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찾았다! (3)
– 메에에에.
산양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D급 하위 암석지대 던전.
이곳에서 주로 등장하는 몬스터는 절벽을 타고 다니는 산양이었다. 이름은 록크산양, 최적화 초기 스킬은 점프 박치기와 짓밟기.
떡잎 스킬 참 좋다니까. 등급은 칭호 스킬들 중에서 제일 낮지만 활용도는 최고였다.
물론 상대의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스킬도 드물게나마 있긴 했다. 하나 자신의 스탯보다, 스킬 등급보다 한 단계 낮은 것만 확인이 가능했다. 그에 비하면 떡잎은 어떤 등급의 스탯도 스킬도 확인 가능한 정보 스킬이었다.
주목적은 상태창 확인이 아니고 제한도 있긴 하지만 스킬은 쓰기 나름이지.
사아아─
절벽을 평지처럼 달려 내려오는 산양을 향해 새하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상급 던전이라면 견제 정도로나 쓸 수준의 냉기였지만 D급 몬스터는 그대로 쩌적, 얼어붙어 바닥으로 데구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얼음 동상이었다.
“아저씨, 여기요!”
예림이가 꽁꽁 언 산양을 주워 와 자랑스럽게 외쳤다. 아니, 너 렙업하라니까.
“잘 얼려 놨으니까 찌르기만 하면 돼요. 안전해요!”
그때였다. 화르르륵, 양옆으로 펼쳐진 계곡을 따라 불길이 치솟았다. 흑염까진 아닌, 검은빛을 희미하게 띤 불이 절벽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툭, 투둑, 반쯤 탄 산양들이 익은 열매처럼 낙하했다. 화력을 교묘하게 조절해 중상만 입었을 뿐 숨통은 붙어 있는 채였다.
“찌르기만 하면 된다니, 그 얼음덩이에 창이 들어가기나 하겠습니까.”
휘리릭, 유현이가 던진 와이어가 그중 한 마리의 뿔을 휘감아 낚시하듯 당겼다. 산양의 몸뚱이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정확히 내 앞에 털썩, 떨어졌다.
여봐란 듯 예림이를 쳐다본 유현이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숨은 아직 붙어 있어. 단단한 가죽은 거의 다 탔으니까 창날이 아주 부드럽게 들어갈 거야.”
“저, 저도 살짝 얼릴 수 있어요! 가죽 벗겨 드릴까요?”
불쌍한 산양들. 얼리고 굽고 아주 쌍방향으로 난리다. 나는 쭈그러들다 못해 땅 파고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의 유명우를 돌아보았다.
“너도 레벨 올려야지. 빨리 와.”
“나, 나도?”
명우가 내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겁먹고 움츠러든 거북이 꼴이 되고 말았다. 반죽은 산양인데 그래도 무서운가?
혹시나 싶어 유현이와 예림이 쪽을 돌아보자 둘이 동시에 방긋 웃어 보였다. 분위기 좋네. 시커멓게 탄 산양이 좀 흉흉할 수도 있겠다만 그냥 화력 조절 실패한 통구이로 생각해도 될 텐데.
“나보단 네가 먼저 10레벨 찍어야 해.”
나야 급할 거 없지만 명우는 이 던전으로 10렙 찍고 처박혀서 칼 갈아야 했다. 그래도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을 팔을 붙잡고 잡아끌었다. 안 무서워, 괜찮아.
“태워 버린 스테이크 같은 거 찌른다고 생각해. 아니면 언 건 어때? 동상처럼 보이지 않냐.”
“아저씨 주려고 잡아 온 건데.”
예림이가 투덜거렸다. 뭘 그런 걸 따지냐.
“예림아.”
탓하는 부름에 예림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요.”
“하지만이 아니라. 이참에 말해 두겠는데 셋 다 친하게 지내. 아니면 최소한 다투지 말고 괜찮은 동료 사이 정도라도 되어 주라.”
화 속성에 빙 속성에 장비 제작까지. 얼마나 잘 섞였냐. 여기에 김성한까지 S급 되면 공방도 다 갖춘다. 나중에는 별 지랄 맞은 던전도 다 튀어나올 텐데 서로 손발 맞추고 보조해 주면 그야말로 승승장구할 것이었다.
딱 하나 부족하다면 힐러인가. 5년 후에도 스탯스킬 SS는커녕 AS도 없었으니 쟤들 급은 구하기 힘들 테고. 어찌 된 게 힐러는 스탯 등급과 스킬 등급이 반비례한단 말이야. 평균 연령이 50대라서 그런가.
스탯 등급은 젊고 건강할수록 잘 나오는 편이었다. 예외가 없진 않지만 스탯 S급은 대부분이 삼십대 중반 이하였다.
“특히 유현이 너, 다섯 살이나 어린 애랑 싸우려 들지 마. 예림이 너도 정식 헌터로 계약한 이상 길드장이자 3년 선배라는 거 잊지 말고.”
내 잔소리에 두 녀석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싸우려 든 건 아니야. 형이랑 자꾸 엮이는 게 거슬려서 그런 거지.”
“아저씨가 제 후견인이니까 당연한 거죠. 그게 왜 거슬려요?”
“아직 어리다지만 자신의 위치를 자각 좀 하십시오. 홍보팀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나라고 좋아서 형과 거리를 둔 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나름 신경 쓰고 있어요.”
“신경 쓴다면서 협회 갈 때 형을 끌고 가려고 한 겁니까?”
“그래서 같이 안 갔잖아요! 아직 서툴러서 그렇지 열심히 배우고 있거든요?”
또 저런다. 누가 불과 얼음 아니랄까 봐 상극인 티를 팍팍 내네. 홍보 이미지 반대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 라이벌 같은 걸로.
“그만하랬다, 둘 다.”
“…알았어.”
“…네.”
아무리 봐도 문제는 예림이보단 유현이 쪽이 더 컸다. 저놈 내 신변 걱정을 너무 과하게 해. 얼른 피스를 성장시키고 몬스터 한둘 더 들여야 저 녀석도 걱정을 덜 텐데.
“하나는 친동생이고 다른 하나는 피후견인이야. 그런데 내 문제로 자꾸 다퉈 대면 내 기분이 어떻겠냐. 최소한 보는 앞에서는 사이좋은 척이라도 해. 기자들 앞에서는 잘하더만.”
척도 계속하다 보면 진짜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아저씨가 원한다면 그럴게요. 척이야 쉽죠.”
예림이가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유현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친동생이면 저한테도 남이랄 수 없으니까, 앞으론 친하게 지내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아니 갑자기 오빠로 건너뛰냐. 유현이 녀석도 마주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둘 다 외모가 되니 보기는 좋다. 겉보기만 좋아.
“물론이지. 그럼 나도 이제 편하게 말할게.”
“네, 그러세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유현 오빠.”
“나도 잘 부탁해, 예림아.”
사근사근하게 웃고는 있는데 뒤로는 칼 가는 게 너무 뻔히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으이구, 저것들. 고집스럽게 시선 안 피하고 눈싸움하는 것 좀 봐라.
S급 각성자가 몇 명 없어서 다행이지 뭣 모르고 여럿 낚았다간 사이좋게 지내세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했을지도.
그리고 가여운 우리 명우는 여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하긴 S급 둘이서 신경전 벌이고 있으니 평범한 F급 간담이 남아나겠냐. A급이라도 살 떨릴 판인데. 조금만 더 참아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쟤들 앞으론 한동안 볼 일 없을 테니까 오늘만 견뎌. 딱 10레벨만 올리면 돼.”
그 뒤론 넉넉히 잡아 반년은 칼만 갈아야 하니 보고 싶어도 못 본다. 내 토닥거림에 명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한텐 골방 노가다가 더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구만.
이후로도 던전 공략은 순탄했다. 유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예림이도 아주 날아다녔다.
굽이굽이 이어지던 계곡을 벗어나자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푸르게 펼쳐진 풀밭에 수백 마리의 산양이 무리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 너머로 검은 털의 거대 산양이 당당히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보스입니다, 하고 전광판도 붙여 놓지 그러냐.
그래도 저렇게 티내 주면 고맙긴 하지. 가끔 숨어 다니는 놈 걸리면 더럽게 귀찮아진다.
“형은 아직 9레벨이라고 했지?”
유현이가 물었다. 명우 위주로 몰아주다 보니 나는 아직 10레벨을 못 찍었다. 유명우는 30분쯤 전에 10레벨 찍고 스킬을 얻지 못해 좌절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원래 10레벨 때 얻을 스킬이 황금대장간의 주인으로 대체된 모양이었다.
10렙 업마다 얻는 스킬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보통 조건을 갖추지 못할 때니까. 나중에 조건 채우자마자 얻게 될 수도 있고, 아님 영영 못 얻기도 하고……. 반쯤은 운이었다.
“나는 꼭 10레벨 찍을 필요는 없는데.”
“스킬 하나라도 더 있으면 편하잖아. 몇 마리 끌고 올게.”
“저요! 제가 할게요!”
헤르메스의 신발 사용에 완전히 익숙해진 예림이가 자신 있게 나섰다. 그러곤 이내 휙, 위로 날아오른다. 물 만난 물고기 같구만.
‘이번에도 스킬은 안 나오려나.’
회귀 전의 나는 30레벨 때까지 새로운 스킬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별 차이 없을 거 같긴 한데.
대체 내 최적화 스킬은 뭘까.
떡잎 스킬 나한테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혹시나 싶어 거울 보며 사용해 봤지만 역시나 상태창은 떠오르지 않았었다. 떡잎뿐이랴, 성장 버프도 물론 받을 수 없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나는 나를 사랑한다, 라고 슬쩍 말해 봤지만 역시나 아무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간 기껏 얻은 L급 스킬 칭호가 하나는 쓸 일 딱히 없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남 좋은 일만 해 주는 거라니. 시스템 만드신 분, 혹시 저 미워하시나요. 아니면 쓰기라도 쉽게 해 주든가 이상한 효과도 그렇고 키워드도 그렇고 진짜 더럽고 치사—
…네?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자, 잠깐만. 설마 욕해서? 욕한 거 알고 찾아온 건가? 아니, 시스템 욕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그럴 리가. 뭐지? 뭐지?
이어 또 다른 메시지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앗, 죄송해요!]아니 저야말로 욕해서 죄송… 이 아니라. 에러? 운영자 채팅 실수?
시발, 기다려 봐. 대화 좀 하자. 키보드창 같은 거 없나? 왜 일방적으로 대화를—
“형!”
그때였다. 유현이가 돌연 소리치며 나를 와락 감싸 안았다. 동시에 나도 외쳤다.
“예림아 명우 보호해!”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위험 신호다. 즉, 명우 놈 그냥 놔두면 죽는다.
직후, 산양 떼의 비명이 귀청을 때렸다.
– 케에에엑!
– 끼에에에!
고기 타는 냄새가 공기 중에 진득이 퍼져 나간다. 유현이의 화염 저항이 내게도 영향을 주어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예림이와 명우는 무사한 건가. 마지막 보은 스킬 적용창이 뜨지 않는 걸로 보아 둘 다 살아는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끌어안겨 있어서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일단 대규모 화염 속성 공격을 받았다는 건 알겠는데. 이 던전, D급 하위잖아. 그런데 왜 광역 속성 공격 스킬을 쓰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던전 등급이 오락가락하는 5년 후도 아니고 아직은 안정적일 텐데?
“나도 처음 보는 몬스터야.”
유현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야, 나도 좀 보자.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자 내 몸을 감은 팔을 느슨히 풀어준다.
“조심해.”
몸을 돌려 분지 쪽을 바라보았다. 푸르던 초원이 벌겋게 불타오르고 있다. 타고 남은, 타들어가고 있는 산양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그 너머로, 황금색 날카로운 부리에 꿰뚫린 검은 산양이 보였다. 원래의 보스 몬스터였다.
불길에 감싸인 괴조가 부리를 휘두르며 잘 구워진 산양을 찢어 삼켰다. 그 특징적인 부리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2급 괴조종. 황금부리 마이야.’
A급 상위 던전 보스 몬스터다. 괴조종은 급수 대비 약한 편이라 S급 수준은 아니었다. 근데 저게 왜 여기서 튀어나오냐.
‘…설마 죄송하다는 게 저거 때문인 거였나.’
진짜 시스템 오류? 버그? 운영자 나오라 그래. 우리 대화 좀 합시다.
“두 사람은, 괜찮아?”
몬스터를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려 예림이와 명우를 찾았다. 다행히 예림이가 늦지 않게 차가운 탄식을 쓴 모양이었다. 예림이가 명우 앞을 막아선 상태로, 둘의 앞쪽으로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저게 대체 뭐예요?”
“아주 가끔 던전 급수에 맞지 않는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도 해.”
이 시기에는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보다 보스 몬스터가 죽어도 탈출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는 거 보니 역시 저 새새끼가 보스로 대체된 모양이었다. 귀찮게 되었네.
지금쯤 밖은 난리 났겠지. 해연 길드장과 S급 신인이 들어간 던전이 최소 B급으로 바뀌어 버렸을 테니. 한 시간은 진작 지나서 도우러 올 수도 없고.
“형, 이거 받아.”
유현이가 게이트석을 내게 내밀었다. 회귀 전의 재현이냐. 물론 라우치타스 그 빌어먹을 도마뱀에 비하면 불닭은 애교였지만.
“그럴 필요 없어. 저거 너보다는 약해.”
서로 속성 공격은 통하지 않을 거고 물리 공격은 S급 전투 적성인 유현이가 더 강했다. 비행 몬스터인 게 귀찮기는 한데, 유현이에겐 푸른 버들잎이 있으니 문제없었다.
나랑 명우는 구석에 처박혀서 예림이한테 보호받으면 될 거고.
내 말에 유현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몬스터인지 알아?”
“2급 괴조종 황금부리 마이야. 보다시피 화염 속성이고 A급 상위 던전 보스급이야. 첫 타깃을 계속 쫓는 습성이 있으니 웬만해선 어그로 튈 일도 없어. 너만 잘해 주면 금방 나갈 수 있을걸? 부리 공격 조심하고. 발힘은 상대적으로 약해. 머리뼈 물렁하고 등판이랑 배가 제일 단단하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그 부분 불길 온도가 제일 높은데, 넌 끄떡없을 거야. 날개는 한 쌍으로 보이지만 예비 날개 한 쌍이 숨겨져 있어서 날개를 공격해 떨어뜨리는 것보단 바로 머리를 치는 게 나아. 나랑 명우야 예림이가 보호해 주면 되고. 덧붙여 저 부리 엄청 비싼 재료니까 가능하면 통으로 고이 잘라내.”
유현이가 잠시 말문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형, 역시 좀 이상해진 것 같아.”
“이상한 게 아니라 수상한 거겠지. 석시명도 나 수상하단 소리 하든? 물어봐도 설명하기 힘드니까 대충 넘기자. 안 되냐?”
“안 될 건 없지만…….”
“어쨌든 나는 네 형이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
5년 전의 한유진이든 현재의 한유진이든 한유현의 형이라는 사실은 그대로다. 유현이는 작게 고개 끄덕이곤 게이트석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래도 이건 가지고 있어.”
너무 사망플래근데. 설마 고작 불꽃 날리는 새새끼한테 당하겠냐마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현이가 박예림에게 정중히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 순간만큼은 둘 다 감정적인 앙금 따윈 완전히 내다버린 진지한 태도였다. 괜히 내가 흐뭇해지네. 앞으로도 협조 잘하며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나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유현이가 몸을 돌렸다.
괜찮겠지. 5년 후의 녀석이라면 10분, 아니 5분 컷짜리였다. 지금도 길어야 한 30분 걸리지 않을까. 그러니 마음 놓고 응원이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