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23)
제 524화
chapter 1
침이 마르는 느낌이다. 혀로 입술을 핥았다.
공간이 짓눌린다. 압박이 잭에게 집중된다.
저벅저벅.
천마 영정.
그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그저 걷는 것만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천마의 영혼이 천마의 몸 전체를 자극했다. 잭이 검을 잡는다. 휘둘렀다.
천마의 손이 움직였다.
잭의 검과 천마의 손바닥이 부딪친다.
쩌어어어엉-!!
동수였다. 순식간에 퍼져 나간 충격파였고, 주변에 있던 이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왜냐면, 가까이에 있던 무인들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몸이 터졌으니까.
잭의 몸이 검게 물들었다. 천마의 몸도 비슷했다. 다른 것은 하나였다. 천마의 몸에서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는 거.
그리고 그 불꽃이 붉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는 거.
검은 연기와 검은 불꽃이 연속으로 부딪친다.
콰앙-!! 콰아앙-!! 굉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땅이 뒤집어지고 먼지가 피어오른다.
잭이 검을 휘둘렀다. 천월의 목을 따기 위해 휘둘렀던 그때의 그것처럼 검이 곡선을 그린다. 정확히는 이제는 공간 자체를 완전히 휘어버렸다. 하지만.
후우웅-!!
허공을 갈랐다. 그 자리에 천마는 없었다. 잭이 고개를 든다.
하늘에 떠 있는 천마가 오른손을 펼친 채 뒤로 당겼다.
그에 맞춰 잭의 머리 위에 거대한 형상이 생겨난다.
손바닥 형태였다.
천마신공 제3장.
천마대신장天魔大神掌.
천마의 손이 아래로 내려찍힌다. 그에 맞춰 검은 손바닥도 내려찍혔다.
잭이 검을 들어 올린다.
쿠우우웅-!!
잭의 주변으로 엄청난 크기의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잭의 몸도 밑으로 파고들었다.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린다.
공격하는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천마는 허벅지가 아니라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초인의 영역에서도 몇 발자국 더 앞서 있는 괴물이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도 상대의 빈틈을 찾는 것은 이들에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동하지 못했다.
대치 상황에서, 둘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천마는 생각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잭도 생각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완벽한 동수.
저울에 무언가를 올려놨을 때 단 한 점의 오차도 없는 동수. 같은 무게.
두 남자가 동시에 미간을 좁힌다.
이번에도 둘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아니지. ‘셋’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천마에게 예를 표하고 있던 천월이 나머지 한 명이었다.
그는 이 대치 상황에서 두 남자의 생각을 읽었다. 천마신교에서 ‘힘’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던 천월이었기에 읽을 수 있었던 거다.
천월은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뇌전공을 끌어 올렸다.
파지직, 몸이 노랗게 물든다.
즉시 달려들었다. 목표는 잭 밀로스다.
정확히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3초.
대치가 깨진다. 천월의 부채가 잭의 명치를 뚫었다. 잭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천월은 이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2초.
잭의 검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바꾼다. 목표는 천월의 목이었다.
서거걱, 잭의 검이 천월의 목을 3cm 파고들었을 때, 천마의 손바닥이 잭의 왼쪽 어깨를 짓이겼다. 콰직.
1초.
잭의 검이 힘을 잃는다. 잭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천마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반대쪽 손에 기운을 모았다. 팔 전체가 검게 불타오른다.
그 불꽃이 십자가를 이룬다.
천마신공 제6장.
천마광염무天魔狂炎舞.
거대한 불꽃이 잭을 집어삼키려던 그 순간, 잭의 ‘오른손’에 검은색 기운이 솟아올랐다. 혼기의 결정체, 장검 형태의 압축된 혼기. 잭은 전력을 다해 찔렀다.
잭을 집어삼키려던 불꽃이 오히려 집어삼켜졌다. 손바닥을 펼치고 있던 천마의 눈이 크게 떠진다.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이를 악물고 의념을 보냈다.
터지라고.
콰아아아아앙-!!
잭이 날아갔다. 이게 3초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천월은 털썩,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하아…….”
무심결에 목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축축했다. 이어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지금 오른쪽 목뼈 옆에 있는 근육이 전부 잘려 나갔다.
농담이 아니라 0.1초, 아니 0.01초만 늦었어도 목이 날아갔을 거다. 살면서 많은 대련을 했고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살아날 수가 없겠구나. 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거였다. 후회.
이가 악물린다.
스스로가 비참했다.
그런 천월의 옆에는 천마가 있었다. 천마의 왼손은 무언가에 꿰뚫린 듯 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천마는 천월보다 냉정했다.
그의 눈이 건물 쪽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잭 밀로스에게 꽂힌다.
“……괴물이군.”
그 말이 너무나도 적절했다. 지금 천월이 빈틈을 만들었다. 천마는 그걸 노렸다. 그런데 놈은 그 와중에도 천월의 목숨을 끊을 뻔했고 자신의 공격도 상쇄시킬 뻔했다.
“……황제라더니 개싸움에 익숙하구나.”
먼지 속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가 너 같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서.”
“…….”
천마는 눈을 감았다. 후우. 조금 더 진지해져야 할 것 같다. 손을 들어 올렸다. 주변에 있던 신교의 무인들이 반응한다.
“난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먼지 속에 있는 잭이 한 번 더 웃는다.
“그건 나랑 비슷하네. 나도 그런데.”
천마가 신호를 내렸다. 모두 저놈에게 달려들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간에 멈췄다.
번쩍-!
빛이 터져 나온다.
거의 순식간이었다. 천마는 자리에서 멈춰 섰고 잭도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천월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긴 머리와 거대한 덩치, 그 남자가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뿐일까, 그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검존 혁진강과 천외천의 무인들이었다.
세상에.
천월은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혁진강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잭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지금 한자리에 모였다.
이 동대륙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핵심 단체’ 두 곳과 서대륙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황제.
그들의 중심에 있던 한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지금 나 좀 살려 줄 수 있겠나?”
신의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의 일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빛이 허공을 가른다.
서걱.
신의의 목이 하늘로 솟구쳤다.
* * *
털썩, 신의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진다. 목이 데굴데굴 굴러온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쪽으로.
눈이 크게 떠져 있는 신의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검존이, 자기 동생을 죽인 검존이 매우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천마를 바라본다. 검존과 천마가 눈빛을 교환했다. 서로 만나 본 적이 있나?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꼬라지 보니까, 천마가 본 것처럼 검존도 보았나 보다.
무엇을 보았냐면, 내가 보았던 거.
전생에서 데스 나이트가 된 내가 천마신교와 천외천을 동시에 상대했던 그때의 그 순간. 그걸 말하는 거다.
일단 상처를 재생시켰다. 천마신검을 왼손으로 고쳐 쥐었다.
자, 지금 상황을 보자.
천외천이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는 너무 간단했다. 신의가 그렇게 한 거다.
내가 준 양말로 천외천의 모든 무인들과 함께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온 거다.
나한테 살려 달라고 한 걸 보니 무슨 문제가 생기긴 했나 본데. 음.
다시 신의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할까.
아쉽다. 정말로 아쉬웠다. 신의의 의술이면 우리 스승님의 수명을 충분히 늘려 줄 수 있었을 거다.
내가 그래서 신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거다.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인생 참 허무해, 그렇지?”
신의는 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 사실 시체가 말하는 게 이상한 거다. 말 못하는 게 정상인 거다. 가볍게 혀를 차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 신의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건 보험이다. 일이 전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혹은 일이 전부 풀렸는데도 막혔을 때. 그때 쓸 보험.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마와 검존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감각은 나를 향해 있었는데, 저건 경계였다. 두 남자가, 아니.
두 단체가 동시에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거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새삼스러울 거 있나. 그냥 난이도가 조금 더 올라갔을 뿐이다.
죽여야 할 놈이 더 늘어났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천외천의 진영에서 꽤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보인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면.
“이거 칭찬이라도 해 줘야 하나?”
“…….”
“베커만, 히야, 너도 생각보다 명이 기네.”
“……그러는 네놈도 명이 길군.”
새끼, 자존심을 아직도 안 버린 거 봐. 여전하네.
이어서 베커만의 옆에 있는 다른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이다, 꼬맹아.”
“……예. 오랜만입니다. 폐하.”
로만 스튜어트와 하인케스 베커만.
두 남자는 탐이 나는 인재였지만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바다에서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있을 줄은 몰랐네. 그리고 천외천에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고.
나에 대해 천외천이 빠삭하게 알고 있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나? 회귀나 그런 것도 쟤네가 알려 준 건가.
생각해 보면 쟤네 둘도 인생이 참 기구하다.
원래 이런 방향으로 살 녀석들은 아니었을 텐데.
그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과거의 일이니까. 이제는 현재의 일이 중요하다. 저 둘은 지금 내가 하려는 싸움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그럴 깜냥이 안 된다는 뜻이다.
무시하고 천천히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장포였는데, 솔직히 이젠 좀 거슬린다. 벗은 장포는 그대로 옆에 던져 놓았다.
천마처럼 상의를 탈의한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게 말할 거 있나.”
“…….”
“꼬라지 보니까 너네 둘, 같은 걸 본 모양인데 결국 날 죽이려는 거 아니냐?”
“…….”
“한번 죽여 봐.”
두 진영의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참.
“왜? 시간을 더 줘야 하나?”
그러다 천마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도망치려는 거 아니었나? 아까처럼 한번 도망가 보시게.”
그냥 도망이라고 하면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 어떻게 게릴라전이 도망이야. 그래도 그냥 넘어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시체가 될 새끼들인데 뭐 하러 정정해 줘.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라그나로크를 죽이려 한다. 저기 있는 놈들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지금의 이 힘으로는 놈을 확실하게 죽이지 못한다. 확률로 따지면 대충 1%? 아마 소수점으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내 잠재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과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계속 싸워야 한다. 이 무대에서 내가 살아난다면 나는…… 벽을 깨게 되겠지.
깨게 되지 않는다면 아마 죽게 될 거고.
죽게 되면 라그나로크를 막지 못하니 세상은 멸망할 거고 우리 스승님은 혼자가 될 거다. 아마 머지않아 돌아가시겠지.
그런 꼴, 나는 못 본다.
나는 죽지 않는다.
벽을 깰 거다. 목숨을 걸고 내 잠재력을, 나도 모르는 내 한계를 끝까지 몰아쳐 보려 한다.
양손으로 천마신검을 잡았다.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얼마면 될까. 20년? 아니다. 더.
30년.
30년으로 가자.
심장이 뛴다. 쿵쿵쿵쿵. 거세게 뛴다. 눈빛이 붉어진다. 머리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사방으로 내 기운이 줄기차게 뻗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