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67)
제 168화
* * *
천천히 눈이 떠진다.
작은 빛무리가 들어오고,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며, 정말 익숙한.
낡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장미 정원.
어릴 적 내가 살았던 그 방의 천장이 딱 저랬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반쯤 일으킨 어중간한 자세로 멈추고 말았다.
셀과 샬롯, 그리고 타노스가 나를 빙 둘러싼 채로 침대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거든.
심지어 타노스의 머리는 내 배 쪽에 와 있었고 셀은 내 오른손을 무슨 보물단지 쥐듯 꽉 쥐고 있다.
샬롯은 셀처럼 내 왼손을 꽉 쥐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얘네, 보니까 아주 푹 잠든 것 같다.
이거 뭐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
아무리 봐도 지금, 분명 새벽이거든.
시간은 대략 05시 정도.
날이 살짝 밝은 걸 보니까, 정확한 시간은 05시 23분? 그쯤 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이대로 일어나면 얘네들도 곧바로 깰 텐데, 그게 좀 걸린다.
얘들 성장기잖아.
지금 깨우면 클 키도 안 크는 거 아니야?
그렇게 어중간한 자세로 있을 때였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이냐.]문득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이.
인형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계셨다.
다리를 꼬고 나를 바라보는 스승님의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빛이 나는 것처럼 보일까.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왜 우리 누나 옷을 입고 있는지.
별걸 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스승님이 묻는다.
“예.”
[슬픈 꿈이었느냐?]“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인 것이냐.]내 표정이 어떤지는 거울을 안 봐서 모르겠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묻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질문하거라.]언젠가처럼, 부드럽게 웃는 스승님의 모습은 확실히 내 기억 속의 스승님이 맞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스승님은, 스승님이다.
그리고 나는 스승님의 제자다.
그러니까 딱 하나.
요약해서.
딱 하나만 묻자.
“제가, 스승님의 첫 번째 ‘제자’였습니까?”
전생에서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깨달았을 뿐이다.
이 세상에 스승님이 만든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나 혼자였으니, 그 이상 증거가 필요할까.
그런데 방금 보았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걸린다.
그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면.
분명.
이 세상에 ‘흑마법’을 아는 놈이 존재하거든.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거다.
나는.
내가 스승님의 첫 번째였으면 했거든.
[과거.]“과거요?”
[400년 전, 아카데미에 흑마탑을 세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밑에서 흑마법을 배웠던 이들이 있었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 있었다. 숫자는 약 1800명.]스승님과 눈을 맞췄다.
나는 진지했고, 스승님도 진지했다.
[하지만.]스승님의 눈빛이, 조금씩 뜨거워진다.
[나는, 그 당시에 ‘제자’를 둔 적이 없다.]“…….”
[내가 흑마탑에서 가르쳤던 것은 현혹 마법과 저주, 그리고 스스로의 신체를 강화시키는 보조 마법 쪽에 치우쳐져 있었지.]“…….”
[그 마법들을 ‘배포’했고, 책으로 만들었다. 그걸 보고 배운 이들이 내 제자라고 한다면, 글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나는 그들을 제자라고 보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스승님이 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스승님이 손을 내밀며 내 귓불을 짚는다.
[벌어지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와 나는 10년을 같이 살았다고 했다. 그 시간으로 인해 만들어진 너의 유대감, 나는 그 모든 것을 존중한다.]“…….”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알 것 같구나. 아마,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했겠지.]스승님의 눈빛이 따스해진다.
[너는 내 제자다. 내 첫 번째 제자이자, 내 모든 것을 배워 간 제자. 이제 되었느냐?]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가슴에 묵혀 있던 어떤 것이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우리 스승님, 아직 내 귓불에서 손 안 떼셨다.
[이제는 내가 물을 차례구나.]“……이거, 미신이라니까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신다.
[무슨 꿈을 꾼 것이냐?]대답하려던 그때.
-보스?
“보스?”
“……보스.”
애들이 깼다.
아까부터 계속, 지금까지 쭉 어중간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나는 잠시 스승님을 바라보다, 한쪽 눈을 찡긋했다.
조금 후에 이야기하자는 그 신호를 알아들은 스승님이 슬며시 손을 떼어 낸다.
그렇게 꼬맹이들과 해후를 나누었는데,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최대한 내색은 안 하려고 노력해서 우리 꼬맹이들이 알아채지는 못한 거 같은데.
이거, 안 복잡하면 이상한 거다.
그럼.
대체 뭐지?
전생의 나는, 대체 어떻게 데스 나이트가 된 걸까.
그런 나를 스승님께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
애써 모른 척했다.
* * *
엘리자베스 발란티에.
이제는 발란티에 후작이 된 엘리자베스는 생각 외로 늠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후작가 본관 회의실.
그곳에 기존에 있던 6명의 원로들과 새롭게 원로로 임명된 12명.
거기다 엘리자베스까지.
총 19명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영지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항들을 보고하고 있었다.
“영지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뒤늦게 맨티스 백작가와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지만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현재 후작가에 돈이 거의 없다는…….”
“영지민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상인들과 용병들…….”
등등.
원로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리하면, 후작령의 주민들은 나쁘지 않게 생활하고 있고 별문제도 없다, 상인들도 찾아오고 용병들도 찾아오는데 후작가에는 돈이 없다?”
모두가 조용해진다.
엘리자베스.
온화한 성품과 바보처럼 착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지만 그때의 엘리자베스와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다르다.
정확히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말을 돌려서 하는 건가요? 주민들은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후작가에는 돈이 없다…… 그러니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
“산드로 님.”
“예, 후작님!”
엘리자베스가 빙긋 웃는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라고 원로로 임명한 거 아니에요.”
“…….”
“주민들이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다? 어제 보니까 아직도 판자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족히 수백은 넘던데, 그들이 풍족해 보이던가요?”
“…….”
“일자리가 없어서 굶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풍족하다고요?”
엘리자베스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산드로 님.”
이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는 걸 못 읽으면 그냥 나가 죽어야 한다.
산드로는 적어도 그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 후작님!”
“제가요. 이 후작이라는 자리에 앉으면서 다짐한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동생한테 부끄럽지 않은 누나가 되겠다는 다짐인데, 산드로 님께서는 저를 더욱더 부끄럽게 만드시네요.”
“…….”
“아무래도 원로로 올린 건 제 실수인 것 같네요. 행정관으로 보직 변경합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회의실 문을 힐끗 바라본다.
“나가세요. 당장.”
“예…… 예…….”
그렇게, 발란티에 후작령 행정관에서 원로로 승진한 산드로는 승진한 지 이틀 만에 다시 행정관으로 내려갔다.
조용해진 회의실.
엘리자베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세금은 더 걷을 생각 없습니다.”
그 말에, 한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후작님,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클라크 발란티에 시절, 원리원칙을 지키며 최대한 영지민들의 복지를 신경 썼던 러스톤.
“해 보세요. 러스톤 원로님.”
그가 침을 꿀꺽 삼킨다.
“외람되지만, 돈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후작가에 비축되어 있는 자금도 없고, 그저 식량만이 있을 뿐인데 그것도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닙니다. 전대 후작이…… 아니, 전대 후작님께서 그걸 전부…….”
“맨티스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주었다?”
“……예.”
엘리자베스가 이번에도 빙긋 웃는다.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 돈들 전부 회수했으니까.”
“……예?”
엘리자베스는 바보가 아니고, 론도 바보가 아니다.
발란티에 후작가는, 나름 풍족한 영지였다.
문제는 그 돈들을 맨티스 백작가에 퍼 주었고, 그 외에도 쓸데없는 곳에 사용했기에 자금난에 시달리는 거지.
그걸 전부 회수할 수만 있다면 자금난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전부 회수한 상태다.
“거기다 맨티스 백작령도 발란티에 영지에 흡수되었어요. 돈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북풍한설처럼 몰아치던 엘리자베스의 웃음은, 이 순간 매우 따뜻했다.
하지만 러스톤과 다른 원로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나 보다.
“맨티스 백작가가, 정말 후작령에 편입되는 겁니까?”
“왕성의 허락도 없었고…….”
“아무런 서신도 보내오지 않았는데…….”
저마다 한마디씩 하던 그때 엘리자베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제 보니까, 우리 원로님들은 제가 이 후작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계셨나 보네요.”
몇몇 원로가 헛기침을 했다.
사실이었으니까.
“요 며칠 동안 같이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한 건 저뿐이었나 보네요.”
엘리자베스가 슬쩍, 론을 바라본다.
“수호기사님. 검 뽑으세요.”
“충-!”
론이 검을 뽑아 든다.
9서클 마나 유저.
살벌한 그의 기세가 회의실 전체를 집어삼켰다.
침 삼키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물어볼게요. 후작령을 떠나고 싶으신 분 계세요?”
“…….”
“제가 후작 자리에 오래 못 있을 것 같다…… 있어 봐야 다른 세력에 잡아먹힐 거다…… 왕이 압박을 시도하면 꼼짝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계시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