 데리고 오신 거예요?
왜긴.
“할 말이 많아 보여서.”
-아…….
그 말만 하고 셀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마치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옥상 테라스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은 채로 기다렸다.
-저를, 관찰하시려던 거 맞죠?
긴 침묵 끝에 셀이 내뱉은 말이다.
그리고 내가 기다렸던 말이기도 하고.
“맞아.”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 항상 보스의 시선을 느꼈어요. 지하실에 있는 다섯의 시체를 볼 때,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관들을 죽일 때, 항상 보스는 저를 지켜보셨죠?
“맞아. 지켜봤지. 그래서?”
-……저를, 버리실 거예요?
잘 나가다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샬롯처럼 해맑지도 않고, 타노스 오빠처럼 순수하지도 않아요.
말없이 녀석의 말을 들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싸움이 벌어지거나 피를 보거나 시체를 보면 살의가 들끓어요. 저, 문제 있는 거죠?
셀의 눈동자가 글썽거리고 있었다.
-말해 주세요. 저, 미친 거 맞죠? 정신이 이상한 거죠?
울분이라고 해야 할까.
샬롯이 피안화를 겪은 그 순간부터 셀이 묘하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카데미에서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더니 결국 중간부터는 그 시무룩하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몰래 눈물 한 방울 떨어트리더라.
내가 이런 애도 있고 저런 애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셀을 방치해 둔 건 절대 아니었다.
아픈 곳이 있다면 치료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을 하면 된다.
그때부터 쭉, 나는 그 문제를 파악했을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 셀에게 다가갔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녀석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은 뒤 들어 올렸다.
-아……아?
멍한 표정으로 기묘한 소리를 내뱉는 녀석을 그대로 목 뒤에 앉혔다.
자연스러운 목마.
한두 번 해 본 듯한 솜씨가 아니었지만 한두 번 해 본 거 맞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되는데?”
-……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는 이미 다 졌고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는데,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누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싸우고 싶다…… 그런 거잖아? 그런 건 그냥 호전성이 강한 거야. 이게 뭐가 문제 되는데?”
-……그런가요?
“그런 거지. 너, 왜 타노스가 그간 성장을 못 하고 있었던 건지 알아?”
녀석이 고개를 젓는다.
“녀석은 싸움과 스포츠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거든. 세간에 이런 말이 있어.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그런데 녀석은 싸움이라는 걸 무슨 스포츠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더라.”
이게 말하다 보니 타노스의 뒷담화를 하는 모양새처럼 돼 버리긴 했지만, 사실인 걸 어찌하랴.
싸우는 게 무슨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팔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상대의 복부에 숨구멍 하나쯤을 뚫어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도 모자란 게 싸움인데,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날아오는 검을 보며 어? 검을 휘둘렀네? 그래 이번 건 너의 턴, 다음은 내 턴.
이런 식으로 무슨 카드 게임하듯 실전에 임하니 발전이 안 되지.
결국 타노스에게 부족했던 건 호전성이었다.
“하지만 넌 다르지, 샬롯은 샬롯이고 타노스는 타노스야. 왜 같아지려고 해? 다르다는 건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너는 좋은 편에 속해. 싸우고 싶어 한다…… 힘을 가지고 싶다는 거잖아?”
-……네.
“전에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복수를 하고 싶다고.”
셀은 분명,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복수를 위해 힘을 가진다…… 목적의식이 명확하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호전성이 드러난다…… 봐. 뭐가 문제야? 오히려 좋은 거잖아.”
-그런…… 건가요?
조금 아닌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말을 그럴싸하게 해서 그런가.
셀이 조금씩 수긍한다.
“그때 네가 말했잖아. 네가 하려는 복수의 대상은 두 명의 로드와 하인케스 베커만. 총 세 명이라고. 맞지?”
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조금만 더 늘리자.”
-네?
전에 아베이루한테 불로불사라는 실험과 위원회의 존재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셀은 별장에 있었다.
밤이 늦어서 돌려보냈었거든.
또, 그레이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눌 때도 셀은 없었다.
그래서 셀은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지금 알려 주었다.
네가 왜 실험을 당해야 했는지, 왜 하인케스 베커만이 그렇게 너의 몸을 썰어 댔는지.
그 배경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모든 것을 알려 줬다.
셀이, 이를 악물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슬픈 게 아니라, 분노했기 때문에.
우우웅-!!
허공의 마나가 언젠가처럼 셀의 의지에 따라 반응한다.
그때도 느꼈지만 셀은 마나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과연 지상 최강의 생명체답다고 해야 할까.
고개를 들어 올리자,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녀석의 등을 내 어깨에 앉아 계시던 스승님이 쓸어내려 주고, 나는 녀석의 다리를 툭툭 치며 시선을 분산시켜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녀석이 진정한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셀을 걱정한 게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느낀다.
감정이 그렇게 치솟아 올랐는데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되다니.
이런 게 시간이 지나고 하다 보면 부동심으로 자리잡게 되는 건데. 어릴 때부터 그 싹을 피우고 있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셀도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걸까.”
-제가, 복수해야 할 대상은…….
“맞아. 겨우 세 명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다는 거지.”
위원회에 속한 이들.
정확히는 불로불사를 도우던 놈들 전부가 셀에게는 복수 대상이다.
나는 그걸 알려 줬을 뿐이다.
“자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어요.
셀은 똑똑하다.
이해력이 남다르긴 한데,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부족한 듯싶다.
“조급해하지 마.”
-네?
“전체적인 분포로 보면 그놈들은 대륙 전체에 자리잡고 있거든. 네 몸이 수십 개가 된다면 모를까. 이 넓은 대륙을 어느 세월에 부수고 다녀? 거기다 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아직은 어리기도 하고.”
셀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조급해할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녀석에게 당근을 던져 줬다.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요?
“아까 잠깐 봤던 그 짧은 머리의 아저씨 알지?”
짧은 머리의 아저씨.
바로 그레이 학부장을 말하는 거다.
“그 양반이 테슬란 위원회에 속한 이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더라고.”
-아…….
“당연히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지? 곧 이 대륙에 왕국 연합이라는 게 출범할 거야. 대륙 전체가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거지. 그 시간 동안 나는 위원회에 속한 놈들의 모든 명단을 확보할 거거든. 사실 너랑 내 목표는 같아. 내가 세상에서 지워 버려야 하는 놈들이 다 너랑 관계되어 있거든.”
-…….
“우린 일종의 같은 목적을 지닌 동지, 그런 거지.”
잠깐 말을 멈추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형태로 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 그럼 그동안 너는 뭘 해야 할까?”
셀은 똑똑하다.
똑똑한 녀석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힘. 힘을 길러야 해요.
힘을 기른다.
정답이다.
“지금 네가 4서클인가?”
녀석이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10살에 4서클.
본래라면 말도 안 되는 경지다.
하지만 드래곤이라면 가능하다.
드래곤이니까.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있지.”
-그게 뭔데요?
뭐겠어.
이번에는 진지하게.
웃지도 않았다.
“두 로드.”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셀은 그대로 침묵했다.
하지만 스승님은 아니었다.
[로드를 만나러 갈 생각인 것이냐? 그것도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