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76
제178화
178화
태규가 저승사자의 탈을 쓴 ‘존재’와 담판을 짓고 온 바로 다음 날부터, 그 고생을 한 효과는 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담당 저승사자가 바뀌었다는 거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저승사자 김! 저! 승! 인사드립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이렇게 구태여 인사까지 하러 오실 필요 없는데. 허허…….”
역시 그 신이라는 작자가 저승사자의 탈을 쓰고 대신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가짜 저승사자는 바로 퇴임해버렸는지, 다음 날에 즉시 새파란 신입이 배치되었다.
이번에도 이름은 역시나 김저승. 염라국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은 새삥 저승사자라고 했는데, 구태여 인사를 온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염라국에서 태규 사장님을 모르는 이매망량이 없지 말입니다. 워낙 유명하시지 않습니까. 이매망량과 사람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아이돌 같은 존재! 크으, 저도 이렇게 실물을 영접하게 되니 정말 가슴이 뛰고 영광이고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유명해요?”
“어휴,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말입니다. 셰프님 요리를 한 번 먹어볼 수만 있다면 바로 성불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귀신들이 천지 삐까리입니다.”
“뭐…… 저는 잘 몰랐던 거긴 한데. 그래도 좋네요. 예, 다행입니다.”
태규와 미호라는 두 부녀가 워낙 이레귤러 급으로 신기하고 요상한 존재들이기는 했으니까.
역사상 처음으로 이매망량과 사람이 만나 태어난 반인반요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이건 모르고 있었다. 태규의 요리실력과 소반의 존재가 알려져서 밥을 먹으러 오고 싶어 하는 귀신들이 꽤나 있었다는 거.
사실 여울이 이후에도 이따금 귀신들이 찾아오는 일이 있었다.
보통은 억울해 마지않는 커다란 한이 있어서. 막 울거나 태규의 옷깃을 잡으면서 ‘제발 제 한을 풀어 주세요!’하고 대성통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태규는 귀신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주었다.
살아생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당신은 이미 죽었으니 복수를 해봤자 그저 허무할 뿐이지 않겠냐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귀신들은 태규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사를 표하며, 내어준 음식을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은 후 성불해주었다.
구태여 복수를 하지 않더라도, 구태여 한을 풀지 않더라도.
그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을 내려놓으며 포기해 준 것이었다.
“요새 들어서 이상하게 귀신분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앗, 혹시 귀신분들이 찾아오는 게 불편하거나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오지랖이 조금 넓어서 말입니다. 불편하시다면, 제가 앞으로 귀신 놈들은 소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경계근무를 서면서 아주 그냥 작살을…….”
“아이고, 아닙니다. 예. 그런 거 아니고요. 오히려 저는 잘 된 셈이죠. 어차피 배고프신 귀신분들한테 따뜻한 밥 한 끼 해드릴 수 있는 게 저뿐이라는데. 여기저기 소문나서 귀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주시면 저야 감사한 거 아니겠습니까?”
태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뭐. 밥 한 끼 만들어 드리고 이야기 들어드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온 세상에서 오직 자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데. 그러면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태규의 상식이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역시…… 태규 사장님은 정말 듣던 그대로십니다. 부처가 환생한 것 같은 이 순수한 선함과 착함! 대단하십니다!”
“지, 지금. 우세요?”
“저 김저승, 너무 감동해버렸지 말입니다…… 으흐흑……!”
새로 온 저승사자는 태규의 그 대답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 버렸다.
도대체 신입을 어떤 놈을 보내준 건가 싶어서 염라한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만,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심성은 착한 분이겠구나 생각하다가, 착한 분이었으면 애초에 저승사자가 되는 벌을 받았을 리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저승사자로 위장하고 있던 신이 갑작스레 모든 곳에서 자취를 감춰버렸고, 새로 온 저승사자가 부임한 이후로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미호를 열심히 키우고, 소반을 운영하고. 여러 군데 놀러도 다니면서 좋은 추억도 만들고 신메뉴 개발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정신없이 하며 태규는 참 열심히도 부지런하게 살았다.
‘정말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 신이라는 사람.’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그냥 모습만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마음 한켠에 신이라는 존재를 넣어두고 있던 태규였지만, 시간이 나름 오래 흘렀음에도 그는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 넣어두었던 신이라는 한 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풍화되고 지워지며 깎여 내려갔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날수록. 신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점점 잊혀졌고, 그가 사라진 지 반년이 거의 지났을 무렵. 태규와 미호, 그리고 소반의 가족 같은 이매망량들은 더 이상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당장 하루 종일 할 일이 많아 바쁘기도 했고. 이제 사라진다면서 본인의 입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던 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에,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미호와 어디를 놀러 갈지. 미호의 생일에는 어떤 선물을 챙겨주면 좋을지.
미옥 아주머니가 다 같이 계곡에 캠핑을 하러 가자는데 무슨 요리를 만들어가면 좋을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미호는 어느새 6살이 되었고, 키가 8cm나 커졌으며, 소반은 명실상부한 한국에서 알아주는 맛집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저녁.
치리링~~
소반을 마감하고 뒷정리를 슬슬 하려 할 즈음. 본점의 문이 벌컥 열리며 종이 흔들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저승사자님 오셨나? 식사하러 오시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던가.’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태규였으니까.
문 앞에 떡하니 [CLOSED]라고 표지판을 걸어두었음에도 당당히 소반에 들어왔다는 것은, 대부분이 이 셋 중 하나였다.
떠돌다가 배고파서 한 끼 밥을 먹으러 온 사연 많은 귀신이거나.
술이 먹고 싶다며 안주 만들어달라고 쳐들어오는 백호거나.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배고프다며 찾아오는 신입 저승사자거나.
사람 손님과 이매망량 손님들에 귀신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소반이었지만, 식당 주인이었던 태규에게는 이제 전부 일상적인 풍경이요 다 똑같은 손님으로 느껴질 뿐이었으니까.
주방 정리를 하고 있던 태규가 저승사자인가 싶어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저승사자님 오셨어요? 오신다는 날이 오늘이었구나. 좋아하시던 닭발은 일단 만들어 놨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일단 음식은 미리 재워두었으니까.
금방 구워서 소주 한 잔이랑 내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태규 사장, 오랜만이야?”
눈앞에 있는 저승사자는 지금 태규가 기다리던 손님과는 조금 다른 존재였다.
아니, 놈이라고 해야 좋으려나.
이제는 정말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완전히 잊어버렸던 인물이었는데. 그래, 얼굴을 보니 바로 기억이 오소소 떠올라버렸다.
“예, 진짜 오랜만이네요.”
가짜 저승사자.
아니, 그보다는 신이라는 한 글자가 더 어울렸던 존재.
그가 다시금 멀끔한 검은색 양복을 입고 태규를 찾아온 것이었다.
“왜 그래? 오면 안 될 사람 온 것처럼. 나 그냥 갈까?”
“……됐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온 거라고, 일단은 말해 둘게. 왜, 저번에 태규 네가 그랬잖아. 배고프면 와서 밥 먹고 가라며. 나도 밥 한 끼 하러 왔지.”
하여간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신이라서 그런가, 이상하게 말투마다 능글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뭐랄까, 정말로 중학생 남자아이 같은 그런 능글거림이랄까.
아무튼 식당에 온 손님의 배를 채워줘야 한다는 게 태규의 신념이었으니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 물었더니 없다고 했기에, 간단하게 라면을 하나 끓여주었다.
그래도 나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파랑 양파도 넣고, 달걀 하나도 톡 까 넣어서. 아주 꼬들꼬들하고 맛있게 끓인 다음 김치랑 함께 내어주었다.
“어우, 라면이야?”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셔서요.”
“난 좋지. 나쁘지 않지. 음.”
후루룩! 후루루룩!
배가 고프다고 했던 말이 정말이었던 걸까.
신은 태규가 내어준 라면을 아주 야무지게도 먹었다.
탱글탱글한 면발을 후루룩 올려 씹다가, 새콤한 묵은김치 한 입.
“으음, 역시 라면은 이 맛이지. 아는데, 그래서 맛있는 맛. 알지?”
“예, 예. 알죠.”
“하여간 대답 봐라. 재미없는 놈 저거.”
“저번에는 재밌는 놈이라고 하시더니?”
“원래 신은 변덕쟁이인 거야.”
라면 양이 조금 적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짜 배가 많이 고팠던 것일까.
신은 라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싹 비우더니, 냄비를 잡아 들고 국물까지 아주 벌컥벌컥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래도 맛은 있었는지 반찬으로 준 김치까지 전부 먹은 것을 보면 그래도 식당 주인으로서 기분은 조금 좋았다.
“어쨌든. 그래서 말인데, 태규야.”
“진짜 밥 먹으러 온 거 아니었던 거죠?”
“겸사겸사라는 거지. 겸사겸사. 그냥, 너한테 하나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니까.”
“뭔데요. 들어나 봅시다.”
솔직히 별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신이고 뭐고, 그냥 평범한 저승사자랑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적어도 이 존재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태규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지금 신이 자신에게 해주는 말은.
“어제 태어났거든.”
“태어나요? ……누가요?”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환생한 구미호. 네 아내이자 미호의 엄마였던 그 여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