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84
제186화
186화
“미호야, 밥 먹어라!”
“우웅…….”
“얘가 또 이러네. 어휴, 진짜.”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미호가 좋아하는 아침을 열심히 만들어 두었건만, 우리의 공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하듯 뭉기적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결국 미호의 방으로 쳐들어가 보니, 역시나.
슬슬 겨울이라서 그런가. 춥다면서 전기장판을 따끈하게 틀어놓고는, 이불 속에 몸을 돌돌 말고 들어가서 인간 번데기가 되어버린 미호가 있었다.
“얀마!”
“꺄아아악!”
보다 못한 태규가 미호의 이불을 휘리릭 치워버렸다. 거기에 창문까지 야무지게 열어버리자,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찬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버린 미호였다.
“겨울잠 자니? 이러다 또 학교 늦으려고.”
“우웅, 그치마안.”
“빨리 손 씻고 와서 아침 먹어. 밥 아까부터 다 됐으니까. 국 식겠다.”
“알겠어요오…….”
눈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아침이라는 말에 힘이 조금 났는지 침대에서 드디어 일어나주신 미호 공주님.
후딱 손을 씻고 나왔지만, 역시나. 밥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 하는 얼굴로 태규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씩 웃어 보이며 소리쳤다.
“수저랑 젓가락 좀 놔주라. 아, 밥그릇 저기 씻어다 놨으니까 밥도 좀 푸고.”
“으윽,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진짜. 아빠! 밥 다 됐다면서.”
“밥은 다 됐지? 우리 쿠X가 맛있게 지어 놨잖아.”
“으아아악…… 아재 개그…….”
“아무튼 오늘은 미호 좋아하는 고등어 구웠으니까, 수저만 좀 놔라.”
“헉! 고등어!”
고등어란 말 한마디에 눈을 번쩍 뜨고는 전광석화처럼 상을 차리는 미호.
그 모습이 여전히 너무 귀여워서. 태규는 허허 웃으며 아침상을 준비했다.
오늘의 밥상은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화려하다면 화려했다.
흰 쌀밥과 두부를 잔뜩 넣고 끓여 구수한 된장국.
짭짤한 간고등어 구이와 계란프라이, 마지막으로 바삭한 돌김까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애들 아침 먹이기가 항상 전쟁이라더니, 적어도 태규네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미호는 워낙 가리는 것 없이 밥을 잘 먹었으니까.
흰 쌀밥에, 살이 토실토실한 고등어 한 점을 똑 떼어서 야무지게 한 입.
달달한 쌀밥과 기름기 가득하고 짭쪼롬한 고등어의 조화는 말해봐야 입만 아픈 것이었다.
계란프라이에 케첩을 콕 찍어서 김도 하나 올려 먹고.
목이 살짝 막힌다 싶을 때에는 김이 폴폴 솟아오르는 된장국을 한 수저 퍽퍽 떠먹으면, 이게 바로 한국인의 밥상이 아닐까.
“아빠, 밥 한 그릇만 더 주라.”
“그래, 그래. 고등어 나왔는데 우리 공주님이 투 공기 하셔야지. 내가 이럴 줄 알고 밥 넉넉히 해놨지롱.”
“크으, 역시 우리 아빠 센스가 남다르다니까.”
“우리 미호는 참 신기하다니까.”
“웅? 뭐가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잖아. 다 키로 가나?”
“그러게. 내 친구들 보면 남자애들 여자애들 상관없이, 막 다이어트 한다고 엄청 난리에 난리라니까? 그러면서도 나랑 맨날 같이 떡볶이 먹고, 햄버거 먹고.”
“재근이랑 민규?”
“헉! 어떻게 알았어? 누구라고 말도 안 했는데.”
“우리 딸이 친구라고 하면 그 둘 빼고 또 있겠니.”
“아이, 진짜. 그렇게 하면 내가 무슨 친구도 없는 애 같잖아. 나 이래 봬도 반장이거든? 친구 짱 많거든?”
“그래, 그래. 우리 딸이 예쁘고 착하고 이러니까.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
“으윽, 진짜아.”
농담을 조금 했더니 살짝 화가 났는지, 볼을 부우우- 하고 부풀리는 미호.
그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워서. 크흐흐, 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태규였다.
애들은 몇 살을 먹든 똑같이 애라더니. 역시 옛말 치고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게 정답이었다.
한 그릇 더 퍼준 밥을 순식간에 거의 다 비워가던 미호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맞다, 아빠. 저번에 말했던 거 어떻게 생각해?”
“너 조리 고등학교 간다는 거?”
“응.”
“나는 뭐 찬성도 반대도 아니긴 한데. 미호 네가 하고 싶으면 그대로 하는 거지.”
“에이, 그게 뭐야. 반응이 너무 뜨뜻미지근한 거 아니야?”
“그래도.”
“아빠는 예전부터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탓이라니까? 나도 진짜 잘 할 수 있어! 아빠처럼 엄청 멋있는 요리사 될 수 있다니까?”
“그렇긴 한데. 이게 요리사라는 게 영 쉬운 직업은 아니란 말이지.”
물론 태규는 알고 있었다.
미호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고, 어릴 때부터 혹시나 혹시나 싶었던. 아이가 가지고 있던 요리사의 꿈이 혹시나가 아니라 역시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호는 조리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 했다.
일반적인 고등학교와는 달리, 요리사들을 양성하는 목적의 특수 고등학교였는데. 고등학생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커리어나 경험을 빠르게 쌓고, 조리와 관련된 대학을 가기에도 좋았다.
물론 미호는 대학을 갈 생각이 크게 없어 보이긴 했다.
이전부터 은근히 철이 일찌감치 들었다 싶었던 녀석은 비교적 많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인생 계획을 거의 다 마쳐두었었으니까.
“그래도 미슐랭 레스토랑 운영하고 있는 아빠 밑에서 요리 배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야? 응? 맞지?!”
“아빠한테 묻어가겠다, 이거야?”
“에이. 묻어간다기보다는, 그런 거지. 뭐랄까. 아빠가 아니라 되게 되게 아빠처럼 친한 요리 스승님이자 선생님이라는 느낌이랄까?”
“누구 닮아서 그런가, 말은 잘해요.”
“아빠가 전생에 문과 최강인 선비였으니까, 아빠를 닮은 거지. 흠흠!”
“어유, 아무튼 진짜.”
귀여운 미호의 찹쌀떡 같은 볼따구를 잔뜩 만지작거린 뒤에야, 샤워를 급하게 마친 미호는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아이를 배웅해주고 돌아오는 길.
자신도 마찬가지로 레스토랑으로 출근할 준비를 거의 마치다가, 집을 나가려는데. 거실 TV 앞에 있던 오래된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허허…….”
오래전 사진이다.
소반.
아니, 정확히는 소반이 아직 레스토랑이 아니라 평범한 밥집이었을 때.
미호가 7살이 되어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했을 때에, 정이 많이 들었던 소반의 장사를 마무리하며 다 같이 찍은. 지금의 태규와 미호에게는 유일한 가족사진이었다.
정 가운데에 태규와 미호, 저승과 서아가 있었고. 그 옆에는 소반과 자신을 도와주었던 최시원 사장 같은 사람들이. 그 옆에는 삼신, 신입 저승사자, 사방신 등등. 여러 이매망량들이 함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았을 때. 평범한 ‘사람’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규의 눈에는 사람들 이외에도 그 옆에 있던 이매망량들까지 전부 다 보였다.
물론 이것도 거의 6년 전 사진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시간이 수십 배는 빠르게 흐른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으니까.
미호는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을 지나서, 이제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규는 소반에서 계속 장사를 하면서 돈을 차곡차곡 모았고.
이전에 백반집이었던 소반을 잠깐 폐업한 뒤, 더 넓은 가게로 확장하고 리모델링까지 예쁘게 해주며 레스토랑으로 바꿔버렸다.
물론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막 고급스러운 음식만 취급하고, 가격도 엄청 비싼 그런 식당은 아니었다.
한 명 기준으로 싸게 먹으려면 1만 원도 안 쓰고 든든히 한 끼를 먹을 수 있었고, 고급스럽게 먹고 싶은 것들을 먹으려면 5만 원 까지도 쓸 수 있는. 그런 폭넓은 레스토랑이었던 거다.
이름은 역시나 소반이었다. 파는 요리 또한, 한식을 베이스로 하여 양식, 일식 등등을 혼합한 퓨전 요리였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소반을 운영하면서 하고 싶은 특이한 요리를 전부 다 해 보았던 태규였으니. 그때의 경험과 요리실력을 살려 퓨전 한식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삼신이 좋은 날과 장소를 잘 잡아준 탓인지. 아니면 이제는 완전히 인간 사회에 녹아들어서 소반의 매니저가 되어버린 현무가 기강을 잘 잡아준 덕인지.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 소반은 개점 1년하고도 5개월 만에 미슐랭 원 스타를 획득하더니, 그것을 무려 4년째 지켜오고 있었다.
덕분에 돈을 참 많이도 벌었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했으며, 앞으로 미호가 무슨 일을 하든 든든하게 지원해줄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생긴 것이다.
미호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빠 밑에서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소반을 물려받을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하고 싶다 했다.
예비 고1이 된 미호는 참 멋지게도 컸다.
그렇게나 많이 먹던 음식들이 다 살이 아니라 키로 갔는지, 벌써 키가 165를 넘고서는 쑥쑥 자라고 있었으니까.
누가 구미호 딸 아니랄까 봐 아주 예뻤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온갖 남자아이들에게 고백을 잔뜩 받았다는데, 눈이 높았던 미호는 전부 거절했다.
물론 그런 미호의 옆에는 계속해서 친구들이 함께했다.
민규와 재근이.
두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꿈들을 키워가면서, 운이 좋게도 미호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곧 헤어져야만 했다.
재근이는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고, 음악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다.
민규는 공부를 썩 잘했으니. 서울에서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이전처럼 같은 학교에서 놀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친구니까. 흩어져도 오래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역시, 안 늙는구나.”
한참 전에 찍은 사진인데도. 사진 속 태규와 지금 자신의 얼굴이 똑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미호를 만난 직후. 이유를 알 수 없이, 태규는 조금도 늙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