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18
제120화
120화
저승사자들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했다.
생과 사.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죽은 영혼들이 사는 세상은 같은 듯하면서도 서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두 세상을 오가며 길 안내를 해 주는 존재가 바로 저승사자였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으로 남지만, 저승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배배 꼬여 있었으니까. 저승사자가 영혼들을 데리고 직접 문을 열어 주며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해 줘야 했다.
하루에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장소, 시간, 나이 상관없이. 죽음이라는 돌림판은 누구에게나 확률을 강요하는 법이었기에.
그렇기에 저승사자들은 각자 구역을 맡으며 해당 구역 내부의 ‘죽음’을 해결한다.
망자들을 인도하고, 악귀라든가 기타 사건이 생기면 손을 쓰는 식이다.
서울 3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저승사자 김영살이 차사직에서 잘려 버린 지금, 그의 빈자리를 채워 줄 다른 저승사자가 올 것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몰랐다.
“선배님 진짜! 이러실 거예요?!”
“야,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저승사자 가오라는 게 있지. 내가 차사직 어? 500년을 했어, 인마!”
저승과 저승이 서로 드잡이질이라도 할 것처럼 가벼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온몸을 새까맣게 도배한 특유의 패션 센스만 봐도 지금 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새로운 저승사자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새로 배정된 저승사자이니 무려 500년이나 선배인 저승사자 김영살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연차의 후배인 셈인데.
물론, 저승의 일이라는 게 한국의 회사처럼 딱딱 맞아떨어져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저승이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후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호소하듯 소리쳤다.
“지금 잠깐 잘렸다고는 해도 그렇지, 생사부에, 능력에. 다 가져간다고?”
“누가 가져간댔어요? 원래 염라국의 물건이잖아요. 염라국에서 회수 조치가 내려졌다니까요? 500년쯤 하셨으면 잘 아실 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몸처럼 쓰던 것들인데…….”
저승사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도 있었지만, 저승에서 지급된 것들을 통해 쓰던 능력들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문을 통해 순간이동 하거나 옷 주머니에서 무기인 검을 꺼내는 것은 저승사자 본인의 능력이다.
그러나 생사부를 읽기 위해서는 저승사자의 인장이 양복에 채워져 있어야 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려면 저승에서 지급된 만년필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생각해 보면 항상 만년필을 양복 주머니에 끼워 넣으며 휴대하고 다니던 저승이었다. 그냥 겉멋 넘치는 장신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 저승사자 김영살이 맡고 있던 서울 3구역을 새로 담당하게 된 신입 저승사자가 그와 동시에 저승의 물건들을 도로 가져가겠다며 실랑이를 하고 있던 것인데.
“아, 안 돼! 제발!!”
“죄송합니다, 선배님. 이거 오늘 안으로 회수 못 하면 제가 징계받는 거 아시잖습니까. 실례 무릅쓰고 강제 징수하겠습니다.”
“으아아아아악!”
결국 실랑이 끝에 후배에게 인장과 만년필을 빼앗겨버린 저승사자.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지 바닥에 엎어져서는 흐느끼고 있던 그를 짠하게 바라보던 후배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종료된 것 같아 태규와 현무 또한 그들에게 다가갔는데.
“저승 씨, 괜찮아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아침부터.”
“태규 사장…… 저,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를 막 그냥, 어? 아주 그냥! 어흐흑!”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애초에 저승사자님 물건 아니라면서요. 예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일 때려치우고 싶다면서 난리를 치시더니. 깔끔하게 끝내는 게 서로 좋잖아요?”
“그치만 뭔가 자존심 상한단 말이야. 아무튼 위로해 줘서 고마워. 조금 낫네.”
“재미있게 놀고들 있네, 아침부터들.”
엎어져 있던 저승사자에게 태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무는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후배 저승사자가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 중절모를 벗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 선배님께서 신세 많이 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소반의 태규 사장님, 맞으시죠?”
“예, 맞아요. 저승 씨 대신 오신 저승사자님이신가요?”
“맞습니다. 서울 3구를 담당하게 된 저승이라고 합니다. 저승사자로 부임 받은 지는 이제 5일 정도 되었네요. 앞으로 뵐 일 많을 것 같은데, 잘 부탁드려요.”
“저야 말로요. 일하시다가 배고프시면 언제라도 찾아오세요. 뭐라도 입에 맞는 거 만들어 드릴게요.”
후배 저승사자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가볍게 악수하는 태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승의 눈가가 작게 씰룩거렸다.
“태규 사장, 이러기 있어? 방금까지 내 물건 다 빼앗아 간 놈한테 이젠 밥까지 해 주게?”
“이상한 데서 질투하지 마요. 누가 보면 지금 식당에서 점심 저녁 안 주는 줄 알겠어. 아무튼, 저승 씨도 새로 오신 저승사자님이랑 좀 친하게 지내봐요. 앞으로 얼굴 자주 볼 텐데, 계속 뚱해 있게요?”
“으윽…….”
“아, 그리고. 옆에는 현무 님이시죠? 잘 부탁드립니다. 저승이라고 합니다.”
태규의 옆에 멀뚱멀뚱 서 있던 현무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후배 저승사자.
잠시 멈칫거리던 현무가 이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악수를 받아들였다.
“어쩌다 보니 태규 사장이랑 같이 일하게 됐네요. 잘 부탁드려요.”
“아이고, 존댓말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높으신 분이신데요.”
“하하, 예. 저승에서 저랑 태규 사장님 이야기가 유명한가 봅니다.”
“구미호에 관한 것들은 알 사람들은 다 아니까요. 염라대왕님께서 크게 주시하고 계시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저는 선배님과는 달리 나쁜 감정 같은 것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끝난 통성명.
오늘도 역시 일이 많이 밀려 있다며, 후배 저승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의 문을 통해 휘리릭 모습을 감추며 사라져 버렸다.
저승사자의 물건을 빼앗긴 충격이 생각보다 컸는지, 아까부터 계속 뚱해 있던 저승을 애써 달래며 소반으로 들어가려는데. 현무가 눈을 지그시 반쯤 감고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무 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까부터 표정이 이상하신데.”
“음, 별건 아닌데. 그, 저승 씨?”
“네?”
“예전에 나 처음 봤을 때요. 내가 현무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갑자기 저승사자를 부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 현무.
단순히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은 저승사자 또한 진지하게 생각한 뒤 단어를 골라 대답했다.
“사람도, 이매망량도 아닌 존재들한테는 기운이 느껴지니까요. 이 정도로 큰 기운이 느껴질 정도면 ‘신’이라는 이름 붙을 정도의 존재이겠고. 예전에 스쳐 지나가듯이 어떻게 생기셨다고 이야기 들은 게 있어서. 그래서 알아봤죠.”
“다른 저승사자들도 그 기운이라는 걸 다 느껴요?”
“에이, 어림도 없죠. 최소 200년 이상. 아니면 저처럼 500년씩 푹 묵은 저승사자들이나 가능한 일이거든요. 신입은…… 어림도 없는데. 어?”
“잠깐만요. 뭐라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태규 또한 크게 놀랐고, 저승사자도 무언가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며 얼굴이 굳어 갔다.
“심지어 쟤, 한 번에 현무 님인 거 알아봤잖아요.”
“그러게요. 이게, 말이 되나?”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단순히 염라국 상부에서, 소반에 이러이러한 신들이 있으니 조심해라 하고 알려 줬을 수도 있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겨우 5일 차 저승사자가 이렇게나 바로 현무를 알아볼 수단은 그 무엇도 없었으니까.
세 남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 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태규의 방식대로, 언젠가 그가 소반에 밥을 먹으러 왔을 때.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 * *
“자, 우리 참새반 친구들! 오늘은 이런 활동을 할 거예요!”
같은 날, 샛별 유치원.
언제나처럼 귀여운 곰돌이 앞치마를 입은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시 짓기]오늘 샛별 유치원의 메인 수업은 바로 시 짓기.
간단한 산수 공부부터 시작해서, 한창 한글을 배워 나갈 아이들을 위해 이런 작문 수업도 여럿 병행하고 있던 샛별 유치원이었다.
“우리 참새반 친구들은 ‘시’가 뭔지 알고 있나요? 아는 친구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저요! 저 아라요!”
“어머, 미호! 시가 어떤 건지 말해 볼까요?”
자고로 발표라면 빠질 수 없는 미호였다.
당당하게 손을 들어 올린 뒤 벌떡 일어난 미호가 선생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으음, 그러니까. 시가 뭐냐면요. 되게 짧은 그린데, 막 엄청 멋진 말 하면서. 조금 어렵기는 해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그런 거예요!”
“거의 정확해요! 이 정도로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미호는 시를 좋아하나 보네요?”
“할무니가 가끔 읽어 줘써요!”
물론 그 할머니가 삼신할머니이긴 했지만 말이다.
삼신은 이상할 정도로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순히 소설이라든가 영화 같은 것도 그랬지만,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여러 멋진 시들을 미호와 놀아 주며 읽어 주는 일도 많았으니까.
생각보다 시에 대해서 잘 알고, 또 관심도 보이고 있는 미호가 신기하다며 칭찬해 준 선생님이 이윽고 아이들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 주었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할 나이인 다섯 살이라 그럴까. 생각보다 아이들은 시라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시작된 오늘의 수업, 시 쓰기.
선생님이 정해 주신 주제는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시를 써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