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5)
제 436화
마이크 위쪽에 떠 있는 작은 수정구.
저기에 마나를 넣으면 전 대륙으로 퍼진 수많은 통신구들에 내 모습이 나올 거다.
전에 건국식 할 때 써먹었던 건데 이걸 이렇게 다시 쓰게 되네.
내 주변에는 스승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스승님은.
아까 이곳에서 키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통신구가 꺼져있는 상황이다. 마나를 넣지 않았으니까.
수정구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저 이름 바꿀 겁니다.”
대답은 들려왔다.
[그래.]라고.
조금 더 자세하게 말했다.
“잭 발란티에라는 이름은 이제 쓰지 않을 겁니다. 군나르라는 이름도 쓰지 않을 겁니다. ‘잭 밀로스’, 그 이름을 쓰려 합니다.”
[그렇게 하거라.]결국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다문 입술, 하지만 곧게 펴진 미간.
언제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긴 하지만 지금 저 표정은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화가, 난 표정.
“밀로스라는 성을 쓰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십니까?”
[수개월 전에 발란티에 후작가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지. 뿌리를 찾아갈 생각이 없냐고.]내가 발란티에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싫어하신 스승님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더 나은 이름.
어머니의 본가.
[시간이 지나 너는 뿌리를 찾았다. 군나르가 너의 성이었다. 하지만 군나르는 썩어있었지. 그 썩은 이름을 네 녀석이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런 네가 선택한 게 밀로스라는 이름이라면 굳이 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스승과 제자’가 성을 공유하는 것은 오래전에는 ‘흔한 일’이었으니까.]미간이 찌푸려진다.
“그게 전부입니까?”
[그럼 내가 물으마. 여기서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이냐?]말없이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도 나를 바라본다.
묻고 싶었다. 왜 선을 긋냐고.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인지 알지 않냐고, 밀로스라는 이름을 쓰겠다는 그 의미가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이들은 몰라도 스승님은 안다.
고작 스승과 제자? 과거에 스승과 제자가 성을 공유했다? 내가 말하는 건 그딴 거랑은 전혀 다른 범주의 것이라는 것을 스승님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런데 왜 그러냐고.
스승님의 표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저건 분명 화가 난 표정이다. 정확히는 분노가 가라앉아 있었다.
대체 무엇이, 저렇게 스승님을 분노하게 했을까.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일단 즉위식부터 끝내자.
수정구에 마나를 담았다. 수정구가 빛났고 마나의 줄기가 대륙 전체로 뻗어나갔다.
* * *
“인간들의 역사는 길다. 그 긴 역사 중에 수많은 국가가 탄생했고 수많은 왕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귀족이 있었다. 이 사실은 모든 종족을 관통하는 진리다. 인간을 예로 들었지만 이종족들도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듣고 있는 모두는 수긍했다.
거대하게 떠오른 잭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 친다.
“하지만.”
덩달아 듣는 모두가 침묵했다. 수군거리는 이도 없었고 웅성거리는 이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분위기.
압도적인 역사를 쓰고 압도적인 힘으로 대륙을 지배하게 된 새로운 지존의 분위기. 바로 제왕의 분위기다.
지존이 말했다.
“그건 권력자들의 싸움이었을 뿐이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들 중 300년 전 각 국가의 왕과 각 국가의 귀족들 이름을 대라고 하면 댈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200년, 100년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얼마 전에 죽어버린 수많은 귀족들과 지금 살아있는 귀족들의 이름을, 딱 10개만 댈 수 있는 이가 정말 얼마나 될까.”
이번에도 침묵했다. 그건 정말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잭의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으니까.
300년 전의 테슬란이나 그 외 몇 번 나타났다가 망해버린 ‘신교’라는 국가나, 그 국가의 왕 이름을 알고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각 아카데미에서 역사를 배우긴 하지만 기억까지는 하지 않는다. 관심 없으니까.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았던 다른 주민들은 어떠할까. 관심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이들도 존재할거다.
비교적 최근인 100년으로 시간을 앞당겨도 마찬가지다.
이스마엘의 왕은 어쩌구 이스마엘을 쓰고 있었을 거고 프란츠 왕국의 왕은 어쩌구 프란츠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을 거다.
어느 영지의 귀족은 그 영지의 이름을 성으로 쓰고 다른 이름을 썼겠지.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가 각 국가에 소속되고 그 영지에 소속된 이들을 제외하면 정말 얼마나 될까.
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챈 이들도 있었고 눈치 채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잭은 친절했다. 친절했기에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백성은, 주민은, 그리고 영지민은 귀족이 바뀌건 왕이 바뀌건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권력 싸움을 해서 승리하여 왕이 되고 누군가가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여 귀족이 되는 것을 싸움의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그 어떤 백성이 관심을 가질까. 백성은 그저 웃고,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게 목적인 것을.”
대륙 전체가 조용해졌다.
“수탈을 하는 이가 있었고, 겁박을 하는 이가 있었으며, 남용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각 영지의 주민을 장난감으로 사용하던 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전부 죽었으니까.”
잭의 곧은 그 눈빛이 대륙의 모든 이들을 관통한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생기는 족족 죽일 거니까. 이 자리에서 ‘잭 밀로스’라는 이름을 걸고 모든 백성들에게 약속한다. 앞으로 이유 없이 착취당하거나 수탈되고 장난감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너희를 그리 만든 놈을 죽일 것이다. 그것은 밀로스 제국의 초대 황제, 나의 약속이다.”
별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이는 되게 다르게 생각했다.
대륙을, 완전히 찢으며 지배자가 된 남자다. 그 남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했다. 복수를 해주겠다고.
사실 이미 복수는 잭이 한번 해줬었다.
수개월에 걸쳐 죽어나간 귀족들은 공공의 적이었다. 귀족들의 이름이나 권력 싸움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알 정도로 악질인 귀족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전부 죽었다. 직간접적으로 잭이 죽인 거다. 그런 남자가 한 번 더 약속했다.
이게 즉위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갑작스럽게 마련된 즉위식이지만 그 무게를 모르는 이도 없다.
저렇게 즉위식을 하는 황제, 잭 밀로스가 어떤 남자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대륙의 모든 이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황제.
“철도를 만들고 각 영지의 이동을 원활하게 할 것이다. 세금을 올릴 생각은 없다. 각 영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현재 내고 있는 세금에서 절반 이상 깎일 것이다.”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래 철도.
마력기차인지 뭔지 하는 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철도를 건설하는데 드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도 그게 보통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세금을 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줄인다고 한다.
놀라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다.
“돈을 퍼주고, 식량을 퍼주겠다는 약속 따위는 하지 않는다. 세금은 적당하게 걷을 것이다. 밀로스 제국은, 노력하는 자는 빛을 볼 것이고 노력하지 않는 자는 외면당하는 국가다.”
잠시 잭은 말을 멈췄다.
할 말은 전부 다 했다는 듯, 작게 웃는다.
“시간이라는 게 그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인데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모두가 잭의 웃음을 보았다. 빛이 나는 미소였다.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려는 듯, 잭이 천천히 말했다.
“밀로스력 1년 1월 15일. 현재 시각 21시 22분. 나, 잭 밀로스는 공식적으로 밀로스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이상이다.”
뚝하고, 수정구에서 잭의 얼굴이 사라졌다.
건국식 때도 그랬지만, 이쯤 되면 이건 특징이라고 봐야 한다.
뭘 하든,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주는 남자.
그렇게 즉위식이 끝났다.
* * *
즉위식이 끝난 직후였다. 그 즉위식을 아베이루는 보았다.
아베이루뿐만이 아니었다. 잭의 주변 인물.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셀과 샬롯, 그리고 타노스. 그 외 이종족의 수장들도 모두 지켜보았다.
소감은 간단했다.
잭은 확실히 대단한 남자라는 거.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잭은 정말로 대단한 남자였다.
보통 말 몇 마디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데 저 남자는 매번 말을 할 때마다 사람을 놀래킨다.
뿐일까. 거기서 더 놀라운 건 그의 말이 전부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그 어떤 말이든 그걸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다.
실제로 잭은 약속을 하면 그게 무슨 약속이든 어떤 식으로든 지킨다.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하면 그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살린다고 하면 반드시 산다.
대륙에 벌레들이 많았고 그들을 지우겠다고 약속했다. 시작은 테슬란 아카데미였다.
그리고 고작 몇 개월이 지난 지금 테슬란 아카데미는 밀로스 아카데미가 되었고, 벌레들이 통솔하던 테슬란 왕국은 멸망했다. 쓰레기는 전부 죽였고 벌레도 전부 죽였다. 그리고 나라를 건국했다. 그게 그냥 나란가.
이종족들도 포함된 전무후무한 국가.
이미 일각에서는 밀로스 제국을 천년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무명의 개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명칭이다.
아베이루가 생각했듯, 이미 잭의 위상은 그 정도였다. 최소 천년은 유지되고 천년동안 회자 될 전설.
그가 지금 황제로 즉위했다.
그 다음 절차는 하나다. 신하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
충성을 맹세하고 그가 원하는 국가의 방향을 지키겠노라 맹세하는 것.
아베이루는 선봉에 섰다.
잭이 있는 별장 회의실 문을 열려던 그때, 멈칫했다.
왜냐면.
짜악-!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렸으니까.
그 소리가 얼마나 컸냐면 문 앞에 있던 아베이루의 귓가에는 물론이고 그 뒤를 따르던 모두의 귓가에 들릴 정도였다.
작게나마 들린다.
“아픕니다. 스승님.”
돌발 상황이었다면 들어가서 어떤 식으로든 호위를 섰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실 이 대륙에서 잭을 위협할만한 세력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지존이었으니까.
그런 잭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딱 하나다. 그의 스승.
과거의 영웅 발렌타인 밀로스.
현재까지 둘을 지켜봐온 아베이루의 사견을 넣자면, 둘은 절대 싸우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소한 다툼. 의견 충돌. 그런 걸로 다툴 수는 있다.
아베이루가 아는 잭은 그 누구에게도 강하지만 발렌타인 밀로스에게는 약하다.
눈치가 없지 않았기에, 잭이 발렌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시선인지 아베이루는 안다. 그건 스승이 아닌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연인을 바라보는 시선.
그렇기에 잭은 발렌타인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발렌타인도 마음이 있을 텐데 지금 뺨을 때렸다는 것은 그냥 아베이루나 그 외에 다른 이들 모두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