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40)
40 화 진화.
진화.
빠르게 기도의 말을 읊고 있던 키르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너희도 느꼈어?”
루툼과 펠름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 그들이 불러일으킨 적 없는 신성이 화려하게 피어올라 아릿하게 퍼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이곳에 누군가 숨어 있었다. 아마 그자가 바로 저 불길한 거인을 불러일으킨 자이리라.
키르나를 포함한 셋은 마르낙이 악신의 숭배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정확히는 펄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마르낙이 악신의 숭배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건 전부 펄리가 철저하게 자신이 에라디코에서 본 광경에 대해 침묵한 탓이었다.
그들은 아우렐리우스의 상단에 악신의 대적자로 유명한 마르낙이라는 사제가 합류한 것까지는 알았지만, 그는 그저 소문대로 유지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일 뿐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당연히 유지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저런 거인을 불러내지 못했고, 그 사실에 기반을 둔 키르나의 추리는 저 거인을 불러낸 범인이 마르낙이라는 데에 닿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갑작스럽게 난입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죽여버린다!!!]게다가 지금 당장 저 분노한 금인족을 어떻게든 막아내야만 했다. 키르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될 대로 돼라지. 일단 하나씩 깨부순다.
“키르나!”
“왜! 나 바쁜 거 안 보여? 응?”
만신창이가 된 채로 간신히 공세를 버티고 있는 거인. 루툼은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수들을 조종하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일이 잘 풀렸어! 나 혼자 잡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저 거인한테 쓰려고 준비하던 그거 그냥 저 금인족한테 쏴버려!”
키르나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간만에 반가운 소리네! 펠름! 부탁해! 연계하는 거야!”
“그러지.”
더벅머리 사내가 발을 구르자 다시 한 번 아우렐리우스의 그림자에서 새카만 손들이 뻗어 나왔다.
[똑같은 수법에 또 당할 거 같으냐!!!]쾅!
금속으로 이루어진 말의 하반신이 바닥을 박차자, 반인반마의 금속 기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당연히 지면과의 거리가 멀어졌고, 그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손들은 떠오른 아우렐리우스의 발목을 붙잡지 못 했다.
그는 침착하게 하늘빛 머리 여자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충분히 닿을 수 있다. 애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망설임 없이 뛰어올랐다. 솟아오르던 몸이 한껏 가속한 그대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몸만 한 랜스를 최대한 뒤로 끌어당겼다. 한순간에 폭발시키기 위한 준비. 활공의 끝에 찾아올 그 짧은 순간, 모든 힘을 일점에 쏟아붓는다. 낙하한다. 여인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기다린다. 최적의 순간을 위해.
마침내 찾아온 최적의 순간.
아우렐리우스가 랜스를 내질렀다. 낙하하는 금속 덩어리의 질량이 더해진 충격이 여인의 머리를 터뜨려버리기 위해 나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여인은 웃고 있었다. 가는 손가락의 끝이 단단한 창날처럼 아우렐리우스의 얼굴을 가리켰다. 키르나는 손가락을 펼치고 나지막이 자신의 신을 불렀다.
“‘눌어붙은 얼음’이시여.”
얼어붙는다. 신성이 만들어낸 기적. 그 기적이 낙하하는 아우렐리우스의 주변이 공간째로 동결됐다.
쿵.
바닥으로 떨어진 얼음이 깨져나갔다. 아우렐리우스의 몸과 같이. 키르나는 약간의 흥분과 피곤함이 담긴 눈빛으로 얼어붙은 금인족의 상반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해도 내가 직접 코어를 파괴하기 전까진 안 죽는다 이거지? 아, 나도 금인족으로 태어날 걸 그랬나?”
“누가 들으면 종족을 고를 선택권이라도 있었던 줄 알겠군.”
“그냥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말 한마디 한 거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들지 마. 되게 없어 보이니까!”
펠름은 키르나의 핀잔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대답했다.
“저쪽도 거의 다 끝나가는군. 루툼이 아주 잘 해주고 있다.”
키르나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렸다.
“쟤가 성격이 조금 찌질하고 혓바닥이 쓸데없이 길긴 해도 실력 하나 확실하잖아. 그래서 같이 다니는 거기도 하고.”
– 그 아 아 아 아 아…
거인은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설원 박쥐들은 약해진 포식자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거인의 몸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상처를 회복하고 있긴 했지만, 설원 박쥐들과 카펠의 집요한 공세는 상처들이 채 아물기도 전에 그곳을 다시 터뜨리고 찢어 벌렸다.
마침내 덜렁거리던 거인의 왼팔이 뜯겨나갔다.
긔이이이익!!!
거인의 팔을 뜯어낸 카펠이 희열 가득한 포효를 터뜨렸다. 루툼은 침착하게 흥분한 카펠을 진정시키고 다시 거인에게 달려들도록 유도했다. 승리를 기뻐하는 건 거인의 숨통을 끊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키르나가 루툼의 어깨를 두드렸다.
“얼른 끝내고 좀 쉬자. 진짜 오늘 너무 많이 움직였어. 적당히 눈사태만 일으키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
그 순간.
거인의 상처에서 신성이 어두운 녹색 빛으로 화해 넘쳐흘렀다. 전신의 구멍들이 막대한 양의 신성을 토해냈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 어어?! 저거 대체 뭐야?!”
괴수들을 지휘하던 루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일단 잠시 물러났다가 변화가 끝난 다음에 다시 공격을 개시해야 하나?
고민은 짧고 결단을 빨랐다.
이미 다 죽어가던 거인. 여기서 멍청하게 기다려준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건 등신들이나 할 짓이었다. 루툼은 설원 박쥐와 카펠에게 거인의 몸을 난도질하라고 명령했다.
허공을 가르고 설원 박쥐가 거인을 향해 쇄도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거인의 몸과 충돌했다.
까앙!
발톱이 거인의 피부를 긁던 순간, 어두운 암녹빛 신성이 금속으로 화해 거인의 몸을 감쌌다.
군데군데 좀먹고, 잔뜩 녹이 슬어있는 전신 갑옷.
부식된 갑옷을 입은 거인이 어느새 회복된 양손을 허공에 집어넣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인의 양팔을 집어삼켰다.
거인의 손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냈다. 굵직한 손이 다시 현실로 튀어나왔다.
하늘을 날던 설원 박쥐들이 토막 난 살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거대한 사각형 식칼 두 자루.
거인이 녹슨 철로 뒤덮인 입 가리개 사이로 포효를 터뜨렸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거대한 식칼이 한 번 더 허공을 갈랐다. 남아있던 설원 박쥐들이 잘려나간 고깃덩어리가 되어 추락했다.
거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수모를 복수하겠다는 듯이 높게 치켜든 식칼을 내려찍었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던 카펠이 산 채로 반 토막 났다. 잘린 단면을 따라 온갖 장기들이 쏟아졌다.
부패의 거인은 도망치는 카펠을 단 한 마리도 살려 보내지 않았다. 양손에 든 식칼을 휘둘러 자르고 토막 내고 뭉개버렸다. 부식된 갑옷 위로 괴수들의 피와 살점들이 튀었다.
– 그 르 르 르 르 르…
마지막 카펠을 뭉개버린 거인의 시선이 악신의 숭배자들을 향했다. 키르나는 그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튀, 튀자! 펠름! 펠름! 빨리 그림자!”
“아, 알았다.”
콰직.
새빨간 피와 살점이 비산했다.
“꺗?!”
키르나는 숨을 들이 삼켰다. 펠름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거인이 던진 식칼이 그를 뭉개버렸다. 던지다니! 그걸 던지다니! 그렇게 소중하게 꼭 쥐고 있더니! 그걸 던져?!
거인이 손을 치켜들었다. 거대한 식칼을 꼭 쥐고서.
또 던진다.
키르나는 거인을 지켜보면서 달려나가려고 했다. 식칼을 던지면 곧장 몸을 날릴 생각으로.
턱.
하지만 달려나가려던 그녀는 무언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다.
[그, 그냥은 못 보내준다···.]한쪽 팔만 남은 금인족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거 놔! 놓으라고!!!”
이미 한계였던 금인족의 손이 그녀의 버둥거림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깨졌다. 그녀가 넘어진 사이, 루툼은 이미 저만치 멀리 달려간 뒤였다.
키르나가 애절하게 소리쳤다.
“사, 살려줘! 루툼!”
루툼은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뒤도 안 돌아보고 눈밭 위를 달렸다.
콰앙!
그리고 뭉개졌다. 식칼에 짓눌린 시체의 파편이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두 개! 두 개 다 던졌어!
키르나는 벌떡 일어나서 눈밭 위를 달렸다. 그녀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열심히 달렸다.
쾅! 쾅! 쾅! 쾅!
육중한 뜀박질 소리. 굉음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거인의 손이 키르나의 몸을 잡아챘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싫어어어어어!!!”
부패의 거인은 치켜든 손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키르나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으깨져서 죽었다.
거인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장렬한 거인의 포효는 어딘지 모르게 설움을 토해내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아우렐리우스는 포효 속에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나는 부패의 거인을 강화했다.
그것이 우리의 암묵적 약속이었으니까.
부패의 거인은 나를 믿었고, 나는 그 믿음에 답하지 않으면 거인이 대차게 삐지고 말 거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부패의 거인을 강화한 결과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부식된 갑옷을 입은 전사가 된 거인은 홀로 악신의 숭배자 셋을 때려잡았다.
거기다 모든 악신의 숭배자를 죽인 부패의 거인은 갑자기 대지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뭉개진 시체들에서 솟아오른 신성이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신성 : 6379]나 대신 수확까지 하다니.
“이거 강화 안 해줬으면 제가 섭섭할 뻔했습니다.”
‘살해?!’
쟤 저런 것도 할 줄 알았냐는 당황. 나는 멋대로 소녀의 몸으로 화해 튀어나온 어머니를 안아 들었다.
“직접 내려주신 권능이시지 않습니까? 대체 왜 놀라십니까?”
‘살해!’
몰라서 모른다고 한 건데, 왜 놀라냐고 물어보면 어쩌냐는 물음.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머니.”
내가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어머니께서 갸우뚱거렸다.
‘살해?’
“말솜씨가 조금 느셨군요! 혹시 봉인 풀리실수록 머리도 좋아지시는 겁니까?!”
어머니께서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살(殺)!!!’
그 말은 여태 나를 바보 취급하고 있었던 거냐며 여전한 솜주먹으로 내 가슴을 토닥였다.
이젠 확실했다. 어머니께선 이해력도 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10살 즈음으로 보이던 어머니가 엄청나게··· 자라진 않았지만, 예전보단 확실히 더 자라있었다. 이젠 넉넉히 잡아 12살 즈음은 되어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꼭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바보취급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어머니를 경애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제가 얼마나 어머니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아주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살살 달래주자, 어머니께서 가슴을 토닥이던 주먹을 펴서 내 몸을 껴안아왔다.
‘살해…?’
혹시 아팠느냐는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여기서 그 솜주먹으로 때려봤자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면 또 화내시겠지.
“저는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여태 내 옆에 서 있던 다키아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신이 아니라, 마르낙 사제님의 숨겨둔 딸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죠?”
‘살해!!!’
심히 무례하다는 분노어린 외침.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어머니가 다키아를 향해 양손의 중지를 펼쳐보였다. 다키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다.
“저거 무슨 뜻이에요?”
“… 그냥 조금 화났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어머니.”
‘살해?’
어머니는 다키아를 향해 양손의 중지를 꼿꼿이 세운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쌍뻐큐를 날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소녀라.
잠깐 내가 뭔가 잘못 가르친 건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버둥대며 날뛰는 것보다는 저렇게 양손 중지를 펼쳐보이는 걸로 화를 푸는 게 훨씬 더 신사적인 분노해결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저 중지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나 뿐이기도 했고.
중지 건은 일단 보류. 깔끔하게 고민을 정리한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혹시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생기셨습니까?”
턱을 톡톡 두드리며 한참을 고민하던 어머니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살해!’
“어떤 겁니까?”
어머니는 엄지를 펼쳐서 자신의 가슴을 콕 찍고는 힘차게 외쳤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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