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10)
310 화 정찰
정찰.
“아아아아아. 안들어안들어! 절대 안들을 거예요!”
“쟈멜! 그러지 말고 이불에서 나와서 이야기만이라도 좀 들어줘요! 아니, 이거 이불을 대체 어떻게 뒤집어 썼길래 절대 안 벗겨지는 거야?!”
***
–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대체 왜 프리무스는 어쩌다가 이런 성격이 되어버린 걸까?
몇 번이고 고민해봤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심한 성격은 아니었을 거란 게 내 추측이었다.
아마 디스펜스도 그렇고 프리무스도 그렇고 따로 내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창조자인 실론이 병기는 잠들어 있는 게 맞다고 판단하여 디스펜스와 네 기사들의 복구와 재건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둘은 은연중으로 실론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있는 거겠지.
그 결과, 디스펜스는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나한테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프리무스는 자신이 쓸모 없어서 버려졌다고 여기는 것인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과하게 사라졌었다.
이런 걸 보면 실론과 관련된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던 테르지오가 엄청나게 독립적이고 똑 부러진 성격이었던 셈인가.
“딱히 화난 거 아니니까 그만 고개 박고 일어나. 그리고 다시 잡아 온 거 자체는 잘했어.”
프리무스가 강도를 일부러 풀어줬다 잡아 온 것도 아니고, 페르카가 놓치길 기다렸다가 잡아 온 것일 뿐인데 당연히 내가 딱히 그녀에게 화내거나 할 이유 자체가 없었다.
– 저, 정말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아니, 용서하고 말 것도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 가, 감사합니다! 어찌나 관대하신지! 이 프리무스, 골백번 죽을 때까지 주인님께 개처럼 충성하겠습니다!
“어.”
대충 대답한 나는 도망쳤던 포로의 입을 막고, 다시 팔다리를 묶고 있던 페르카와 레페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레페가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말했다.
“…다음번엔 안 놓칠게요. 죽이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조금만 수틀려도 사람 죽이는 쓰레기인 줄 알겠네.”
내 옆으로 쪼르르 다가온 솜니아가 바닥에 제압된 강도를 발로 툭툭 건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완전 틀린 말은 아니잖… 아아아! 아팟!”
“건강에 좋은 거야. 아마도. 그러니 참아.”
“아파파파!!!”
나는 오른손가락 다섯으로 솜니아의 머리에 진심어린 두피마사지를 꾹꾹 해주며 레페를 바라보았다.
“얘를 너희가 왜 놓친 거 같아?”
마지막으로 양 발목을 묶은 페르카가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용변을 본다는 말에 속아서 제가 너무 방심한 거 같아요. 조금 더럽더라도 계속 지켜봤어야 했는데…”
“네가 조금 느슨하게 감시한 것도 맞긴한데, 근본적인 이유는 그게 아냐.”
“그럼요?”
바닥에 처박힌 묶인 강도의 머리를 발로 꾹 눌렀다. 머리를 밟힌 강도가 격렬하게 버둥댔다.
“으으읍?!”
“이대로 밟아서 대가리 터뜨려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내 위협을 알아들은 것인지, 강도의 버둥거림이 멎었다. 애초부터 그리 세게 누르고 있지도 않았는데 엄살이 심한 놈이네.
나는 발로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는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놈이 도망친다는 가능성을 떠올릴 만큼 너희가 만만해 보였다는 거지. 생각해봐. 이놈이 한 번 도망치다 잡힐 때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기로 되어있었다면 과연 쉽게 도망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못 하지. 혹시나 도망치다가 잡히면 앞으로 평생 외팔이로 살아야 할 테니까.”
머리에서 발을 떼어내고 녀석의 오른쪽 팔 위로 발을 옮겼다. 녀석의 팔뚝 위에 올려둔 발로 눌렀다.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하게.
“으으으읍?!”
“너, 한 번만 더 낑낑대면 평생 한쪽 팔 없이 살아야 할걸? 그러고 싶으면 더 낑낑대던지. 굳이 말리진 않을게.”
다시 강도가 침묵하고, 나는 레페와 페르카를 향해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는 지난 며칠 동안 얘한테 쓸데없이 너무 잘 대해줬어. 하도 잘 대해주니까, 얘는 이렇게 생각한 거지. ‘아, 혹시 도망치다가 잡혀도 이런 호구들이면 그냥 몇 번 주의를 주고 끝내지 않을까?’ 이렇게. 정확하게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도 이놈은 무의식중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러니까 별다른 준비도 없이 기회가 생기자마자 충동적으로 튀었던 거지.”
뚜둑.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한쪽 팔뚝이 깔끔하게 꺾였다.
“읍?! 으으읍!!!”
갑작스러운 고통에 강도 녀석이 내 경고도 잊고 비명을 내질렀다.
“야야, 부러뜨리기만 한 거야. 부러진 뼈는 언젠가 다시 예쁘게 붙어. 근데 완전히 뭉개진 뼈는 과연 다시 붙을까?”
“…”
“기세 좋게 도망치다 붙잡혔으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해야지. 일단 계속 닥치고 있어 봐. 나 말하는 중이니까. 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맞다. ‘만만해 보였다.’ 이거였지?”
강도의 몸에서 발을 떼어낸 나는 둘에게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튼, 얘는 한 번쯤 도망쳐도 괜찮을 거로 생각한 거야. 도시에 가서 자수하자니 이런 만만한 놈들한테 잡혀가는 건 좀 아닌 거 같고, 자수해서 벌 받기도 싫어졌겠지. 이번엔 나나 프리무스가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났지만, 만약에 너희 둘이서 얘 한 명을 잡아서 데리고 가고 있었다고 생각해봐. 틈이 생겼을 때, 과연 그냥 도망치기만 했을까? 사람들 강도질하던 놈이?”
내 말에 둘 다 나름의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한 것인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의를 베푸는 것도 좋지만, 대책 없이 무작정 베푸는 선의는 언젠가 너희 목을 최악의 형태로 조여오게 될 거야. 뭐, 너희도 다 큰 어른이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테니 굳이 더 잔소리하진 않을게. 오늘 자면서 생각이나 좀 해보라고. 하암.”
하품을 쩍쩍한 나는 팔 부러진 강도를 레페와 페르카 쪽으로 발로 툭 밀어주고는 등을 돌렸다.
대충 내 자리로 돌아와 드러눕자, 내 뒤를 쪼르르 따라온 솜니아가 내 옆에 자신의 잠자리를 펴고 있던 와중에 페리토드가 이쪽으로 설렁설렁 다가왔다. 그녀는 불가에 쭈그려 앉더니 내게 물었다.
“저 둘이랑 친척이야?”
내가 딱히 반말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안 뒤로 페리토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말을 놔왔다.
“하나도 안 닮은 거 뻔히 안 보여?”
“아니, 엄청 자상하게 챙겨준다 싶어서. 혹시 친척인가 했지.”
방금 그 광경에서 자상함이 대체 어디 있었지? 내가 한 짓이라고는 둘이 보는 앞에서 도망친 강도놈 팔을 부러뜨리며 으름장을 놓은 것밖에 없었는데.
“방금 그게 자상하게 느껴졌다니, 너 혹시 어릴 때 맞으면서 자랐어?”
“…와, 말 엄청 심해. 우우. 쓰레기.”
솜니아의 감탄에 아까 친절하게 두피를 마사지해줬던 손을 슬쩍 내보여 위협하자, 그녀는 그대로 잽싸게 자신의 이부자리 속으로 몸을 쏙 감췄다.
정작 페리토드는 내가 한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모닥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밀어 넣으며 말했다.
“돈 한 푼 안 받으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주면 자상한 거지. 거기다 저렇게나 무방비한 둘한테는 ‘그것도’ 있잖아?”
굳이 특정해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페리토드가 하는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
황금을 저런 맹한 둘이 가방 가득히 들고 다닌다는 것.
나는 드러누워서 고개만 돌려 그녀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 마법사. 역시 마법사 놈들은 믿을 수 없다니까. 은근슬쩍 다가와서 레페와 페르카의 황금을 털자고 내게 제안하다니. 네놈들에겐 신의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건가?”
“뭐래.”
너무 자주 갈궈버린 건가. 이제는 익숙하단 듯이 제 할 일 하며 받아치는 통에 골리는 재미가 없네. 원래 이런 건 찌를 때마다 발끈해줘야지 재미가 있는 법인데.
“됐다. 잠이나 자야지.”
페리토드에게서 등을 돌리고 두 눈을 감았다.
안식을 위한 잠이라기보다는 다시 임페트로와 수련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
며칠이 지났지만, 사로잡힌 강도 놈은 굳이 또 도망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건 페르카와 레페가 녀석의 감시를 잘했기보다는 내가 팔을 부러뜨리며 겁을 제대로 준 탓이 컸겠지만.
리어카를 달달 끌며 걷던 와중, 슬슬 다음 도시에 도착할 때가 됐다는 느낌이 들자 저 멀리서 새로운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페르카에게 듣기론 저 도시의 이름은 레포스, 페르카와 레페의 고향 도시의 바로 옆도시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아마 고향 사람들 중 몇이 저 도시에 있을 수도 있다고 했던가.
이번엔 도시가 보였다고 바로 도시로 진입하지 않았다. 그 전에 어느 정도 미리 확인해둬야 할 게 있었으니까.
“너희는 일단 여기 짐 풀고 쉬고 있어. 잠깐 다녀올 테니까.”
레페는 저 멀리 보이는 레포스 시를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빨리 가서 숙소부터 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침 경비대에 인계해야 할 사람도 있고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라는 거야. 강도 놈은 나무에 묶어놓던지 하고.”
시선을 옮겨 레페와 페르카, 솜니아를 지나 페리토드를 쳐다보았다.
쟤는 어쩌지.
지난 며칠간 딱히 페리토드가 황금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인 그녀를 여기에 남겨두고 가기엔 조금 많이 찝찝했다.
마치 동물을 배에 태워서 강 건너기 하는 문제에서 늑대랑 양을 같이 놔두고 강을 건너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법사인 그녀가 작정하고 레페랑 페르카를 기습하면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치고 말겠지.
하아. 내가 조금 더 귀찮음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나.
“너는 따라와.”
주섬주섬 자리 잡고 쉬려던 페리토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가락을 펼쳐 자신을 가리켰다.
“…나?”
“그래, 너.”
페리토드는 레페랑 페르카 쪽을 힐끔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지 뭐.”
그녀가 다시 몇 가지 짐을 챙기는 사이, 나는 레페에게 말했다.
“아마 그리 오래 안 걸릴 거야. 근데, 해가 져도 내가 안 돌아오면 다음날 아침까지만 기다려보고, 날이 밝았는데도 내가 안 오거든 나 찾지 말고 그냥 바로 짐 싸서 너희 고향으로 떠나. 알겠어?”
“왜요? 레포스 시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나는 허리춤에 절망을 차며 말했다.
“몰라. 그래서 확인하러 가보는 거지. 프리무스.”
– 예! 주인님!
“너는 여기 남아. 무슨 일 생기면 디스펜스를 통해서 연락하고. 알겠어?”
– 넵! 알겠습니다!
“나 이제 가도 되는데.”
대충 잠깐 다녀올 만큼 짐을 챙긴 건지 페리토드가 짐을 다 챙겼다고 알려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
***
도시와 그 안과 밖을 가르는 높다란 외벽. 나는 그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옆에 서 있던 페리토드가 물었다.
“정문으로 안 들어가?”
“그럴 거면 강도놈도 챙겨와서 겸사겸사 경비대에 넘겼지.”
선신의 사제놈들이 이 도시로 향한 이상 이곳에 왜 왔는지, 그리고 누가 온 건지, 그 정도는 미리 파악해둬야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페르토드에게 물었다.
“너, 벽 잘 타는 편이야?”
페리토드는 높다란 외벽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름 잘 타는 편인데, 이건 못 탈 거 같… 꺄아아아아악!!!”
내가 내던진 페리토드의 몸이 잽싼 새처럼 치솟아 외벽 위로 떠 올랐다. 나는 날아오르는 페리토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우리 벽 넘어간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네.”
페리토드를 따라 자리를 박차고 빠르게 벽에 튀어나온 틈들을 밟으며 외벽을 거슬러 올랐다. 일부러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고른 덕에 외벽 위엔 아무도 없었다.
내 절묘한 힘 조절 덕에 치솟아 오르던 페리토드의 몸은 외벽의 꼭대기보다 살짝 높은 곳에서 멈추고는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부드러운 몸이 내 품으로 떨어졌다. 안 받아줄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떨어져서 다치기라도 했다간 사람만한 짐덩이가 생기는 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어지간히 놀란 건지, 페리토드의 두 눈은 습기로 촉촉했다.
나는 그녀를 대충 놓아주고 말했다.
“일단 움직이자. 누가 쓸데없이 컸던 네 비명을 들었을 수도 있어.”
페리토드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나를 뜨겁게 노려보았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말도 없이 집어 던질 수가 있어?! 그대로 떨어져서 죽는 줄 알았다고!”
“그러게 진작에 벽 탈 줄 알지 그랬어. 나도 네가 벽 탈 줄 알았으면 안 던졌어. 됐고. 따라오기나 해. 이제 우리 들키면 불법 침입으로 감옥행이니까. 아, 나는 네가 감옥에 갇히게 되도 굳이 구할 생각 없어. 미리 알아둬.”
“네가 데려와 놓고, 정작 잡히면 구하지도 않겠다고…?”
“어.”
페리토드는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소리쳤다.
“그건 진짜 너무하잖아! 잡히면 네가 데리고 왔으니까 적어도 꼭 구하기라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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