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88)
제 389화
* * *
주먹을 강하게 쥐고, 풀었다.
우두둑.
진짜 어린애처럼 보일까 봐 웬만하면 이런 말은 잘 안 하지만 지금은 해야겠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힘이 넘쳐 나는 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충만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슬쩍 손으로 거울을 만들고는 얼굴을 비춰 보았다.
갸름한 턱.
쌍꺼풀 짙은 눈동자.
오뚝 솟은 코.
젖살은 완전히 빠졌고 슬쩍 로브를 들춰내 몸 안쪽을 비췄다.
지속적인 혼기의 사용으로 살이 터지고 징그럽게 찢어져 있던 살들이 전부 아물어 있다.
새로 태어났다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신체의 재구성이라는 건 이런 거다.
선천지기를 담는 그릇은 더 커졌고, 힘은 넘쳐 난다.
영혼은 아직 찢겨 있었고 지속적으로 회복하고 있었으나 이건 별개다.
인간으로서의 한계.
이 정도면 전생의 몸을 불러오거나 하는 그런 리스크 높은 기술을 쓸 필요가 없다.
최상의 몸 상태.
거울에 비친 잘생긴 청년이 씩 웃는다.
그 청년의 너머로, 흑발의 여인이 피식, 실소를 터트리는 모습이 보인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스승님은 아무 말 않고 내 머리를 툭 치셨다.
손을 휘저으며 거울을 사라지게 만든 뒤 스승님에게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세계수에 왜 그런 ‘저주’를 새겨 둔 겁니까?”
바르바라 귀도는 아마 내가 세계수의 생명력을 흡수했다고 느끼겠지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세계수를 치료해준 거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눈앞의 세계수가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이유는 내 옆에 계신 우리 스승님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이다.
흑의 굴레.
과거의 스승님이 드래곤들의 심장에 새긴 것처럼 혼기로 이루어진 굴레를 세계수에 덧씌웠다.
길게 말 할 거 있나.
간단하게 말하면 이 세계수가 성장하지 못하게 뿌리가 흡수하는 ‘지력’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흘려버리게 하는 마법인데, 지금 내가 흡수한 건 근 400년간 스승님의 마법이 흡수하고 걸러냈던 그 잔재들이다.
일종의 찌꺼기 같은 거지.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 같은 그런 거, 아니 잠깐만, 음식물 쓰레기는 너무했네.
그 정도는 아니고 흙 묻은 핫도그, 딱 그 정도가 적당할 듯.
나는 그러니까 흙 묻은 핫도그를 주워 먹은 거다.
솔직히 이렇게 신체를 급격하게 성장시킬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이게 흡수하다 보니까 꽤 어마어마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나니까 이런 게 가능한 거다.
누가 그 자연지기의 찌꺼기만 남은 그 기운으로 이렇게 강제로 성장을 하겠어.
이건 나만 가능한 거다.
솔직히 조금 찝찝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오랜만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 떠들고 있냐면 우리 스승님이 대답을 안 하셔서 그렇다.
고개를 돌려 왜 세계수에 그런 저주를 새겼냐고 다시 물어보려던 그때, 스승님이 때맞춰 말씀하셨다.
[세계수의 뿌리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아느냐?]모를 리 없다.
대충.
“엘프의 숲 전체, 아닙니까?”
[맞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거라.]스승님의 말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프의 숲은 거대하다.
땅의 크기뿐만이 아니라, 그 땅에 박혀 있는 나무들의 크기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수십 미터 크기의 나무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고 절대로 10미터 아래의 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습기가 가득 차서 조금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볼만은 하다.
마수의 숲에서 가장 우뚝 솟아있는 울창하고 거대한 나무숲.
이게 마수의 숲 내부에 있는 엘프의 숲이다.
엘프의 숲 중심에 있는 세계수가 주축이 되어 엘프 왕국 엘더림이 만들어졌다.
엘프들의 상징이자 나름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스승님은 그 엘프들의 상징인 세계수에 불을 질러버리셨다.
그리고 저주까지 새겨서 성장하지 못하게, 거의 영원히 말라비틀어진 고목으로 존재하게끔 만들어버리셨는데, 왜 그러셨을까.
나무가 마음에 안 드셨나.
“그렇습니까?”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계수는 지나치게 많은 지력을 흡수한다. 다른 나무들이 가져가야 할 자연의 기운도 전부 빼앗아가지. 그렇기에 거대했다. 만약 세계수가 건재했다면 지금 엘프의 숲 같은 ‘천혜의 요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잠시 말을 멈춘 스승님이 방금 전까지 세계수였던, 아주 작은 이파리처럼 생긴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세계수가 지력을 다시 흡수하게 된다면 머지않아.]“머지않아?”
[이 엘프의 숲은 세계수 하나만 남고 기존의 나무는 사라지겠지.]알쏭달쏭했다.
“상징의 부활이냐, 번영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그런 겁니까?”
[그래, 이제 세계수는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엘프들의 요새는 작아지겠지. 원래는 세계수를 지워 버리려고 했었는데, 생각처럼은 안 되더구나.]“종족의 상징이니까?”
[맞다. 종족의 상징이니 존중해 주어야지. 그런데 이젠 의미가 없구나.]세계수는 부활할 테니까.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였다.
자리에 무릎을 꿇고 멍하니 있던 귀도가 짧은 머리의 베네딕트와 눈을 마주친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바라보던 두 남자는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어떤 의미를 주고받았나 보다.
귀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고 베네딕트는 인상을 구겼다.
귀도가 중얼거린다.
“엘프 앞에서 활을……. 쯧.”
아무래도 우리 귀도 님께서는 화풀이가 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베네딕트는 그걸 읽은 듯했지만,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나 보다.
바르바라 귀도의 별명은 신궁.
엘프들 중에서 활을 가장 잘 쏜다.
그런 귀도였기에 베네딕트는 경쟁심이 동했나 보다.
그때, 머릿속에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재미있는 구경 하나 하시겠습니까?”
[구경?]궁금한 듯 고운 눈매를 작게 좁히신 스승님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너네 둘, 궁술 시합 한번 해 볼래?”
그렇게.
신궁이라 불리는 엘프 로드와 밀로스 아카데미의 자존심, 궁술학부 학부장 보우 마스터와의 궁술 시합이 열렸다.
* * *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그들만의 리그.
중급 마스터 바르바라 귀도.
초급 마스터 베네딕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오직 순수 육체로만 겨루기로 했고, 수습 엘프들이 사용하는 연습용 장궁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가자. 500m. 사수 준비.”
두 남자는 여유롭게 시위에 화살을 얹었고 쭉, 당겼다.
목표는 500m 거리에 있는 과녁.
“샷.”
투웅-!
투웅-!
화살이 뻗어 나가는 소리는 비슷했다.
하지만 위력은 달랐다.
귀도의 화살은 과녁에 푹 꽂혔고, 베네딕트의 화살은 과녁을 박살 냈다.
귀도는 그걸 보더니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다.
둘에게 물었다.
“몸 덜 풀렸냐? 500m 한 번 더 갈까?”
두 남자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오케이.
“다음은 1km. 사수 준비.”
아까처럼 두 남자는 시위를 당겼고.
“샷.”
내 신호에 맞춰 화살을 쏘아 냈다.
푸욱-!
콰직-!
아까와 비슷했다.
귀도의 화살은 과녁에 정확히 꽂혔고, 베네딕트의 화살은 과녁을 개박살 냈다.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이것 봐라.
“다음은 2km. 사수 준비.”
다시 화살이 시위에 메겨졌고.
“샷.”
푸욱-!
콰직-!
가볍게 내 감상을 말해 보자면, 귀도는 여유로웠고 베네딕트는 조금 조급해 보였다.
익숙한 활이 아니라서 그런가.
사실 2km 거리에 있는 표적을, 화살로 쏘아 내서 박살 낸다는 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거의 점처럼 보이는 거리거든.
거기다 바람의 영향까지 생각해 보면, 지금 베네딕트는 생각 외로 선방하고 있는 거다.
왜냐면, 기존에 사용하던 이무기 뼈랑 이무기 힘줄로 만든 그 활이 아니니까.
오히려 귀도가 대단한 거지.
“자, 그럼 난이도를 좀 올려 보자. 저기 있는 꽤 큰 나무에 딱따구리가 열심히 쪼개고 있는 부분 보이지? 저기가 과녁이다. 거리는 약 2.7km.”
둘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화살을 메겼다.
“샷.”
베네딕트가 먼저 활을 쏘았다.
후웅, 푸욱.
시야를 좁혔다.
베네딕트의 화살은 딱따구리가 쪼개던 그 지점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고개를 돌려 귀도를 바라보았다.
너는 왜 안 쏘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여전히 여유롭게 웃고 있었거든.
이어서 귀도가 화살을 쏘아 냈다.
콰직-!
놀랍게도 귀도의 화살은 베네딕트의 화살을 꿰뚫었다.
누가 봐도 노린 거다.
베네딕트가 고개를 홱- 돌린다.
“왜 그렇게 쳐다보나? 실수한 거야, 실수.”
귀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계속 할까?”
귀도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다.
베네딕트에게 물어본 건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다음은 그 너머로 보이는 곳, 나무 꼭대기쯤에 박혀 있는 솔방울 두 개 보이지? 거리는 3.2km. 사수 준비.”
둘은 화살을 메겼다.
“샷.”
신호를 내렸음에도 둘은 활을 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
귀도는 흥미로운 눈으로 베네딕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확실히 흥미로울 법도 했다.
베네딕트는 지금 곡사를 준비하고 있었거든.
녀석의 장기.
이어서 이상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던 베네딕트가 시위를 놓았다.
쌔애액-!!
동시에 허공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뱀처럼 날아가던 화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솔방울을 스치고 말았다.
베네딕트가 귀도를 바라본다.
귀도는, 마치 베네딕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똑같이 시위를 옆으로 비틀었고, 놓았다.
쌔애액-!
푸욱-!
솔방울에 정확히 명중하는 소리, 적어도 우리 모두의 귓가에는 들렸다.
승부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귀도가 다시 한번 화살을 메기고 쏘아 냈다.
쌔애액-!
푸욱-!
귀도의 화살은 또다시 곡선을 그리며 날았고 솔방울을 꿰뚫으며 그 건너편의 나무에 박혔다.
그 충격 때문일까.
거의 3.4km는 넘어 보이는 나무에서 솔방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귀도는 다시 화살을 걸었고, 쏘아 냈다.
쌔애액-!
그 화살은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다섯 개 정도의 솔방울을 마치 꼬치 꿰듯 꿰뚫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솔방울을 꿰뚫고 나가는 화살이 다른 나무에 박히고, 그 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져 내리면 귀도는 귀신같이 화살을 쏘아 내 최소 5개 이상의 솔방울을 꿰뚫었다.
놀라울 정도의 기예.
거리는 점점 늘어났다.
3.5km.
3.6km.
3.7km.
3.9km.
거기가 한계였나 보다.
다섯 개 이상씩 꿰뚫던 귀도의 화살이 3.9km의 거리에서는 세 개만 꿰뚫고 힘을 잃었다.
슬며시 활을 내리는 귀도는 승자의 모습이었다.
완벽한 패배를 당한 베네딕트가 이를 악물고 귀도를 올려다본다.
순수 육체였고 연습용 장궁이지만 같은 강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익숙함의 차이? 그런 건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궁사로서 겨뤘고 궁사로서 패배한 거다.
정확히는 기술의 차이.
바람을 느끼고 그걸 이용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