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28
426화 아침입니다!
흐린 기억 속에 낯익은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자에 앉은 채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너른 로비 저편에 서 있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나와 송 실장님이 왔었다고 했다. 악몽의 던전이니 그리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듣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지금은 조용했다.
“추측하고 있는 그대로라네.”
성현제가 말했다.
“송태원과 한유진이 내가 차오르는 것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송태원이 막았다.”
“그것뿐입니까?”
“약간 더 추가된 것이라면 내가 혼자 던전에 들어가려 했던 것 정도일까.”
이 던전 속에서 만났던 성현제가 떠올랐다. 현재의 성현제를 없애버리려고 들었던 그를. 무심코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은 나를 힐끔거렸다.
“결국 송 실장님과 함께 들어갔고요.”
“그랬지. 정확히는 송태원이 따라왔다고 하더군.”
그리고 성현제는 송태원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거기서부터는 한유진의 이야기가 아니라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평범한 F급인 한유진은 두 사람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사람과 어떠한 관계였든지, 밖에 남아야만 하였겠지.
“…제 기억은요.”
“약탈의 부작용인 모양이야. 혹은.”
성현제의 시선이 일순 자신의 등 뒤쪽을 향했다.
“초승달로부터 한유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지도.”
“기억을, 그러니까 두 사람과 엮였다는 사실 자체를 지워내서요?”
“송태원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도로만 말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죽었지.”
“그리고, 성현제 씨에게 약탈을.”
“선물하였고.”
성현제는 초승달에게 얽매인 채로 약탈 스킬을 받고서 홀로 던전을 빠져나왔다. 약탈을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타인에게 썼을 수도 있다.
“제게 쓴 겁니까. 성현제 씨가. 아니, 하지만 회귀 전의 성현제 씨는… 그러고 보니 자기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고도 했었죠.”
내 기억이 온전치 않은 것을 의아해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억 또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었다.
“설마 저한테 익숙지 않은 스킬을 쓰다가, 자기 자신의 기억에도 영향이 생겼던 걸까요.”
“알 수 없어. 하지만 부작용이 아니라면.”
성현제가 회귀 전의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미간을 좁히며 그 눈길을 힘겹게 마주 보았다.
“지워내 주었겠지.”
별다른 능력이 없이, 기세를 줄이지 않은 S급은 상대하기조차 힘든 한유진. 그래서 나는 물러났어야 할 것이다. 동생에게서도 다른 두 사람에게서도.
목이 조금 탔다. 약한 건 잘못이 아니라지만, 슬프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도 가슴은 따가웠다. 회귀 전의 성현제에게 영향은 주었지만 그저 그뿐인 F급. 같지만 다른 두 사람에게 연속으로 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소리를 들으니 한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지우지 않고 같이 방법을 찾으려 했을까. 지금의 나라면.
“네 잘못은 아니야.”
내 말에 내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잘못? 야, 어차피 내가 너거든.”
“그래. 내 잘못도 아니지.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왔잖냐. 지금도 다 해결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뭔가 해볼 수는 있게 되었지.”
나와 내가 동생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같이 있기도 하고.”
“…유현이와 화해하면 다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뭐가 더 남은 거냐.”
내 말에 절로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그러게나 말이다. 내 목표는 단순했다. 동생에게 인정받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그 정도뿐이었다. 단순하다고 해서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지만.
“덧붙여 원래는 약탈로 초승달과의 계약을 지워내려 시도했던 모양이더군.”
“…예? 아니 그런 중요한 건 제일 처음 말하셨어야죠!”
그런 방법이! 라기에는 실패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성현제 자체가 아닌 계약을 삼킨다는 건 다시 한번 고려해 볼 만한 방법이었다.
“초승달의 힘이 제게 들어왔을 때 말입니다. 송태원 실장님은 단순한 위협으로만 느껴졌어요. 뚜렷한 의지가 있는 게 아닌, 힘의 일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달을 해치는 존재로만 생각되었거든요.”
내가 초승달의 의사에 동의하도록 이끌었었다. 물론 순수한 나라면 송 실장님이 성현제를 공격한다! 라고 해봤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오래 참으셨지… 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초승달에게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녀가 키워 낸 달을 해하려는 존재. 내게도 유현이가 있다 보니 공감하기도 비교적 쉬웠다. 동시에 성현제다 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하는 생각도 약간은 들었던 것 같지만.
“그래서 송 실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며 억누를 수 있었지만. 약탈로 계약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면…….”
“시도만 해보았을 뿐이야.”
“…불가능한 걸까요?”
약간 삐뚜름하게 서 있는 어린 혼돈을 돌아보았다.
“난 그런 거 모른다.”
“예에. 던전 내에 나타났을 초승달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단순히 송태원이 성현제를 삼킬 수 있어서 경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계약 해제의 가능성도 있는 것인지. 어쨌든 송 실장님이 중요한 열쇠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비록 송 실장님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겠지만.
“혹시 초승달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낼 방법은 없습니까. 던전에 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없어지기 전에는 가능했겠지.”
“네? 그럼 미리─!”
“의지만 남은 힘에 기억까지 더해진다면 네가 먹혔어.”
그, 그렇구나. 그래도 좀 아쉬웠다. 어떻게 다시 못 끌어낼까? 정신세계로 가서 초승달의 힘을 다시 끌어내어서…….
“허튼 생각은 하지 마라.”
“안 합니다.”
성현제 상대로 다시 한번 정신계에 들어가 볼까. 초승달과의 계약도 있으니까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야, 첫째 놈 뒤통수 한 대 쳐라.”
“…형.”
유현이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대신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어르신 눈치 한번 빠르시네.
“어차피 초승달은 저놈이 멀쩡한 이상 섣불리 개입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 이 던전을 빠져나갈 궁리나 해.”
“네에.”
일단은 보류해 놓자.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로비 저편 문 너머로부터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르륵, 무언가 불타올랐다.
그리고 툭. 유리문을 한번 두들겼다가 조용해진다. 아무 말도 없었다. 속이 뜨끈해졌다.
“올라가.”
어린 혼돈이 단호하게 말했다. 유현이가 내 팔을 잡고 당겼다. 회귀 전의 나 또한 동생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얼른 가자. 늦었어.”
문 쪽을 돌아보지 못한 채 걸음을 옮겼다. 역시 이 던전부터 빨리 탈출해야겠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좋은 아침! 김서방들!”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예림이와 윤윤이 인사해왔다. 유리문의 천들은 모두 걷어지고 아침 햇살이 길게 스며들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살펴보았지만 문밖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애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자 먼저 와 있던 송태원과 성현제가 보였다. 어린 혼돈도 일찌감치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와, 맛있는 냄새. 신입이 조식 준비해 준 건가.
“송 실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다행히 송 실장님은 어제보다 덜 피로한 얼굴이었다. 성현제가 밤사이의 일을 말해 줬을까.
“유진 씨.”
주방 쪽에서 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 씨가 왜 주방… 헉.
“며, 명우야?”
오픈키친 너머의 명우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화난 건 아닌 듯한데. 아니겠지? 그보다 조식 무료가 이 뜻이었냐! 신입아!
“저 사람이 유명우 헌터야?”
회귀 전의 내가 조용히 물어왔다.
“어, 맞아.”
“제작 쪽 아닌 거 같다.”
“대장장이잖아. 힘도 좋아야지.”
유현이와 나에게 자리로 가 있으라고 하고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음,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안…녕? 그러니까 나는 멀쩡하게 잘 있었어.”
“유진아.”
“응.”
“다리 다쳤다며.”
명우가 미소 띤 그대로 말했다.
“그게, 여기 몬스터가 그런 거야! 던전 보스일 테니 잡아 죽여야지.”
무심코 내 다리 망가뜨린 놈 다리도 잘렸다고 하려다가 얼른 말을 바꿨다. 납치되어서 구른 것보단 몬스터 탓이 낫지.
“마나각인은.”
“괜찮아! 멀쩡해. 정말이야.”
성현제 씨, 송 실장님 아무 말 안 하셨겠지? 설마 던전 내의 상황을 명우가 다 보고 있었다거나… 젠장, 그럼 안 되는데.
“한번 보자.”
“어, 응.”
얼른 빙 돌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마나각인을 살펴본 명우가 어린 혼돈을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응? 무슨 소리지. 명우의 손이 내 등을 약간 따가울 정도로 찰싹 쳤다.
“몸 좀 아껴.”
뭐지… 이상하리만치 잔소리가 짧은데.
“내가 안 아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보다 넌 어떻게 된 거야?”
“개고생 중이지.”
명우가 냄비 뚜껑을 열며 말했다. 이어 자신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진짜 던전 제작에 참여했다고?”
“보조야, 보조. 그래서 나는 던전에 제대로 관여할 수도 없어. 신입이라고 해도 던전 내 정보는 극히 제한된 일부만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장난 아니잖아. 던전을 관리하는 건 초월자들이라고!”
단순한 보조라지만 대단했다. 이러다 유명우 아예 던전 관리자까지 되는 거 아니냐. 신입의 뒤를 이어 신입이 된다거나.
“…촉수는 안 된다.”
“아, 그거.”
명우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잠깐만, 뭔가 수상한 낌새인데.
“편해 보이긴 하더라.”
“야, 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신입이─”
“신입 말 듣지 말고. 걔는 그저 널 더 효율적으로 부려먹고 싶을 뿐이야! 이미 힘들다며. 심지어 밥까지 하라고 보내 놨잖아. 망할 배구공 놈이.”
“내가 오겠다고 한 거야. 원래라면 샌드위치와 치킨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고 해서.”
아침부터 무슨 치킨이냐. 덧붙여 지금 명우의 몸은 스킬도 없는 비각성자급이라고 했다. 어린 혼돈처럼 등급이 확 낮아진 모양이었다.
“혹시 신입한테 그 말 들었어?”
가서 앉아 있으라는 것을 거절하고 계란을 꺼내 그릇에 깨 담으며 슬쩍 물었다.
“뭘?”
“내가 회귀한 거.”
“…이 던전이 미래이자 과거의 기록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응.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사라진 미래야.”
치이익, 풀어진 계란이 달궈진 판 위로 흘러내렸다.
“나는 없었지?”
“명우 너는, 완전히 새롭게 만난 친구지.”
유명우는 회귀 전 내가 각성하기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득 밥솥을 열고 있는 노아를 돌아보았다. 노아 씨 또한 그럴 것이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인연들. 이어지는 옛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
“그럼 나는 유진이 네가 과거로 돌아와서 가장 행복해진 사람 중 하나일 거야.”
명우가 말했다. …얘는 왜 툭하면 나 감동 받을 말만 하는 거지.
“저도요, 유진 씨.”
노아가 밥주걱을 든 채 끼어들었다.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반짝거려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노아 씨야, 원래도 대단했는걸요.”
“유진이 너는 어때?”
명우의 물음에 대답은 쉽게 나왔다.
“당연히 나도 지금이 훨씬 좋지.”
힘든 일이 태산이긴 해도 말이야. 가시 하나가 영원히 가슴 속에 박혀 있는다고 해도. 그래도 너무 좋은 사람이 많아서,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밥은 당연하게도 아주 맛있었다. 같이 식사까지 한 명우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던전 관리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신입 이 자식 대체 명우를 얼마나 굴려대는 거야.
“그럼 곧장 헌터 협회로 가죠.”
다시 해가 지기 전에 끝내 버려야 한다.
“성현제 씨는 쉬실래요? 밤새우느라 힘드실 텐데.”
“빠르게 끝내 버리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긴 그것도 그랬다. 어차피 구역 밖에서 대기하면 되니까 호텔에 남는 사람 없이 전부 움직이기로 했다.
같은 강남에 위치한 헌터 협회는 몇 발 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출근 시간 즈음이라서인지 저번과 달리 밖에 나와 있는 헌터는 몇 없었다. A급, 이 던전 내에서는 S급 세 명.
“유현아.”
동생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바닥이 아닌, 버들잎을 밟으며 소리 없이 순식간에 헌터들에게 접근한다. S급 스탯인 만큼 빠르게 눈치챘지만 그보다도 빠르게 예장의 가속 스킬이 발동하고.
콰득─
칼날 끝에 목이 꿰뚫렸다.
“무─!”
남은 두 명 중 한 명이 소리치려는 것과 동시에 굵은 팔이 그의 목을 휘감았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송 실장님과 함께 순간 이동한 예림이가 하나 남은 남자의 얼굴을 향해 냉기를 퍼부어 주었다.
시야가 가려지고 입이 얼어붙어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남은 한 명 또한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예림이는 그냥 있었어도 괜찮을 텐데. 어쨌든 마지막으로.
콰과광─!
헌터 협회 건물을 향해 벼락이 내리쳤다. 던전 속 가짜지만 속이 다 시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