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family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결자해지 (8)
어젯밤.
한백도가 연환의 선택을 받은 순간. 한백도는 바로 심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 들어간 심상의 세계는 순백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순백의 공간에는 사부 공손용이 정좌를 하고 있었다.
한백도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인사를 올리고 말씀을 기다렸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사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한백도는 고개를 들고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는 처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한백도는 좀 더 자세히 사부를 살펴보았다. 사부의 눈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사부는 그 미소로 참 많은 말씀을 하고 있었다.
한백도는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 생각했다.
‘내가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였지. 그래서 여기로 올 수 있었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그 마음보다 더 깊이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거구나.’
한번 자신을 낮췄으니 두 번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백도는 호흡으로 자신의 마음을 낮추었다.
마음을 낮추는 것이 마음대로 잘 안 되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어느 순간 사부님의 음성이 들렸다.
“오랜만이구나.”
한백도는 사부님께서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스스로를 낮출 때까지 기다려 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백도는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정녕 신선이셨군요.”
“길을 걷는 이란다. 그리고 너도 이제 이어져 있음을 마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계속 정진을 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고께서 지상선이 되고자 하십니다. 어찌하면 되올런지요?”
“이제는 네가 장문인이란다.”
한백도는 이마를 살짝 짚었다. 사부님께서는 쉽게 가신 적이 없으셨다.
‘이것도 다 가르침이시겠지.’
한백도는 고심을 하다가 말했다.
“저는 현재 사고를 어찌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니 사부님께서 방편을 일러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인세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한백도는 잠시 절망감을 느꼈지만 생각을 달리했다. 사부님께서는 인세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고 하셨지 안 한다고 하시지는 않았다.
이 문제도 자신이 답을 찾아야 했다.
“사고를 이곳으로 모시고 오면 되겠습니까?”
“네가 장문인이라는 말을 못 들은 게냐?”
“아닙니다. 잘 들었습니다.”
한백도는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 말했다.
“제가 장문인입니다. 제가 결정을 내리고 움직여야지요.”
한백도는 그렇게 답을 올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백도는 이마를 짚고 긴 시간 고민을 하고 궁리를 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사고를 시험해 보겠습니다. 지상선을 인가하는 데 시험 한 번 안 해볼 수는 없지요.”
“시험에 통과를 하면 인가를 할 생각이냐?”
“그건 아니고 사고를 속여서…….”
한백도는 사부님의 담담한 얼굴을 보고 얼른 계획을 바꾸었다.
“아참. 거짓을 말하거나 속여서는 안 되지.”
한백도는 다시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현선문 문주이다. 사고는 내게 청원을 한 것이고. 내가 진짜 문주라면 어떻게, 아니 어떤 마음으로 이번 청원을 대해야 맞는 걸까?’
한백도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했다.
‘현선문과 사고를 위한 최선의 길을 궁리하고 찾아내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나는 현선문주니까.’
한백도는 사부님이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그 시험을 통해 가르침을 내려 주신 것을 떠올렸다.
자신도 그 길을 걷는 것이 현선문주로서 합당할 것이다.
“네. 진심으로 사고를 위한 시험을 하나 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한다면 인가를 하겠습니다.”
“그 무게를 알고 있느냐?”
“…….”
“인가를 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한백도는 입을 살짝 벌렸다.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와 등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공손용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널 제자로 받아들이고 장문인에 올렸으니 나 또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니 이번 일은 내가 나누어 지마.”
“죄송합니다. 제가 불미하여 사부님께 폐를 끼쳤습니다.”
“사제관계란 그런 것이다. 하니 너도 제자를 거둘 때 백 번 천 번 생각하고 그 제자를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인부전. 그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어떤 식으로 시험을 할 생각이냐?”
“그것까지는 아직 생각을 못 했습니다.”
“시험은 제자를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너는 네 사고의 어떤 점을 알고 싶은 것이냐?”
한백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고의 바람과 의지가 선한지, 다른 사심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람을 빠르게 아는 방법 중 하나가 그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걸 궁리해 보렴.”
한백도는 머릿속에 터지는 것 같은 기쁨과 시원함을 느꼈다. 그리고 뭔가 방법도 생각이 났다.
“사부님 말씀대로 욕망과 두려움을 통해 사고의 진정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사고께서 제 시험에 아무런 요동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하신다면 저도 바로 인가를 하겠습니다.”
“즉문즉답을 해볼 생각이구나.”
“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어찌하겠느냐?”
한백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곳으로 모시고 오겠습니다.”
“심상세계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데리고 오기 힘들다. 네가 사고를 끌고 올 수 있겠느냐?”
한백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욕망과 두려움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욕망과 두려움을 자극하겠다는 것이냐?”
한백도는 바로 말했다.
“사고는 사부님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고, 욕망은 현선비록이면 어떨까 합니다.”
“현선비록의 경우 잘못 입에 올리면 사매에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럼 너의 명은 그대로 끝이 난다. 그래도 좋으냐?”
한백도는 깊이 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사고께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지상선이 되고자 하신다면 제가 한 질문에 바로 답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럼 현선비록을 내보일 필요도 없이 인가를 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바로 답을 하지 못한다면 신념이 아니라 이익, 또는 사심에 의한 것이니 현선문의 장문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할 것입니다.”
한백도의 답에 공손용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한백도는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제자의 수준에서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부님, 어리석은 제자를 위해 부디 길을 일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번 해보거라.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터이니.”
한백도는 심상세계에서 나와 구체적인 시험계획을 구상하고 날이 밝자 그대로 실천을 했다.
위지경화는 한백도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한백도는 현선비록을 이용해서 사고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사고는 한백도의 계획대로 잠시 잠깐 찰나의 순간이지만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방비의 상태가 되었다.
한백도는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려 사고를 심상세계로 끌어들였다.
한백도는 사부님과 사고의 모습이 안개에 휘감기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사고에 관한 일은 사부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사고는 사부님께서 정리를 하실 것이고. 나는 내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한백도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낡은 막을 바라보았다. 이 막이 자신의 기안과 각성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한백도는 막 너머 끈적거리는 검붉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저 검붉은 덩어리는 한백도의 전생이 만들어 놓은 업이다.
한백도는 어제 심상세계에 들어와 이 막과 저 업의 덩어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백도는 막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 업들은 막이 거두어지는 순간 나를 덮칠 것이다. 그럼 나는 내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처럼 운명에 휩쓸려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다행히 내게는 심상의 세계에 들어올 힘과 정화를 할 수 있는 염화가 있다. 지금 막을 걷고 이곳 심상의 세계에서 전생의 업을 받아들이고 정화를 한다면 현실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인생,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한백도는 단전에 염화를 피워 올렸다. 순간 전생의 업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한백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왜 염화를 피하지. 염화로도 충분히 정화할 수 있는데…….’
한백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항상 모든 원인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저 업들이 염화를 피해 물러간 것은 염화가 자신들을 정화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 업들은 염화에 정화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저 업들은 나를 찾아 해업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한백도는 잠시 생각을 했다.
‘저 업들을 불러오려면 내가 전생에서 건너온 나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전생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한백도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의 전생은 마교의 성존이다.’
업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백도의 생각이 업은 물론 자신에게도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심이 없었다.
한백도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생각했다.
‘나는 성존이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해결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업들은 이곳을 나가 인세에서 날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삶 속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크고 강해. 나는 물론 일가족이 모두 휩쓸려 해를 당할 것이다.’
한백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생각했다.
‘업이 아니라 전생의 나부터 만나자. 그게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한백도는 자신을 더 낮추면서 전생과 이어지기를 노력했다. 어느 순간 붉고 가는 실 하나가 막을 뚫고 날아와 한백도의 중단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백도는 염화로 붉은 실을 태웠다. 실은 역한 냄새를 나며 타들어 갔다.
한백도는 온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전생의 업이 정화가 되는 게 아니라 타버리는구나. 염화로는 안 되는 거였다. 성화. 성화이어야만 해. 하지만…….’
한백도는 잠시 생각했다.
‘내 전생이 정말 성존이라면……. 성화를 거부하는 나를 인정할 리가 없지.’
한백도는 염화를 성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전에 성화를 피워올렸다.
순간 은은한 향이 한백도의 몸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백도는 성화로 중단을 관통한 붉고 가는 실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붉은 실은 반딧불 불빛처럼 빛으로 화하면서 중단 주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붉은 실이 다 정화가 되자 막 너머에 있던 혈기가 거대한 창이 되어 한백도의 가슴을 관통했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한백도는 이를 악물고 단전에 집중하면서 성화를 더 크게 피워올렸다.
그때 천지사영의 고행불과 연화심 윤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세존께서 미간(眉間)의 백호상(白毫相)으로부터 큰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여래출현(如來出現)이요…….
내가 만약 도산지옥으로 향하면, 도산지옥이 스스로 꺾이고, 내가 만약 화탕지옥으로 향하면 화탕지옥이 스스로 소멸한다네.
신교 성존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운명대로 사는 것이 법이라고 하나 진작 법성신(法性身)을 이루었으니 도산은 꺾인 지 오래고 화탕지옥은 소멸하여 극락정토가 되었네.
업 또한 마찬가지이니 이제 전생의 업을 다 정화하여 이번 생은 내 뜻대로 살리라.”
한백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화가 전신의 모든 모공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막이 찢어지며 거대한 혈기와 마기, 사기가 몰아닥쳤다.
한백도의 전신에 타오르는 성화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모든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 정화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알지 못했다. 아득한 세월이 흐른 것 같기도 하고 찰나가 지난 것 같기도 했다.
한백도는 정화를 끝내고 눈을 떴다.
막이 사라진 공간 저 너머, 낡고 헐은 전포를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한백도는 사내가 자신의 전생임을 바로 알았다.
한백도가 다가가자 둘 사이의 공간이 바로 접혀졌다.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가지 못했다.
한백도가 먼저 인사를 했다.
“한백도라고 합니다.”
사내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고 감사하네.”
“우리는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생이 나뉘어 있지 않은가?”
“이어져 있기도 하지요.”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제가 어떻게 하면 마음 편안하시겠습니까?”
“그대 삶이 아닌가?”
“마음에 굳게 세우신 바가 있으십니까?”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중용의 한 구절을 바닥에 적어 내려갔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에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한백도는 사내가 적은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이 글자들은 사내의 미련이다. 그리고 윤회전생을 하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마음 깊이 새긴 신념이기도 했고.
한백도는 자신 앞에 사내가 적은 글자를 그대로 자신의 앞에도 적었다.
그와 함께 단전 깊숙한 곳에서 이 글자들이 떠올랐다.
한백도의 전생이 남긴 신념이 이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은 경지가 낮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백도는 이 글자들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 글자들이야말로 자신의 평소 말과 행동을 유인하여 운명대로 살게 만드는 것이다.
운명을 극복하려면 이 글자를 바꾸거나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어야 했다. 하여 피하지 않고 직시한 것이다.
한백도는 마지막 교(敎) 자를 남겨두고 손을 멈추었다.
이 한 글자만 고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