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51
251. 백가면
“후우우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혈천강혼경의 힘으로 강선호를 집어삼킨 남궁제천의 상태가 안정되었다.
“어떤 기분이야?”
“…….”
백가면이 질문했지만 남궁제천은 침묵할 뿐이었다.
“어이, 무시하지 말라고? 네 요청에 따라 강선호의 제자들을 처리한 나에게 감사인사 정도는 해도 되잖아? 그도 아니면 외도에 떨어진 슬픔에 취해있기라도 한 거냐?”
“닥쳐라!!”
‘외도’라는 말에 남궁제천이 분노했다.
마음이 흐트러지자 그의 얼굴에서 희뿌연 연기가 스며나왔고 인간의 얼굴 형태를 갖추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기의 형상은 강선호와 똑 닮아 있었다.
희뿌연 연기로 이루어진 강선호의 얼굴이 괴로운 듯 일그러지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날뛰지 마라… 네놈은 이미 죽었으니까!”
남궁제천이 일갈하자 연기로 이루어진 강선호의 얼굴이 다시 그의 얼굴 속으로 흡수되었다.
“허억! 허억!”
꽤나 심력을 소모한듯 남궁제천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흐음… 한 명으로 그리 고생하는 거 보니 끽 해보아야 세 명, 아니 두 명이 한계인가?”
“후우… 몇 명이었나?”
“응 뭐가?”
“혈천자 말이다, 그 자는 몇 명이나 집어삼켰지?”
“아~”
남궁제천의 물음에 백가면이 알겠다는 듯 답해주었다.
“일곱 명.”
“일…. 곱!? 어떻게…!?”
고작 한 사람을 흡수하고도 이렇게 괴로운데 어찌 일곱이나 흡수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에 남궁제천의 입이 헤 벌어졌다.
강선호와의 전투에서 엉망이 된 복장과 얼빠진 표정까지, 도무지 무림의 큰 어른이라 보기는 힘든 모습이었다.
“참고로 그 일곱 하나하나가 강선호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한 자는 아니었다”
백가면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지만 네놈은 두 명도 간당간당하겠군.”
대놓고 비아냥 대는 백가면의 태도에 남궁제천이 이를 악물었다.
“그만, 아무리 대단하다 치켜세워줘 보았자 혈천자는 옛 시대의 패배자일 뿐이다.”
“시대의 패배자라….”
시대의 패배자라는 말이 마음에 든 걸까?
백가면은 그 말을 한참이나 입 속에서 되뇌었다.
“하긴, 그 난리를 치고도 결국 단 두 명의 사내에게 패했으니….”
남궁제천에게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백가면의 혼잣말.
그 혼잣말에 남궁제천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명?”
“뭐가 말이냐?”
“방금 두 명이라 하지 않았나? 혈천자를 쓰러트린 건 무신 천룡… 그 이외에 누군가 있었다는 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
대놓고 말을 얼버무리는 백가면의 태도에 남궁제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지금이라면 놈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혈천강혼경의 힘으로 강선호를 흡수한 지금이라면 백가면을 죽이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남궁제천은 생각했다.
‘혈천강혼공의 힘으로 놈을 흡수한다면 놈이 가진 괴이한 힘과 지식 역시 빼앗을 수 있을 터, 더 이상 불안의 씨앗을 뒤에 남겨둘 필요가 없어진다!’
생각을 마친 남궁제천이 선수를 치려는 순간…!
“아서라.”
흠칫!
“……무엇을 말이냐.”
“뭐가 됐던 아서라고, 강선호처럼 스스로 묫자리 파는 짓 하지 말라는 거다.”
긴장하고 있는 남궁제천을 슥 돌아본 백가면이 말을 이었다.
“지금 그 자리에 널 앉혀준 게 누구인지, 혈천강혼경을 전수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마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래, 그거면 됐어.”
남궁제천은 백가면이 가면 너머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꼬리 내린 자신을 비웃고 있을 거라고.
‘놈…! 두고 보자 내 기필코 언젠간 네놈을…!’
속으로는 언젠가를 기약하는 남궁제천이었지만 그 역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천하행진을 막고 가라앉아가는 세가에서 백가면의 손을 잡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졌다는 사실을…
***
도윤을 해치우고 천면객의 존재를 전 무림에 알린 장백서는 또 다른 볼일 때문에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구채구현으로 과거 패왕성의 비고를 털었던 곳이었다.
이미 모든 제물을 챙겨 텅 빈 비고였지만 이번 방문의 목적은 제물이 아니었다.
패왕성의 비고에 남겨져 있던 정체불명의 문자.
이번 방문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옛날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왜냐하면 통역할 사람이 있으니까!’
“우욱! 제, 제발 좀만 쉬었다 가요…!”
통역할 사람, 하진아가 속이 울렁거리는 듯 장백서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나한테 토하면 바닥에 질질 끌고 갈 거다.”
“너무하다!!”
“좀만 더 참아라 얼마 안 남았다.”
투덜대는 하진아를 다그친 장백서가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비고가 있는 화전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는….”
“왜 뭐가 좀 느껴지는 게 있나?”
“아니, 그냥 되게 더럽다.”
“…….”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은 모든 제물을 턴 뒤 다시 숨겨둔 비고의 입구로 들어갔다.
‘몇 년 만에 들어오는 거지만 여전히 규모가 장난이 아니군.’
간만에 들어오는 비고는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어마어마한 규모로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다만…
“어둡군….”
야명주를 전부 뽑아 팔아버린 탓에 지하는 어두컴컴해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장백서야 절세고수인 만큼 이정도 어둠은 문제가 없었지만 하진아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잠시만….”
파앗!
잠시 홀로 중얼대던 하진아의 손에서 하얀 빛무리가 만들어져 그녀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신기한 기술이군.”
“후욱… 후욱….”
“그리고 비효율적인 기술이고.”
별 대단할 것 없는 빛 덩어리 하나 만들어 놓고 힘들어 죽으려는 하진아의 모습에 장백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비효율적인데 그냥 무공이나 익히지 그랬나?”
“됐어요, 이건 제… 아니 가문의 자존심이라구요….”
하진아의 단호한 태도에 장백서가 어깨를 으쓱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희뿌연 빛을 등불 삼아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는 여전히 강철상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이미 시련을 통과한 탓에 다시 덤벼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위쪽이다.”
장백서는 별세계의 문자가 적혀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마진아는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장백서는 대전과 이어지는 열 두 개의 방을 둘러보았다.
‘없군….’
장백서가 찾는 것은 용린포를 발견한 열 세 번째 방이었다.
처음 용린포를 발견한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비고를 드나들었지만 열 세 번째 방을 발견한 사람은 장백서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때…
우우우우웅!
대전에 기이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게 천장의 술식을 살펴보다 숨겨진 구조물을 드러내는 술식 있었다, 그걸 조작했더니….”
“숨겨진 구조물?”
하진아의 말에 장백서는 방의 수를 세어보았고 거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열 세 번째 방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에 무언가 발견한 건?”
“천장에 새겨진 술식 대부분 강철인형들을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쓰임 다한 건지 죽어 있었다, 남은 게 저 숨겨진 구조물을 드러내는 술식이었다, 그리고….”
이후로 기관진식과 진법을 자기네 세상 기술과 섞었니 뭐니 떠들어대는 하진아였지만 관심이 없던 장백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럼 중요한 건 저기 있다는 거겠군… 가자.”
“그래서 중원의 방위를 다루는 기술과 술식이 호응… 뭐? 가, 같이 가자!”
혼자 떠드는 하진아를 무시한 장백서가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그녀가 뒤따랐다.
열 세 번째 방은 다른 방들과 달리 제 혼자 나무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바로 구분이 되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선 방은 삼 년 전과 똑같이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하나.
용린포가 놓여 있던 선반을 제외하고는.
“뭐 특별한 건 안 보이는… 음?”
장백서는 말하는 도중에 선반에 기이한 기운이 깃들어 있음을 눈치챘다.
그 기운이 워낙 이질적이고 미약한 탓에 보통의 무림인들을 느낄 수 없었겠지만 절세고수의 경지에 오른 장백서를 속일 수는 없었다.
“이건….”
하진아도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선반으로 다가가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우웅!
선반의 윗면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그것들이 글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전언! 전언이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뭐라고 적혀 있지?”
“잠깐만요….”
그녀가 알려준 전언의 내용은 이러했다.
하진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무림을 뒤진 끝에 세토의 힘과 외계의 힘이 응축된 세가지 귀물, 그중 하나인 용린포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계의 힘과 세토의 힘이 융합된 기물이 아직 두 개나 더 남아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고 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세토의 유산을 찾아해매던 하진아의 할아버지에게 한 남자가 접근했다.
그는 세토와 외계의 유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했고 자신의 일을 도우면 나머지 두 개의 유산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 말했다.
더 이상의 단서가 없었기에 하진아의 할아버지는 그를 따르기로 했고 하나 둘 남자의 일을 돕던 와중에 자신이 돕고 있는 곳이 패왕성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패왕성이 벌인 무자비한 학살, 천하행진을 보며 자신이 남자의 손에 놀아났다는 걸 깨달은 하진아의 할아버지는 비고에 또 다른 회수자, 즉 자신의 아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술식과 전언, 그리고 남자의 손에 빼앗기지 않도록 용린포를 함께 숨긴 것이었다.
“부디 이 전언이 나의 아들에게 전해지기를… 할아버지….”
전언을 읽던 하진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백가면의 남자를 조심해라 이게 마지막이네요….”
빛으로 이루어진 전언을 끝까지 다 읽은 하진아가 장백서를 돌아보았다.
“…….”
전언의 내용을 다 들은 장백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백가면의 남자라….’
외계의 지식과 세토에 대해 자세히 알고서 회수자로 이 세계에 보내진 하진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농락한 백가면의 남자.
‘백천회와도 관련이 있겠지.’
백천회가 사용하는 기괴막측한 힘이 외계의 지식에서 기인한 것이란 게 판명된 지금, 백가면의 남자는 백천회와도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음이 분명했다.
하물며 하진아 할아버지의 전언에 따르면 패왕성의 배후에도 그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백가면의 남자… 네놈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도중…
우우웅…
선반의 빛이 조금씩 잦아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선반이 서서히 부스러져 내리더니 그 안에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메모가 있어요… 가면의 남자를 감지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데요?”
스윽
장백서가 푸른 색 구슬을 손에 쥐고 살펴보았다.
“제법 괜찮은 수확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