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65)
제 366화
“그럼 휴가 갔다 와서 처리해.”
아베이루가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휴가 가기 전에 처리해놓고 가겠습니다.”
계속 언급하지만 아베이루는 믿을만하다. 이렇게 충성하는 애가 주변에 있으면 든든하지.
아베이루는 항상 그렇듯 경외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치게 뜨거운 그 눈빛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우리 스승님이 비슷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마주 웃었다.
[뭘 그렇게 징그럽게 웃고 있느냐.]“스승님 시선이 더 징그러웠습니다.”
우리 스승님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머리를 툭 치셨다.
난 이런 시간도 좋다. 뭔가 여유롭고 평화롭잖아.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렇게 평화로운 게 어디야.
그런 내게 아베이루가 물었다.
“주군. 이제 어센블로 가시는 겁니까?”
아베이루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
어센블.
가긴 해야지.
해럴드랑 해머를 어센블 별장으로 보내 놨고, 이제 아베이루 데리고 가서 철도 공사에 대해 이야기 나눠야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 왕성.
여기에서 이제 끝마쳐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어찌 보면 순서가 조금 잘못된걸 수도 있다.
테슬란을 멸망시키기 전에 선행되었어야 할 일.
전생에서는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이자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이다.
“걔 어디 있냐?”
“누구 말씀이신지요?”
“마자르 테슬란.”
아베이루가 흠칫, 몸을 떤다.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뒤늦게 눈치 챈 거다.
테슬란이 망했으면 당연히 테슬란의 이름을 쓰는 놈들도 다 죽어야한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왕성 외곽 별관에 감금 중입니다.”
“그래?”
“예. 안내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chapter 4
지성체는 항상 후회한다.
이때는 이랬으면 어땠을까.
그때는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는…… 이때는…….
그것에 대해서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대륙의 정점이라 불리는 잭 발란티에도 후회했고, 그의 스승인 발렌타인 밀로스도 후회했다.
그건 지성체로서의 본능, 어쩔 수 없는 그 이상의 법칙이었다.
그 부분에서는 전前 테슬란 왕국의 국왕이었던 마자르 테슬란도 포함된다.
왕국 외곽에 위치한 별관.
말이 외곽이지 실제로는 거의 구석진 곳이나 다름이 없었고 실제로 이런 곳에는 왕궁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들, 혹은 그 서자들의 어미가 거주한다.
그곳에서 이미 몇 달을 머물렀던 마자르 테슬란은 정말 오랫동안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보통 이렇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는 반성이라는 걸 한다.
후회를 하고 뉘우친다.
머리가 제대로 달려있다면 곰곰이 생각했을 거고 결국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수가 없으니까.
분명 모두는 후회한다. 마자르 테슬란도 그 부류에 들어는 갔지만 조금 달랐다.
후회가 원망이 되고 절규가 된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마자르 테슬란은 분노했다.
속으로 절규했다.
‘나는 건국왕의 핏줄이다.’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이곳에서 나가, 나를 이곳에 가둔 놈들을 단죄할 것이다.’
어떻게 단죄할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마자르는 이렇게 답했을 거다.
‘모른다.’
라고.
그런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내가 이곳을 벗어나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
헛된 희망이었다.
뉘우치지 못하는, 멍청하고도 한심한 이들의 전형적인 예시를 지금 마자르 테슬란이 보여 주고 있었다.
사실 그런 남자였으니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거다.
마자르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선대의 선대, 그 선대까지.
모든 것은 필연이다. 그가 정말 정상이었고 똑똑했고 총명했다면 툴칸이라는 제국이 미쳐 날뛰지도 못했을 거다.
툴칸이 미쳐 날뛰지 못했다면 테슬란은 망할 일이 없다. 잭이라는 괴물도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가 머무는 별관.
그 내부에 있는 마자르의 침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침대에 앉아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돌린 마자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잭, 발란티에?”
그리고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인형.
소문에 의하면 저 인형이 과거의 영웅 발렌타인 밀로스라고 했다.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인형을 어떻게 하면 구슬릴 수 있을까.
저 영웅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방도가 없을까.
그리고 얼어붙었다.
왜냐면 잭 발란티에의 시선도 싸늘했지만 과거의 영웅의 시선이 더 싸늘했으니까.
그건 인식하지 못하는, 정확히는 외면하고자하는 진짜 현실을 알려 주는 눈이었다.
마자르의 머리가 멍해진다.
인형이, 그녀가, 말했다.
[율리우스는 나를 가두기 전 이렇게 말했었다. 나의 유지를 잇겠다고.]그녀가 잭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나는 물었다. 정말 그게 최선이냐고.]그녀가 걸음을 옮긴다.
[당시, 이종족에게서 해방되고 율리우스에게 붙었던 귀족들, 즉 권력자들은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대륙 전체에 퍼트린 상황이었다. 그 뒤에 율리우스가 있었음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던 것이다. 그게 최선이냐고.]발렌타인은 인형의 몸으로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원래 인간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간들의 세상을 만든 것이 나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소문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더구나.]모든 게 사실이었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은 사실.
400년 전의 진실이다.
[관심을 끄고 아카데미의 건설과 내부 법안을 만드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던 나는 뒤늦게나마 알 수 있었다. 이미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이름은 인간들의 영웅에서 인간들마저 두려워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발렌타인은 그 작은 몸으로 침대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는 마자르를 올려다보았다.
“…….”
[율리우스는 그 일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와서 내게 일생을 속죄하겠다고,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사랑한다고, 그러니 기회를 달라고. 녀석의 표정은 단호했지만 심장은 흔들리고 있었다.]발렌타인은 사람의 속을 꿰뚫어볼 수 있다. 무슨 초능력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경험이다.
율리우스의 거짓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육체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처음을 주고 싶었으니까.
율리우스는 많은 거짓말을 했다. 계속 기회를 주었다. 그때도 기회를 주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왜 율리우스를 죽이지 않았는지 아느냐?]“……나는 모르오. 그때의 그 시절을 살지 않았으니까.”
[그래, 그렇겠지. 마저 말하마. 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건 군나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서 군나르도 마찬가지였지.]아서 군나르?
그가 여기서 왜 나오지?
그는 과거의 인물이다. 마자르 테슬란은 아서 군나르가 살아있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발렌타인의 말을 들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율리우스에게 딱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줘도 되지 않겠냐고,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더구나.]“…….”
[그렇게 한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발렌타인이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마자르의 미간이 구겨진다.
지금 대놓고 선조를 모욕하고 있는데 어찌 표정이 좋을 수가 있나.
분노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감출뿐이다.
발렌타인이 말을 잇는다.
[난 한번 한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고 기다렸다. 10년, 20년, 30년, 녀석은 오지 않더구나.]“…….”
[율리우스는 초월자였다. 수명이 일반인의 수명과는 다르기에 나는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내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어 인형의 몸으로 변하면서까지 나는 기다렸다.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났을 때, 그제야 알겠더구나. 나는 믿지 말아야 할 녀석을 믿었던 거구나.]마자르의 미간이 구겨진다.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발렌타인은 곧바로 답했다.
“……뭐?”
[권력에 눈이 멀고, 헛된 명예에 정신은 침식당하고, 지켜야 할 심장의 약속과 책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외면하는.]발렌타인의 눈이 마자르를 직시했다.
[지금 세상이 이 꼴이 된 것은 그런 소시민小市民이,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눈먼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침식된 정신에 기댄 바로 너처럼.]발렌타인의 눈은 처음 보았을 때와 같았다.
여전히 차갑고 싸늘했다.
그 눈은 마자르의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율리우스의 핏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했는데, 나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발렌타인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테슬란의 시대는 헛된 야망을 품은 자들의 시대였다. 이제, 너를 시작으로 그 시대는 저물 것이다.]사형선고.
마자르는 발렌타인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왕이 없는 국가의 유일한 수호자가 내 과오를 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만큼 누렸으면 마지막만큼은 왕답게 가거라.]발렌타인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 작은 몸으로 걸어가는 발렌타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자르는 이성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네가 뭔데.
400년 전의 영웅? 웃기는 소리!
빌어먹을 년이 감히 내게 그딴 헛소리를 해?
마자르의 손의 침상의 베개 밑으로 향했다. 베개가 들쳐지고, 작은 단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빛 장식이 되어있는 그 검은 생각보다 날이 잘 벼려져 있었다.
마자르의 손이 단검을 붙잡았다.
마자르의 눈은 계속해서 뒤를 드러낸 채 걸어가는 작은 인형을 향해 있었다.
마자르의 발이 움직인다. 손도 움직였다.
저년의 등짝에 이 칼을 꽂아 넣으리라.
나는 테슬란.
불멸의 영웅, 진짜 영웅의 후손이다.
그렇게 허공을 가르던 그의 손이 터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왕답게 가라고 했잖아.”
흑발의 남자.
너무나도 유명해서 처음 보는데도 마치 매일 보았던 것 같은 그런 외모.
잭, 발란티에.
그의 눈이 마자르의 심장에 꽂힌다.
“고통 없이 편하게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걸 버리네.”
말투만 보면 아쉬워하는 말투였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그의 입 꼬리는 말려 올라가 있었으니까.
섬뜩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