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06
원래 이런 건물에 괴담 한 두 개 쯤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괜히 학교나, 쇼핑몰, 영화관에서 머리 풀어헤친 귀신을 봤단 소문이 그렇게 많겠나.
‘누가 이런 소문을 낸 거야?’
도미닉이 혀를 쯧쯧 찼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그만큼 복합 상가가 사람들의 대화에서 제법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다.
“조치를 취할 건가?”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요.”
“그래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 기사님. 걱정이 느셨네. 걱정마세요. 이런 일로 손님이 떨어질 수도 없고, 피해를 입을 일은 더더욱 없으니까요.”
“흐음.”
“어! 우리 차례다! 들어갑시다. 어휴, 배고파.”
처음 소문에 대해 인지했을 때만 하더라도 도미닉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후회를 하고 말았다.
***
“이게 무슨 소리야? 상점들이 복합 상가에서 나가겠다고 했다고?”
“그게 아직 두 곳이기는 한데…”
도미닉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오픈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빈 점포가 생기면 주변 상점들도 흔들릴 거야.’
땅 값이 떨어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청담동 노른자위 땅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빈 점포라니!
“이유가 뭐래? 장사는 잘 될 거 아냐.”
“그게… 무서워서 못 살겠답니다.”
“뭐?”
“저주를 받았다고…”
“지금 이게 뭔 소리야? 자세히!”
“복합상가의 유리창이 이유도 없이 깨져 있거나 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매일 밤마다 반복되니 입점한 상인들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경비대는 세워봤고?”
“저주받은 존재를 마주하면 돌이 된다는 괴소문이 퍼져서요.”
도미닉은 행정관의 말에 ‘이게 뭔 개소리야?’ 하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 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래서 지금 야간에 경비대 하나 안보내놓고 저주니 뭐니 한단 말이야?”
“실은 몇몇 고급품을 파는 상점들이 침입자가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열을 감지하는 마도구를 구비해놓았다고 합니다.”
짜증이 난 도미닉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복합상가에 파견나와있는 행정관이 얼른 대답했다.
‘열 감지 카메라를 달았단 말이야?’
에버그린에 자리잡은 남부 마탑이 이번에도 희한한 물건을 만들어내서 팔아먹은 모양이었다.
요즘 듣자하니 온갖 제작품들을 펑펑 만들어내서 돈을 갈퀴 째 긁어 모은다더니 제법 아이디어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고.
“그래, 열 감지 카메라, 아니 열 감지 도구를 달았는데? 그럼 이상한 게 찍혔을 거 아냐?”
“그게…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응?”
“피해를 두 번이나 입은 의상실이 있습니다. 유리창도, 의상실 내의 거울도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서 상점이 엉망이 되었다는데 놀랍게도 열 감지 도구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답니다. 혼비백산한 의상실 직원들이 이 이야기를 사방에 퍼뜨리면서 겉잡을 수 없게 되어…”
도미닉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바뀌었다.
단순한 장난은 아니었단 걸 느낀 것이다.
“어떤 장난을 친다고 했지?”
“유리창이 깨지거나 소름끼치는 높고 긁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답니다. 번쩍대는 섬광을 보았다는 자도 있고, 여인이 울다가 웃다가 하는 소리를 들은 이들도 있어요.”
“소문이야, 아니면 직접 확인 한 거야?”
“보거나 들은 자들에게 직접 추궁을 했는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다시 순찰을 했겠지?”
“물론입니다. 경비원은 물론이고 마을의 자경대와 병사들까지 동원해서 밤마다 감시를 했습니다만…”
“했습니다만?”
“그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야, 아니면 나타났는데도 보이질 않았다는 거야?”
관리가 다시 한 번 땀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행히 유리는 깨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섬광이 번쩍대기도 하고 갑자기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기도 하고… 이상한 일들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걸 본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찾진 못했고?”
“예. 죄송합니다, 시장님.”
이야기를 들은 도미닉이 커피를 한 입에 털어넣고 일어섰다.
“시장님?”
“일단 마탑으로 가지.”
증거부터 모아보자고!
***
휘익-.
도미닉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직 오전인데 마탑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 마탑은 이렇게 도떼기 시장 같진 않던데. 특이하단 말이야.’
수도에서 대로를 지나며 봤던 수도의 마탑 주변은 고요하단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마탑과 거래를 하는 귀족과 상단도 많았지만 마탑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대리를 맡은 상회에서 일을 처리하곤 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마탑을 찾는 손님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나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했어.’
마법사는 세상 일에 관심이 없고, 속물적인 모든 것에 초연하며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같은 수도의 마탑.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강력하고 폐쇄적인 마법사의 이미지를 만든 것도 모두 수도의 마탑의 권위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이고! 시장님! 시장님!”
“…그러다 넘어져요.”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이렇게 누추한 곳에 어떻게,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날이 춥습니다. 우리 시장님, 감기 걸리면 우리 마탑이 눈물 바다가 될 거예요! 저, 그런데 미리 연락도 없이 여긴 어떻게…?”
근데 얘들은 왜 이러냐고.
들숨에 아부 하기, 날숨에 눈치 보기를 하는 마법사라니.
‘터가 문제인가?’
지금도 자신의 눈치를 보기 바쁜 마법사를 보며 합리적인 의심이 자꾸 솟아오르는 도미닉이었다.
‘그래도 장하네.’
처음 에버그린에 터를 잡았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건물이 없어서 공사장 앞에 천막을 쳐놓고 물건을 팔던 이들이었는데 번듯한 마탑도 생기고 허름하던 로브 대신 제대로 옷도 갖춰 입은 게 제법 마법사 태가 났다.
‘그래. 역시 마법사도 꾸며야 돼. 머리에 기름칠도 좀 하고 마석 박힌 스태프도 들고 있으니까 이제 어디 가서도 무시 안 당하겠네. 크으. 패션을 좀 아는 구만? 저 벨트는 제인 의상실의 신상인 것 같은데 말이야. 나오자마자 품절이라고 했는데. ..어? 구두는 페이챈트 영감 네 것 아닌가…?’
안내를 받으며 마탑의 가장 상층부로 이동하던 도미닉이 마법사의 겉모습을 보고 점점 헛웃음이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거지꼴에서 좀 나은 정도 수준이었는데 명품을 칭칭 감고 있다니.
“돈 많이 벌었나봐요?”
“예? 아휴, 아닙니다! 모두 시장님의 은혜 덕분에 겨우 밥 굶을 걱정 안하고 살고 있지요.”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능력 있으면 돈 버는 게 당연한 거지. 안 그래요?”
도미닉의 말에 그제야 편하게 웃는 마법사.
“이 쪽으로 오시지요.”
그리 크지 않은 연구실 안에는 여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시장님.”
“편하게 앉으세요. 오늘은 뭘 좀 물어보려고 왔거든요.”
최근 남부 마탑의 탑주는 바뀐 상태였다.
처음 에버그린에 찾아와 도와달라고 간청하던 세 사람의 마법사 중 가장 연장자였던 레오발트가 탑주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마탑을 위기에서 구한 공을 인정받았다나?
탑주까지 철저히 에버그린의 옹호자이자 신봉자였으니 어쩌면 남부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 다른 일반인들과 쉽게 섞여서 생활하고, 시청의 요청이 있을 때도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는 것 역시 모두 예고된 수순이라 할 수 있겠다.
“복합 상가에서 요즘 돌고 있는 소문, 들어보셨지요?”
“예. 시장님.”
“그 열 감지 도구, 불량 아닌 건 확실합니까?”
가장 먼저 의심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도미닉은 하나씩 하나씩 아닌 것들을 소거해 나갈 작정이었다.
“저희도 혹시나 해서 바로 확인을 해 봤지만 정상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짝짝-.
탑주가 손뼉을 두 번 치자 조수가 얼른 작은 마도구를 가지고 왔다.
“이게 저희가 판매하고 있는 열 감지 도구입니다.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대략 반경 5미터 안에 사람이나 짐승이 침입하면 이를 감지한 뒤 붉게 변해 큰 소리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마친 탑주가 마도구 아래 쪽의 마법진을 활성화 하고 조수 쪽을 비추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표면에 붉은 상형문자 같은 것들이 마구 떠오르더니,
삐이이이-!
달칵.
“제법 큰 소리죠?”
“윽! 제법 큰 소리 정도가 아니잖아요, 이건. 귀 먹을 뻔 했네.”
“소리가 이렇게 크니 만약 침입자가 있었다면 경고음을 경비대가 듣지 못했을 리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랬겠네요. 손님이 없는 한밤중에 이 정도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으니.”
“무엇보다 저희가 확인했을 때는 소리를 내는 마법진이 활성화 된 흔적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는 건…?”
“네. 애초에 침입자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창문은 물론 의상실 내의 거울까지 모조리 깨어져 있다고 했잖아요? 밖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어온 흔적같은 건 없다고 들었는데.”
“저희도 그것이 의문입니다.”
“혹시 마나를 사용한다면 감지 시스템에 무엇이 남습니까?”
“아닙니다. 그 정도의 고성능 감시 도구는 아니라서요.”
“그럼…”
“저희도 그 쪽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마나를 사용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면 모두 설명이 됩니다.”
“내일 제가 직접 범인을 잡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마탑의 인원들을 모두 모아 주십시오. 나도 마탑을 의심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네, 시장님.”
“이번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셔야 하는 것도 잘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도미닉의 말에 탑주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 정말로 마나를 사용해 장난질을 친 마법사의 소행이라면, 그리고 그 마법사가 하필 남부 마탑의 소속이라면 탑주로서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마탑의 전체 회의 안건이 있다며 회의를 소집하면 구성원들을 모으는 건 어렵지 않다.
‘혹시라도 나타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의심을 살 거다. 그렇다고 이번 일에 대해 말을 흘린다면…?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로!’
시장은 허허실실 웃으며 돌아다니기 일쑤라 그리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탑주는 도미닉에 대한 평가를 매우 높게 하는 이였다.
‘작은 어촌을 이렇게 키운 분이시다. 무엇보다 오갈데 없는 우리를 받아준 유일하신 분! 실망시켰다간 가차없이 내쫓길 거야.’
탑주는 혹시라도 이번 괴소문의 범인이 자신들 쪽에서 나온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마나 회로를 망가 뜨리겠다고 생각했다.
“저… 혹시 지원이 필요하신가요?”
“필요하다면 얘기하겠습니다.”
사람들을 겁을 주고 놀래키는 놈이기는 하지만 가진 힘이 엄청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 도미닉.
‘꼭 어설픈 놈들이 힘이 생기면 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법이거든.’
하여튼 잡히면 가만 안 둬.
감히 내 빌딩에서 귀신 장난을 쳐?
***
다음 날 밤.
불 꺼진 복합상가에 은밀히 숨어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쉿! 원래 이런 건 딱 생포해서 이 놈이 범인입니다, 해야 하는 거라고요.”
“쯧-!”
자다가 영문도 모른 채 도미닉에게 끌려나온 이안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귀신 좀 하나 잡아주세요.] 라니.오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듣곤 이해가 조금 되긴 했어도 굳이 이런 일에 자신을 불러야 했나 싶은 마음이 계속 드는 것이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것 같다잖아요. 제 주변에 마나 제일 잘 쓰는 사람이 기사님인데.”
“마법사들도 있고 페롯양이나 엘프들도 있지 않나.”
“에이, 거긴 괜히 한밤중에 불렀다가 아무 것도 못 찾으면 미안하잖아요.”
“…하아.”
‘그럼, 나에겐 미안하지 않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관두기로 한 이안이었다.
‘이 자가 이리 뻔뻔한 걸 몰랐던 것도 아니니.’
그냥 귀신이든 얼 빠진 마법사든 얼른 잡아주고 다시 돌아가 다시 잠을 잘 생각이었다.
그 때, 또각, 또각. 발소리가 들렸다.
‘쉿!’
얼른 도미닉에게 주의를 주는 이안.
어둠 속에서 얼마나 더 숨죽이고 있었을까?
또각.
또각.
또각.
구두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도미닉은 가슴이 터지려고 했다.
‘공포영화를 찍으려고 온 건 아니었다고!’
그 때, 소름돋는 구두소리가 탁, 멈추는가 싶더니 가느다란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여기서 뭐하세요?”
“우와아아아악!”
도미닉의 비명이 텅 빈 상가를 꽉 채우며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