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family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결자해지 (7)
도관에는 현선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한백도는 의관을 정제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도관 안으로 들어갔다.
도관 안에는 태극팔괘도가 걸려 있었다. 그 앞 비단 포대에는 연환이 놓여져 있었다.
한백도는 연환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사부님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현선문의 제자 한백도가 역대 조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한백도는 연환과 팔괘도를 향해 삼 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백도는 기운이 착 가라앉는 걸 느꼈다. 무언가 모를 감응이 있는 것 같았다.
한백도는 연환을 만져보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심안을 열기 전에는 삼보를 보아도 얻지 말라고 하셨지.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사태를 염려하신 것 같구나.’
한백도는 태극팔괘도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역대 조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부님, 떠나시기 전에 제게 언질이라도 좀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한백도는 사부님 탓을 하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잘못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부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구나. 명경을 보기도 전에 사고를 사고로 인정하고 홍경을 예비제자로 받아들였으니. 뭐가 그리 급했을까.’
한백도가 홍경을 예비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위지경화가 지금 이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백도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연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과 함께한 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부님께서 날 왜 제자로 받아들이신 걸까? 내가 성존이라는 것을 알고 제자로 삼으신 거라면……. 정말로 내가 막을 거두고 전생을 받아들여 사고를 막기를 바라신 걸까?’
한번 생각이 이쪽으로 기울자 여러 가지 생각이 바로바로 떠올랐다.
‘전생의 나는 현선문과 싸웠을까? 싸워서 이겼을까?’
한백도는 답을 알고 있다.
‘마교는 패했다. 아니야. 마교가 패하기는 했지만 그게 성존이 일대일 싸워서 진 건 아니지. 일대일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사고는 그 후 백 년을 더 수련을 했는데……. 내가 지금 전생의 경지를 끌어온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
한백도는 다시 생각을 굴렸다.
‘어쩌면 사고는 내가 전생을 받아들여 자신에게 덤비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한백도는 온몸에 소름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래 맞아. 내가 전생에 잡아먹히면……. 그때는 현선문주가 아닌 마교 교주가 되는 거다. 그럼 사고는 아무런 제약 없이 나를 죽일 수가 있는 거야. 현선문주가 아니니까.
내가 살아 있는 게 사고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나는 심안을 열 것이고, 제자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럼 문규로 사고를 멈추게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마교 교주가 되어 사고의 손에 죽게 된다면 사고는 모든 것을 얻게 된다.’
한백도의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한백도는 깊은 호흡으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밤은 점점 깊어가서 달빛이 도관을 비추기 시작했다. 한백도는 연환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날이 밝고 내가 답이 없거나 거절을 하면 사고는 바로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사고는 내게 거짓을 말한 적이 없으니까.’
한백도는 태극팔괘도를 올려다보았다.
‘현선문 장문인으로 사고를 막거나 시간을 벌 방법은 없을까?’
한백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고를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인가를 하면 정말로 지상선이 될 수 있는 걸까? 아니야. 내가 이 가능성을 따질 필요는 없지. 문제는 인가를 해줄 거냐 말 거냐다.’
‘내가 인가를 해주고 정말 사고가 지상선이 되어 불로장생을 하게 된다면 세상이 어찌 될까?’
한백도는 그 지점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사고는 현선문의 도를 세상에 펼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현선문의 도일까?’
아닌 것 같았다.
‘사고가 펼치고자 하는 도는 뭐지?’
한백도는 자신이 사고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사고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내가 모르는 자의 청원을 함부로 인가를 해줄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러고 보니 사부님이 남기신 비인부전, 이 한 말씀에 큰 가르침이 담겨져 있었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
내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이 말을 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안목이 없으면, 상대를 모르면 사람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여 도를 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 내가 정말 무지하였구나. 중요한 것은 나였는데…….’
그때 작은 바람이 불어와 왼쪽 벽에 걸린 족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한백도는 족자를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 처음 가르침을 내리신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백도의 눈에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아는 것이다(智). 알고 보는 것이다. 보고 아는 게 아니라.
아아. 아는 것이 먼저였구나. 마음을 아는 게 먼저였어.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였다. 알아야 하는 거다.
뭐든 먼저 알아야 하고 알려면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아아.
머리로 재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심안의 시작이었구나.
내가 나를 모르고 상대를 모르고 세상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게 시작이었어.’
한백도는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크고 거대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왜소해지면서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한백도는 그런 감정을 그대로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내가 아는 것은 없다.’
한백도의 전신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쳐 오르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막이 터지는 걸 느꼈다.
한백도의 몸이 쓰러질 것처럼 휘청였다.
한백도는 연환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 연환이 보잘것없고 아는 것 없는 자신을 지켜줄 지팡이가 되어 줄 것 같았다.
한백도의 감정이 연환에게 전달되자 연환이 울기 시작했다. 한백도의 지팡이가 되어주기로 한 것 같았다.
한백도는 감사한 마음으로 연환을 꼬옥 움켜쥐었다.
다음 날.
한백도는 정자에서 위지경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위지경화는 소반에 잡곡밥과 산나물 요리를 담아 가지고 왔다.
“찬이 많이 부족합니다.”
“아닙니다. 정성이 가득한 것이 느껴집니다.”
한백도는 수저를 들다가 위지경화를 바라보았다. 위지경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과 겸상을 할 수는 없지요. 한데 어제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어제 사고의 시험 덕분에 큰 배움이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위지경화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시험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네. 제가 제대로 된 현선문주가 될지 속세의 범인으로 남을지 선택하기를 바라신 것 아니십니까?”
위지경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면 제 청원에 대한 결심도 서셨습니까?”
한백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껏 차려 주셨으니 조반을 먹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한백도는 나물을 하나하나 찬찬히 음미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그건 마치 최후의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소반을 물린 한백도는 위지경화가 따라주는 차를 받았다.
향이 좋았다.
한백도는 차를 한 모금 하고 나서 위지경화를 바라보았다.
“사고.”
“네, 장문인.”
“꼭 지상선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위지경화는 눈을 반짝였다.
“일생의 소원입니다.”
“지상선을 하려는 목적이 혼란한 세상을 정리하여 순백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간 많은 이들이 구세제민에 실패한 이유가 뜻을 이루기 전에 명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도 명이 길었다면 뜻을 이루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니 저는 명을 늘려 도가 중단되는 것을 막고자 할 뿐입니다.”
한백도는 위지경화의 안색을 살폈다. 위지경화의 얼굴에 확신과 신념이 서려 있었다.
한백도의 눈빛을 받은 위지경화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제 진심이 느껴지십니까?”
“많은 이들이 사고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잘 가르칠 생각입니다. 기회를 줄 것이며 기다려도 줄 것입니다.”
“그것이 도에 합당합니까?”
“세상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합당하지요.”
“저는 사고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을 알 것도 같습니다.”
“호호. 누구를 알고 계신지 저도 궁금하군요.”
한백도가 말없이 미소만 짓자 위지경화가 다시 말했다.
“장문인.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은 많이 계셨습니다. 다만 그들은 명을 늘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실패를 하셨지요.”
“그분들의 명을 제한한 것도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하여 이리 장문인께 여쭙는 것입니다. 장문인께서는 제가 지상선이 될 만한 그릇이라고 여기십니까?”
한백도는 차를 한 모금 하고 위지경화를 바라보았다.
“사고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인가를 위해 절차를 밟아볼까 합니다. 어떠신지요?”
위지경화는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진심이십니까?”
“사고께서 거짓을 말하지 않으셨듯이 저 또한 사실만 말할 뿐입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규가 아니던가요?”
“호호. 맞습니다. 문도들 간에는 사실만 이야기해야지요. 침묵은 용서가 돼도 거짓을 말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하면 어떻게 절차를 밟으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사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아니 전혀 모르지요. 해서 제가 감히 사고가 세상에 펼치고자 하는 뜻과 결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또 문주로서의 책임도 있으니 문도의 청원에 대한 결정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여 사고를 잘 아는 분께 조언을 들어볼까 합니다.”
위지경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사부님이십니다.”
“호호호. 장문사형께서는 이미 귀천하신 것 아니신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어져 있지요.”
한백도가 손을 들자 도관에서 연환이 날아와 한백도의 손에 잡혔다.
위지경화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백도가 말했다.
“연환의 공능에 대해 아시지요?”
“네. 인연을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부님을 생각하고 이 봉을 잡으시면 만나 뵈실 수 있을 겁니다.”
순간 위지경화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장문인 농이 지나치십니다.”
“진심입니다.”
위지경화는 한백도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한백도는 위지경화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위지경화가 말했다.
“연환이 생사를 넘어서까지 인연을 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본 문의 가장 중요한 심법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믿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
“혹시 제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내세워 사고의 청원을 피해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까?”
한백도는 위지경화를 바라보고 말했다.
“제가 사고를 모르는 만큼 사고도 저를 모르시는군요.”
위지경화의 몸이 살짝 굳었다가 풀리는 걸 본 한백도는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믿음을 갖는 빠른 길은 비밀을 공유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명경의 주인인 제가 장문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선비록.”
순간 위지경화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얼굴에 불신이 번졌다. 그리고 의혹이 생겨났다가 뭔가 알아차린 얼굴이 되었다.
“인연이 되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할 것이다. 아아. 그 말씀이…….”
한백도의 눈에 솜뭉치 같은 하얀빛의 덩어리가 떠올랐다.
위지경화는 떨리는 손을 들어 한백도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빛의 덩어리로 가져갔다.
위지경화의 손이 빛의 덩어리와 만나는 순간 한백도는 눈을 깜빡였다.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위지경화는 아쉬운 표정으로 잠시 멈추었다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깊이 호흡했다.
한백도가 말했다.
“오늘 보신 것은 죽을 때까지 사고 한 분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는 본 문의 최고 비밀이니 어길 시에는 엄중한 벌을 받게 되실 겁니다.”
위지경화는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입니다. 저는 문규를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 이제 저를 믿고 이 봉을 잡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위지경화는 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현선문 최고의 비밀인 현선비록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현선비록도 명경과 같이 기적인 물건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명경과 현선비록이 진짜인 이상 한백도의 말도 사실일 것이다.
자신이 장문사형을 의념 하고 연환을 쥐게 된다면 정말로 만나게 될 것이다.
‘…….’
위지경화는 한참 연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뵙지요.”
위지경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정자가 사라지면서 주변이 순백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위지경화는 깜짝 놀라 한백도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위지경화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백도가 있던 자리에는 공손용이 앉아 있었다.
공손용과 마주친 위지경화의 눈이 급격히 떨렸다.
“사,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