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81)
281 화 배신자.
배신자.
‘황금 말고 전부.’
케니는 그 말을 일이 끝나면 연이 레페는 자기가 가지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어찌 된 게 다들 여자에만 눈이 멀어서. 진짜 중요한 건 돈인데 말이지. 물론, 나야 좋지만.’
레페가 제법 예쁘장한 편이긴 했지만, 돈만 있으면 저 정도 되는 여자를 구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케니가 포사에게 눈짓했다. 포사 또한 그렇게까지 여자가 급한 건 아니었기에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니는 연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좋아. 다 가지라고. 청소부 씨. 황금 말고 전부 말이야.”
연은 그 손을 맞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
***
다음날, 아침이 밝아 오르고 휴식을 푹 취한 일행은 저마다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모였다. 몇몇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긴 했지만.
손질을 끝낸 창을 등에 멘 케니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준비 끝났으면 슬슬 움직여 보자. 그 커다란 황금용만 잡으면 아마 근처에 출구가 있을 거 같거든. 다들 봤다시피 거기서 뭔가 더 있긴 힘들 거 같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페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용만 처리하면 다들 황금을 잔뜩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한 번 힘내보죠!”
“그래그래. 포사, 레페. 둘 다 준비됐어?”
포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페도 손질을 끝낸 활을 등에 메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니가 마지막으로 연을 향해 눈짓하자 연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는 짧게 말했다.
“용이 아니라 공룡.”
또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케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야?”
연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황금 나무 밑에 있던 건 공룡이라고. 자꾸 용이라고 불러대지마. 헷갈리잖아.”
“…그래. 공룡. 앞으로는 꼭 공룡이라고 부를게.”
케니는 굳이 저 쓸데없는 데서 고집부리는 동업자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용이라고 꼭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괴물의 명칭이야 뭐로 부르든 좋았다.
중요한 건 그 괴물의 전신이 황금 덩어리라는 점이었지.
“그럼 청소부 씨 말대로 황금 공룡을 잡으러 가보자. 아자!”
이 앞에서 기다리는 황금빛 미래에 살짝 들뜬 케니는 답지 안 하게 기합까지 넣으며 앞장서서 나아갔다. 그의 뒤를 따라 일행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고 마지막으로 발을 뗀 레페는 끝까지 가만히 서 있는 연을 슬쩍 째려보곤 바로 앞에 가는 페르카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아직도 어제 연이 자신에게 거슬리니까 말 걸지 말라고 한데에 조금 삐져있었다.
‘사과란 걸 할 줄 모르나? 본인이 말을 심하게 해놓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만 더 났기에 레페는 최대한 연에게서 신경을 끄려고 노력했다. 노력대로 잘되지 않았지만.
“레페.”
그녀를 부르는 한마디. 레페는 고개를 돌려 페르카를 바라보았다.
“왜?”
“어제부터 갑자기 왜 그렇게 말이 없어?”
“뭐가?”
“아니, 그게…”
약간 까칠한 레페의 태도에 페르카는 오히려 당황했다. ‘뭐가?’라고 되물으니까 또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평소보다 좀 말이 없어서?”
“하아?”
레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지금 물을 말인가?
자신의 말수가 적어진 건 저 케니랑 포사가 합류해서 미세레를 떠나온 뒤로부터 쭉이었다. 그때부터 페르카는 케니랑 떠들어 대느라 자신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말수가 왜 줄었냐고 이제야 물어본다는 건 오히려 페르카가 여태 자신에겐 별다른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단 걸 스스로 인정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긴 이 둔탱이가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
연 때문에 살짝 화가 나 있었지만, 그걸 굳이 애먼 페르카에게 풀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어제 잠자리를 조금 설쳤는지 상태가 그냥저냥이어서 그래.”
페르카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소꿉친구를 바라보았다.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케니한테 말해서 조금 더 쉬다 움직이자 할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페르카.”
정중한 거절. 페르카는 축 처진 분위기라도 띄우기 위해 슬쩍 운을 띄웠다.
“레페는 황금 팔면 생긴 돈으로 뭐할 거야?”
“너는?”
페르카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시원하게 대답했다.
“부모님 드려야지. 나는 딱히 필요한 게 없거든.”
페르카다운 대답. 심심하게 들리지만 올곧은 그런 답. 레페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답네.”
“그래서 너는 뭐할 건데 레페?”
“나야 뭐, 동생들한테 쓰겠지? 돈이 잔뜩 생기면 수도로 보내서 공부 시켜줄 수도 있잖아. 페르카, 너도 알지? 내 동생들 똘똘한 거? 걔네 수도로 보내서 공부시키면 분명 대성할 거야. 암암.”
레페의 동생들은 그녀와 제법 나이 차가 있어 딱히 똑똑하고 말고를 판별하기에 아직 어렸지만 페르카 역시 그녀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거 갈긴 해.”
막상 좋은 상상을 하자 레페의 기분이 조금 풀렸다.
‘나는 관대하니까. 저 좀생이랑 다르게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은 좋은 사람이니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봐도 괜찮겠지?’
‘흠흠.’하고 목을 가다듬은 레페가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쪽은 황금으로 뭐 할 거예요?”
연은 레페를 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할 건데.”
“왜요?”
“아무것도 안 하는 데도 이유가 필요한가?”
“뭐, 바라는 거나 하고 싶은 건 있을 거 아니에요? 보통 돈이면 그걸 다 할 수 있고요.”
“돈으로는 안 돼.”
돈으로는 해결 못하는 일. 그 한마디가 레페의 상상을 자극했다.
혹시 이어질 수 없는 신분 차가 있는 사랑을 하는 건가? 그런데 그것도 나름 돈이 많으면 해결될 확률이 높은데. 그게 아니라면 혹시 이미 그 상대가 죽어버렸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사람 꼬여도 저렇게 최소한의 사교성도 없이 꼬이려면 무언가 큰일이 있었어야 했으니.
연을 바라보는 레페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살짝 아주 살짝 촉촉하기까지 한 그 시선에 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눈빛이 불쾌한데.”
“페르카!”
앞서 걸어가던 케니의 부름. 황금 나무가 있던 광장으로 연결된 문 앞에서 케니가 페르카를 손짓했다.
그건 곧 전투가 닥칠 예정이란 뜻과 같았다. 페르카는 잠깐 레페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어제 그랬던 것처럼 기둥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거대한 황금 나무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져 내리는 빛들이 일행을 비췄다.
빛 한 점 없이 어둑했던 복도와 달리 여러 층을 통과하며 자라난 황금 나무의 주변에는 아직 멀쩡한 광원들이 제법 있었다.
– 그르르르.
나직한 그르렁거림. 황금의 나무에 열린 황금 열매를 베어 물고 있던 황금 공룡이 낯선 침입자를 발견했다. 좁아지는 동공. 물고 있던 황금 열매를 집어삼킨 금빛 공룡은 천천히 고개를 낮추며 자신의 둥지를 침범한 존재들을 향한 선명한 적의를 드러냈다.
케니는 일행을 향해 짧게 시선을 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일제히 흩어지는 다섯. 미리 약속해둔 대로 일행은 최대한 산개하는 형태로 서로의 거리를 벌렸다.
애초에 구성원의 특성상, 굳이 누군가 지켜주거나 해야 할 정도로 둔한 인원은 따로 없었고 그나마 굳이 후위에 해당하는 인물을 꼽자면 레페인데 그녀 하나를 지키겠다고 저 거대한 덩치의 돌진을 받아낼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결국 일행의 전략은 서로 알아서 잘 피하고 잘 때리기로 귀결되었다.
“이봐!!!”
처음 소리를 질러 황금 티라노를 자극한 것은 페르카였다.
– 그라라라라!
워낙 고요하게 살아온 탓인지, 황금 공룡은 귀를 울리는 소음에 진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곧장 페르카를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페르카는 검도 집어넣고 시계방향으로 꺾으며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황금 공룡은 그런 페르카를 쫓아 점점 빠르게 발을 놀렸다.
쿵! 쿵! 쿵! 쿵!
두터운 파충류의 다리가 건물 바닥을 찍을 때마다 그 진동이 일행이 디디고 선 바닥을 흔들어댔다.
케니와 포사는 페르카를 향하는 괴물의 꼬리 쪽을 쫓아 거리를 좁혀나갔다. 커다란 공룡의 턱주가리가 벌어지고 침방울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커다란 아가리가 닫히기 직전, 페르카는 자리를 박차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콰앙!!!
제 가속도를 이기지 못한 공룡의 동체가 머리부터 벽에 세차게 부딪혔다. 그리고 끈질기게 괴물의 뒤를 쫓아온 케니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창을 내질렀다.
황금빛 피가 튀어 오르고 날카로운 창날이 괴물의 허벅지를 깊게 파고들었다.
“하아아압!!!”
이어 낮은 기합과 함께 포사가 전투 도끼를 힘껏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공룡의 발목. 저 거대한 동체가 마음껏 이 공간을 휘젓게 둬선 안 됐으니.
푹!
전투 도끼는 공룡의 발뒤꿈치를 깊게 파고들었다.
– 그라라라라라라!!!
고통 어린 포효를 내뱉은 황금 공룡이 두꺼운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포사는 그 꼬리가 자신을 노리는 것을 확인하곤 미련 없이 괴물의 뒤꿈치에 꽂힌 도끼를 포기하고 몸을 날렸다.
빗나간 황금빛 꼬리가 허공을 세차게 치자 포사에게로 공룡의 꼬리가 향한 덕에 잠깐 여유가 생긴 케니는 허벅지에 박아넣은 창대를 붙잡고 공룡의 가죽을 발판 삼아 자리를 박차며 꽂혔던 창을 뽑아냈다.
– 그라라라라!!!
다시 한번 휘두르는 꼬리, 이번엔 방금 창을 뽑아낸 케니가 목표였다. 케니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정말 간발의 차이만을 두고서 공룡의 꼬리를 피해냈다.
그리고 그 틈을 포사가 파고들었다. 거침없이 달려온 그는 공룡의 뒤꿈치에 박힌 전투 도끼의 자루를 달려오는 힘을 실어 그대로 걷어찼다.
튀어 오르는 피와 함께 깊게 박혔던 도끼가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황금 공룡이 턱주가리를 다시 한번 벌리며 그대로 거슬리는 포사를 집어삼키기 위해 턱을 들이밀었다.
푹!
날아온 화살이 정확하게 황금 공룡의 거대한 동공에 박혀 들었다.
– 그라라라라라라라라!!!!
아까보다 훨씬 더 긴 고통의 포효. 공룡이 고통 어린 포효를 내지르는 사이 포사는 바닥에 떨어졌던 전투 도끼를 주워들었다.
케니는 최대한 황금 공룡과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며 공룡의 상태를 살폈다.
방금 허벅지를 찔러본 결과, 생각보다 그 가죽이 덩칫값을 못 하게 물렀다. 너무나도 쉽게 창날이 박힐 정도로.
보통 저런 덩치의 괴물 가죽은 덩치에 걸맞게 두꺼워서 상처를 입히려면 꽤나 힘 좀 써야 하는 게 그의 상식이었다.
‘가죽이 무른 건, 나중에 도축하기 쉽게 개량된 탓인가? 그렇다면 잘됐네.’
쿵!
황금의 공룡이 다친 다리로 바닥을 찍었다. 생각보다 훨씬 타격이 없는 그 모습에 케니는 자신이 입혔던 상처를 다시 보았다.
‘아까보다 상처의 크기가 줄었어.’
그건 가죽이 예상보다 무른 대신, 재생력이 높다는 뜻. 이렇다면 싸움을 길게 끌어선 안 됐다.
“포사!!! 최대한 빠르게 목숨을 끊는다! 가자!”
“알았다!”
케니의 고함에 황금 공룡의 시선이 케니에게로 향했다. 턱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움직이는 케니의 모습에 공룡은 다시 한번 질주하는 대신 턱을 벌려 케니를 물어뜯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케니는 공룡의 거리. 그 경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것으로 공룡의 아가리를 피해냈다. 그야말로 절묘한 거리 조절.
“하아아아압!!!”
한껏 힘이 들어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근육. 포사는 케니가 만들어준 틈을 이용해 쥐어짜 낸 힘을 전투 도끼에 실어 그대로 괴물의 발목을 후려쳤다.
정확하게 아까 자신이 낸 상처 그 위로.
전투 도끼가 깊은 상흔을 남기로 상처에서 빠져나왔다. 두꺼운 통나무 같던 공룡의 발목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나무 기둥처럼 너덜거렸다.
기우뚱.
발목을 반쯤 잃은 황금 공룡의 거대한 동체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운다. 케니는 잠깐 포사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쿵!
둘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쓰러진 공룡의 몸 위를 타고 질주했다.
– 그라라라라라라라!!!
가죽을 밟고 뛰어오른 케니가 하나 남은 공룡의 눈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은빛으로 일렁이는 창살이 눈알 깊이 처박히고 시야를 잃은 공룡의 포효가 광장을 진동시켰다.
포사는 황금 공룡이 포효를 내지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쓰러진 공룡의 목을 밟고 서서 전투 도끼를 치켜들었다.
도끼의 날이 떨어지고, 공룡의 무방비한 목 위로 자비 없는 난도질이 시작됐다.
저 정도로 거대한 생물과는 처음으로 전투해보는 페르카는 진입할 때를 놓친 탓에 케니와 포사 둘이서 공룡을 반쯤 죽여놓은 지금 상황을 그저 멍하니 구경했다.
저 둘 다 한가락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황금 공룡을 잘 잡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진짜 저 둘이 은패 용병이라고…?’
이곳엔 페르카가 예상했던 사투 같은 건 없었다. 저건 그냥 일방적으로 거대한 짐승을 도축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페르카가 그렇게 멍한 눈으로 케니와 포사를 구경하고 있을 때, 레페는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방에 진입한 뒤로 검조차 빼어 들지 않고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을 구경만 했을 뿐.
마치 케니와 포사, 저 둘이 공룡을 잡을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 그르르륵…
피 끓는 소리와 함께 황금 공룡의 숨이 멎었다. 공룡의 목을 난도질하느라 황금빛 피투성이가 된 케니와 포사는 다시 한번 짧게 눈빛을 교환했다.
결행의 시간이었다.
둘은 죽은 황금 공룡의 몸뚱이에서 내려와 페르카와 레페, 연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황금 공룡을 잡는 데 실패했다면 배신하지 않았겠지만, 황금 공룡을 무난하게 잡아낸 이상 더는 이 지긋지긋한 용병 놀이를 더 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는 황금빛 피투성이인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레페의 옆에선 연에게 미리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약속한 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레페의 배를 걷어찼다.
“케흑?!”
충격을 버티지 못한 레페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