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이티모 상회, 탑 꼭대기.
팔렛 가문의 가주 불코 팔렛이 발전기 특허권을 품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모두 다 탈출했나?”
불코의 말에 다른 오크가 말했다.
“예. 숨어있는 놈들도 없습니다.”
불코는 가문의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가문 내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했다지만 이전까지는 평생 총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다.
이티모 가문의 반격에 죽거나 다친 이들도 적지 않다.
오크는 군인에 적합하다지만 팔렛 가문은 언제나 그런 일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기를 들었고, 피를 봤다.
선대의 가주들이 보았다면 통탄할 일이었으나 불코로서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분노하는 자를 따르는 운명일런지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팔렛 가문은 더이상 폴리비아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분노하는 자께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을테고, 폴리비아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수를 써두긴 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특허권 하나를 얻기 위한 희생 치고는 너무 컸다.
이것의 본질이 종교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익을 우선시 하는 불코로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이익을 바라봐야지.’
불코가 말했다.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불코의 말에 팔렛 가문의 오크들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우리가 가진 특허권으로 보다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이티모 가문의 발명가를 처리해야만 한다. 서둘러라.”
“…예!”
팔렛 가문의 오크들이 재빨리 내려갔다.
이티모 가문이 폴리비아의 서쪽 관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티모 가문에 의문의 용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도 필멸자인 이상 총포에 맞는다면 죽는다.
연합왕국은 제국과의 전쟁 중에도 몇이나 되는 드래곤을 쓰러트려 왔다.
‘제깟 놈이 대단해봤자지. 이대로 이티모 가문을 멸문시킨다면 팔렛 가문은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버려가며 분노하는 자의 뜻을 따랐으므로, 사후세계로 갔을 때도 벌을 받지 않을 터였다.
‘이티모 가문을 끝장내는대로 탈출 준비를 해야… 음?’
불코 팔렛은 탑 꼭대기에서 자신의 얼굴에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이, 이럴 수가?”
─┼
“놈들이 계속 쫓는군.”
오웬의 말에 필리나 이티모가 말했다.
“마차까지 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오웬이 가로저었다.
“놈들은 이미 우리가 서쪽 관문으로 가는 걸 알고 있다네. 그 숫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놈들을 뚫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지.”
“함께 힘을 합치면 될 겁니다.”
“흠…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왔을런지도.”
“네?”
골목 너머를 바라보던 오웬은 돌아서서 이티모 가문의 엘프들과 솔로틀 시모를 바라보았다.
“꼬마 발명가, 여기 착한 엘프들을 따라가도록 하게.”
“선생님은 어쩌시고요?”
“서쪽 관문에서 싸움을 벌이다보면 뒤에서 쫓던 놈들이 포위할 시간을 줄 수 밖에 없다네.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야 해.”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오웬이 말했다.
“내가 같이 길을 여는 것도 방법이지만 시간이 그렇게 단축되진 않을 걸세. 반면에 여긴 골목이 좁고, 이 길로 오는 놈들만 거꾸러트리면 놈들은 여기에 발이 묶이거나 우회를 해야하니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지. 내 말 알겠나?”
필리나가 답했다.
“과학자처럼 논리적이고 장사꾼처럼 이익에 밝으시군요.”
“자네들이랑 같이 있는 동안 이리저리 배운 모양이군.”
필리나가 시모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저희가 시모 양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떠도는 리자드맨.”
오웬은 의외의 호칭으로 불리자 놀랐다는듯 한쪽 눈을 치켜떴다.
“선생님 옆에 있으면서 전설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어요?”
시모가 말했다.
“선생님, 다치지 마세요!”
오웬이 웃었다.
“또 봅세.”
오웬은 필리나와 시모 일행이 떠나는 걸 확인하고 안심했다.
오웬이 담배를 한대 피우며 기다리자 팔렛 가문의 오크들이 나타났다.
수는 모두 여섯이지만 오웬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상당수의 오크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웬이 있다는 걸 알고 멀리서부터 기습하기 위해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만 따진다면 별 볼일 없는 놈들이로다.’
오웬은 오크들과 냉병기만 들고 싸운다면 쉽게 대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놈들 중에 칼이나 창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방심하지도 않았다.
‘이제 저 화기들은 충분히 위험해졌다. 아무리 허접한 실력을 가진 잡졸이라도 최고의 용사와 대적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
추격대의 우두머리 오크가 오웬을 알아보았다.
“리자드맨! 드디어 너의 얼굴을 보는구나!”
오웬은 손가락으로 곰방대의 재를 툭툭 털어냈다.
“허어…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구나. 제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이쯤 돌아가거라. 살려줘서 고맙다고 할 것은 없으니.”
우두머리는 오크다운 구석이 있었다.
곧장 열이 뻗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저 리자드맨을… 음?”
오크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당장 검을 휘두르려던 오웬도 그랬다.
거대한 그림자가 이들 위로 뒤덮였다.
오크 우두머리가 중얼거렸다.
“비행선?”
비행선은 보통의 비행 높이보다 아주 낮게 떠 있어서, 폴리비아의 높은 건물들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정지하지 않았다면 추락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오웬이 생각했다.
‘…정지했다?’
총성이 들렸다.
-탕!
머리 위에서 들린 총성이었다.
오웬은 오크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우두머리 오크도 재빨리 알아차렸다.
“비, 비행선이다! 비행선에서 우리를 공격한다!”
오크 무리들이 재빨리 엄폐하려 했지만 하늘로부터 엄폐되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웬은 지긋이 비행선 난간을 노려보았는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이는 없었다.
우두머리 오크는 재빠른 판단을 내렸다.
“저 리자드맨부터 처리해라! 이 골목을 지나서 비행선의 공격권에서 벗어난다!”
“와아아!”
쏟아지는 총탄 사이를 가로지르며 오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오웬은 자신을 겨누고 쏘아진 총알을 피하며, 우두머리 오크가 돌격해오길 기다렸다.
“…승님!”
“음?”
비행선에서 누군가 소리치며 뛰어내렸다.
낮게 비행하고 있다고는 해도 대략 삼십여 미터.
하지만 어딜봐도 실수가 아니었다.
비행선에서 뛰어내린 형체는 그대로 우두머리 오크의 등을 내려찍은다음, 뒤로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났다.
당황한 오크들이 총을 겨누고 발사했지만, 어느새 검을 뽑아서는 총알들을 갈랐고, 반회전 하며 그 총의 주인 멱들을 따버렸다.
이어 비행선에서 밧줄을 내려,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들이 오크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애초에 군인도, 전사도 아닌 오크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걸 깨닫고 줄행랑쳤다.
비행선에서 뛰어내렸던 이가 오웬을 향해 걸어와서는,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며 후드를 벗었다.
“스승님!”
뱀파이어, 라민 솔로스트 무엘이었다.
오웬이 말했다.
“허어, 이것 참. 따라잡혀버렸군.”
─┼
만신전, 외부 수련장.
탑형의 높은 만신전 건물이 보이는 이 장소는 만신전에 도달한 수 많은 필멸자의 영혼들이 육체적 단련을 하는 장소였다.
별다른 지침은 없지만 구획에 따라 훈련하는 이들이 달랐다.
우선 똑같이 만신전의 뜻을 다른다고 하더라도, 어느 신을 믿느냐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 신을 믿느냐에 따라, 어느 종족이냐에 따라, 무엇보다도 ‘어느 시기에 신을 믿었느냐’에 따라 동질성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대적인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오래전 흑린의 전사들과 똑같은 수련을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교차 훈련을 통해서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고 사용하는 무기에 익숙해지거나 새로운 교전 방법을 익히는 등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법이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 편이었다.
그 중 외부 수련장의 가장 높은 곳은 누가 뭐라고해도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 전사들의 자리였다.
사도 라크락의 부름으로 소환 될 수 있는 코카투 전사들은, 단순 교전이 아닌 창조물 또는 사도에 대한 대응, 그리고 언젠가는 있을지도 모를 현신을 대적하기 위한 부대였다.
끊임 없는 자기 단련으로 이름 높지만 분명 쉬는 시간도 있었다.
리자드맨 전사 하나가 말했다.
“…신들의 진명?”
“그래.”
또 다른 리자드맨 전사가 말했다.
“신들께서 가진 ‘진정한 이름’ 말이야.”
진정한 이름을 운운하자, 모여 앉은 다른 리자드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리자드맨 전사들이 자기가 아는 지식들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아, 야천께서는 본래 푸른 벌레신이라고 불리셨지.”
“그건 누구나 알지 않나?”
“요즘 애들은 모른다던데.”
“그래?”
“그건 진명이 아니야.”
“그 전엔 이름 없는 딱정벌레 신이라고 불리셨어.”
“여기 있는 전사들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것도 진명이 아니고.”
“그럼 도대체 진명이 뭔가?”
처음 이야기를 꺼낸 리자드맨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직 야천 님의 진명은 모르지만 만결 님의 진명은 알아냈지.”
“그게 뭔데?”
“*룬다*야.”
야심차게 말했으나 다른 리자드맨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발음하기 어려운 말이구만.”
“나도 들어본 거 같은데. 저번에 단염 님이 만결 님을 그렇게 부르시는 걸 들었어.”
“아, 그러니까… 진명은 신들께서 서로를 부르는 이름을 말하는 건가?”
코카투 전사들은 만신전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신들과 접촉할 기회도 제법 있었다.
만신전에서 큰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호위를 맡는 것도 주로 이들이었다.
이야기를 모아보자 서로가 꽤 많은 진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그림자가 찾아왔다.
“자네들 무슨 이야기 중이지?”
“앗, 타타르 님. 진명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진명?”
리자드맨들이 설명하자 타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신들께서 서로를 부르시는 이름 말이지. 나도 대강은 다 알 것 같군.”
“앗, 그럼 혹시 야천 님의 진명도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그럼…”
그러자 타타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신들께서 우리 앞에서 그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걸 그리 달가워하시지 않는데, 굳이 그 이름들을 알아야겠나?”
“…아.”
“우연히 듣는 것이야 아무렴 좋지만 이러고들 있으면 신들께서 불편해하실지도 모르겠군.”
타타르가 그리 말하니 리자드맨 전사들도 동의했다.
전사들은 처음 진명을 운운한 전사한테 왜 그랬냐며 나무랐고, 예의 전사는 궁금한 걸 어쩌겠냐고 또 따졌다.
또 다시 훈련을 하기 위해 떠나는 모습을 타타르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옆으로 익숙한 사람이 다가왔다.
“라크락 님?”
라크락은 다른 리자드맨들처럼 간편한 복장에 비무장이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나?”
“신들께서 가진 진정한 이름이 무엇인지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오. …그게 뭐지?”
타타르가 또 설명을 했다.
“그럼 야천께선 *네뷸라*가 진명이고?”
“저들 말로는 그런 셈이지요.”
라크락이 무엇이 재밌는지 쿡쿡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분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