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붉은 피부를 가진 오크가 단상에 앉아 있었다.
분노하는 자의 축복을 받은 이 붉은 피부는, 열기와 화상에 강했고 그런 특징 때문에 현재의 전쟁에서 쓸모가 있었다.
분노하는 자의 군대에서 붉은 피부의 오크들이 기름을 등에 지고 화염방사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적들의 참호 안으로 뛰어 들어 닥치는대로 불태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래전 분노하는 자, 헤게모니아가 제2 대륙에 들어서며 주력으로 내세웠던 붉은 피부의 오크들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그런 붉은 피부의 오크 중 가장 뛰어난 용사로 알려진 것이 분노하는 자의 두 번째 사도인, 피를 뒤집어 쓴 안카르데였다.
안카르데가 말했다.
“유감이군, 알마.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맞은편에 서 있던 분노하는 자의 다섯 번째 사도 알마 알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벌하시려거든, 좋습니다.”
“흥, 분노하는 자께서 그리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그러랴?”
안카르데는 자신의 애병인 거대한 도끼창의 날을 숫돌로 갈면서 말했다.
“일이 복잡해지고 있군.”
“예.”
“반란이라고?”
알마가 부정했다.
“그들은 혁명이라고 하더군요.”
“혁명이라.”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안카르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패배했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자신들이 아니라 선조들이 그랬더라도 말입니까?”
“그래.”
안카르데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동의하지 않는다고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래. 패배했다면, 계속 패배한 것이다. 승복은 단순히 명예의 문제가 아니야. 저들이 승복하지 않고 영원히 달려든다면 세상의 규칙이 어떻게 되겠나?”
“혼란해지겠지요.”
“그래.”
안카르데가 손짓을 섞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비천한 것들이 귀한 것들의 자리를 탐내고, 끝내 그것을 얻으면? 그럼 어차피 비천한 것들이 귀한 것들의 자리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비천한 것들의 자리에 있겠지. 어차피 똑같다. 바뀌는 건 없어.”
“….”
“하지만 이런 싸움을 영원히 한다면? 비천한 것들이 귀한 것들의 자리를 얻기 위해 매번 싸워야 한다면? 이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귀한 것들을 귀한 자리에 있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이 소비될 거다. 숲은 불타고, 강은 메마르겠지. 비천한 것들이 싸우느라 농사를 짓지 않으면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 것이며, 비천한 것들이 귀한 것들을 물리칠 궁리를 하느라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옷과 물건은 누가 만든단 말이냐?”
알마가 한숨을 쉬었다.
“연합왕국의 관점에선 옳은 생각이지만, 모두가 필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비천한 것들에게 동의한단 말이냐?”
“그럴지도요. 그들의 분노는 당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 꼬리 없는 것들을 편들겠단 말이냐?”
알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아니지요.”
만신전의 공격은 루베일 노역장에서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분노하는 자의 카드였을 것이 어느새 야천의 손에 들어갔고 치명적인 일격을 먹였다.
하지만 분노하는 자도, 알마도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건 저들도 마찬가지야.’
만신전이 가짜 신 전략을 대비해서 사전 준비를 해온 것은 맞다.
하지만 만신전의 전략은 거대한 하나의 타격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은 전략들이 유연하게 이어지는데 염두를 두고 있었다.
분노하는 자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만신전의 약점 중 하나기도 했다.
알마는 분노하는 자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알마. 만신전은 그 내부에 속한 신들이 많이 있으므로, 우두머리인 야천이 그들 모두를 무시하진 못한다. 각각의 자율권을 쥐어줄 수 밖에 없지. 야천이 각각의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야천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략은 그리 많지 않다. 즉, 모든 전략이 완벽한 건 아니다.”
따라서 알마가 노려야 할 것은 간단했다.
‘전략과 전략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끊는 것.’
처음엔 알마도 분노하는 자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가짜 신 전략에 대응 되는 전략을 내놓기 위해서 후속타로 혁명이란 카드를 꺼냈을 때는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혁명의 준비가 아직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루베일 노역장을 습격한 것은 야천의 계획 중에서도 급작스러운 결과물이었어. 야천에게 유리하게 돌아서긴 했지만 그깟 노역장의 노예들이라고 해봤자, 정규군 1개 사단이면 충분히 대처가 된다. 그 루베일 노역장의 이득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서 조급하게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혁명을 꺼내들 수 밖에 없었던 거지.’
현재 연합왕국의 상황은 심각하긴 했다.
꼬리가 있는 유미, 꼬리가 없는 무미, 그리고 그 중간 쯤의 계급인 반미로 나뉘어진 연합왕국의 계급 체계 안에서 무미 계급의 종족들이 혁명을 외치며 행동을 나선 것이다.
중앙의 힘이 닿지 않는 작은 영지에서는 농노들이 들고 일어나 영주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고, 큰 공장이 있는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그만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일부에 불과하다.’
연합왕국은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내부의 정치 상황과 맥락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과 이론이 완전히 퍼지긴 어려웠다.
‘분명 만신전은 보다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카드를 쓰고 싶었을 거야. 그래야만 효과가 극대화 될 테니까. 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거지.’
물론 만신전의 의도대로 루베일 노역장만큼은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첫 번째 사도들의 싸움은 무승부였지만, 실질적으로 분노하는 자가 혁명이 일어나는 상황을 확인하고 더이상의 싸움이 의미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첫 번째 살카잇을 물렸기 때문에 루베일 노역장의 노예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당장 파견할 수 있는 군대도 없으니…’
하지만 알마는 노역장 하나를 잃는 게 큰 손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알마가 안카르데에게 말했다.
“분노하는 자의 명에 따라, 혁명을 저지시킬 방도는 이미 시작 되었지요.”
“그런가?”
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혁명이라 하더라도 그 세력은 모두 분열된 모습이지요. 소수의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불빛을 따라오는 잡벌레와 다름 없습니다. 겉보기로는 크고 거세보이는 파도 같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자신들끼리 아귀 다툼을 하느라 바쁜거지요.”
“오호.”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혁명은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당장 그정도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대비가 됩니다. 이러니 오히려 중요해지는 건… 전쟁이겠죠.”
알마가 볼 때, 전쟁의 형세만 보자면 분노하는 자가 만신전을 상대로 이기는 형국이었다.
분노하는 자는 그야말로 전쟁의 신.
제국이 연합왕국을 상대로 버티고 있는 것은 전쟁에서는 열세이나 나라의 부강함이 그것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혁명이란 것도 제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잔기술에 지나지 않아. 당황할 건 없다.’
안카르데가 웃었다.
“그렇군. 결국 내가 잘해야한단 말인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카르데가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쳐올렸다.
“좋아… 몸을 움직일 시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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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쵸는 버그베어였다.
버그베어는 인간과 엘프 사이가 먼 친척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오크의 먼 친척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크와 같이 큰 턱에 고르지 못한 치열의 사납게 생긴 외모에 더해, 얼굴을 제외한 면적에 뻣뻣한 털이 자라는 종족으로, 이와 같은 외모덕에 추운 지역에서 유리했다.
플레이어들은 ‘추운 지역에서라면 오크보다 나은 스타트’로 평가하는, 특출난 부분은 없는 무난한 종족이라 할만했다.
연합왕국에서 오크류의 종족은 반미 정도로 취급되었고, 유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두 번째 사도가 오크 안카르데인 점 등을 고려해 사회적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이에 따라 덩달아 버그베어 또한 유미에 가까운 반미로, 유미 귀족층에 속하진 않더라도 군인이나 상인, 사제 등 사회 유력층으로 올라서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사르쵸 또한 사제였다.
다만 사르쵸에겐 최근 고민이 생겼다.
사르쵸는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 세계에서 그저 순탄한 삶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어젯밤 사르쵸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슈바넬의 최고 사제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르나르 종족의 최고 사제는 사르쵸를 불러다 앉혀놓고 말했다.
“어제 세계 각지의 사원에 계시가 내려왔다. 들어보았느냐?”
“…아뇨, 모릅니다.”
“그럼 요즘 대륙 여기저기에서 무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단 이야기는?”
“그건 신분에서 본듯합니다.”
“…우리 도시 슈바넬에도 있다.”
“예?”
최고사제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우리 도시에도 소위 혁명파라는 족속들이 있단 말이다.”
“그럼 놈들을 당장 잡아들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관들은 뭘 하고 있답니까?”
최고사제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자신을 삼키는 알마께서 내리신 계시다. 그 혁명파라는 것들은 소수만이 모이면서 도시를 뒤집을만한 인원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렇다고 그전에 놈들을 잡아들이려고 하면 모두 낚아채지 못하고 죄다 도망가버린다더군.”
“그럼…?”
“그러니 놈들 내부로 숨어들어서 모조리 색출해낼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소 둔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르쵸라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첩자가 되라는 말이었다.
사르쵸는 당장 생각나지 않는 거절의 말을 떠올리기 위해 우선 운을 띄웠다.
“저, 최고 사제님…”
“사르쵸.”
“예, 옙.”
최고 사제가 말했다.
“알마 알로이께선 모아서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그런 일을 맡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무미, 아니면 반미여야만 한다고. 그래서 경관이나 군인이나 이빨을 움직인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사제들에게 이 일을 맡기신 거다.”
“…그렇군요.”
“우리 사원에서 적임자는 너뿐이다, 사르쵸.”
이후 사르쵸는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물색했으나, 최고 사제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것인지.’
사르쵸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홀로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 아래에서 형제들과 자랐다.
누나와 형들이 고생하는 꼴을 보았던 사르쵸는, 어떻게든 사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제는 늘 좋은 대우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최고 사제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간 사제 자리가 위태로울지도 몰랐다.
‘그래, 사는 게 순탄하기만 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르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여기 계셨군요, 사제님.”
사르쵸에게 한 닉스 사내가 다가왔다.
“아, 그쪽이…”
“예. 가릴이라고 합니다.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사르쵸는 이빨 요원과 접촉해서 슈바넬에 확인된 혁명파 세력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주고 싶다며 접선을 요청했다.
아직 이빨 요원들에게 정체가 들통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그들은 흔쾌히 사르쵸와 만나겠다고 말했다.
‘사제가 첩자질이라니 우습군.’
하지만 최고 사제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파 세력은 분명 제국의 손길이 닿았을 확률이 높으므로, 분노하는 자의 사제가 접근할 경우 배교했다고 생각해 경각심을 낮출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당장은 그 생각이 옳은 것 같았다.
“따라오시죠, 이쪽입니다.”
가릴이 뒷골목으로 안내하자 사르쵸는 긴장하며 뒤따랐다.
‘설마하니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가릴이 뒷골목의 지하실 문고리를 쥐고 말했다.
“여깁니다. 사제님이 오신다는 말에 도시의 혁명파 모두가 모였습니다.”
가릴이 문을 열었다.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자 가릴이 손짓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길.’
사르쵸는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따라 그 아래로 내려갔다.
사르쵸는 지하실로 내려서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