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50
050화
황야.
우기가 끝나고 다시 풀들이 메마르는 시기.
북풍이 이곳까지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밀어 넣고 있었다.
이 거친 땅 위에 두 신이 서 있었다.
엘다르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이길 작정이십니까?”
성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시스템 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우거 카진과 켄타우르스 타마리두의 전쟁 소식은 널리 퍼져 나갔다.
결과는 오우거 카진의 대승이었다.
“저는 그래도 켄타우르스가 오우거에게 꽤나 피해를 입힐 거라고 생각하였사옵니다. 오우거가 강하다곤 하지만, 켄타우르스도 희귀 종족에다가 전투력이 높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노예로 쓰이는 고블린들이 좀 죽고, 오우거는 열 명도 죽이지 못했다고 하니…”
엘다르는 중얼거리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처음부터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은 했사옵니다. 최고의 힘을 가진 오우거 종족에 축복을 통해 지능을 올리다니. 우연에 우연을 더해서 나온 조합이니 강할 수밖에요.”
성운은 대답 없이 상태창을 휙휙 올렸다가 내리기도 했다.
엘다르는 계속해서 혼자 말했다.
“제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성운 님의 주력 병력은 리자드맨들 아닙니까?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추위에 상대적으로 약하니 북쪽에서 싸울 때 전력을 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 병력들은 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축복을 받지 않은 데다 그 숫자도 많지 않은 걸로 압니다. 하다못해 제 주력 병력이라도 있었다면…”
성운이 고개를 들며 엘다르의 말을 끊었다.
“필요 없어.”
“예?”
“엘프 주력 병력 같은 거 필요 없다고. 오히려 있었으면 조금 더 귀찮아졌겠지.”
“무슨 말입니까?”
성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앞의 상태창들을 내렸다.
“너야말로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절 부른 건 오우거를 상대하기 위한 대책 회의를 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딴 일에 왜 회의가 필요해?”
엘다르는 놀란 듯 성운을 올려다봤다.
“솔롱고스와 임춘식 두 신은 병력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강신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임춘식의 지원을 받는 데다 고스란히 전투력을 보존한 오우거들을 상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리자드맨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성운은 고개를 가로저은 다음 말했다.
“전쟁을 하는 건 나랑 임춘식이고, 나는 어떻게 오우거들을 상대할지 판단을 끝냈어. 작전 회의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예?”
“그보다 아까 한 이야기 다시 해 봐. 랭킹이 몇 위였다고?”
엘다르는 자신의 ‘설정’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외람되지만 3400위 정도였사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말이지.”
“예.”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 숫자를 감안하면 3400위도 잘한다고 볼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건가?’
성운은 최초의 서른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선별될 때, 랭킹 순으로 끊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두 번째로 만난 플레이어가 2위였던 헤게모니아였기 때문에 엘다르를 만났을 때 엘다르가 랭킹 32위 안에 들지 못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엘다르는 성운의 고민에 대해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냥 무작위로 플레이어를 선별한 것 아니겠사옵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운의 생각에 랭킹 1위와 2위가 선별된 것은 우연치고는 제법 의도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엘다르 또한 2만 3400위나 4만 3400위가 아니라 미묘하게 등수가 높은 3400위라는 사실도 의아했다.
‘단순히 게임 랭킹이 아니라 선별되는 조건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조건이 뭘까? 왜 그런 조건이 필요했던 거지?’
성운은 고민을 잠시 접어 두어야 했다.
엘다르가 성운이 거북해하는 그 말투로 어떻게 오우거와 임춘식을 상대할 것인지 물어왔기 때문이었다.
성운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엘다르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계속 협조하는 거 맞지?”
“…뭘 말입니까?”
“협조 고맙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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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이 게임을 시작할 때 얻은 소영역은 바로 ‘새’였다.
임춘식은 소영역을 확인하고 자신이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고 판단했다.
새의 소영역은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는 소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새라는 특징 덕분에 넓은 지역을 정찰하기 편리했고, 특히나 ‘올빼미의 지혜’ 그리고 ‘까마귀의 지능’같이 유용한 축복을 자신의 종족에게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지역에서 오우거를 발견했을 때 임춘식은 승리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했다.
‘이건 거의 떠먹여 주는 것 아닌가?’
임춘식의 로스트 월드 최종 랭킹은 153위지만 한창 물이 올랐을 때는 20위권을 오가기도 했었다.
국내 스트리머 주최의 대회에선 총 128명 중 4위를 한 적도 있었다. 별난 아바타 덕분에 입소문을 타서 스트리머들과 방송을 몇 번인가 같이 하기도 했다.
‘실력도 괜찮은데 운도 있어. 이건 질 리가 없다.’
임춘식은 자신의 확신대로 큰 장애물을 겪지 않고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엘다르와 솔롱고스가 주력을 몽땅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뷸라. 분명 랭킹 1위였지. 방송도 안 하고 대회도 안 나오고 밥 먹고 게임만 한다는 미친놈.’
저 아래에서 얼쩡거리던 리자드맨의 주인이 네뷸라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건 실책이었다.
하지만 임춘식은 흐름에 큰 지장은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운빨 게임인 거지. 소영역은 랜덤, 종족도 사실상 랜덤. 어느 정도 실력이 받쳐 주면 그 다음부터는 운의 문제야. 게다가 벌레랑 리자드맨? 둘 다 추위에 약하잖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도록 조합하는 게 기본 아냐?’
임춘식은 리자드맨들의 공격에 대비해 자신의 오우거 부족장 카진에게 물자를 축적하도록 암시했다.
그와 더불어 임춘식은 적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경선 부근으로 정찰을 집중했다.
분명 리자드맨들이 겨울이 오기 전, 단기 결전을 노릴 거라고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리자드맨들은 가을이 끝나가도록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이 되자 엘프 마을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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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늘 부족이 엘프 마을을 불태우고 다닌다는 소식은 자동성에도 전해졌다.
시장에 모인 상인들은 연일 그 이야기를 했고, 더 이상 황야 위쪽으로는 교역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타마리두가 오우거 카진에게 도전해서 죽고 난 뒤, 빈 땅은 검은 비늘 부족이 사실상 차지했다더군. 검은 비늘 부족은 그쪽에선 지나가는 행상들을 모조리 약탈한다고 하고.”
“그것뿐인가? 라크락은 지난 엘프의 공격을 보복하기 위해 지금 엘프 마을을 불태우고 있다고 하니.”
“황야를 가로지르는 것과, 녹안 엘프의 지역을 가로지르는 것 모두 여의치 않게 되었으니… 당분간 오우거들과 거래하기는 힘들지 않겠나?”
대륙 중앙에선 황야를 가로지르면 켄타우르스 타마리두가 지배하는 지역을 지나 오우거들과 거래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길이 끊어진 것이다.
오우거가 있는 땅은 곡식을 기르긴 힘들지만 금속 광산이 있어 좋은 거래가 가능했기에 아쉬워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해안으로 향하는 교역로가 막혔으니 이를 어쩐다.”
“거래할 상품이 뭔가? 마침 검은 비늘 부족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자동성 남동쪽 길로 가면 비단을 좋은 값에 거래해 준다더군.”
“그래? 내 고향에서 비단은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내가 거래하려는 건…”
그리고 녹안 부족 엘프들은 사람들이 걱정한 것보다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엘프의 신인 엘다르가 리자드맨들의 공격이 있을 거라고 미리 경고를 해 준 데다가 리자드맨들은 엘프들이 도망칠 때까지 얌전히 지켜봐 준 것이다.
게다가 엘프들이 황야 아래에 임시로 터를 잡기 시작했을 때도 딱히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목표는 엘프가 아니라, 엘프들이 살던 땅이라는 듯.
처음에 임춘식은 이와 같은 변화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엘프는 주력을 잃었으니 당분간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 이상한 취미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엘프를 괴롭힐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솔롱고스의 지역을 점거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켄타우르스도 주력을 잃었다.
NPC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빈 땅이기 때문에 점거하기 위해서 병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약탈을 통해 수익을 벌려고 해도, 예민한 상인들이 금세 교역로를 포기할 것이니 의미가 없었다.
‘둘 다 큰 자원이 드는 건 아니지만 굳이 자원을 소모하면서 벌일 일은 아니야. 더군다나 전투를 앞두고 말이지. 아니, 전투를 하긴 이미 늦었어. 곧 겨울이 다가온다. 리자드맨들이 북쪽으로 올라오긴 늦었는데…’
그 말은 네뷸라가 당분간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임춘식은 뒤늦게 네뷸라의 의도를 깨달았다.
“…청야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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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는 초토화 전술이라고 하지.”
성운은 엘다르에게 설명했다.
“상대가 점령할지도 모르는 지역을 몽땅 다 불태워 버리는 거지. 황폐화시키고. 로스트 월드는 실제 전쟁처럼 보급의 중요도가 높으니까, 똑같이 써먹을 수 있어. 아마 너도 몇 번은 써 봤을걸?”
엘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초반에 쓰는 걸 본 적은…”
“그렇지. 보통은 이런 초반엔 안 먹히니까. 하지만 이번엔 조건이 맞아떨어졌어.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되나?”
“운이… 좋았단 말입니까?”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상대의 지역이 북해안이란 점.”
“그건 운이 나쁜 거 아닙니까? 리자드맨들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지 않사옵니까?”
“아, 그런 부분이 있긴 하지. 하지만 북해안은 위도가 높은 만큼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기 힘들어. 논밭 농사가 시원찮을 텐데, 오우거들이 그 높은 지능으로 빠르게 문명을 발전시킨 덕에 무역을 활성화해서 식량을 남쪽에서 수입하고 머릿수를 늘렸지. 무리의 크기가 커졌는데, 무역로가 뚝 끊기고 약탈할 엘프들도 사라진 거야. 그럼 어떻게 보급을 할까. 채집과 사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모두의 배를 채울 수는 없을 거야. 게다가 오우거들은 고블린 NPC 노예까지 부리고 있지.”
엘다르는 성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NPC를 노예로 삼는 건 게임 초기에 나올 수 있는 무난한 전략이다. 하지만 주인 종족의 상황이 나빠지면, 노예 종족은 언제나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게다가?”
“상대가 오우거란 거야.”
엘다르는 또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대는 약점을 극복한 오우거 아닙니까?”
“약점?”
“지능이 높은 것 말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이긴 하지. 근데 오우거의 진짜 약점은 그게 아니야.”
“…그럼?”
“모르겠어? 덩치가 큰 게 약점이야. 힘이 세고 강한 게 약점이고.”
“그게… 어떻게 약점이 됩니까?”
성운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로스트 월드는 애초에 현실적인 게임이었어. 덩치가 크면, 기초 대사량이 높고, 결국 먹는 게 많다는 말이야. 당장 겨울을 나기 위해서 버텨야 하는데 근육량도 많고 기초 대사량도 높단 말이야. 로스트 월드에서 적은 다른 플레이어만 있는 게 아니야. 환경 그 자체가 적이기도 하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결국 약점이야. 체구가 작은 종족들은 이쪽이 청야 전술을 하더라도 오래 버틸 거야.”
엘다르는 그제야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은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는 엘다르가 아직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상태창 몇 개를 띄웠다.
“내가 그냥 감으로 이런 말을 하나 싶나 본데, 나름 계산법이 있어. 전략 전술 게시판에 죽돌이로 있던 사람이 청야 전술 쓸 때 상대 종족이랑 기후랑, 문명 발전 정도랑, 지역의 크기랑 이것저것 변수 넣으면 값이 나오도록 만든 게 있거든. 정확하진 않은데 대충 경험이랑 비교하면…”
“그것까지는 알려 주셔도 모릅니다.”
“그래? 아무튼 납득한 건 맞지?”
엘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이 상태창을 끄면서 무심히 말했다.
“그리고 너도 내 행운이긴 하지.”
“저, 말입니까?”
엘다르는 자신이 언제 행운의 마스코트 같은 것이 되었나 잠깐 설렜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원래 이런 전술은 결국 내 땅을 불태워야 하거든. 그런데 막상 접하고 있는 지역이 내 땅이 아니라 엘프 땅이니까. 게다가 정주민이라서 불타기 전에는 오우거들에게 꾸준히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태웠을 때 효과가 확실한 점도 있고.”
“…예에.”
“아무튼 내 작전이 통하는지 보라고.”
오우거들은 첫 번째 겨울을 전쟁을 위해 비축해 둔 물자들로 버텨 냈다.
하지만 봄이 왔을 때 음식을 얻기 위해 수풀들을 뒤져야 했다. 엘프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여름이 오자 허기진 오우거들이 고블린들을 산 채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자 더 이상 노예이길 거부한 고블린들이 오우거들을 공격했다.
겨울에 이르러 오우거들은 고블린들과 싸워 이겼다. 하지만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모두 도망치자, 오우거들은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굶주린 오우거들이 황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성운의 뜻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