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27
425화 자정의 손님 (2)
“모릅니다.”
퉁명스런 목소리가 돌아왔다.
“들어오고 싶지 않은 건가. 내 의심을 풀어줘야지.”
“의심이고 뭐고 세성 길드장님께서 아실 일이잖습니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날 찾아왔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한유진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성현제가 머리를 약간 기울여 유리문에, 천에 대었다. 서늘한 기운이 천 자락 너머로부터 전해져왔다.
“그럼 송태원 실장님은 어떨까. 내가 한유진 군을 만나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저도 처음은 모릅니다. 그보다 한유진 헌터를 계속 밖에 둬선 안 됩니다.”
“F급 하나쯤 지켜내지 못하실까. 언제 내가 세성 길드장이라는 것을 눈치챘지. 응? 한유진 군.”
답답하다는 듯 텅, 유리문을 거칠게 내리치는 소리가 울렸다.
“세성에 오지 않겠냐고, 직접 말했잖아!”
“한유진 헌터,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내가 그렇게 말했었나.”
“젠장, 기억도 못 하나 보네. 농담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낮아진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성현제는 손등으로 툭툭, 천 위를 두드렸다.
“그럴 리가. 하지만 거절했겠지. 한유진 군은.”
“가서 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심지어 세성이잖아. 동생 욕먹이다 못해 배신까지 한다고 하겠지.”
“완벽하게 숨겨 줄 수도 있다네.”
달래듯이 성현제가 말을 이었다.
“넓은 저택에 답답하지 않을 정원을 두고 세상과 차단하여 안전하게. 원한다면 연못도 만들어 주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괜찮아.”
“…미쳤습니까. 무슨 돈이 썩어 넘치는 잘나신 분의 이상한 취미 같은 건가.”
“한유진 군에 한해서, 라고 해두지.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마음 없어.”
“…신고할 겁니다. 바로 옆에 각성자 관리실장님도 계세요.”
“들어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지.”
윽, 하고 분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텔에 들어오려 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가짜라는 느낌이 거의 없었다. 문을 열지는 않아도 천 정도는 걷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성현제가 어린 혼돈을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악몽은 무해의 왕의 권속이다. 네 기억을 먹으려 들겠지. 저것들과 관련 있는 부분부터.”
“F급 그대로라면 막기 어렵지 않을 텐데요.”
“들여보내 달라는 말을 듣고 문을 열어 준다는 행위가 일종의 계약 동의야. 그래서 안개바다 근처의 사람들은 해가 지면 문을 닫고 창을 막았다는군.”
해가 지면 이름을 부르지 마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 그리운 인사에도 다정한 속삭임에도. 사랑스러운 이들은 모두 잠들었으니 그대도 가 함께 쉬기를.
결국은 안개에 삼켜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세상이었다.
쿵!
그때 돌연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문 열어 주세요!”
한유진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무기를 꺼내드는지 금속성 소리가 울렸다. 카가가각, 무언가가 아스팔트 바닥을 긁었다.
“한유진 헌터라도, 부탁합니다!”
송태원이 간절하게 말했다. 성현제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확실히 다른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와 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지.”
“이 개새끼야!”
“여러 번 듣긴 했을 듯하군.”
크르르르, 짐승의 목 울림이 유리 너머에서 울려 퍼진다. 대응하려는 듯 송태원의 묵직한 발소리가 바닥을 두들겼다.
“나도, 송 실장님도 무사했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그렇지. 나는 두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어.”
이렇게 두 사람만이 나타나 준 것만 보아도. 유이하게 의미 있는 이들이었다.
“그럼 열어! 들여보내 주지 않겠다면, 나오기라도 해!”
“이곳에는 한유진 군의 동생도 있다네.”
악을 쓰던 한유진의 목소리가 순간 뚝 끊어졌다. 진짜 개자식이…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한유진으로 행세하려면 들어올 수가 없겠군. 그렇지 않나.”
“젠장, 내가, 이제 와서… 유현이 생각을…….”
“많이 했겠지. 내게 말하기도 했겠지.”
“…알면서 그래요?”
“동생이 잘못되어도 괜찮다면, 문을 열어 주겠네.”
한유진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의 말은 거짓이 아닌 확실한 진실이었다. 한유진이 한유현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챙기고자 한다면 성현제는 기꺼이 문을 열어 줄 것이다. 하나 비록 가짜라 해도 한유진인 이상은.
“개소리를, 정말…….”
“진심이네만.”
“애초에 그쪽, 내가 유현이 키웠다는 것 때문에 접근한 거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사람 떠보지 마!”
“이제는 한유현과는 관계없어, 한유진 군.”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오히려 한유진 군이 스스로를 가장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시발, 그냥 나 죽는 꼴 듣고나 있든가.”
한유진이 이를 으득 갈았다. 상대를 유혹해 문을 열게 만들어야 하는 존재임에도 그것을 포기했다. 열어 주겠다는 말을 거절했다.
콰앙!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소리뿐, 아무런 진동도 마력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그저 안개만이 짙게 흐르는, 평온한 거리일 것이다. 무언가 충돌하는 소리에 이어 송태원의 억눌린 신음성이 나직이 새어 나왔다.
“송 실장님! 그럼 송 실장님이라도 도와줘! 나오라고! 성현제!”
“송태원 실장과도 생각보다 더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인데, 우리 셋이서도 만난 적이 있나?”
“그래, 있다! 악!”
투두둑, 튀어 오른 파편이 굴렀다. 그에 맞기라도 한 듯 한유진의 목소리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몸을 웅크린 모양이었다.
“송태원과 많이 친한가?”
“…내 앞의 개자식보다야 백 배는 더 좋은 분이니까.”
“그건 부정할 수가 없군. 백 배는 좀 심하지만.”
두 배 정도면 받아들이겠네. 한가한 소리에 한유진이 와락 욕설을 내뱉었다. 퉁, 유리문에 이마를 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는 티, 대놓고 났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네.”
성현제는 몸을 숙여 무릎을 대리석 위에 대었다. 우드득, 무언가 부러지고,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가쁜 숨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한, 유진, 헌터…….”
송태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콰득!
성현제의 귀는 그것이 사람의 몸이 꿰뚫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텅, 유리문이 약하게 흔들렸다. 바람결일 수도 있다. 유리문에 밀려 기댄 몸이 주르륵, 더욱 아래로 미끄러져간다.
성현제의 눈이 무심코 바닥을, 문틈 사이를 향했다. 피가 스며들어 오지는 않았다. 피비린내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한유진 군.”
“…얼굴이라도 좀, 보여 주죠.”
“미안하네.”
“어차피 나도, 유현이가 더 보고 싶어요.”
내 동생.
“저한테, 말해 준다고, 했었잖아요.”
“뭘 말이지.”
“유현이가, 왜 나를… 떠난 건지. 짐작 가는 게, 있다고…….”
“그랬었군.”
“…기다렸는데.”
헐떡이는 소리가 점차 가늘어져 갔다. 성현제의 손이 꽉 주먹 쥐어졌다. 그의 예상보다 조금, 힘들었다. 가짜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불쾌감이 짙었다.
“술 사준 건, 고마웠습니다. 짜증 나는 소리는… 많이 했지만. 저도 뭐… 동생 이야기…….”
마지막까지 들여보내 달라는 말 대신, 한유진이 간절하게 물었다.
“이유가, 뭐였어요……? 유현이.”
“한유진 군을 지키기 위해서.”
“…바보 같네.”
힘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유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유진만을 사랑했어.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도 영원히.”
“빈말이라도, 감사한데요. 성현제 씨는 그런 빈말… 하지 않을 사람이잖아요……?”
“물론이지.”
“그렇, 죠… 그래요…….”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지이익, 몸을 끌고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유진, 헌터. 한유…진, 씨…….”
송태원이 피를 토해내듯 한유진의 이름을 불렀다. 한유진을 먼저 죽이다니. 어떻게 해야 더 괴로운 광경이 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악몽이었다.
“제가, 저는…….”
“이때에도 여전히 살아남는 것이 싫었던 건가.”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옷깃이 바닥을 스쳤다. 손가락 끝이 무언가를 긁었다. 시체를 끌어안는 움직임이 성현제의 눈앞에 그려졌다.
“보호하기로도, 했잖습니까.”
“나와 그렇게 이야기했었나.”
“그래서, 제가…….”
“무슨 일이 있었지.”
잠시간 숨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성현제는 조용히 기다렸다. S급 헌터인 송태원은 그리 쉽게 죽지도 못한다. 그를 똑같이 재현해 놓았다면 치명상을 입었더라도 수십 분은 더 버틸 것이다. 말을 하고 숨을 쉬고 있으니 길게는 하루 이상도 가능했다.
숨을 끊어 주고 싶어서라도 문을 열게 될 만큼.
“…달이.”
“초승달 말인가.”
“간섭을, 해오려고 들었습니다.”
“던전 밖에서도?”
“성현제, 당신이. 계약에 대해 알아차리고, 그것을.”
송태원과 한유진으로 인해 거의 차오른 작은 달을 초승달은 수거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 전에 성현제는 자신을 얽맨 계약에 대해 눈치챘다.
“그것을, 약탈로…….”
“송태원의 스킬로 삼키려고 시도한 것이었나.”
성현제가 아닌 그를 묶은 계약을. 계약 또한 일종의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당신은 홀로 던전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유진 씨가.”
“나를 따라온 것이었군. 네가.”
“한유진 씨 탓이 아닙니다…….”
“죽은 것을 기억하는 건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현제는 홀로 자신의 운명을 맞이하려 했었다. 포기한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단지 그에게 있어 한유진은 물론 송태원 또한 끌어들이기엔 약한 존재들이었을 뿐.
하지만 한유진은 방법을 생각해 내고 송태원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달을, 걷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한유진 씨에게도 영향이 미쳤을… 겁니다.”
“기억을 일부 잃었던 모양이더군.”
정확히는 한유진 속에 존재했던 성현제와 송태원과의 관계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 시기에 엮였던 일부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성현제, 씨는.”
“나는 살아 있어.”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서, 꽤 즐겁게 지내고 있지. 송태원 씨는 여전히 고생이지만.”
“…저도.”
송태원 또한 마지막까지 문을 열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열려 있어도 들어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약한 이들만 들여보내고 닫아 달라고 하였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습니다.”
“내가 잘 대해 주긴 했지.”
“…그건…….”
커다란 숨과 함께 더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숨결만 가느다랗게 들려올 뿐이었다. 이대로 수 시간 동안 죽어갈 것이다. 성현제의 손이 가볍게 유리문을 두들겼다. 열지는 않았다.
“와서 앉아라.”
어린 혼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다가 돌연 뒤쪽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은 왜 내려왔어.”
객실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의자 위에서 가볍게 내려선 어린 혼돈이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발끝으로 의자를 밀어 찼다.
주르륵─ 부드럽게 바닥을 미끄러져 간 안락의자를 한유현의 발이 탁, 멈춰 세웠다. 그 양옆으로 두 명의 한유진이 서 있었다.
“거기서 더 들어오지 마라. 난리 난다.”
약간 더 작은 몸집의 한유진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왔었어요?”
“왔지.”
“성현제 씨.”
성현제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서서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너무 일찍 일어났군.”
“기억이 났거든요.”
“무슨 기억이지?”
“성현제 씨가 술자리에서 헛소리한 기억이요.”
한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잠이 잘 오지도 않아서 말똥히 누워 있다가 말입니다. 문득 제가 그러더라고요. 아, 회귀 전의 저 말이에요.”
완월장취 어쩌고 말이야, 비슷한 대화를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한유진이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런 케케묵은 말을 하는 어르신들이 있기는 했지만요. 이백 좋아하던 아저씨도 있었고.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비워야지, 하던.”
“달에 무색하게 금술잔을 비게 두지 말고, 말이지.”
“그게 생각이 났습니다. 송 실장님도 있었지요. 그때.”
같이 왔습니까, 라는 물음에 성현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왔었지.”
아직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한유현이라면 모를까 이 거리에서 한유진이 유리문 너머의 죽어가는 기척을 눈치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저와 제가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아요.”
“더 떠오른 것이 있나.”
“아니요. 쓸데없는 기억뿐이네요. 성현제 씨는요? 들으신 것 있습니까? 혹시 듣고 나면 무언가 더 생각날지도 모르니까요.”
잠시 고민한 성현제가 자신의 의자를 돌려 밀었다. 길게 미끄러지던 의자가 정확히 한유진의 앞에 멈추었다.
“우선 앉지. 둘 다.”
불편하지 않나. 한유진과 한유진이 성현제의 권유에 의자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