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이상현상 (3)
S급 던전 게이트를 감싼 건물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위치 문제도 있겠지만 어차피 S급 던전이 터지면 아무리 튼튼한 방어벽이라 해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덕분에 통로를 따라 얼마 걸어가지 않아 게이트실 앞에 도착했다.
문 너머는 조용했다. 방음이 잘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기에 곧장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안쪽의 던전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옅은 빛을 일렁이며 활성화된 상태였다.
소지품이나 포션 등의 회복 아이템을 넣어두는 금고. 대기할 때를 위한 의자들. 그중 한쪽에 자리한 의자에 성현제가 앉아 있었다.
그 혼자뿐이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흔적조차 없다. 이렇게나 깔끔하게 사라질 리 없으니 아마도 던전 안에 있지 싶었다. …단순히 두고 나온 건지, 성현제를 제외한 팀원들이 전멸할 정도의 상대를 만난 것인지.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다.
“여기까지 마중을 나와 주다니. 감격스럽군.”
태연스럽게 지껄이는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평소처럼 멀쩡했다. 머리칼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상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긴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가볍게 얹고 등을 의자 등받이에 묻듯 느긋이 기대고 있었다.
S급 던전에서 막 나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피 냄새도 나지 않았고 옷도 깔끔했다.
“너무 멀쩡해서 괜히 들어왔나 싶어지네요. 사람이 좀 지쳐 있고 상처도 나 있어야 마중 온 보람이 있지.”
몸을 돌려 성현제 쪽으로 두어 발 다가갔다. 약간 거리를 둔 채 멈춰 섰다. 겉은 참 멀쩡하다만.
“왜 혼자입니까.”
그가 목을 약간 틀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혼자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조금 전 내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성현제의 시선이 나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비상 버튼을 쥔 손에 눈길이 잠깐 멈추었다.
“도련님?”
“유현이는 밖에서 멀쩡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꼬마 아가씨로군.”
“예정보다 빠르게 던전에서 나와 직접 공략 완료 연락을 넣은 파트너가 순수하게 걱정되어서일 수도 있지요. 모른 척해 드릴 테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셔도 괜찮습니다.”
“내 파트너는 상냥하기도 하지. 이렇게나 무사한 모습을 보았으니 기뻐 달려와도 된다네. 기꺼이 품에 안겨 주도록 하지.”
뭐라냐. 유현이나 예림이면 모를까.
“그래서 버림받은 사람들은 어쩌고 있습니까. 그리고…….”
던전 안에서 이상한 일은 없었냐고 물으려는 그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발밑이다. 속으로 욕을 내뱉기도 전에 차가운 것이 나를 휘감고 몸이 확 끌어당겨지듯 앞으로 넘어졌다. 순식간에 팔이 잡히고 단단한 손가락이 억세게 손목을 누르며 내 손이 펼쳐지게끔 만들었다.
툭, 바닥으로 비상 버튼이 떨어졌다. 딱히 쓸 생각은 없었지만. 사슬 또한 차르르 소리를 내며 발치로 흘러내렸다.
“던전 안에서, 아니, 그 전에 저기 카메라 좀 부숴요.”
내 팔도 좀 놓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켜 놓고 들어온 건가?”
“껐는지 안 껐는지 알게 뭡니까. 세성이 얼마나 믿을 만하다고. 부술 거라고 말해 뒀으니 부수죠.”
에블린이 꺼 준다고 했지만 그냥 부수겠다 대답했다. 못 믿어서도 있긴 하지만 우리 것도 부쉈는데 너네 것도 부서져야 공평하지.
“요샌 감시카메라가 워낙 발달하기도 했고 말이죠. 도청장치는 없나 몰라.”
“확인해 드리지.”
“그래 주면 고맙, 악!”
순간 전신에 전기가 올랐다. 약한 정전기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게 온몸을 덮치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없군.”
미세한 전류로 방 전체를 순식간에 탐색한 성현제가 말했다. 웃는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조절 잘하는 사람이─”
펑! 카메라가 터져 나갔다.
“…왜 나한테까지 지랄입니까.”
“한유진 군의 몸에도 무언가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지 않나. 다행히 휴대폰뿐이더군.”
또 고장 안 났을까 모르겠네. 정전기 정도였으니 괜찮겠지. 전기를 쓰는 기계류는 다 감지되는 건가. 그것 참 편하네.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짐작하고 들어온 게 아닌가.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거라면 조금 실망스러워질지도.”
“뭘 또 실망까지야.”
성현제 놈이 대답 대신 내 팔목을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가했다. 은혜에 의해 막히지 않을 정도로 지그시 내리누른다. 아, 네. 알겠다고. 피해무효화 아이템이 있어도 막 던전에서 나온 상급 헌터들 앞에 혼자 나서는 건 멍청한 짓이긴 하지.
“제 동생이 던전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정보다 더 빠르게 공략을 끝냈고요. 성현제 씨도 비슷한 일을 겪은 거 아닙니까?”
좀 놓으라고 손목을 비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동업자 씨 상대니까 들어온 거지.”
어쨌든 믿을 수 있는 상대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생겼든 쉽게 흔들리지 않을 인간이고. 내 대답에 성현제가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도 시선을 느낀 건가.”
“네. 던전 밖에서 누군가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더군요.”
“확실히 그런 감각이었지.”
성현제가 작게 끄덕였다. 그 또한 던전 밖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시선을 느끼고 없애 버렸다고 하였다. 이후 또다시 시선이 느껴지는 일은 없었지만.
“던전 상태가 변했다고요?”
2층에서 처음 보는 몬스터가 나타나고 길이도 더 짧아졌다고 했다. 다행히 몬스터는 별로 강하지 않았지만 변화가 신경 쓰여 팀원을 뒤에 두고 먼저 던전을 공략해 나왔다고 말하였다.
“정리는 해 놓았으니 내일쯤엔 나올 거라네.”
“…유현이는 던전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만.”
시선을 느끼기만 한 것과 공격까지 한 것의 차이인가. 설마 예림이도 괜히 건드렸다가 던전이 바뀌어 아직 나오지 못한 건 아니겠지. 성현제는 더 짧아졌다고 했지만 반대로 길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 정도 변화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내 파트너께는 별일 없었는지.”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아무래도 배구공을 만나 봐야 할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나가죠.”
성현제까지 동행한다면 유현이도 더 막지 않을 거다. 시선에 대해 궁금할 테니 순순히 따라와 주겠지.
“아, 혹시 그 시선 익숙하지는 않았습니까? 해파리라든가요.”
유현이와는 다르게 성현제는 해파리를 직접 만났었다. 예리하기까지 하니 무언가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 물음에 성현제가 잠깐 기억을 되새기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낯선 느낌이었다네. 해파리도 배구공도 확실히 아니야.”
일단 해파리는 아니구나. 다행이다. 그럼 성현제가 모르는 다른 패륜아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 실수로 던전 오류라도 내 버린 걸까.
성현제가 몸을 일으켰다. 나 또한 바로 섰지만 아직 붙잡혀 있는 채였다. 왜 안 놓아주냐 하고 쳐다보는데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떨어진 비상 버튼이다.
“잠깐만─”
꾸욱, 성현제의 발끝이 버튼을 눌렀다. 야!
“궁금해서.”
“그냥 말로 물으면 어디가 덧나냐!”
호기심 드는 건 죄다 만져 보는 다섯 살짜리 애도 아니고! 순진한 척 웃지 마, 망할. 애초에 받아 온 내가 잘못이었지. 잠깐, 설마 에블린 씨 알고 준 거 아니냐. 생각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성현제가 나를 안아들었다. 금빛 사슬이 주위를 휘감고.
우우웅─
겹겹의 벽으로 박힌 게이트 실이건만 심상찮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콰과광!
주변이 터지듯 박살 나고 파편이 위로 솟구쳤다. 덮쳐오는 벽과 건물 잔해를 사슬이 연이어 튕겨내고 산산조각으로 부순다. 흐리게 뜬 눈에 건물이 있던 자리를 둥글게 덮은 반투명한 막 같은 것이 보였다.
“저건…….”
“에블린의 스킬이라네. 표적을 가두고 화력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지.”
주위 피해 없이 깔끔하게 날려 주겠다고 자신 있어 하더니 저런 스킬이 있었구나. 튀어 올랐다가 막에 부딪친 파편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방공호처럼 튼튼하게 지은 던전 건물이 순식간에 잔해만 남았다.
양옆은 물론 도로 너머도 멀쩡한 빌딩이 반짝거리고 있다 보니 더더욱 괴리감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막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번화가 한복판에서 거침없이 공격 스킬을 써 버리다니. 외양은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보였는데 에블린 씨도 S급은 S급이구나…….
갑자기 송태원이 떠올랐다. 던전에 들어가서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댁네 길드원한테 공격을 다 당하시고, 참 재미있으시겠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 주세요.”
슬슬 쪽팔리기 시작했다. 다른 때야 내 스탯치로는 들려 다닐 수밖에 없고 보는 눈도 몇 안 되니 그러려니 했는데 여긴 번화가잖아.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세성길드원과 협회 직원들이 바리케이드 치고 막고는 있지만 빌딩 위층에선 훤히 다 보일 텐데.
…악, 진짜 쪽팔려.
“놓아주시죠, 쫌.”
속으로 욕을 삼키는데 유현이가 훌쩍 뛰어 다가왔다. 잔해를 넘어 성현제 앞에 선 동생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돌려주십시오.”
성현제는 유현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순순히 나를 건네주었다. 아니, 내려달라니까 그냥. 어느새 기자까지 나타났는지 카메라 소리가, 으아악.
“얼른 내려 줘, 유현아.”
“괜찮아, 형?”
“멀쩡해. 세성길드장이 일부러 버튼 누른 거야.”
제 마음 내키면 핵미사일 버튼도 망설임 없이 누를 인간 같으니라고. 내가 진짜 저 인간을 믿어도 되나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기껏 세상 지켜 놓았더니 저 망할 인간이 갑자기 심심하다며 멸망시켜 버린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성현제 씨도 같은 걸 느꼈다고 하더라. 역시 던전에 가 봐야겠어.”
유현이에게 나직이 말하며 돌아섰다. 저만치서 에블린이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겉모습만 보면 길 가다 반 학생을 발견한 상냥한 선생님 같다. 외모에 속지 말자.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파트너 씨.”
“방금 던전에서 나온 사람을 부려먹으려 들다니, 냉혹하기도 하지.”
“저런, 나이 생각을 못 해 드렸네요. 조만간 은퇴할 계획이시라면 동업자로서 세성은 제가 잘 먹어 드리겠습니다.”
농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솔깃해졌다. 진짜 계약서 하나 쓰자고 해 볼까. 상대방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날 시 사업장을 물려받는 걸로.
엄살과 달리 성현제는 흔쾌히 동행을 수락했다. 그도 궁금하기는 할 터였다. 우리는 곧장 가까운 하급 던전을 수배해 들어갔다.
[허니!]눈으로 뒤덮인 숲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신입이 통통 튀어나왔다.
마감에 독촉당하며 야근하는 블랙기업 직원처럼 신입이 소리쳤다. 아니,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닌데 괜히 미안해지네.
“오늘은 그 일 때문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이 던전에서 시선을 느꼈다고 했어. 혹시 아는 거 있어?”
[아, 맞아요!]배구공이 끄덕거리듯 흔들렸다.
[던전에 연이어 간섭이 있었어요. 체인과 허니의 동생, 그리고 물방울 선배의 힘을 가진─]“예림이? 어떻게 됐어?!”
역시 예림이한테도 이상한 일이 생겼구나! 덥석 잡으려는 내 손을 배구공이 슬쩍 피했다. 익숙해졌다 이건가.
[확인해 봤는데 별일 없었어요. 간섭으로 인해서 던전이 약간 변형되긴 했지만 S급 각성자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정말로?”
[네! 음, 살짝 확인시켜 드릴까요? 대신 허니가 부탁한 일은 조금 더 늦어지게 되겠지만요.]“확인시켜 줘.”
아이템이 문제냐, 애가 일단 무사해야지. 배구공이 잠깐 침묵하더니 내 앞으로 창이 떠올랐다.
[너무 맛 □다. 그쵸, □니.아, 블루□! 부□□ 피 묻힌 채 □지 마!]
드문드문 사라진 대화 글이 짧게 나왔다가 사라졌다. 휴식하며 건조식량이라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거 맛없지, 확실히.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무사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블루는 물론 다른 팀원도 별문제 없는 듯하고.
“원인이 뭔지는 알고 있어?”
[아뇨, 일단 누가 간섭한 건 확실하지만 범인까지는 못 잡아냈어요. 저희 쪽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아니면.]“해파리는 아니야.”
[그래요?]“그래. 유현이와 예림이, 성현제를 살펴봤다면 나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까?”
내 물음에 배구공이 빙그르 돌았다.
[없어요! 던전에 간섭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힘이 아주 많이 들어요. 보통은 기껏해야 던전을 변형시키거나 S급 몬스터를 들여보내는 정도죠.]“도마뱀 주인은 SS급 몬스터까지 보내왔잖아.”
[걔는 스킬 자체가 특별하니까요. 하지만 해파리에게는 그런 스킬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허니 세계의 S급 각성자와 계약하고 그 몸을 빌려야만 유의미한 해를 입힐 수 있는 유의 능력을 가졌죠.]그러니 던전보다는 S급 헌터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해 왔다. S급 각성자가 최석원처럼 제 몸 바치는 계약을 할 가능성은 극히 낮기는 하다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여기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릴게요. 제가 좀 더 살펴볼 테니까 당분간은 허니가 던전에 들어갈 땐 꼭 S급 각성자 여러 명과 동행하세요!]괜찮다고 할 때까진 조심하라면서 따로 게이트를 만들어 주었다. 유현이와 성현제에게 신입이 해 준 말을 설명해 준 뒤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예림이가 무사히 던전 공략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