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벌집 제거 (1)
“그냥 무리해서 그래. 이런 일 흔해.”
진짜로 흔하진 않고 자기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면 생기기도 하는 현상이다. 물론 내가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겠어, 라고 마음먹어 봤자 보통은 불가능하기에 주로 특정 몬스터에게 마나와 생명력을 쪽쪽 빨아먹혔을 때나 비슷한 꼴이 된다.
“힐러는 별 소용 없고 쉬면 나아져.”
아마도. 일종의 시력 스탯 임시 하락 같은 거라. 만에 하나 영구 하락이면 안경 맞춰야 하나. 레벨 더 올리면 약간은 복구되겠지만.
“대체 왜 무리를 한 건데.”
유현이가 범인을 확실시하는 눈빛으로 성현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인간 탓이 맞긴 한데, 내가 자제 못 한 탓도 반쯤은 있고.
“성현제한테 정신계 스킬 같은 거 쓰다가 내가 좀 오버해서.”
“세성 길드장이 잘못한 거 맞지?”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치자.”
원인은 성현제가 쓸데없이 예민한 탓이니까. 동시에 그래서 회귀 전 기억이 남아 있는 듯하지만. 싸우는 중에 떠올려 내는 걸로 보아 흡수했다는 부분들도 완전히 섞이거나 사라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 좀 찔러보고 싶은데 감당이 안 되네. 최면술 스킬 가진 사람을 찾아볼까.
“옷은 또 왜 갈아입은 거야? 머리카락도 젖어 있고.”
“누구 씨가 사슬로 묶어다 3층까지 질질 끌고 가서 수조에 퐁당 빠뜨린 덕분이지.”
유현이가 대답 대신 이마에 달라붙은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어느새 동생의 어깨 위로 올라간 불도마뱀이 불길을 작게 일렁인다. 이어 차고 있던 인벤토리 봉인 팔찌를 빼내려는 유현이를 얼른 말렸다. 너무 솔직하게 말해 버렸나.
“야, 여기 실내야. 무기까지 꺼내 들면 건물 무너져. 세성의 일반 직원들을 생각해야지.”
동생을 다독이며 역시나 푹 젖어 있는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아무튼 제 덕분에 이렇게 멀쩡하신 겁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 아니 진짜 그랬던 건 아니고. 진정해, 유현아. 험한 꼴 당하고도 도와드렸다고요.”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기억은 안 나네만.”
“기억 안 난다고 떼먹을 생각 마시고 몬스터 벌꿀 판매 경로 추적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체로부터 정보 얻어낼 수 있는 헌터 있으면, 분명 있을 텐데 해연으로 보내 주시고요.”
트럭 운전사 시체 확인해야 한다. 내 말에 성현제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제대로 잡아내면 한참을 더 불타오르게 되겠군.”
“잿더미로 만들 생각까진 없었는데 말이죠. 제가 귀찮아서라도 낡은 지붕 불사르는 걸로 끝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부탁드리지요. 저와 제 동생 것, 둘 다요.”
“분부하시는 대로.”
정말 유용하긴 하다니까. 그러니 내가 참고 산다, 진짜.
발이 진흙투성이라 욕실에 들어가 씻어내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불쌍한 열대어들. 주인 잘못 만난 게 죄지.
“형.”
물 폭탄 속에서 높게 튀어 오른 흙탕물 때문에 아예 샤워를 간단히 하고 나온 동생이 나를 불렀다.
“나는 형한테는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걸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어린 건 맞다만.”
“의지할 만한 대상으로서 말이야.”
“다른 누구보다 피붙이가 제일 믿음직스럽지. 뭘 새삼.”
내 대답에도 유현이는 전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럼 만약에 해결하기 힘들고 까다로운 일이 생기면, 형은 가장 먼저 누구한테 연락할 건데?”
“그야─”
“솔직하게 말해 줘.”
유현이가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솔직하게, 는. 진짜 솔직하게는.
“…너는 끌어들이지 않으려 하겠지.”
아마도 성현제나 패륜아들, 혹은 석시명이나 송태원에게 먼저 연락할 것이다.
“너만이 아니라 예림이는 물론이고 노아 씨나 명우한테도 웬만해선 말 안 할 거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힘든 일에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S급 헌터라고 해도 아직 어린애들이다. S급인 어른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애들까지 고생시킬 필요는 없다. 사실 여유만 된다면 던전 공략 같은 것도 대학 졸업 뒤에 했으면 싶었다. 취업처럼.
특히 예림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성장시켜야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마음에 걸렸다. 학교 다니는 것보다 던전 공략하는 게 더 재밌는 모양이긴 했지만. 수업 좀 적당히 빼먹어라.
“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싫어.”
“유현아.”
“내가 더 강하잖아.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더 안전할 가능성이 높잖아. 웬만해선 다칠 일도 없어. 내 몸 하나쯤은 충분히 지키고도 남아. 그런데 형은, 걱정이 지나친 거 같아.”
…그 정도까진 아니지 않나. 진짜 과하게 걱정했더라면 아예 던전엘 못 들어가게 했겠지. 물론 안 가면 좋겠지만.
“동생이니까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가끔은 입장이 반대가 된 거 같아. 내가 형이 위험해질까 봐 속였던… 그때와. 혹시 내가 형을 따돌려서, 그래서─”
“그건 아니다. 난 너 탓 안 해.”
아직은 크게 틀어진 시기도 아니고. 물론 동생이 갑자기 떠나 버리고 모른 척해서 충격 받긴 했지만, 이때까지는 희망이란 게 남아 있었다.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사이가 벌어진 건 각성센터가 생긴 이후부터였지.
“누가 뭐라 해도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유현이 너야. 그래서 더 감싸려 든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이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마음 말이야. 그래서 나랑 멀어지기까지 했었고.”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 내 입장도 이해해 줘. 너한테 숨기는 건 최대한 없도록 할 테니까. 네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린이가 말해 줘서 잘 알아.”
“이린이? 말을 했다고?”
유현이가 조금 당황하며 자신의 손목에 감겨 있는 도마뱀을 내려다보았다.
“어. 정신계 스킬 써서. 선생님 스킬의 진화판쯤 된다고 할까.”
“…뭐라고 했는데.”
동생의 표정이 순간 살짝 굳어졌다. 뭐 비밀 이야기라도 했을 줄 아나.
“그, 너한테 좋아한다는 표현 많이 해 주라고. 그럼 불안이 좀 가실 거라나.”
“그것뿐이었어?”
“응. 혹시 감추고 있는 거라도 있냐?”
린이와는 계속 같이 붙어 지내니까 프라이버시 침해가 당연히 있었겠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거나. …좀 궁금하긴 하네. 별다른 취미 없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거나 할 수도 있잖아. 게임 같은 건 안 하나? 예림이는 뭔 꾸미는 폰게임 한다고 했는데.
“아니야, 없어.”
“진짜 없어? 없는 표정이 아닌데?”
“없어.”
유현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반응이 암만 봐도 뭐가 있긴 한 모양이다. 가족 간에도 사생활은 지켜 줘야 하지만 대체 뭘까. 비밀연애 같은 거면 좋겠다.
휴대폰을 꺼내 송태원의 번호를 찾았다. 잘 안 보여서 불편하네. 임시로라도 안경 맞출까. 폰을 새로 샀는지, 아니면 다른 전화로 번호를 연결했는지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 일로 만나고 싶다고 하자 현재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곳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예. 다만 편한 자리는 아닐 겁니다.]인명피해는 거의 없다지만 사고 현장이니 좋은 분위기는 아니겠지. 통화를 끊고 방을 나서려는데 유현이가 내 한쪽 팔을 붙잡아 왔다.
“잘 안 보인다며. 도와줄게.”
“나 장님 아니다. 못 다닐 수준은 아니야.”
계단은 몇 번 헛디디긴 했지만 평지에선 문제없다.
“아예 안 보이면…….”
“응?”
“아냐, 아무것도.”
동생 놈은 말을 얼버무렸지만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진 않았다. 이미 내 다리 일부러 고쳐 주지 않은 전적도 있는 녀석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안 보이면 안 되지. 유현이 너 못 보는 건 싫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고.”
우리 애들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걸 못 보게 되면 인생의 낙이 8할은 사라지게 될 거다. 지금도 잘 안 보여서 아쉬운데. 역시 가다가 안경 하나 맞춰야겠다.
미니 포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강소영과 다른 세성 헌터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옷 심부름을 시킨 탓인가 다를 근심과 걱정이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별일… 없으셨죠?”
강소영이 부디 아무 일 없었길 바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없지는 않고 사실은 많았는데, 자세히 말하긴 그렇지.
“그냥 수조가 터졌을 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수조가… 그게, 그냥 터지는 물건이 아닌데…….”
“빛의 굴절 현상으로 수조 아래 정원에 불이 나서 화재진압용으로 썼습니다.”
“아아… 네…….”
대충 그렇다고 치고 넘어갑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소영은 물론 다른 헌터들도 유현이를 자꾸만 힐끔거려 댔다. 지금은 김민의의 모습으로 보일 텐데 왜 저러지. 안경 아이템 효과에 문제라도 생겼나.
세성 길드 건물을 벗어날 때까지 유현이를, 김민의를 향한 묘한 시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접근해 오진 않으면서 유심히 관찰하는 눈길들이었다.
“너, 그새 뭔 사고라도 쳤냐?”
“아니. 별일 없었는데. 세성 길드장 자택에도 제대로 허락받고 들어갔어.”
그런데 왜들 저러지.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인가. 보조계 헌터치곤 너무 쉽게 현장 정리를 하긴 했어.
“처음 뵙겠습니다, 김민의 헌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 명함 한 장만 받아 주시겠습니까?”
심지어 주차장에서 명함 나눠주는 타 길드 직원까지 마주쳤다. 이미 길드 소속인 헌터한테 접근하는 건 예의가 아닌데. 특히 상급 헌터 상대라면 싸움 날 일이지만 김민의는 B급 보조계니 찔러볼 위치긴 했다.
역시 사고현장에서의 일 때문에 B급 보조계 스탯치가 아니라고들 생각하는 걸까. 김민의 군 좀 귀찮게 되었네.
명함은 정중히 거절하고 안경집에 들러 안경 하나 맞춘 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곳으로 향했다. 처치 못 한 몬스터가 남아 있을 수도 있기에 주위는 아직 접근이 제한되어 있었다.
밤에도 난장판이었지만 훤한 낮에 보자 더더욱 전쟁터가 따로 없다. 비는 그쳤지만, 날은 여전히 흐려 우중충한 하늘 아래 무너진 건물과 깨진 포장도로가 더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자칫하다간 진짜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는 현실이긴 하지만.
“오셨습니까.”
송태원이 우리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아 멈추었다.
“도수가 있는 안경입니까?”
“예. 어쩌다 보니까요.”
“대체 또 무슨…….”
말을 하다 멈추며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요.”
“요 앞에 편의점 문 못 잠그고 피난한 모양인데 그리로 가죠.”
안에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편의점 주위에도 제법 큰 파편이 떨어져 있었지만 유리벽은 다행히 무사했다. 커피를 골라 계산대에 물에 젖은 지폐를 얹어 놓았다.
“이 정도는 괜찮죠?”
송태원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투플러스 원으로 개당 이천 원도 안 하는 커피다. 돈은 그냥 만 원 냈지만.
자리에 앉자 송태원이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왔다.
“별일은 아니고요.”
“세성 길드장 때문입니다.”
내 옆에 앉은 유현이가 대뜸 털어놓았다. 동시에 송태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젯밤의 일입니까?”
“아뇨 어젯밤에는, 별일 없이 집에 잘 데려다줬습니다. 오늘 세성 길드장 집에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한유진 님께서 혼자 들어가셨다가 봉변을 치르셨죠.”
동생 놈이 토라진 투로 말했다.
“…혼자 말입니까.”
송태원이 한숨을 섞어 말하고 두 사람이 비슷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뭐 왜. 유현이는 그렇다 쳐도 송태원 씨는 시선이 좀 무서우니까 적당히 보시죠.
“전 멀쩡, 눈 말고는 멀쩡합니다. 그보다 어제의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커피에 빨대를 꽂으며 말을 이었다.
“송태원 실장님께선 협조하실 겁니까, 방해하실 겁니까, 아니면 방관하시겠습니까.”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송태원이 빨대의 비닐을 뜯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가 입을 열었다.
“보호해 드리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내 안전을 미끼로 내놓으면 그때만큼은 편들어 주겠다 이 말인가. 일단은 감사히 보호받겠습니다.
“참, 혹시 말인데요.”
이런 질문하기 좀 뭣하지만 궁금해서 못 참겠다.
“송 실장님께서 만약에, 만약에 죽기 전에 세성 길드장에게… 그러니까 소중한 걸 선물해 준다면 이유가 뭘까요?”
“…예?”
송태원이 어이가 없다 못해 이상한 사람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유현이까지 어디 아프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이걸 뭐라고 풀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