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71)
00269
=========================================================================
#사망의 골짜기 (15)
변경된 지침을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협상단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샘플의 진위 여부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추궁했다. 훗날, 혹은 당장 오늘이라도 협상과정이 공개될 수 있었으니까. 가장 강경한 시민들조차도 의문을 품기에 충분해야 한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언제 언성을 높였냐는 듯, 그린이 차분한 신색으로 제안했다.
[본국의 질병통제본부 인력이 장비를 가지고 이곳으로 오는 겁니다.]
양용빈 상장은 의뭉스럽게 굴었다.
[그들을 내 보호 하에 두겠다고? 그래도 괜찮겠소?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까놓고 말해 인질을 늘려서 쓰겠냐는 뜻이었다. 시민들의 반감이 심하지 않겠느냐고.
그린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턱을 들었다.
[교환하시죠.]
[교환?]
[예. 들어가는 숫자만큼 풀어주세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 아닌가요?]
[…….]
[이미 말씀드린 대로 샘플의 진위확인은 협상 성립을 위한 기본조건입니다. 그걸 장군님의 감독 아래 진행하자는 겁니다. 연구 자료가 밖으로 샐 일은 없겠죠. 연구진은 그저 샘플이 진짜인가 아닌가, 그것만 통보해주면 된답니다.]
[그걸 믿을 수 있겠소?]
상장이 조용히 어깃장을 놓는다.
[가령 우리가 연구진을 위협해서 거짓 결과를 통보하라고 할 수도 있잖소,]
[또 우기시는군요.]
생긋. 분명 지쳐있을 텐데, 감정의 찌꺼기가 있을 텐데, 그린이 만드는 미소는 얼룩 없는 매력이었다. 겨울은 그녀의 인선이 상장과 더불어 시민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장군님. 서로의 신뢰를 보장할 수단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냥 안 된다고만 하시면 역시 샘플이 가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가짜라서,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서, 그래서 아무리 전향적인 조건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게 아닌가요?]
[받아들인다고 칩시다.]
노회한 상장이 화제를 바꿔쳤다.
[대가는 내가 제시한대로 확정되는 거요?]
[말을 돌리지 마세요. 샘플 확인이 협상의 기본조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진짜 협상은 진위 판별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뜻이죠.]
[마이어 기지 말이오. 내가 달라고 했던.]
[그러니까 조건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
[그곳을 꼭 받아야겠는데.]
말이 끊긴 그린이 적당한 선에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장은 아랑곳 않는다.
[말해보시오. 가능성이 있는 거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글쎄. 내가 보기엔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요마는.]
장군의 태도는 희롱에 가까웠다.
[애초에 생각도 없으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느니 어쩌니 하는 것도 큰 실례가 아니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걸어놓고 회담을 의도적으로 파탄 내는 쪽도 큰 실례겠지요.]
그린이 눈을 찡그리고 살짝 쥔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겨울이 보기엔 태도와 감정과 자세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해, 화면발을 잘 받았다. 함께 파견된 협상단은 부착한 카메라에 두 사람의 대담이 잘 보이도록 자리를 잡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 이제야 솔직히 말씀하시는군.]
말하며 차분하게 웃는 장군. 그린이 대꾸한다.
[그럼 장군께서도 이제 솔직해지시죠. 그곳을 양도받길 원하는 이유는 억지력 같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나라, 미국을 모욕하고 국민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거요? 종전협상이란 본디 실리 이상으로 교전당사국의 옳고 그름을 정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과정이니 말이오.]
[입장을 바꿔볼까요? 지금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건재하고, 샘플을 가진 게 제 쪽이고, 우리가 장군께 종전협상을 제안한다고 가정하죠. 미군 주둔지로 자금성을 내놓으라고 했으면 과연 받아들이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있겠냔 말입니다.]
[그야 상황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소? 아무리 유서 깊은 고궁이라도 한낱 유적에 불과할진대,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면 내놓을 수도 있겠지.]
또다시 억지였다. 그린은 가볍게 무시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마이어 기지 바로 옆이 알링턴 국립묘지입니다. 호국영령들의 안식처죠. 그곳에 미국의 역사가 묻혀있다고 해도 좋겠죠.]
[경의를 표하오.]
[그뿐만이 아닙니다. 도로 하나를 건너서 펜타곤이고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백악관입니다. 아, 사소하지만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링컨 기념관,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도 있군요.]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사소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링컨 기념관은 미국 정신의 신전(Temple)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의 조각상과 기념관 앞의 오벨리스크는 무수한 매체에서 국가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장군의 요구대로라면 그 모든 장소가 중국군 포병의 사거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그린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미국이 만만해보이십니까?]
어차피 협상을 포기해도 좋다는 지침을 받은 마당이었다.
[겨우 이런 수작으로 도발을 걸면 시민들이 이성을 잃을 것 같던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모른다고 하면서도 장군은 굳이 덧붙인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날 속이려 들진 마시오. 당신네들은 지금 난리를 겪고 있잖소.]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시는지.]
양용빈 일당이 장악한 칼파인 5로 이어지는 통신은, 협상을 위해 열어둔 채널을 빼면 모조리 차단된 상태. 그러므로 상장은 목표를 달성했으되 그 결과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미국인들의 야만성을 믿기 때문이오.]
겨울은 당혹감을 느꼈다.
‘실수인가? 지금 저런 말을 해선 안 될 텐데?’
도발은 도발이되 미국 사회에 혼란을 확산시키는 데엔 오히려 역효과인 도발이었다.
그린이 한 순간 흔들린 것도 겨울과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즉 미국의 시민들이 멍청하고 난폭할 거란 말씀이군요?]
미국의 시민들, 멍청함, 난폭함에 각각 강세를 주어 분명하게 하는 말이었음에도, 상장은 그녀의 의도를 순순히 긍정해주었다.
[맞소.]
그러나 악의는 여전했다.
[왜 아니겠소? 그것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들이 당신들의 조국을 사유화하고 또 돈의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국부의 대부분을 움켜쥔 자본가와 기업가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마저 연례행사로 찾아가 머리를 숙여야 하는 유태인 부호들……. 평범한 사람들이 종말의 공포에 떨 때, 돈과 권력으로 견고한 벽을 세우고 사설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도박과 연회와 경매로 세기말을 소비하는 그 인간들 말이오. 설마 없다고는 못하겠지.]
[잠깐…….]
[바로 그들이 교육 또한 천박한 상업주의로 물들였지. 고급교육을 독점하여 계급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피지배계급을 분열시키고 부르주아적 계급과 특권의 세습을 고착화하려는 시도로서. 그러니 미국인들이 멍청할 수밖에. 그러니 당신네들이 야만스러울 수밖에.]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나, 그리고 겨울의 생전까지도 그러했으나,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란 생산력을 늘려 공산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과정일 뿐.
그러나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양용빈 상장에게 파벌이 없었다던 그린의 말이 떠오른다.
겨울은 품속을 더듬었다. 둥글고 단단한 감촉. 보관하거나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아직까지 품고 다니는 아름다운 회중시계의 촉감이었다. 부서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상한 곳이 없었다. 태엽을 감지 않았기에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멈춰있는 채였다.
‘시에루 중장이 들었다면 비웃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비웃든 조국과 상장을 비웃든, 어느 쪽이더라도 비웃기는 했을 것이다. 비록 부패한 사람이지만, 선에서 악을 빼도 꽤나 남는 현실주의자였으니.
그런 사람이나마 다수였다면 이 세상도, 생전의 저 세상도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육군상장이 살아있으니 해군중장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이제 와서 상황을 바꿀 힘은 없겠지만. 미움은 수명이 길다.
‘영상을 편집하면……소용없나.’
미국 시민들을 모욕하는 부분만 따로 따서 공개하는 방법은 어떨까 싶은 겨울이었다. 그러나 앞선 동영상 유출 사태를 볼 때, 그리고 겨울에 대한 헌트의 우려를 감안할 때 좋은 방법이라고 하기 어렵다. 전체가 공개된 후엔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다.
상장이 선언했다.
[나는 당신들이 저질러온 우행을 믿는 거요.]
미국의 대통령들이 매년 유태인들의 집회에서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도 사실이고, 미국 공교육이 파탄 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겨울은 생각한다.
‘진실에 가려진 거짓이 가장 위험하지.’
협상단장 그린의 반응이 느린 것은 신중해야할 시점이어서였다. 상장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미국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었다. 역병 이전엔 어림도 없었을 수작인데, 극단적인 시대엔 극단인 사상이 번지기 쉽다.
그녀가 묻는다. 단지 시간을 벌 요량으로.
[오히려 중국에 더 해당되는 비난이 아니었나 싶군요.]
하지만 상장은 이마저도 긍정했다.
[맞는 말이오.]
그리고 절제된 웃음을 터트렸다.
[인정하리다. 공화국은 야만인들의 나라였지.]
[…….]
언뜻 스쳐간 상장의 경멸감에, 그린은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설득한다.
[장군님. 피차 장난은 그만두죠.]
[장난?]
[당신께서 알고 계시는 중국은 이제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고집을 부리신다면 앞으로 새로운 중국도 없을 겁니다.]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소만, 중국은 있소. 국가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아.]
[국가는 개인의 집합이고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니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오.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 그 이상이지. 국가가 있어서 국민이 있는 거요.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짐승에 지나지 않으니까. 사회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니까. 그리고 사회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오. 만들어지는 과정이 의식적으로 통제되었다고 볼 순 없소. 지금 나누기엔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요만.]
[좋아요. 그렇다면 인민해방군 장교로서의 의무는 어떻습니까?]
상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반응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그 의무로 인해 내가 여기에 앉아있지 않소.]
[당신께서 지금 이러고 계신 게 비상시의 교전수칙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공격으로 인해 국가가 무너지고 정상적인 명령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지만 장군, 교전수칙 이전에, 또한 국적을 떠나서, 군인이라면 누구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할 의무 말입니다.]
여기까지 듣고서, 장군이 그린을 무시하고 협상단 한 명을 지목했다.
[당신, 관등성명을 알려주시겠소?]
갑작스러운 지목과 통역병의 해석을 듣고 당황한 남자가 되묻는다.
[저는 대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왜 묻습니까?]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당신뿐이라서 물었소. 군인의 의무는 군인과 말해야 하니까.]
[…….]
겨울은 협상단의 구성을 알지 못했으나, 눈치로 보아 상장의 말이 사실인 듯 했다.
[알려주지 않을 거요?]
[브로디 에이버리, 공군 중령입니다.]
[공군 중령이라. 괜찮군.]
양용빈 상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중령, 이런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지하 핵사일로 통제관이오. 그리고 당신의 조국은 핵공격을 받아 이미 증발해버렸지. 어떤 상급부서도 통신에 응하지 않는단 말이오. 헌데 당신에겐 정부가 사라지기 전에 받은 명령이 남아 있소. 전면핵전쟁이 벌어졌을 때 당신의 기지가 미사일을 발사해야할 표적들의 좌표 목록이지.]
통역을 기다린 상장이 다시 말했다.
[만약 당신이 명령대로 발사 버튼을 누른다면 인류의 멸망이 확정되는 거요. 그럼 이때 당신은 버튼을 눌러야 하오, 말아야 하오? 군인으로서 명예와 신념을 걸고 답하시오.]
사실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군인들에겐 부정하지 못할 직업윤리이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에이버리 중령은, 단장인 릴리아나 그린을 흘낏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눌러야 합니다.]
[어째서 그렇소?]
[전쟁범죄가 아닌 경우에 군인은 명령을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면핵전쟁 상황에서의 민간인 살상은 국가전략상 전쟁범죄의 예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장이 그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중령의 말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에이버리 중령이 강조했다.
[하지만, 저는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겁니다.]
상장은 온화하게 답한다.
[이해하오. 그러나 당신은 버튼을 누르는 동료를 비난할 수 없을 거요.]
그린이 끼어들었다.
[그만 하시죠. 궤변은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군인의 의무를 말씀하시기에 군인에게 물었을 뿐. 이게 어째서 궤변이오?]
[상황이 다르니까요. 중국은 어느 국가의 공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기실 장군님이 보유한 샘플이 진짜라면 모겔론스의 개발 국가는 중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노골적인 억지를 부리시는 것도 결국 샘플이 가짜라는 증거에 지나지 않아요.]
그녀가 숨을 돌리고 말한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십시오. 포로를 해방하고 샘플을 넘기세요. 그럼 아직은 미래를 꿈꿀 기회가 남아있을 겁니다. 그 샘플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신의 부하들에게는 말입니다. 장군께서도 목숨은 부지하실 수 있겠지요. 저는 지금 사법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상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통역병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리고 통역병이 다시 그린에게 다가와 새지 않는 소리를 속삭였다. 그린의 낯빛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시간이 늦었군. 좋은 말씀 잘 들었소. 오늘은 여기서 끝냅시다.]
양용빈 상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의사표현이었다. 앉은 채로 상장을 노려보던 그린은 상장이 나가려고 할 즈음에야 굼뜨게 일어났다. 그리고 상장의 등을 향해 공허한 인사를 전했다.
[어쩔 수 없군요. 내일 다시 뵙죠.]
그러나 소탕전의 밤을 맞이할 상장에게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방금 귓속말은 뭐라고 한 거야? 응? 중요한 내용인가?”
소란스러운 상황실의 질문이 전파를 타고 협상단의 귓속 수신기로 들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돌아왔다.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란다니……놀리는 건가?”
누군가의 불만. 그러나 겨울은 그것 또한 상장의 진심일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중국의 야만성을 말할 때 스쳐간 경멸감을 감안하면. 무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고, 하나의 마음엔 얼마든지 많은 모순이 공존할 수 있었다.
겨울이 헌트에게 말했다.
“여기선 제가 할 일이 정말로 없네요.”
비록 자리를 내주긴 했으나 대통령까지 있는 테이블에서의 본격적인 발언권이 일개 소령에게까지 내려오진 않았다. 그 외에 별이 즐비한 마당이었다. 이곳 현장 상황본부는 워싱턴 D.C를 위한 중계소, 혹은 분소에 가까운 느낌이다.
헌트가 피식 웃었다.
“왜, 한 소령도 타격대와 함께 들어가고 싶습니까?”
“교전능력으로만 따지면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자신감이 지나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헌트는 진지하게 끄덕여주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소령,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당신이 점점 중요해지는 과정이니까. 장담하지. 소령의 수많은 선배들도 같은 느낌이었을 거예요.”
“제 선배들?”
“용기와 헌신을 인정받은 이 나라의 애국자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지금까지 헛짓거리 했군, 하고 중얼거리며. 그러더니 겨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그거 압니까? 이 와중에도 소령이 치른 어젯밤의 전투기록은 업로드 후 1시간 만에 조회수 천만을 돌파했어요. 즉,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도 화를 내다 말고 동영상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펜타곤 공식 채널의 접속 현황이 지역별로 아주 균일하다더군요. 그 재생시간 동안 경찰과 군대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업로드 시간을 정한 담당자도 기뻐하고 있겠지요.”
“…….”
“저쪽 아프리카에서 축구 경기 때문에 내전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습니까? 딱 그런 경우입니다. 소령, 당신은 스스로가 슈퍼볼이나 월드 시리즈 이상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됩니다. 당신 덕분에 팔리는 전시국채의 규모가 대체 얼마라고 생각합니까? 하하!”
스스로 말해놓고 스스로 웃는 헌트에게, 겨울이 물었다.
“다른 지역에서의 작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그걸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아, 지금 인트라넷이 엉망이지 참.”
아직도 접속되는 곳이 온라인 PX뿐이고, 겨울 몫의 노트북도 제한적으로 연결되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선에선 멧돼지 사냥이라고 부르더군요.”
“멧돼지 사냥?”
“변종들이 개체 수 보전을 위해 아예 남미로 빠질 작정인가 봅니다. 이 팬 아메리카 루트에서 일방적인 추격전이 벌어지는 중이예요.”
“그건……다행이네요.”
“예. 다행이지요.”
헌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아직 신께서 우리 인류를 버리진 않으신 모양입니다.”
“…….”
“하지만 당신이 죽는다면, 그땐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스스로를 돕길 포기할 테니. 신께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겨울은 군종장교와 나누었던 대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충분히 도왔다고 했던가.
정말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 작품 후기 ==========
#전자책 9권, 종이책 3권
지난 7일에 전자책 9권이 나왔더군요. 저도 모르고 있다가 어제 겨우 알았습니다.
종이책 3권 같은 경우는, 사실 지금쯤 나왔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안 나온 이유는 출판사측에서 종이책 부록으로 실을 짧은 번외편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원고를 넘기는 대로 인쇄에 착수할 듯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걸릴 것 같네요.
#Q&A
Q. 카르피스님 : @폴로늄이라 하면..푸짜르께서 아주 친한분에게만 하사하신다는 귀한 홍차의 원료로군요. 역시 자까님은 위대하세요. 그리고 레이디 솔리테어의 이름을 아시는분이 저 외에도 있을줄은… 쌀브덕후는 저뿐이 아니었군뇨. 스칼로첸은 위대하시다..
A. 대체 어디가 위대합니까. 그건 그냥 괘씸한 커플링일 뿐입니다.
Q. 개념을죽쑤숴님 : @작가님 글은 제가 보기엔 각 화마다 분량이 많은데 이러면 조회수적으로 불리하지 않나요? 그리고 하필 조아라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A. 노블레스 1회 연재량 기준이 13.4kb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렇게 많은 분량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조아라에서 시작한 이유라…그때는 조아라 운영 마인드가 문피아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깨끗하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상대적으로.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마귀와 사탄을 비교하는 것 같네요.
Q. 나리형님님 : (전략) 양용빈이 노리는 거는 어차피 중국도 망한거 너네 미국도 망해봐라 라는 심리인가요? 미리 인터넷(??)으로 점령사실과 원형바이러스가 있다고 퍼트리고 터무니 없는 조건을 걸어 협상을 파토네려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거 같은데…
A. 목적 자체는 그렇습니다. 심리는 제가 설명해드리기 좀 곤란하네요. 해석은 독자의 영역입니다.
Q. Qvex님 : @그러고 보니까 언급이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작가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개인적인 호기심이긴 합니다만…
A. 40K+31…은 농담이고, 만으로 31세입니다.
Q. AntiChrist님 : @여러분, 이 작가는 스칼로첸을 보던 독자가 좀비물을 핥게 하고 사막에서 헤메던 자가 사흘만에 마시는 물 한모금의 로맨스를 본 독자들에게 또다시 언젠가의 해피엔딩만을 약속하며 동심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옛것입니까?
A. 이런 댓글에 @를 달면 제가 무슨 답변을 드려야 하나요? 전 원빈을 닮지 않아서 끔찍하지도, 무시무시하지도 않습니다.
Q. Deathandeath님 : @작가님은 알고보면 왼손으로 납골당, 오른손으로 씰(쌀)브레이커를 집필하시면서 도나도나송을 부르실것 같습니다.
A. 퉁구스카의 동심은 생기자마자 곧 소모되고 말아요. 어떻게든 동심이 충만하게 해주세요. 도나도나도나, 도나도나도나…
Q. 청량한 비님 : @(전략) 혹시 납골당에 안치된 겨울이와 다른 사람들은 대체제를 이용하여 육체를 찾는 것이 가능한가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대체제 또한 ‘자아’를 가지고 있나요? 아니면 그저 살아있는 단백질 인형에 불과한 가요? 아니면 의식은 가지고 있되, 순식간에 이뤄진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자아가 거세된 걸까요? (중략) + 혹시 연재하시면서 들으시는 음악 있으시면 알려주시겠어요? 저도 작가님과 조그만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요 ㅎㅎ
A. 전신이식용 복제체는 만들어진 후 한 번도 깨우지 않은 상태에서, 즉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에서 성체까지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그러니 자아가 되기 이전의 의식은 있다고 해야겠네요. 작중에서도 윤리 문제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듣는 음악은 없습니다. 저는 집중력이 열등한 옛것이라서 음악을 틀어놓으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거든요.
그냥 듣는 음악은 원체 많아서 여기에 다 적기는…하나만 꼽으라면 Playing for change로 검색을 해보세요. 재생목록에 괜찮은 게 꽤 있을 겁니다.
다른 음악들은 앞으로 하나씩 추천해드릴게요.
Q. qgegegqe님 : @분위기가 최종보스 레이드같군요 아직 완결까지 한참남은것 같기도한데 샘플이 진짜고 회수성공하면 완결각이군요
A. 샘플은 진짜였다! 납골당의 어린 왕자 끝!
이 소설에 최종 보스 같은 건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별빛 아이를 보스라고 할 수 있을지도…물론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Q. RUINTING님 : @분위기가 끝도없이 내려가네요
A. 내려가는 건 이번 연재분까지입니다. 아마도. 작가를 믿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