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88)
188 화 굴욕.
굴욕.
“…너는.”
하바스는 푸른 머리 여인을 보자마자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녀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어찌 모를 수 있으랴.
북부 왕국에 파견했던 리베라티오의 조직원 중 절반이 저 여자의 손에 목이 날아가 버렸는데.
성화교의 사제, 프리디야.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인지는 몰라도 저 여자는 굉장히 위험했다. 여섯 선지자 중 일원인 자신조차 경계해야 할 정도로.
“곤란하군. 참으로 곤란…”
푸른 선이 뻗어 왔다. 프리디야는 적을 앞두고서 단 한 번도 망설여 본 적이 없었다. 적이 말을 꺼내는 걸 두고 본 적 또한 없었고.
곧 죽일 생명의 발악 따위, 그녀의 관심사 밖이었다.
그녀의 애검, ‘절명’이 푸른 날을 번뜩이며 정확하게 하바스의 목을 노렸다.
하바스는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검을 본 순간, 선명한 죽음을 직감했다. 직감은 곧 무거운 확신이 되었다.
저 검에 목이 날아가는 순간, 여태 틀어쥐고 있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나리라.
그럴 수 없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신을 직접 뵙기를 갈망했는가. 그토록 바라던 고지가 눈앞이었다.
쾅!
지팡이가 바닥을 꿰뚫었다. 구부러진 노인의 몸이라곤 믿을 수 없는 속도. 식당을 이루던 암석 바닥이 부서지며 수백 가닥의 나무줄기들이 프리디야를 붙잡기 위해 제 몸을 뻗어왔다.
하나로 곧게 묶어 내린 푸른 머리칼이 흔들리고, 새하얀 신발이 줄기들을 즈려밟았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녀는 한 폭의 명화를 그려 내는 장인의 붓질처럼 무척이나 부드럽고, 아름답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검사의 이상을 담은 몸놀림. 검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면 그 몸짓을 보는 순간,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바치리라.
하바스는 그렇게 그 아름다움에 한순간 정신을 빼앗겼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였지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푸른 검날이 그의 시야를 한가득 덮어 버린 뒤였다. 그는 다급하게 검을 피했다. 피해 낼 수 없었지만.
서걱.
“크윽!”
하바스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가까스로 머리를 지켜 낸 그는 왼쪽 어깨의 절단면을 부여잡고 뒤로 몸을 날렸다. 또다시 푸른 검날이 번쩍였다.
서걱.
이번에는 오른팔이 허공을 날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머리를 지켜 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의 양팔을 잘라 낼 생각이었다.
노인의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감히!!! 이 나를 가지고 놀겠다고?! 이 맹신의 하바스를!!!”
프리디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두 번 더 휘둘렀을 뿐. 양다리가 잘린 하바스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차가운 돌바닥과 축축한 냄새. 지독한 굴욕에 하바스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시리도록 푸른 눈이 나뒹구는 노인의 몸뚱이를 힐끔 보곤 이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향했다.
“연아.”
“네?”
연, 아니 마르낙은 순식간에 동강 난 하바스 탓에 굉장히 놀랐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는 자신의 스승이 제대로 무력 행사를 하는 걸 본 적이 손에 꼽았다. 아무리 말하는 도중 기습을 당했다지만, 여섯 선지자 중 하나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력화될 줄도 몰랐고.
프리디야는 자신의 제자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이대로 죽이면 되는 거니?”
“아, 그게…”
마르낙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이대로 죽이면 되는 건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신의 목표는 성물에 담긴 신성의 회수이지, 여섯 선지자의 토벌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저 노인을 쳐 죽일 생각밖에 없었지만, 스승님한테 처참히 당해 바닥을 기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느꼈던 분노가 무척 허망하게 느껴졌다.
“뭐, 일단 죽여 두는 편이 앞으로 편할 것 같군요.”
프리디야가 싱긋 미소 지었다.
“알겠구나.”
“안 돼!!!”
프리디야가 높이 검을 치켜든 그때. 새된 목소리와 함께 보랏빛 머리의 여인이 프리디야가 뚫어 놓은 구멍을 따라 떨어졌다. 바로 펄리였다.
“잠깐 기다려!!!”
푸른 칼날이 멈춰 섰다. 사실, 펄리의 목소리 따위야 프리디야에게 있어서 하등 관심이 없는 사안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녀가 이토록 빠른 시기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전부 펄리가 인형을 조종해 프리디야를 불러 왔던 덕분이었다.
받은 것이 있는 만큼, 프리디야는 펄리가 무어라 말하는지 정돈 들어 주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푸른 눈이 멀뚱히 펄리를 바라보자 펄리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 갔다.
“걔! 걔가 죽으면 신의 그릇의 완성이 늦어져! 완전 늦어진다고! 그러니 지금 죽이면 안 돼!”
프리디야는 펄리에게 대답하는 대신, 마르낙을 바라보았다. 이 검을 거둘 이유는 그의 입에서만 나오기에.
프리디야의 의도를 알아챈 펄리가 잽싸게 마르낙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우리! 약속했잖아! 나는 신의 그릇을!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서로 사이좋게 나눠 갖기로! 지금 여기서 하바스를 죽이면 그거 말짱 도루묵이야! 쟤가 죽으면 그릇의 완성이 한참 늦어져! 진짜!”
약속과 장래의 위협. 마르낙은 그 둘을 저울질했다. 고민할 것도 없는 주제였다. 그는 펄리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합니다.”
“뭐?!”
위협은 제거해 두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를 향했던 위협이라면.
“스승님.”
짧은 한마디.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프리디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안 돼애애애애!!!”
펄리의 절규와 함께, 여태 침묵하고 있던 하바스가 움직였다. 막대한 신성의 격류가 몰아쳤다. 그 격류 속에서 노인의 몸뚱이는 잘게 찢어졌다. 흩날리는 잔해는 줄기로 변해 얽히고설키며 불어나 파도처럼 몰아쳤다. 프리디야는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지만, 그녀가 베어 내는 것보다 줄기들이 불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녀는 그 광경을 보며 물제비호에 두고 온 푸른 대검, ‘절체’를 떠올렸다.
더 큰 칼날이 있었으면 단번에 전부 베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자그마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녀는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춤을 출 때마다 잘려 나간 수십 가닥의 줄기들이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무너지는 벽의 사이로 새로운 나무줄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 전체에서 하바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오늘의 굴욕!!! 절대 잊지 않…”
콰아앙!!!
거친 마력의 유동과 함께 폭발이 줄기들을 휩쓸었다. 마법으로 쏟아져 오는 줄기들을 터뜨린 다키아가 이를 갈았다.
“아까와는 달라!!!”
하바스에게 붙잡힐 땐, 좁은 공간이라 다른 사람이 휩쓸릴까 봐 제대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충분한 공간이 있는 경우엔 이야기가 달랐다.
“마, 맞아요!!! 제 얼굴을 기억한 저 선지자를 절대 그냥 보내면 안 돼요!!! 잘 때도 뒤가 엄청 뒤숭숭할 테니까!!! 엉겨붙은 바위시여!!! 빨리 저거 어떻게든 해 주세요!!!”
이미 힘을 감출 때는 지난 지 오래였다. 쟈멜은 할 수 있는 모든 신성을 때려 박아 권능을 발현했다.
부서져 나간 모든 돌조각들이 쟈멜의 몸을 뒤덮자, 거대한 암석 거인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줄기보단 돌이 더 단단… 앗?!”
쿵!
고개를 들려던 암석 거인의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다. 쟈멜은 그제야 크기를 너무 크게 만들어 버린 걸 깨달았다.
“그, 그래도 손은 휘두를 수 있어!!!”
거대한 암석 손아귀가 몰려드는 줄기들을 쥐어뜯었다. 지젤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쟨 매번 어딘가 하나가 부족하다니까. 그런데 넌 안 움직여?”
검은 투구가 갈라지며 마르낙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거 아무래도 놓친 거 같군요.”
“뭐?”
마르낙이 눈짓으로 펄리를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당황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생글거리는 미소만이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르낙은 펄리를 노려보았다.
“찰나, 정말 잠깐의 틈만 주어지면 하바스가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군요.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끈 겁니까?”
펄리는 히죽 웃었다.
“다 알면서 왜 물어봐? 그리고 나한테 화내지 마. 약속을 먼저 어기려고 한 건 너잖아. 너는 내가 완전한 신의 그릇을 원하는 걸 알면서도 하바스를 죽이라고 했어! 내 말이 맞아, 틀려?”
그녀의 말이 맞았지만, 마르낙은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제 동료들의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라 그릇을 만들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죽여도 되잖아! 너 설마! 설마! 그냥 걔 죽여 버리고 네가 원하는 성물만 몰래 챙기려고 한 거야? 치사해!”
장난기 가득한 타박. 마르낙은 당최 펄리가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여느 때와 같이 장난을 걸어 오는 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아닙니다.”
사실, 펄리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았다. 신의 그릇이 완성되든 말든, 그가 원하는 성물은 여전히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테니.
“뭐, 대충 이럴 거라 알고 있긴 했지만! 진짜로 겪으니 조금 배신감이 들어! 들어!”
펄리는 어깨를 으쓱이곤 마르낙을 흘겨보았다.
“하바스 보내 줬다고, 나 탓할 생각 하지 마! 나 아니었으면, 네가 그토록 아끼는 네 동료들은 네가 여기서 한바탕 하는 사이에 하바스한테 갈기갈기 찢겼을 테니까! 쟤네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준 것도 나고! 곧장 네 무시무시한 스승님을 여기로 불러온 것도 바로 나야! 나야!”
옆에서 그 상황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젤이 마르낙의 손등을 두드리곤 작게 속삭였다.
“저 말이 맞아. 펄리가 아니었으면, 그 선지자한테 훨씬 일찍 붙잡히거나 누구 하나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
잠깐의 침묵 후, 마르낙은 펄리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성물을 찾기 위해선 아직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 동료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아까 제 독단적인 행동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보랏빛 머리가 찰랑였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펄리가 마르낙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조금 실망이야. 솔직히 나는 네가 조금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는데.”
촉촉하고 딱딱한 감촉이 귓불을 꾹 눌러 왔다. 마르낙의 귓불을 앙 하고 깨문 펄리가 배시시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한 번은 봐줄게! 특별히! 하지만 두 번은 없어!”
보랏빛 홍채가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왼쪽 눈에 담긴 네 개의 동공이 저마다 마르낙을 담았다. 펄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말아 줘.”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그거면 돼!”
펄리는 마르낙의 등을 찰싹찰싹 쳤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하바스를 죽였으면, 우리가 성물을 찾기도 전에 다른 선지자가 와서 걔가 가진 성물을 챙겨 갔을 거야! 그거 너만 욕심내고 있는 게 아니거든! 히히!”
콰아앙!!!
거대한 암석 주먹이 나무줄기들을 후려쳤다. 쟈멜의 광소가 멀리 울려 퍼졌다.
“히하하핫!! 나는 오늘! 선지자를 꺾었다!!! 이젠 리베라티오도 두렵지 않앗!!!”
지젤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제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얼른 쟤 챙겨서 돌아가야겠네.”
***
“끄아아아아악!!!”
남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씨앗이 발아했다. 머리가 터져 나가며 넘쳐흐른 줄기들이 서로 얽혀 노인의 형상을 갖추었다.
툭.
사지가 없는 몸뚱이가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하바스는 입술을 짓씹었다. 달인에게 베인 탓에 재생이 느렸다. 이치를 초월한 검격이 존재의 본질에 상처를 입혔다.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프리디야…”
굴욕감과 분노. 바닥에서 자라난 줄기가 사지 없는 몸통을 들어 의자 위에 앉혔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던 피부가 천천히 팽창하고, 하얗게 새어 버렸던 머리칼의 뿌리가 탐스러운 갈색으로 물들어 제 원래 색을 되찾는다.
노화의 역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미뤄 두었던 젊음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작은 고집에 휘둘려 대의를 저버릴 순 없었다. 그는 이 땅 위에 신을 모시겠노라고 굳게 맹세했었기에.
하바스는 의자 위에 앉아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다시 만날 땐, 절대 오늘처럼 여유를 부릴 순 없을 거다.”
***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군…”
어디로 갔는지 모를 프리디야를 뒤로하고 악신의 신성을 쫓았지만, 카디쇼와 사제들이 찾아낸 건 폐허가 된 하수 처리 시설뿐이었다. 사제들의 수색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사제들은 저마다 길로 흩어졌다.
그렇게 카디쇼는 물제비호를 향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황실의 시설에 숨어들었던 악신의 숭배자라니.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카디쇼.”
“음?”
고개를 돌리자 부드럽게 웃는 사내가 보였다. 저 사내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긴 하지만, 참으로 분위기가 편안했다. 그래서 여자가 그렇게나 꼬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르낙인가. 여긴 어쩐… 아, 너도 악신의 신성을 쫓아왔었나. 네 얼굴을 보진 못했던 것 같다만. 아무래도 길이 엇갈렸나 보군. 이거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채로 밤이 늦어 버렸나.”
마르낙이 성큼 다가왔다. 카디쇼는 평소보다 조금 가까운 거리에 살짝 긴장했다.
“할 말이 있나?”
“그럼 밥 사 드릴 테니, 그다음에 저랑 잠시 어디 좀 같이 가시겠습니까?”
“대, 대체 어디를?!”
마르낙은 주변을 살피곤 자그맣게 속삭였다.
“길거리에서 말하기는 조금 그런 곳인지라…”
한밤중에 밥을 사 주고 어딜 같이 가자니, 그것도 말하기 그런 곳을! 카디쇼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곧, 그녀는 어디선가 들었던 낭설을 떠올렸다.
남자가 한밤중에 여자를 만나러 온다면, 그건 무조건 뻔하다는 이야기가. 특히나 술을 마시자고 할 경우엔.
카디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 술도 마시는 건가?”
“카디쇼가 원한다면 한두 잔은 괜찮겠습니다만… 너무 많이는 곤란하겠지요.”
술도 마신다니! 카디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지금이 한밤중이라 자신의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쩌고… 나랑 가도 정말 괜찮겠나…?”
“예.”
마르낙은 주머니 속에 챙겨온 열쇠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오늘 하수구에서 진탕 뒹군 탓에 다들 곯아떨어진 지 오래였다. 펄리의 말에 따르면 하바스가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했으니, 그 틈에 아비디타스 상단이 가지고 있을 열쇠 조각을 확보해 둬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스승님에게 일행의 안위를 맡기고 바로 카디쇼를 찾아 나섰다. 악신의 숭배자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카디쇼는 그녀의 성격상 분명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게 분명했다.
“어서 가도록 하죠. 전부 제가 사겠습니다.”
“…저, 적극적이군.”
“예?”
“아,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서 앞장서라. 밥도 먹고 수, 술도 마시러 가겠다.”
***
“악신의 숭배자…? 그럼 식사 뒤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예, 악신의 숭배자가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을 발견해서입니다.”
“그런가…”
또르르.
자그마한 물방울 하나가 카디쇼의 눈가를 따라 굴러떨어졌다. 그녀가 생각했던 아찔한 유혹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카디쇼는 마르낙 몰래 눈물을 닦아 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다 알고 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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