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13
“호호호! 그럼 같이 갈까요? 방향도 같으니…”
“나는 빨리 가야되는데…할아버지들보다 한참 뒤떨어졌거든.”
“왜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어요?”
“동행? 할머니가 알면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을것 같아? 몰래
도망 나왔어. 지금도 잡히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거야.”
한연지는 피식 웃었다.
야생녀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위
해 장미빛으로 물든 것 같았다. 예상치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
지고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린다.
“가요, 우리도 빨리 가야 되거든요.”
비로소 갈홍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이미 검집에 들어간
상태였다. 적대감(敵對感), 모든 적대감이 순진한 처녀의 가슴
에서 지워진 것이다.
“아까 욕해서 미안해. 네가 안 그랬다고 말하면 되잖아. 왜 가
만히 있었어?”
당철휘는 철없는 갈홍아의 말에 희미한 미소로 응답했다. 한연
지를 보기가 부끄러웠지만 눈길에 고마운 뜻을 담아 보냈다.
그녀가 먼저 눈을 흘기며 미소를 보내 왔기 때문에 어색함이
많이 줄었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운 여자…’
당철휘는 한연지가 천상 선녀처럼 고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마
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를 놓치지 않
겠다고, 다른 여자에게 결코 한눈을 팔지 않겠다고…하지만
채 일 각이 지나지 않아 갈홍아의 탄탄한 종아리로 향하는 눈
길을 제지하지 못했다.
갈홍아 역시 나름대로 환상속에 파묻혔다.
눈앞에 있는 귀공자풍의 사내는 어디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었
다. 특히 누명을 쓰면서도 담대했던 마음에 감명받았다.
‘내가 착각했어. 이 사람은 색마(色魔)가 아냐. 부끄러워 죽겠
네, 혹시 선실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도 이 사람이 아닐까? 그
러면서도 일부러 아닌 척…그랬을 거야. 내가 무안해 할까 봐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거야.’
예쁘게 보기 시작하면 얼굴에 난 점까지도 예쁘게 보인다고,
당철휘의 모든 면모와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히 눈길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은근 슬쩍 종아리를 훔쳐보는 모습까
지도 귀여웠다.
한연지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철휘는 참을성이 있지만 목표한 것을 놓치지 않는 아집(我
執)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망된 행동만 조절할 수 있다면
훌륭한 효웅(梟雄)이다. 그는 틀림없이 미혼약을 다시 사용할
것이다. 자신과 사마전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그리고는 어떻게 처리할까? 그의 성격대로라면 죽일 것이다.
후환의 여지를 한 올도 남기지 않는 것이 그의 신조이니까.
형산에 있다는 무산삼괴도 아마 무산파파까지도 죽이려 할 게
다. 그리고 그가 독아(毒牙)를 드러내는 날 그들은 틀림없이
죽으리라.
좋은 현상이다.
당문이 천하제일 독문으로 성장하려면 중원에 산재한 모든 독
문을 통합해야 한다. 설혹 다른 문파의 질시를 받아도 힘만 있
다면 두려울게 없다.
가장 근접한 청성파(靑城派), 아미파(峨嵋派)의 압력은 이루말
할수 없을테고 나머지 칠파일방(七派一房)도 만만치 않을게다.
그러나 그런 점을 두려워 한다면 당문은 영원히 한 지방의 일
각에서 맴돌아야 한다.
문제는 문주가 얼마만한 그릇인가에 달렸다. 조그만 일에 쉽게
자족(自足)해 버리는 인물이라면 거사를 같이할 수 없다.
당철휘는 장작만 끊임없이 제공한다면 끝없이 끓어오를 가마솥
이다. 천하를 준다해도 사양하지 않을 인물이다.
한연지는 뒤를 받쳐 줄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천하를 경영
할 웅대한 계략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앞에 내세울 꼭두각시의
약점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먼저 패배를 안겨 줘야 한다. 아픔을 모르면 성장할수 없지.
갈홍아는…형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무리하자.’
한연지는 눈을 감아 버렸다. 두 남녀가 마음껏 눈길을 주고받
을 수 있도록…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실타래처럼 복잡하
게 엉켰던 생각들이 줄줄이 풀어졌다. 단비하도 이용할 생각이
었다. 실제로 멍청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용할 가치는 충분
했다. 그런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중이었다.
사마전은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기며 단비하를 쳐다보았다.
‘밉지 않은 놈…’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체질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 균
형 잡힌 몸매, 알맞게 부푼 근육은 아주 이상적이었다.
단비하는 심심한듯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흘렸다.
“심심하냐?”
“따분해서 죽겠어. 이게 뭐야? 계속 달리기만 하고…”
“세상 나들이는 처음일 텐데. 그래도 심심해?”
“이렇게 앉아만 있으니까 그렇지 뭐, 좀 쉬었다 가면 안돼?”
“후후후! 지루하긴 지루한 모양이구나. 하기는 지루할 수밖에
없겠지. 아저씨가 좋은 거 가르쳐 줄까?”
단비하는 금세 눈을 빛내며 가까이 다가 앉았다.
“뭔데? 재미있는거야?”
“처음에는 재미없어. 하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
단다.”
“빨리 가르쳐 줘. 빨리이…”
“후후후!”
사마전은 참선(參禪)을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머리가 깨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대로 두기에는 불쌍한 놈
그렇다고 마음이 넓거나 인정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만약 당문
에 그대로 있었다면 평생을 가도 아는 체를 안했을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단비하와 마찬가지로 사마전도 외톨이였다.
당철휘와는 계속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하는 행동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그런 점은 한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야생녀에 대한 그녀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며칠간의 여정에서 생긴 정(情).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우선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로 앉아라.”
“결가부좌가 뭔데?”
사마전은 실소를 흘렸다. 배운 것 없는 어린아이한테 천지 자
연의 이치를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에게는 아이
의 눈이 있다. 아이가 보는 눈으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다.
몸집은 장성한 청년이지만 정신은 아이 수준.
사마전은 정통선(正統禪)을 포기했다. 그대신 생활선(生活禪)
을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양명(歐陽明)의 귀전록(歸田錄)을 보면 그의 작품들 대부분
이 마상(馬上), 침상(寢上), 측상(厠上)에서 이루어졌다고 한
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허심(虛心)이 되어야 한
다. 그리고 허심의 순간은 삼상(三上)에서 가장 이룩하기 쉽
다.
“행주좌와(行做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따라서 해봐라. 행
주좌와 어묵동정.”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래, 다시 한번 해봐라.”
“행주좌와 어묵동정.”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마. 걸으나, 서 있으나, 앉으나, 누우
나 모두 선이라는 뜻이다.”
“그럼, 나 지금 앉아 있으니 선이겠네?”
“그럼 그게 바로 선이야. 또 말하는 것, 입 다물고 있는 것,
움직이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다 선이란다.”
단비하는 사마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앞을 뚫어
지게 주시하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
었다. 먼 기억속에서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리는
것 같았다.
“상행삼매(常行三昧)라는 수련법이 있단다. 행선(行禪)을 한다
면 걷는 데 모든 의식을 집중하고 무심으로 걸어라. 코와 배꼽
과 앞발 발톱 끝과를 일직선으로 만들고 땅이 꺼지도록 힘차게
딛어라.”
사마전의 얼굴이 암울한 기운으로 덮였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
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만은 틀림없었다.
“상행삼매에서는 걸으면서 경(經)을 읽는 경우도 있단다. 경
대신 검을 쥐었다면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나더라도 번개같이
대처할수 있는 경지가 바로 걷는 선이란다.”
사마전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단비하를 돌아보았다.
그는 재미없는지 홀러가는 풍경에 한눈을 팔았다.
‘후후후! 사가(査家)에도 법도(法道)가 있었는데…’
무리(武理)였다. 참선을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다 보니 사가의
무리를 말하고 말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
과 사가의 무리는 일맥상통(一脈相通)했다.
“이놈아! 알아 들었느냐?”
느닷없는 일갈에 단비하는 펄쩍 놀랐다.
“응! 으응.”
“그럼 지금부터 눈을 반개(半開)하고 정신을 집중해라. 다른
짓 하면 혼난다.”
“으응.”
단비하는 맥빠진 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마음은 급하게 뛰었
다. 사마전이 말한 오의(奧意)를 깨달은 까닭이다.
아버지도 참선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었다. 사마전이 말했던
생활선이란 것도…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너
무 어렸던 탓인가. 어쩐지 사마전이 말한 무리와 단가의 무리
가 맞물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 십이시진(十二時辰) 최선을 다하는 검(劍)과 생명을 존중
하는 마음이 깃들인 검(劍)은 다른 듯 하면서도 동질의 것이었
다. 단가에서 추구하는 활검과 사가의 생검(生劍)은 같은 강
(江)을 흘렀다.
단비하는 어린 시절 감흥 받았던 활검에 대한 정의를 뚜렷하게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생각을 접었다.
정녕 바보라면 집중시간이 채 반각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어
린아이는 순수한 마음이라도 있는데 천치는 그런 마음과는 달
리 무척 산만하다. 그래서 집중하는 시간도 짧다.
몸이 찌뿌뚱한 것처럼 길게 기지개를 켰다.
“재미없어. 다른것 가르쳐 주면 안돼?”
“재미없어도 꾸준히 연습해라. 그래야 예쁜색시 얻어 장가를
가지.”
“히! 나도 장가갈 수 있어?”
“그럼.”
“그런데 너는 왜 못갔어?”
“너? 허허! 그놈 참… 이 아저씨는 장가를 못간게 아니고 안
갔단다. 할일이 너무 많았거든.”
“나도 할일이 많으면 장가 못가?”
“뭐? 하하하…!”
“그렇구나. 씨이! 그럼 나 이번 일만 마치면 다시는 일하지 않
을 거야. 그래야 한연지같이 예쁜 색시를 얻지.”
“한연지가 그렇게 좋니?”
“세상에서 제일 예뻐.”
사마전은 단비하가 부러웠다. 똑같이 멸문한 가문의 자손인데
이렇게 다른 행로를 걷다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편
한가.
“끼랏!”
사마전은 힘차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 * *
호남성(湖南省) 형산(衡山)은 장사성(長沙省)으로부터 남쪽으
로 사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옛이름은 남악(南岳), 중원
오악(五岳)중 하나이다.
태산(泰山)처럼 웅장하지도, 험하지도 않으나 상강(湘江)을 끼
고 형성된 칠십이 봉은 돌고 돌아, 혹은 마주보고, 혹은 등을
돌리니 이를 일컬어 구향구배(九向九背)라 한다.
그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사백 장 높이의 축융봉(祝瀜峰)이며
정상이 항상 희뿌연 안개로 가려 있어 운봉무쇄(雲封霧鎖)라는
말이 생겼다.
일행이 찾는 무애곡은 천향봉(天香峰) 북쪽산 자락에 자리했
다. 장장 보름 만에 천향봉에 도착한 일행은 선명히 드러나는
천향봉의 자태를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모든 야망의 출
발점이기 때문이었다. 자칫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 파멸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을것이다.
갈홍아는 무산삼괴를 찾아간다는 목적을 잊고 당철휘에게 마음
을 빼앗겼다. 뜨거운 열정의 눈길은 곱상한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강호로 도망쳐 나와 처음 만난 사내가 영웅호걸이니 얼마나 뿌
듯한가. 괄괄한 성격의 할머니도 당철휘를 만나 보면 한풀 꺾
일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손녀가 다 컸다고 칭찬할것 같았
다.
천향봉을 쳐다보는 당철휘의 눈에는 야망과 욕정의 눈길이 섞
여 나왔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갈홍아의 공세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척박한 산골에서 천방지축으로 자란 소녀
답게 애정 표현도 노골적이었다. 한연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
고, 마치 자신만의 연인인양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점이 싫지 않았다. 아니 잘 익은 홍시처럼 손만 대면 톡
떨어질 여인을 눈앞에 두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당철휘 일지라도 한연지가 두눈을 빤히
뜨고 있는데 어설픈 행동을 할수는 없었다.
갈홍아의 몸매에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모로 보나 한연
지에게는 뒤 떨어졌다. 갈홍아로 인해 한연지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연지 또한 스스로 굴러온 떡,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형산에 온 목적
두가지 중 하나는 성취한 셈이다.
이상한 것은 한연지의 태도였다. 그녀는 갈홍아의 애정 공세를
빤히 보면서도 살짝 웃을 뿐이었다. 질투를 전혀 못 느끼는 목
석(木石) 같은 여자인가.
“히히히….!”
단비하는 연신 기음을 터뜨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사천과
너무 다른 생활환경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 점은 사천을 벗
어 난적이 없었던 당철휘나 갈홍아라는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사천 요리는 맵고 개운한 맛을 낸다. 맛이 짙고 섬세하며 향이
진하다. 고추, 생강, 마늘, 파, 그리고 약재를 썩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대표적인 음식 천채(天菜)는 중원 칠대요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호남 음식은 남방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쇳덩이만 빼고 모
두 음식 재료로 쓰일 정도로 다양했다. 특히 뱀, 고양이, 개,
오리의 요리가 별미였다. 하지만 너무 담백하여 사천 사람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산악지대인 사천과는 달리 드넓게 펼쳐진 평야지대인지라 가옥
구조부터 모든 풍습이 달랐다.
당철휘는 간단한 경장차림으로 나서는 한연지를 보고 눈을 크
게 떴다. 길 떠나는 차림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려고?”
“천향봉에요. 혈반사접이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 보고 와야
죠.”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나도…”
“아니에요. 간단한 답사(踏査)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독접이라도 만난다면…”
당절휘는 굳이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자리를 피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