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3
163. 일장촌극[一場寸劇]
“어른스럽지 못하십니다 장 소저.”
“뭐!? 여기서 날 혼내는 거야!?”
한참 황보위향과 눈싸움 중이던 장설린은 장백서가 자신을 책망하자 당황해서 소리쳤다.
“시비는 저 년이 먼저 걸었다고!!”
“그래도 장 소저 쪽이 좀 더 어른이시지 않습니까?”
“웃기고 있네!! 나랑 저 꼬맹이랑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다고!!”
“…….”
확실히 평균 성인 여성보다 키가 큰 장설린과 나이에 비해서도 조금 작은 황보위향은 외향으로만 보면 서너 살 이상 차이가 나 보이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실제 나이 차는 한 두 살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까지 우리를 바닥에 집어던진 채로 있을 셈이야!?”
“아, 잊고 있었군요.”
장백서는 충돌하려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그대로 둘 다 집어 던져 버렸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도 두 사람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장백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실례……!”
후웅!
여전히 두 사람의 손목을 틀어쥐고 있던 장백서는 손을 살짝 뒤틀었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두 사람이 마치 땅에서 튕겨지듯 자리에 기립했다.
“!?”
뭐……!?”
도대체 어떤 수를 사용한 건지 감도 오지 않는 장백서의 기술에 두 사람은 경악했고 당연히 주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 역시 그 기술에 감탄했다.
그렇게 경악과 감탄에 말을 잃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장설린은 장백서에게 들으라는 듯이 투덜거렸다.
“젠장, 나는 도대체 왜 집어 던진 건데? 시비는 저쪽이 먼저 걸었다고!”
장설린은 집어던져진 분까지 모두 담아서 황보위향을 째려보았고 그녀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장설린을 쏘아보았다.
그런 황보위향을 보고 혀를 찬 장설린은 장백서에게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같은 입장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일을 들먹이면서 정사지간의 회색분자 취급하며 일방적으로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냐는 말이다!! 내가 어지간해서는 이런 유치한 싸움에는 나서지 않으려 했는데 저 어린 년이 하는 말이 도를 넘어서 이렇게 직접 나선 거다!”
장설린은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그리 소리쳤고 그녀와 같은, 회색 분자로 몰린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횡보위향과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이 들먹이는 이야기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옛날 옛적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같이 힘을 합치고 뭉쳐야 하는 이런 시기에 갑자기 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며 분쟁을 유도하니 그들로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장백서 역시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어라 해보았자 현 상황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애초에 그들은 시비를 건 쪽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린 쪽이었으니까.
스윽
장백서는 고개를 돌려 황보위향을 쳐다보았다.
“……으….”
장백서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황보위향은 장난을 치다 걸린 아이 마냥 안절부절 못해하며 손가락을 꼼지락 대고 있었다.
속된 말로 도둑이 제발 저리고 있는 것이었다.
“…….”
여기서 그녀를 다그치고 나무라고 창피를 주며 쏘아붙이면 지금 이 상황은 간단히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에게 동조했던 이들도 금세 손바닥을 뒤집고 그녀를 비난하고 장백서의 편을 들 터이니.
원했던 일은 아니지만 현재 이 무리에서 장백서는 확고부동한 장이었으며 또한 일원들의 동경과 존경, 그리고 신뢰의 대상이었다.
정도제일주의의 이야기가 이들의 불안을 틈타 빠르게 스며든 것처럼, 이들의 장백서에 대한 신봉 역시 같은 원리로 빠르고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속된 말로 여기서 장백서가 누구 한 명을 묻어 버리려고 선동을 하면 아무 죄 없는 이 한 명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윽
장백서는 한 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보위향과 눈을 맞추었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에 비해서도 체격이 좋은 장백서와 또래의 여자들과 비교해도 체격이 작은 황보위향은 그렇게 해서야 겨우 눈 높이가 맞았다.
“황보 소저, 괜찮으시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신 것인지 저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싱긋
장백서는 상냥한 미소를 띄고는 그리 물었고 당연히 호통과 욕설이 날아들 것이라 생각한 황보위향은 예상외의 상냥함에 주춤거리면서도 눈을 맞추었다.
“……그, 그게…….”
황보위향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 끝을 흐렸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하지만 장백서는 그녀를 채근하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그런 장백서의 태도에 주섬주섬 두서없는 말을 꺼내던 황보위향은 이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 사파의 인간들은 쓰레기에요……! 비인무도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는……!! 자, 장 대협도 봤잖아요!! 우리를 습격한 흉수들을……!!”
처음에는 장백서만을 보며 말하던 황보위향은 이내 고개를 들어 회색 분자로 몰린 이들을 기분 나쁜 무언가를 보듯이 보며 말했다.
“지금이야 어찌 됐던 저들의 사문은 과거에 정사지간의 회색 영역에 있었던 이들입니다!! 이유가 뭐가 됐던 사파의 편에 섰던 이들이라구요!! 그, 그런 자들과는 한시라도 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
“…….”
장백서는 입맛이 썼다.
이번 습격에서 백천회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 그 첫 번째가 정도의 후기지수들에게 사파와 마도에 대한 혐오와 증오, 그리고 편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황보위향의 모습을 보건데 그 목적은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장백서가 자리에 있기에 황보위향의 의견에 찬동했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지만 당장 황보위향과 비슷한 편견과 혐오를 가지게 된 이들은 꽤 많다고 봐야 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편견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보았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이니…….’
이미 확고한 편견을 가진 자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하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분쟁을 막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저들이 과거 정사지간, 혹은 회색 영역에 있었던 문파의 제자들이라 싫다…… 황보 소저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황보위향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그녀와 여전히 눈을 마주친 채로 장백서는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혹, 마인의 자식이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신강에 자리를 튼 신…… 마교의 마인, 만약 제가 그 마인의 후손이라 한다면 어쩌실 거냐 묻고 있는 겁니다.”
“그, 그건……!?”
정도의 후기지수들에게 있어 사파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악이라면 마도는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긴 시간 교류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중원에서는 마인들을 더욱 사악하고 위험한, 상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공존할 수도 없는 악마들로 묘사해왔고, 특히 어린 후기지수들에게 있어 마인이란 인간의 형체를 한 사악한 괴물, 그 이상의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장백서가 갑자기 자신이 그런 마인의 후손이라 말하니 황보위향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왜 하시는 거죠!? 애초에 유현문은 개문 이래 쭈욱 정도 문파였을 텐데…….”
“말씀대로 유현문은 사천 강정현에 처음 터를 잡은 이후로 계속해서 정도문파로 지조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파의 이야기고 제 혈통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자, 이제 제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만약 제가 마인의 후손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죠?”
대답을 재촉하는 장백서의 말에 채 당황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황보위향은 떠듬떠듬 대답했다.
“그, 그거야…… 선조가 어떻든 간에…… 장 대협은 훌륭한 협객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누구보다 솔선 수범하시고…… 그리고 저와 지여를 구해주신 분이시고…….”
말하던 도중 황보위향은 멈칫했다.
장백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신 점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합니다 황보 소저.”
“……저, 저는…….”
“황보 소저는 배경이나 출신성분에 휘둘리지 않고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해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눈과 사고방식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잣대를 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장백서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뒤편, 황보위향의 맞은 편에 있는 회색분자로 몰린 이들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마도의 후손이란 말을 했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릅니다, 제 선조가, 아니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네?”
“사리분별도 되지 않는 어린 시절, 버려진 건지 그도 아니면 양친이 두 분다 돌아가신 건지…… 길거리를 전전하고 있던 저를 현재의 제 사부님께서 거두어 주셨고 그대로 유현문에서 지금 까지 살아왔습니다, 선조, 혹은 부모가 마인일 수 있다 말한 것도 사실은 허세 같은 것이고 어쩌면 제 아비, 혹은 어미 되는 사람들은 사파의 사람일수도, 또 어쩌면 흑도의 왈패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못한 범죄자나 살인자 혹은 창부와 어깨였을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마치 잔잔한 옛날이야기라도 들려주듯,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는 장백서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였고 그의 목소리에, 그리고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어떠십니까? 이런 말을 들이니 제가 더럽거나 혐오스러워 보이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플 정도로 느끼고 있는 황보위향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장백서는 말없이 미소 지었고 다시 황보위향에게 회색분자로 몰린 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저들이 어떤 비겁하고 무도한 짓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혹여 저들이 흉수들과 내통하고 정보를 흘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도 아니면 저들 중에 원지여 소저를 상처 입힌 이들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저들 중 누구도 그런 이는 없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방울 방울 흘릴 뿐인 황보위향을 잠시 바라보던 장백서는 이 자리에 모인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서글픈 일이지요, 우리내 인생에서 그것이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 데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하지만.”
장백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들과 눈을 마주치고 힘주어 외쳤다.
“최소한 어떻게 살아갈지는…… 무엇을 이루어 갈지는 우리들의 손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분명 황보 소저의 말대로 저분들의 사문이 과거, 일신의 안락이나 위기를 피하기 위해 백도를 저버리고 회색에 물든 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비겁하다고, 혹은 추하다고 말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 틀릴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것을 선택한 당사자가 아닙니다, 선조의 죄와 문파의 업이 없는 게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아직 본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이들에게 ‘죄인’ 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차별하고 혐오할 이유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으,흐아아아앙!”
그 말이 결정타가 되었는지 황보위향은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고 장백서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 진정된 듯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두가 불안하고 힘드시다는 사실, 이 장모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이유삼아 서로 헐뜯고 싸워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마치, 군을 지휘하는 장수처럼 목청 높여 소리치는 장백서의 모습에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만약 그럼에도 힘드신 분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얼마든지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그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나약하고 마음 편한 ‘목소리’ 따위에 현혹되지 마십시요! 이런 때일수록 불안을 떨쳐내고 똘똘 뭉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저를 믿어주십시요!”
장백서의 말에 군중의 반응은 공감에서 호응으로, 이내 열광으로 번져 박수를 치거나 격한 동의를 보이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래봬도 회귀 전 검마로 십 년 넘게 굴렀던 장백서였다, 군중을 통솔하고 하나되게 하는 것쯤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친구’가 준비한 한 편의 촌극을 밟아 으깬 장백서는 열정을 위장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고 있겠지, 알 만하지, 네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잘 싹을 틔우나, 얼마나 반향을 일으키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을 거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번 일 역시 이전에 유력문파와 중소방파끼리의 편가르기를 시도했을 때처럼, 손해볼 일 없는 상황에서 강가에 조약돌 하나 던져보는 정도의 별거 아닌 일일 터였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 광경을 보며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거나 혹은 혀를 차며 짜증을 내고 있겠지.
장백서가 일장연설 중 목소리란 표현을 쓴 것도 ‘친구’ 그 자와 그가 사용한 사술과 환술에 대한 경고의 차원이었다.
네가 어떤 방식으로 수작질을 벌였는지 나는 알고 있다는 의미의……
그가 이렇게 집요하게 내부분열을 시도하는 이유는 뻔했다.
이번 습격은 방금 황보위향이 보여준 모습처럼, 사파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조장해 세뇌시키기 위한 의도만 있는 게 아니었다.
후기지수를 죽인 뒤 그 범행을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워 정파내부의 은원관계를 조작하기 위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자는 십중팔구는 친구 본인일 거고, 그, 혹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좁은 범위에 벌 때처럼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결코 좋은 공작 환경이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이리 집요하게 수작질을 벌이며 내부 분열을 노리는 것이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놈도 이제는 알겠지, 더 이상 이런 내부분열을 노린 수작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아무리 흔들려고 해도 이미 이 집단은 장백서라는 확고하고 강한 지도력을 가진 무리의 장이 꽉 틀어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과 같은 조잡한 내부분열은 아무리 시도해 보았자 장백서가 개입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흐지부지해질 게 뻔했다.
‘자…… 이번에는 또 어떤 수작질을 부릴 생각이냐 ‘친구’? 네가 무슨 계획을 꾸미던 간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는 그 순간이 네놈의 명이 다하는 순간일 테니까.’
장백서는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완벽히 특정 지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잡힐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