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역시 보이지 않는다면 ‘유령’ 같은 거 아닐까?”
만신전 제1 회의실에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자리를 비운 이들도 있지만,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많다.
어느정도 실마리를 찾아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상에 올라와서 말하고 있는 것은 룬다였다.
“유령이니 레이스니 팬텀이니 뭐라고 불러야할지는 우리도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종족을 통칭하자는 거지.”
꽤나 귀엽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이 화면에 올라왔다.
모두 유령에 대한 상상화로, 저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 정도는 플레이어들도 알고 있었다.
성운이 질문을 던졌다.
“보이지 않기만 하는 건가? 아니면 투명인간처럼 접촉은 가능한건가?”
“종족으로서 성립하려면 물리적인 몸을 띄어야하겠지만, 뭐랄까, 비물질적인 존재로도 살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같이?”
“그래. 마법 같이.”
성운이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마법은 제외했으면 좋겠군.”
“어째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찌되었든 마법의 신이긴 하거든. 마법적 존재가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렇다고치더라도 내 눈에는 보여야할테니까.”
“수가 너무 적다던가…?”
“그랬으면 좋겠군. 그렇게 적다면 우리가 위협적으로 느낄 필요도 없겠지. 마법적인 존재라는 가설을 완전히 파기하자는 건 아니야. 단지 좀더 후순위로 두는 쪽이 좋겠다는 말이지.”
“좋아, 잠깐만…”
룬다는 잠시 자신의 관자놀이 부분에 손을 가져대댔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한쪽 눈을 떠서는 회의실 한켠에 앉아,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룬다는 이른바 ‘유령 종족 가설’ 지지파로, 만신전이 찾아내야만 하는 악신 절요의 종족을 유령이거나 그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마법을 제외하자는 말에 유령 가설 지지파는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마법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어. 마법이 아닌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그렇지?”
“그렇겠지. 만져질 수 없으면 이쪽에 대해서 간섭할 수도 없겠지. 애초에 인식 조차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좋아. 보완해서 돌아올게.”
룬다가 내려가자, 이번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가 연단으로 올라왔다.
별도의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찾아야 할 것이 눈 앞에 없다면 둘 중 하나지.”
사람과 같은 형상이 말한다.
몸집이 다소 작고 가느다랗다. 무광택의 검은 천들이 저 스스로 휘감겨 있고 그 검은 천들 사이에서는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새어져 나온다.
인상파 화가가 거칠게 표현한 그림자의 모습을 한 인간따개가 허스키한 말했다.
“은폐 또는 위장.”
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인간따개는 두 개의 지지파를 포섭한 것 같았다.
“알고있겠지만 은폐는 ‘숨는 것’이지. 문제는 어디에 숨어있느냐다. 놈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우리가 그것을 발견해내지 못했다면, 놈들이 숨어있을만한 곳은 하나 밖에 없다.”
인간따개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통이지.”
“머리통.”
인간따개가 말했다.
“‘기생수’라는 만화를 본 적 있나? 아니, 질문은 아니다. 단지 그 작품에서 나오는 외계인이 내가 설명하려는 요소와 닮았기 때문에 설명이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 만화에서 나오는 외계인은 사람의 머리를 뜯어먹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플레이어들도 익숙한지 큰 반향이 없었기에 인간따개가 계속 설명했다.
“놀라운 상상력은 아니다. 가까운 곳에도 찾을 수 있다. 우리도 고르디우스 같은 기생 창조물이 있지 않나? 꼭 창조물이 아니더라도 기생은 생물이 생존을 하는 흔한 방식 중 하나지. 그러니 어떤 종족이 기생 종족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가설은 ‘유령’처럼 어떤 비실체를 구태여 떠올릴 필요도, 마법의 존재를 끌고올 필요도 없다.”
성운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후 인간따개가 가상의 기생 종족을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이 종족은 분열되어 배아 단계를 넘어 척추동물의 형상을 띄기 시작한 다양한 종족이 공유하는 태아의 모습처럼 보인다.
인간따개는 이 모습이 이 종족의 완전한 성장 형태일 거라고 가정하고는, 기생할 개체가 선택 되면 입맞춤 등의 보다 밀접한 접촉을 통해 씨를 뿌리고, 그 씨가 뇌에서 커져가면서 종족의 숫자를 늘려 나갈 거라고 가정했다.
“흥미롭군.”
성운이 덧붙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가 좀 있어 보이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던 위즈덤이 말했다.
“한 개체가 씨를 뿌리면, 이 기생 종족은 자웅동체라는 말인가?”
“아닐 가능성도 생각은 하지만…”
“많은 종족들의 관계에 대한 사례를 생각할 때, 한 차례 관계만으로 씨를 성공적으로 뿌릴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 둘 이상의 유전 정보를 규합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기생 종족과 한 명의 숙주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다자연애가 일상화되지 않은 이상, 문명화가 된 환경에선 그건 꽤 눈에 띌 거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우리가 아직 관측하지 못했지.”
“자웅동체라면 어떻지?”
성운이 받았다.
“그 경우엔 일이 쉬워지지. 나도 잘 모르지만 하나의 생물군이 이루고 있는 유전자 다양성이 적으면 전염병이 잘 퍼지거든. 우리가 소수의 기생 종족만 발견해도, 인식하지 않은 기생 종족을 대상으로 하는 질병 따위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테고.”
다른 신 한 명이 제동을 걸었다.
“네뷸라, 나는 현실적이진 않다고 본다. 로스트 월드에 존재하는 종족들은 단순히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종족이 아니다. 꽤나, 정교하지. 각각의 종족들을 다른 생태계에 떨구어도 단독적으로 생존이 가능하다. 자웅동체는 아닐 거야.”
인간따개는 실망하지 않고 곧장 말했다.
“…자 그럼 두 번째를 말하지. 두 번째 가능성은 위장이다. 은폐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거라면, 위장은 다른 무언가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는 거지. 기능이 아니라 그저 겉보기의 외견만 흉내내면 되니까 머리에만 숨을 필요는 없다.”
인간따개는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두드렸다.
“바로 몸이지. 기생하는 종족이 어렵다면 다른 종족의 가죽을 뒤집어 쓰면 된다.”
“어색하게 보이지 않겠나?”
“본래 그런 일을 하는 종족이라면 어색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일 능력 정도는 있겠지. 이 아이디어는 음모론에서 가져왔다.”
인간따개가 화면 위로 손을 휘두르자 얼굴이 납작한 파충류 종족의 일러스트가 떠올랐다.
룬다가 중얼거렸다.
“리자드맨? …은 아닌데.”
“렙틸리언이라고 한다.”
인간따개가 말했다.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긴 것도. 단지 우리가 지구에 있을 때 고대에 지구로 온 파충류 외계인이 인간을 뒷세계에서 지배한다는 음모론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파충류 외계인 렙틸리언들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흉내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지. 어떤 사람들은 유명인들이 렙틸리언이며 그 증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즈덤이 뒤에서 말했다.
“난 역시 잘 모르겠군. 가죽만으로 모습을 그럴듯하게 유지하기란 생물학적으로도 화학적으로도 어렵다. 그 부분은 가죽을 유지하는 다른 기술이나 메커니즘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다른 문제도 많다. 크기의 문제다. ‘위장 종족’도 성장을 할텐데 너무 크기가 커지거나 너무 작으면 소라게가 집을 옮기는 것처럼 몸을 계속 옮겨야할테니 빈도가 너무 잦아진다.”
“일정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다면?”
“유아와 성인이 같은 크기일까? 그건 물리적으로 안되겠지. 물론 어떤 생물들은 키위새처럼 제 몸만한 알을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운이 그 말을 받았다.
“…우리가 알을 발견했어야겠군. 체외수정이라 몸 안에 잉태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우리에게 위협적인 수준이라면 산란장이 어딘가에 존재해야 해. 물론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가능성이 있는 장소들을 한 번 더 확인을 해야겠지만,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군.”
잠시 인간따개가 침묵했다.
“…그 말이 맞아.”
인간따개는 돌아서서 자신과 의견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성운이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유령, 기생, 위장. 모두 가치 있지만 완벽하다고 보긴 힘들군. 특별히 다른 의견이 없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될 것 같은데.”
특별히 끝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주저하고 있던 엘다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뷸라 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난 아이디어인데….”
“좋아.”
“그 자리는 부담되는데 여기서 이야기해도 되겠사옵니까?”
“얼마든지.”
“위즈덤 님이 두 분 서 계신 거 같아서 숨막혔어요.”
“그건 두 사람 없을 때 말하지 그랬어.”
플레이어들이 웃었다.
엘다르가 말했다.
“제 생각엔 오늘 거의 답이 나온 것 같아요. 은신도, 은폐도, 위장도 아닌 거죠.”
“그럼?”
“변신이죠.”
“변신?”
엘다르가 말했다.
“‘체인질링’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들어 본 것 같은데.”
엘다르가 설명했다.
“요정이 자신의 아이와 사람의 아이를 바꿔치기해서, 요정의 아이가 사람처럼 성장하고 사람의 아이가 요정들에게서 성장하는 걸 말해요. 그런 바꿔치기를 ‘체인질링 당했다’고 하고요.”
“옛날 이야기야?”
“유럽 민담이죠. 간단히 말해서, 저는 ‘요정’이 존재하고, 요정이 체인질링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그럼 마법적인 설명이 필요하겠군.”
“아뇨, 마법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엘다르가 자신의 위로 화면을 띄웠다.
“제가 생각하는 요정은, 그 어떤 종족으로도 변신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요. 만물의 근원이죠.”
“그게 가능한가?”
“전 가능하다고 봐요. 최근에 들어서 로스트 월드의 종족들이 가진 유전적인 정보가 상이하지 않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같은 환경을 공유하면서 살아왔을 거라고.”
이런 정보는 이미 지상에서도 어느 정도 밝혀진 내용이었다.
하나의 진화 계통을 밟고 존재했을리는 없으므로, 결국 고대의 신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생태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물학적 근거가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성운이 말했다.
“하지만 ‘변신’ 부분은 쉽게 설명하기 힘든데. 아까 인간따개가 말한 렙틸리언 같은 위장 종족보다 존재하기 어려운 종족이야. 웨어울프처럼 골격이 변하는 종족도 있지만 그것과도 결이 좀 다르지.”
“그렇지는 않아요. 성장기에 변신을 하는 게 아니라, ‘수정을 할 때’, 즉 배아 세포 단계에서 변신을 할테니까.”
“아, 그럼 그 종족은…”
엘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말하는 ‘요정’이란 종족은 엄지만한 크기에 날개가 달린 종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종족과 교배가 가능한 종족을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은 없고 다른 종족의 외견을 빌리고 있는 거죠.”
성운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종족들의 가족 형태가 아니겠군. 하지만 자신의 외형을 따르는 종족에 소속감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을테고.”
그렇다면 자연히 해당 종족에 흡수가 된다.
“네. 그러니 이 요정 종족이 가정상 성립하려면 ‘무조건’ 다른 종족과 관계를 맺어야 할 거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구분감을 느끼겠죠. 부모와는 반드시 종족이 다를테고,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테니,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종족적 정체성을 부여받겠죠.”
성운이 말했다.
“그 과정에서 악신 절요의 종족이라는 걸 깨달을테고.”
“네.”
“그런 종족이 존재한다면 말이지.”
“네.”
성운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숨을 죽이고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엘다르의 생각이 가장 그럴듯했고,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다.
몇몇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반론을 꺼내보려는 것 같았지만, 강력한 반론은 없는듯한 기미였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유전자 검사요. 유전자를 흉내내긴 하겠지만 분명 일반적인 종족과 다르겠죠.”
“발견하기 힘들 수 밖에 없겠군.”
현재 지상에 기술은 존재하지만 전 종족 전수 조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 시설이 존재하진 않았다.
“좀더 좁히면?”
엘다르가 입술을 살짝 다물고, 떨떠름하게 말했다.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면, 분명 큰 화제가 될텐데 지금까지 발견할 수 없었죠.”
“대부분이 여성이겠군. 체외 수정이 되는 종족들은 성별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만. 하지만 겨우 절반으로 줄였어. 부족해.”
“아마 한부모 가정으로 보기도 힘들겠죠. 하나의 가정이라도 같은 종족이어야 하니까. 눈에 띌 거에요.”
“…아.”
엘다르가 말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요정’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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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첩보국, 심문실.
이온은 과거 자신이 왔던 자리가 심문실이 아니라 그저 사무실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창문도 없고 작은 탁자에 밝혀진 전등, 마주 보는 의자 둘 밖에 없다.
벽면은 거친 회색에 공기가 갑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라민이 돋보기를 끼고 서류를 뒤적이며 이온에게 말했다.
“만신전에서 내려온 정보를 기반으로 리데 오보렌을 조사했습니다. 리데 오보렌은 앞서 설명했던 ‘요정’으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어요.”
“여성이라는 점이요?”
“아뇨.”
라민이 곁눈으로 이온을 슬쩍 보았다.
“고아라는 점이요. 요정들은 자신의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길 수 밖에 없어요. 버리고 가야만 하는 숙명이 있는 거죠.”
“…아.”
“좀더 자세히 조사한 결과 리데의 과거는 더 정확한 유전자 조사를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검사 결과…”
라민이 이어 말했다.
“리데는 요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