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상품 (2)
“에블린 헌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명우가 놀랄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비각성자나 다름없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싸움을 걸 생각은 아니겠지요.”
에블린이 눈가를 미미하게 찌푸렸다. 하지만 명우를 돌아보는 태도는 꽤나 공손했다.
“유명우 헌터께서는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스킬에 대해 밝히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상급 헌터 사이에서는 스킬의 특성에 따라서 칼부림도 충분히 일어나곤 하는 일이지요. 관계자가 아니라면 간섭해선 안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상냥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어조였으나 축약하자면 잘 모르면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명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조금 전 노아 헌터의 위험하다는 말의 뜻은 뭡니까.”
“과민한 반응이죠.”
“아닙니다! 에블린 헌터는…….”
노아가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런 노아의 태도에 명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에블린 헌터.”
“스킬에 대한 것은 아무리─”
툭. 명우가 들고 있던 화살을 마나열로에 던졌다.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화살의 모습에 에블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 잠깐만요. 유명우 헌터?”
이어 테이블 위에 쌓여 있던 화살 무더기로 명우의 손이 향하는 것에 에블린이 급히 두 팔로 화살들을 그러모았다.
“아깝게 왜 그러세요, 말로 하세요!”
“화살 정도로 안 끝납니다.”
“…예?”
“활 제작 의뢰도 거절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장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블린 헌터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장간의 출입을 금지시키겠습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말에 에블린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장비 제작을 맡아 주지 않겠다는 건 그렇다 쳐도, 마지막 말은 세성 길드까지 거부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나조차도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선언이었다.
“그, 겨우 스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긴말할 생각 없습니다.”
명우의 얼굴이 단호라는 두 글자를 그리듯 딱딱하게 굳었다. 어떤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은 그 표정에 에블린이 난감해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누설하시지 않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제 스킬은 미약하게 상대의 행동을 조종하는 겁니다. 눈을 마주친다는 간단한 조건으로 사용 가능한 정신계 스킬이지만 그런 만큼 비각성자나 스탯 F급 정도에게만 통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에 한해서는요.”
F급에게 통한다는 말에 명우가 미간을 좁혔다. 그것을 본 에블린이 변명하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위험한 스킬은 아니에요. 단순히 제가 하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수준일 뿐입니다.”
에블린은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니, 사용하기에 따라선 유용하고도 위험한 능력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안경으로 막고 있습니다. 상시 적용되는 스킬이거든요. 눈을 직접 마주쳐야 하기에 평범한 안경알이라 해도 앞을 가려 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막아 줍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에블린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살벌하던 기세가 완전히 가시자 마치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전형적인 착한 선생님 같다. 우리나라는 아니고 외국 동화의… 가정교사? 그러고 보니 억양도 귀에 잘 들어오면서도 세련된 편이었다. 통역 아이템 안 쓰고 있는 거 같은데 한국말 잘하네.
“에블린 씨.”
내 부름에 그녀가 질문을 위해 손을 든 학생을 보듯 눈을 둥글게 휘었다.
“네, 캔디박스 씨.”
…뭔 소린가 했더니 저거 날 부르는 호칭이었냐. 리에트도 자기 소리 해대긴 했지만.
“비각성자에게 통한다는 말은 헌터 외의 상대와 협상 시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뜻이겠군요. 특히 길드 차원에서는 상당히 쓸모 있겠는데요.”
정부는 물론이고 헌터 협회만 봐도 상층부에는 일반인들이 다수다. 아직은 상급이든 하급이든 헌터가 소수인 세상이었다. 거기에 정신계 스킬 대비도 허술한 편인 시기였다.
“조금은 그렇지요. 아, 일본과의 협상에도 제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세성 측에서는 이번에 에블린과 처음 계약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 오지 않았을까. 그녀의 힘이라면 던전이 생긴 초기부터 각국에 발을 뻗어 놓기 쉬웠을 것이다.
“아무튼 안경 하나로 쉽게 막을 수 있는 스킬이니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상대가 불안정한 상태면 훨씬 강하게 먹혀들기도 해요.”
노아가 뒤에서 작게 속삭여 왔다. 정신계 스킬은 보통 그렇긴 하지. 속삭였다곤 하나 이 정도 거리라면 S급 헌터의 귀에 닿지 않을 리 없다. 아니니 다를까 에블린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금 온화한 얼굴을 하였다.
“저희 길드장님이 무서워서라도 캔디박스 씨껜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유진아, 혹시 모르니 안경이나 렌즈 하고 다녀. 내가 정신계 스킬 방어 효과 있는 아이템도 한번 만들어 볼게.”
“스킬 방어는 쉽지 않을걸. 보통은 정신력 스탯을 최대한 올리는 걸로 막긴 하는데.”
내게도 선생님 스킬용 정신력 스탯 붙은 아이템은 몇 있었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에블린 씨, 그 스킬 저한테 한번 써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유진 씨?”
“유진아?”
“아니, 그냥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려고. 지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험하다 싶으면 막아 주면 되잖아.”
뭘 그렇게들 놀라냐. 내 말에 에블린이 안경을 벗었다. 가리는 것 없이 드러난 눈에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확인시켜 드리면 유명우 헌터께서도 불안을 덜 수 있겠죠. S급 무기는 그렇잖아도 부족한 데다가 원거리 타입은 더더욱 적어서 여기서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그러면서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눈동자가 꽤 예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명우 헌터께 말씀 좀 잘해 주실 수 있겠어요? 활이 꼭 필요하거든요.”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죠. 무기가 드물면 확실히 곤란한 경우가 많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싶어졌다. 오늘 처음 본 사이에 무슨 헛소리냐. 말을 잘해 주긴 뭘 잘해 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명우에게 부탁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알면서도 흔들리다니. 모르는 상태라면 영락없이 홀리겠는데.
“이 정도의 가벼운 부탁은 쉽게 들어주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스라고 했지요? 저도 기승수가 필요한데 제게 넘겨주실 순 없을까요?”
“미쳤, 아니, 안 됩니다. 당연히.”
내 옆에 앉아 있던 피스가 자기 이름을 부른 것을 알아듣고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넘겨주긴 뭘 넘겨줘. 농담이라도 거슬린다.
“이렇게 정도가 지나치면 거부감이 커져 스킬이 통하지 않게 되지요.”
“적당히 조절을 잘해야겠군요. 그래도 충분히 위협적인 스킬입니다. 이렇게 쉽게 알려 주시는 게 부담될 정도로요.”
“쉽게는 아니죠. 유명우 헌터님께는 앞으로도 계속 신세 지게 될 테니 별수 있겠습니까.”
이런 정성을 알아달라는 말에 명우가 염두에 두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오래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 아니긴 해요. 이미 알음알음 알려져서 머잖아 별 쓸모 없어질 예정이기도 하고요. 막기 너무 쉬우니까요.”
에블린이 안경을 쓰려다 말고 다시 나와 눈을 마주했다.
“참, 캔디박스 씨는 세성 길드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하게요.”
“예? 그야 위험한 사람이죠. 능력이야 좋지만. 잘나긴 잘나서 무심코 의지해 버릴까 봐 조심해야 하는…….”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 문제지, 성현제가 던전을 막을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모든 걸 맡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사용할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실패해서 회귀한 사람보다야, 스스로의 힘으로 갖출 거 다 갖춘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와 능력이 주어졌다면.
그때 노아의 손이 내 눈을 가렸다.
“그만하세요.”
“그냥 조금 궁금했을 뿐이야, 퍼피.”
노아의 손이 치워지자 안경을 쓰고 미소 짓는 에블린이 보였다. 화살을 인벤토리에 넣은 그녀가 이만 가 보겠다며, 비밀 잘 지켜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절 그… 런 식으로 부르는 겁니까? 웬만하면 이름으로 불러 주시죠.”
좀 많이 민망한 호칭이잖아.
“다들 그렇게 불러요.”
“…네?”
“한국 말고 영어권 쪽이긴 하지만요. 홍콩에서의 일 이후로 캔디박스와 허니팟으로 통용되고 있어요.”
“…예?”
아니 왜? 어쩌다가? 에블린은 허니팟이 더 우세하지만 자기는 캔디박스가 마음에 든다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려 준 뒤 떠나갔다. 아니 진짜 왜냐… 어떤 놈이 저런 민망한 소리를 퍼뜨린 거야.
“유진아, 괜찮아?”
명우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노아도 어째서인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블린 씨의 스킬이야 일시적인 거라잖아. 당연히 멀쩡해.”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셨어요.”
“맞아. 혹시 세성 길드장이 괴롭히기라도 했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그런 거라면 세성과 거래 끊겠다는 명우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전혀. 일단은 잘해 주는걸. 그리고 명우 너,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갑이라고 해도 S급 헌터 상대인데 열 받아서 앞뒤 없이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안전이 최고야. 화날 일 있어도 일단 보내 놓고 나중에 통보하는 식으로 해야지.”
“평소엔 안 그래.”
명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갑질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나도 원래는 당하는 입장이어서 그런가, 내 능력 가지고 남 휘두르고 싶은 마음 전혀 없어. 네 일만 아니라면.”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은 손이 망치질로 인해 실금이 간 테이블을 스윽 매만졌다.
“딱 하나만 지키면 돼. 내 친구 건드리지 말라는 거. 그 하나 있는 조건도 못 지키는 놈은 누구든 간에 못 받아줘. 세성 길드장이든 뭐든.”
어떤 상대든 물러설 일 없다는 말에 괜히 가슴이 술렁거렸다. 명우 쟤는 왜 저렇게 나한테 잘해 주냐. 자꾸 미안해지게.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면목이 없어지잖냐. 오늘도 부탁할 거 있어서 찾아온 건데. 되게 속물같이 느껴지고 그러네.”
“속물은 뭐가 속물이야. 유진이 넌 대놓고 나한테 이것저것 요구해도 돼. 진짜 막대해도 십 년 정도는 받아 줄 수 있다고.”
“야, 무슨 십 년씩이나… 은혜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치는데.”
“너한테 받은 내가 그렇다는데, 뭘. 하지만 십 년 말고 평생 가려면 말이야.”
명우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탁해, 고마워. 이 두 마디면 돼.”
순간 말문이 꽉 막혔다. 스킬만 보고 명우에게 접근한 내가 나쁜 놈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정말 잘했다 싶어졌다. 정말로.
“…명우야.”
“그래서 부탁할 건 뭔데?”
“어, 이것 좀 봐줘.”
인벤토리에서 SSS급 마석, 최석원의 마석을 꺼내 들었다.
“혹시 이 마석으로 무기를 만들 순 없을까? 은혜도 마석으로 만든 거잖아.”
“SSS급이네? 만들 수야 있지. 하지만 마석의 본체에 따라 달라져. 본체가 가지고 있던 능력 같은 거 말이야.”
“칼 쓰던 놈이었어. 갑옷 스킬도 있었고.”
“몬스터가? 특이하네. 인간형은 드물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SSS급이라니. 그런 능력이면 충분히 무기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아마도 검이 잘 맞겠지.”
“검 좋지! 혹시 SS급이 나올 수 있을까?”
“일단 바탕은 좋고 내가 가진 재료 중에서 SS급짜리 쓰면, 그럭저럭? 내 실력이 아직 모자라서 재료 대비 성능은 떨어지겠지만. 동생 주게?”
“아니. 일단은 상품용이야. 우승 상품. 조만간 이벤트 하나 열어 볼 생각이거든.”
남은 두 태생 S급 헌터는 물론 전 세계 S급 헌터들 중 해파리의 마수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능력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러려면 역시 눈 돌아갈 만한 상품이 걸린 랭킹전이 최고다.
그리고 유현이가 우승해서 SS급 무기를 차지하면 금상첨화지. …성현제 어떻게 처리하지. 다른 헌터들이야 유현이가 쉽게 누를 수 있을 텐데 성현제가 문제다. 전투 예지 그거 진짜 사기잖아. 랭킹전 규칙으로 금지시키고 싶다.
“시간 좀 걸리긴 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만들어 줄게.”
“고마워, 정말로.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언제든 말해.”
“저기, 유명우 헌터.”
얌전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노아가 명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안장 하나 의뢰할 수 있을까요?”
“안장이요?”
“네. 제가, 유진 씨가 쓸 안장이에요.”
안장이라는 말에 당황하며 노아를 돌아보았다.
“노아 씨, 전 안장 필요 없다니까요.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제가 노아 씨에게 신세를 자주 지긴 했지만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안장이 있는 게 더 편하실 거잖아요. 아니면 최소한 줄 같은 거라도요.”
“줄은… 설마 목줄 같은 건… 아니 역시 그것도 아니죠.”
아무리 드래곤일 때라고 해도 원래는 사람인데 목줄이라니. 그건 역시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내게 명우가 줄자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럼 하네스는 어때? 등반용 하네스 같은 거.”
“하네스?”
“응. 그거라면 인간 모습일 때도 착용 가능하니까 더 편할걸.”
“맞아요, 좋을 거 같아요! 인간일 때와 드래곤일 때 동시에 사용 가능한 하네스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노아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보았다. 등반용 하네스… 라면 괜찮으려나? 어떤 거지?
“물론 가능하죠. 마침 세성에서 화살 맡기며 선물로 S급 몬스터 가죽 보내온 게 있으니 그걸로 만들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유명우 헌터.”
“천만에요. 앞으로도 우리 유진이 잘 부탁드려요. 뭐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그러면서 명우가 능숙하게 노아의 가슴이며 허리둘레를 쟀다. 이어 드래곤 모습일 때의 사이즈도 측정했다.
“옵션도 붙여서 튼튼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비용은 얼마쯤 될까요?”
“당연히 무료입니다.”
명우가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노아가 고맙다며 해사하게 웃었다. 둘이 은근 잘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