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1화
“이야, 장난 아니네. 말도 안 돼. 내가 점집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람은 살다 살다가 처음 본다.”
“뭐가…… 어떤데 그러세요?”
잔뜩 긴장한 표정의 태규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검은 마스카라를 진하게 칠한 여자 무당의 얼굴에는 세월이 스쳐 간 깊은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눈빛은 마구 들이켠 깡소주가 금세 깨 버릴 정도로 강렬했기에.
“어디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도 엄청나게 하고, 나름대로 재능도 있어. 근데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안 풀리지?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엎어지고, 망하고.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온 세상이 네놈을 방해하고 멕이는 기분일 거야. 그렇지?”
“맞아요. 진짜 저 미친 듯이 했거든요. 쉬지도 않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면서. 코피도 질질 쏟아 가면서 일했었는데.”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실패.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대출까지 다 끌어모아 식당을 차렸지만, 또 망했다.
계속해서 밀려 버린 월세까지 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리자 너무 허탈하고 억울해서. 세상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어서, 팔리지도 않던 술장고의 소주를 퍼마시고 식당을 나와 한강 주변을 싸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허름한 점집 하나를 발견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와 봤는데.
“저 미신 같은 거 진짜 하나도 안 믿거든요? 근데, 용하시네요.”
“용하고 나발이고.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무당이면 너 같은 사람 보고 다 까무러칠걸?”
“왜 그러시는데요. 저한테 뭐,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문제가 있지. 아주 큰 문제가 있어.”
“뭐길래…….”
“창귀, 수살귀, 처녀귀신에 박달귀신. 이름 없는 잡귀신까지 그냥 온 한국 귀신이란 귀신이 온몸에 달달달 붙어 있잖아. 누가 보면 사람이라도 수십 죽인 줄 알겠어. 그러니 뭐가 되겠어? 이 정도면 대통령 될 사주인 사람이어도 못 버티고 자살한다니까?”
“귀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 내가 이래서 미신을 안 믿었지.
잠시라도 이런 사람 앞에서 위로를 받는다 느꼈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콧방귀를 뀐 태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됐네요. 굿할 돈 같은 거 없어요. 당장 월세는커녕 생활비도 없는 사람한테. 복채만 드리고 가렵니다.”
“별 웃기는 놈 다 보겠네. 내가 언제 굿하재? 굿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 귀신이면 굿을 해도 어림도 없지. 오히려 무당이 객사할걸?”
“굿하자는 소리 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뭔가 무안해져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자니 무당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푸욱 쉬며 말하길.
“네놈 팔자가 워낙 기구하게 꼬여서 굿을 해 봤자야. 부적이나 하나 써 줄 테니 가지고 돌아가.”
“저 부적값 없어요. 복채로 드릴 오만 원이 들고 있는 마지막 현금이거든요.”
“필요 없어. 복채만 한 만 원 두고 가. 에휴, 점집도 슬슬 접을 때가 됐구나 싶다. 너 같은 놈도 찾아오고.”
“부적 가지고 있으면 좀 괜찮아질까요?”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어. 굿도 어림없는데 부적으로 뭐가 되겠나.”
“그럼 왜.”
“일단 가지고 있어 봐. 내가 해결 못 하는 일이니, 연이 닿는다면 다른 누구를 불러다 주겠지.”
평생 사기도 많이 당했고, 좋은 마음에 누구 도와줬다가 뒤통수 맞은 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어 이런 것들은 다 의미 없다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정말 지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샛노란 종이를 꺼낸 무당이 세필 붓에 새빨간 염료를 묻혀 능숙히 그림을 그렸다.
본래 부적 하면 뭔지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에 이상한 한자가 쓰여 있는 걸로 알았는데. 무당은 땡그란 얼굴에 쫑긋한 귀 두 짝을 그리고는 여우 호(狐) 자를 쓰는 게 아닌가.
“여우?”
“네놈한테 그렇게 보이면 여우인 거겠지.”
“부적 특이하게 쓰시네요.”
“다 네 팔자가 특이하고 기구해서 그렇지. 아무튼, 자아. 다 됐다. 손에 꼭 쥐고 집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자. 연이 닿는다면 좋은 일이 있겠지.”
“예…… 뭐, 감사합니다.”
태규의 손에 부적을 쥐여 준 무당이 귀신 꼬이니 어여 가라며 빨리 돌려보냈다.
말투도 그렇고, 뭔가 태도가 불친절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돈깨나 받는다는 부적을 공짜로 써 주었으니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부적에 웬 여우가 그려져 있어서 이게 맞는 건가 싶긴 했지만.
“수고하세요. 만약에라도 효과 보면 감사 인사하러 올게요.”
“오냐, 들어가.”
허름한 점집 밖으로 나오니 새벽바람이 찼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술기운이 말끔히 날아갔기에, 말똥한 정신으로 한강 변을 터덜터덜 걸었다.
난 왜 술을 먹고 한강에 온 걸까.
진짜 홧김에 떨어져 죽을 생각이라도 한 걸까.
‘아니야, 그건 안 돼. 내가 평생 해 온 게 얼마인데. 이거 억울해서라도 빛은 보고 죽는다, 내가.’
손을 꽉 쥐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렇게나 치열히 살아왔기에, 현실이 어떤지도 가장 잘 알았다.
‘근데…… 정말 어쩌지. 당장 월세며. 식당 식재료 살 돈도 빠듯하고. 밥 안 먹고 돈 안 쓴다고는 해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잠시나마 상쾌하다 느꼈던 새벽바람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멍하니 걷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집이 아니라 식당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집에 간다는 걸 식당 가는 길을 들어 버린 것이다.
작은 테이블 두 개에 다섯 자리의 바 테이블 하나가 들어가는 자그마한 한식당.
[소반]소소한 음식이라도 따뜻한 한 끼가 되어 드리자는 마음에 소반이라 지었다.
돈을 크게 벌기보다는 오고 가며 집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 가격도 6천 원으로 낮추고 메뉴도 백반 하나뿐이다.
라면이나 김치찌개같이 손님들이 원하시는 음식들을 간간이 만들어 드리긴 했지만, 그것도 손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이 식당에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보고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그래 봤자 다 낡아 빠진 반지하였고, 잠도 오지 않았으니.
어둑어둑한 식당 문을 따고 들어가 불을 켰다. 손님 없는 식당에는 파리만 날린다던데 소반에는 파리조차 없었다.
음식 맛이 별로여서 그럴까. 글쎄, 가끔 찾아오시는 손님들은 잔반이라고는 남기지 않았고. 태규 본인이 맛보기에도 제 손맛이 썩 나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인테리어일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꾸민 것 같은데.”
사장이 그래도 젊으니까. 건물이 낡았음에도 가구 하나 더 두려고 도배도 손수 했다. 집처럼 편안하게 꾸미면서 감성 있는 가구나 소품들을 중고 매장에서 사다가 놓아두었다.
서울에서 백반 한 끼가 이 가격이면 가성비는 당연하고, 음식 맛도 괜찮고,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은데.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손님이 하루에 몇 명은 있어 줘야 할 텐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태규의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에, 세상에 홀로 던져진 그는 살아가야만 했다.
마땅한 재능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했다.
20대 초반에 숙식 노가다를 하며 돈을 악착같이 모았고, 따뜻함과 정이 그리워 식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유명한 맛집에 직원으로 들어가 요리와 일을 배웠다.
그런 태규를 기특히 여긴 사장이 분점을 내게 해 주었으나 그 또한 알 수 없는 이유로 망했다. 분식 포장마차를 열었지만, 그 좋다는 마트 앞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안 왔다. 친구라 생각했던 놈이 같이 식당을 해 보자 해 잔금을 주었지만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남은 것들을 다 긁어모아 차린 게 이 소반이라는 자그마한 식당이었는데.
결국, 이곳에서마저.
태규는 휴대폰을 보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월세를 독촉하는 건물주의 문자와 이자 낼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은행사의 새빨간 통첩. 가족이나 친구라고는 없던 그였기에 주소록은 텅텅 비어 있었고, 휴대폰이란 놈은 울리기만 하면 사람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이나 꺼냈으니.
‘진짜 귀신 때문인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라 치부하고 넘기려 했지만, 온갖 귀신이 다 붙어 있다던 무당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지갑에 넣어 두었던 부적이 생각나 괜스레 한번 꺼내 보았는데.
“……어?”
무언가 이상했다.
무당은 샛노란 부적에 여우의 실루엣만을 그렸을 뿐이었다. 머리와 귀, 꼬리 정도.
그런데 제 눈이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없었던 얼굴이 생겨나 있었다.
동그란 두 눈과 작은 코, 그리고 송곳니 하나가 뿔룩 튀어나온. 작은 아기 여우의 얼굴이.
‘아까 취해서,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그래, 맞아. 요새 너무 힘들었으니까. 안 먹던 술까지 마셨으니까.
그래서 눈이 조금 흐리거나 그래서. 부적에 얼굴 그리던 걸 못 봤나 보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다 미신이지.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그냥 하던 대로. 미신 같은 거에 기대지 말고, 이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다 보면 분명 언젠가는 빛이 들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고만 있을 무렵.
스르르륵-!
닫혀 있던 식당의 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열렸다.
야심한 새벽 2시.
식당 문이 열렸고 불이 켜져 있으니 손님이 온 것일까.
멍하니 앉아 있던 태규가 벌떡 일어났다.
“저, 지금은 장사가 끝나서요. 혹시라도 다음에 다시 와 주시면…….”
이런데도 간만에 와 주신 손님이 그저 고마워서.
최대한 친절히 말씀드리며 돌려보내려던 그였지만.
‘아이?’
이번 손님은 아무래도 조금 특이한 모양이었다.
큰 사이즈의 흰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자그마한 여자아이.
키는 태규의 배꼽까지밖에 오지 않았고, 나이는 네 살에서 다섯 살 정도로 아주 어려 보였다.
혹시 길을 잃어버린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경찰이라도 불러 줘야 하는 걸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아이가 후드를 벗고는 태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어어?!”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 꼬리?’
아이가 입고 있던 후드와 똑같은 색의. 눈이 내린 것같이 맑은 백색의 여우 귀 두 짝이 태규를 바라보며 꼬물거렸다.
비단 그뿐이랴. 그제야 발견한 거지만, 오버핏 후드 뒤쪽으로 새하얀 꼬리 하나가 툭 삐져나와 살랑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온 송곳니까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풍경에 멍해진 태규가 휘청거리고 있자니, 여자아이가 우다다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행복하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태규를 바라보며. 아이는 이렇게 소리쳤다.
“압빠!”
“아빠……? 내가?”
“웅! 우리 압빠! 근데 나 배고파요. 엄마가 구래써, 압빠한테 가면 밥 줄 거라고!”
아빠라고.
생전 처음 본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