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
◈ 18화. 중경 제패
전쟁은 의외로 손쉽게 마무리됐다.
서북로의 수장들은 계획대로 적의 공격과 동시에 장원 외벽에 불을 놓았다.
목표는 승리가 아닌 생존.
적의 진입을 늦추고 엄폐물을 활용해 끈질기게 버티는 사이 마도림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길 다시 반 시진.
소문주 종화기의 시신을 들고 온 초무강에 이어 지월인이 문주 종비웅의 시신까지 들고 도착했다.
수장과 후계자의 죽음이 확인되자 대검문도들은 놀랄 정도로 순순히 검을 버렸다.
중경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 막을 내렸다.
***
전쟁의 뒤처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졌다.
사상자를 수습한 서북로의 수장들이 속속 총단에 도착하는 가운데 포로들은 모두 마도림으로 압송했다.
역사가 길지 않은 대검문이다.
포로의 상당수는 몰락한 방파의 무인이거나 낭인 출신이었다.
‘이런 자들을 잘도 긁어모았군.’
그들을 살피던 진무립에게 지월인이 찾아왔다.
“소공자를 뵙습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까지 예를 갖출 필요는 없거늘 지월인은 매우 깍듯하게 포권을 취했다.
“림주께서 찾으십니다.”
“믿으시더냐?”
종비웅의 죽음.
지월인의 보고는 위기에 빠진 자신을 지나가던 신비 고수가 구해줬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무림에선 신비 고수로 통하는 진무립이었으니 절반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가지.”
“예.”
청무전에 도착하자 초무강과 두 명의 원주, 그리고 서북로의 수장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진무립을 밝은 얼굴로 맞았다.
“소공자.”
“어서 오시오.”
수장들과 눈인사를 한 진무립은 초무강에게 예를 갖췄다.
“림주님을 뵙습니다.”
진무립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던 초무강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 자리에 앉거라.”
“예.”
진무립을 끝으로 준비된 원형 탁자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먼저 입을 열려던 초무강은 잠시 머뭇거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추락하는 마도림.
림주 자리를 물려받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버텼으나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오랜 굴욕을 감내해온 마도림이었기에 이번 승리는 그만큼 의미가 컸다.
초무강의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가산과 상호군은 말 없는 미소로 그를 응시했다.
진무립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시작하시지요.”
나직이 숨을 내쉰 초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을 모셔놓고 내 잠시 추태를 부렸소. 미안하외다.”
서북로 수장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초무강이 물었다.
“우리의 지원이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마음이 쓰이는구려. 서북로의 피해는 어떻소?”
석가장주 석금종이 말했다.
“사망자가 서른여섯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이는 백오십 정도 됩니다. 부하들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나 대검문과 싸워 이 정도 피해에 그친 것은 천운입니다.”
불까지 지르며 극단적인 수비를 택한 성과였다.
다른 방파의 피해도 비슷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초무강은 수장들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서북로가 없었더라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요. 늦게나마 예를 표하오.”
잠시 멀뚱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장들은 뒤늦게 일어나 예를 갖췄다.
중경의 패권을 되찾은 마도림이다.
속된 말로 이제 눈치 볼 것이 없는 초무강이기에 대검문주처럼 자신들을 대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초무강의 정중한 인사에 그들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순망치한이라 했소. 대검문은 서북로를 잃었기에 오늘과 같은 일을 막지 못한 것이오. 우리 마도림은 앞으로도 그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니 잘 지내봅시다.”
석금종이 대표 격으로 답했다.
“림주께서 저희들을 예로 대하시니 서북로는 오늘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초무강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앞으로는 어려운 일이 있거든 언제든 이곳을 찾아주시오. 마도림의 문은 그대들에게 항시 열려 있을 것이오.”
잠시 따스한 덕담이 오간 뒤, 본격적인 수습에 들어갈 시간이 찾아왔다.
“내림원주. 대검문에서 확보한 재화는 어느 정도요?”
상호군이 일어났다.
“금액 산정에 시일이 걸리는 물품을 제외하면 은자 삼백만입니다.”
초무강은 체통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수장들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마도림의 일 년 예산이 은자 백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정신을 차린 초무강은 수장들에게 말했다.
“모두가 함께 이뤄낸 승리요. 은자 백만을 서북로와 나눌 것이니 피해를 수습하는 데 보태도록 하시오.”
다섯 방파가 균일하게 나눈다 해도 이십만이다.
일 년 예산을 확보한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림주.”
재화의 처리가 끝나자 진무립이 말했다.
“대검문과의 전쟁은 일단락됐으나 외부에서 복귀하는 인원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초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들은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시일을 계산하면 하루나 이틀 뒤에 도착할 터, 그 전에 방도를 구해야겠구나.”
외림원주 우가산이 말했다.
“그 일은 우리 외림원에서 나서보겠습니다. 서북로의 적이 문주 일가의 사망으로 항복한 것을 보면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중경의 일이 수습 궤도에 오르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역사가 짧은 대검문, 자비 없는 대검문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싶은 무인은 없었다.
초무강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상당수는 마도림에 남길 원했다.
떠나봐야 갈 곳이 없을뿐더러 낭인으로 떠도느니 봉록을 받고 남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서로에게 칼을 겨눈 아픔이 남아있었으나 이것 또한 무림.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아직은 어수선한 마도림의 총단.
태상림주의 처소 태경원의 뒤엔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사당에 다녀온 태상림주 초평천은 언덕 밑으로 보이는 분주한 마도림을 보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내 살아있는 동안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자신의 대에 혈사를 겪고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던 마도림이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사당 한 번 제대로 찾지 못했던 초평천은 오늘에서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여기 계셨습니까?”
언덕을 올라온 진무립이 씩 웃었다.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더구나.”
멋쩍게 웃는 초평천의 안색은 평소보다 밝았다.
“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고맙구나.”
진무립의 활약상은 마도림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곁에서 지켜본 이들로부터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시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내림원주 상호군의 바람처럼 진무립은 어느새 마도림의 중추에 들어선 상태였다.
진무립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초평천은 손자를 볼 때마다 먼저 간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옛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 그는 애써 웃었다.
“잠시 따라오겠느냐?”
초평천이 진무립을 데려간 곳은 태경원의 별채였다.
별채 뒤의 작은 창고에 들어간 초평천은 검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황룡(黃龍)이 새겨진 화려한 검집, 검파에 달린 금빛 수실은 한 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은광검(殷光劍)이라고 한다. 서역에서 어렵게 구해온 것인데 네 어미에게 첫 임무를 주던 날 선물했던 것이지.”
절연을 선언하고 딸의 물건을 모두 치운 초평천이었으나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것이 바로 은광검이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 버리지 못한 검은 결국 딸의 유일한 유품이 되었다.
눈시울을 붉힌 초평천은 웃으며 검을 내밀었다.
“네가 갖거라.”
“······.”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미는 손이 미세한 떨림을 동반했다.
‘어머니의 검.’
이윽고 검집을 움켜쥔 진무립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솜털까지 비칠 만큼 투명한 검신은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음에도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은광검이라.’
성할 은에 빛 광의 뜻이 담긴 이름.
마음에 든다.
진무립은 검집을 허리춤에 매달고 활짝 웃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초평천은 미소를 남긴 채 처소로 돌아갔다.
***
중경을 손에 넣은 이상 청하객잔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뒤처리는 마도림의 수뇌들이 알아서 할 터, 진무립은 모처럼 처소로 돌아왔다.
마당을 쓸고 있던 시비 성요가 쪼르르 다가왔다.
“소공자를 뵙습니다.”
부드럽게 웃은 진무립의 그녀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잘 지냈느냐?”
성요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예. 소공자께서 엄청난 공을 세우셨다는 소문이 총단에 자자합니다. 감축드립니다.”
“고맙다.”
짧은 인사를 끝낸 진무립이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뒤에서 그녀가 다시 말했다.
“소공자님. 객당에 동북관주께서 와 계십니다.”
“동북관주가?”
객당의 문이 열리고 진무립이 들어오자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관초걸은 빙그레 웃었다.
“앉으시지요.”
처음 만났던 날과는 정반대의 상황, 관초걸은 마치 집주인처럼 자리를 권했다.
“이것 참.”
진무립도 그날이 떠올랐는지 떨떠름하게 자리에 앉았다.
“주인도 없는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마도림의 모두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주인이 따로 있겠습니까?”
“태경원에 가서도 같은 말을 하면 인정하지.”
“태상림주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실 겁니다.”
“그래? 으하하하!”
억지로 호탕하게 웃어 보인 진무립이 미간을 찌푸렸다.
“됐나?”
“하하하. 됐습니다.”
“무슨 일이야?”
진무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관초걸은 문득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나는 청하객잔을 먹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먹었다. 이제 나는 중경을 먹겠다고 다짐했고 그건 곧 현실이 될 거다. 내가 하겠다고 나선 일에 불가능은 없다.’
진무립은 결국 자신의 말을 지켰다.
핏줄만 믿고 날뛰는 소공자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사내였다.
관초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갖췄다.
“소공자께서는 훌륭히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예를 올립니다.”
차를 후루룩 마신 진무립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그 마음 잊지 말고 계속 존경하도록.”
관초걸은 싱긋 웃었다.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중경을 먹겠다는 다짐은 말씀처럼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공자의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음.”
진무립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믿을 거야?”
“물론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것을 해줄 생각이다.”
마도림의 모두가 바라는 것, 그것은 죽은 어머니의 꿈과도 같을 것이다.
“바라는 것이라면······.”
관초걸은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등받이에 기대앉은 진무립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중경이라는 기반을 확보했으니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날이 오지 않겠나?”
과거의 영광, 사천제일세로 불리던 그 시절을 말함이다.
진무립의 말처럼 기반을 확보했으니 절대 불가능한 꿈은 아니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관초걸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중경부관의 관주로 임명됐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거든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무전취식도 상관없나?”
관초걸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멈칫했다.
“적당한 한도에서는······.”
“너무 짜게 구네.”
“하하하. 농담입니다. 언제든 오십시오. 그럴 시간도 없으시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인데.”
관초걸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뭘?”
“소공자께서 새롭게 부임하게 되실 자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