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86
제585화
“하… 허어어… 허어어억….”
반으로 분리된 광기의 신이, 숨을 헐떡였다.
무한의 대제가 발휘한 힘에, 속절없이 휩쓸린 존재.
한때 그에게 구원을 바랐고, 기적을 기도했으며, 평안을 간청했었다.
“힉… 흐히히히히히힉….”
가면 너머로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가 붉은 가면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어찌하여….”
그의 죽음은, 의심할 여지 없다.
“어찌하여… 나를 낳으시고….”
그러니 이것은 유언이다.
“나를 거두어가십니까….”
그의 눈에 담긴 태양과 달은, 눈꺼풀 위로 사라진다.
신은 황혼을 맞이한다.
“아…버지…시여….”
“…….”
강설은 죽은 그의 눈을 가렸다.
이로써, 신은 죽었다.
서로가 아버지라 말하며, 책임을 주장한다.
애초에 그런 세계다.
강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상에 내려앉은 그는, 지독하게 평화로운 이곳을 그 눈에 담았다.
부서진 건축물은 수면에 그 흔적을 드리웠을 뿐 풍경을 헤치진 않았다.
통…
수면 위에 구름이 비친다.
드높은 천상.
이곳은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될 것이다.
홀로된 자여.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으으으으으으…
저기, 저곳에 그가 있다.
유리코가 서 있다.
그는 뒤돌아서서 강설을 등진 채로 말했다.
“눈사람, 아니… 강설.”
그는 원하던 것을 이뤘음에도, 여전히 헤메인다.
“우리는 승리한 걸까?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은 걸까?”
답할 수 없다.
심판관과 평의회가 개입할 수 없는 우주가 만들어졌지만, 그들은 단지 드러났을 뿐이다.
드러나지 않은, 많은 운명이 있다.
그것이, 그들이 운명을 유지한다.
“나와 아스모돈이 원했던…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까지 오게 되어, 되돌아본다.
“어쩌면, 자유야말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니… 운명과는 달리…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유리코.”
너는, 허무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정말로… 굉장하지 않아?”
“…….”
열기에 휩싸인, 마도사여.
다시금 열망하느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좇는다는 게. 정말로 바보 같고….”
그가 웃었다.
“정말로 멋진 일이야.”
그의 충혈된 눈은 온데간데없다.
투명하고, 맑았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있잖아. 두려웠어.”
누구에게나 있는 두려움.
도달할 수 있을까.
저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내가?
“바라면서도 해낼 수 있을까, 의심했어. …널, 믿지 못했어.”
아니.
“…날 말이야.”
여기까지는 유리코의 이야기.
스윽…
가면의 반쪽을 꺼낸다.
파편만 남은 엉터리 가면이다.
아스모돈이 남긴 가면.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자는 유리코가 아니다.
코돈, 그다.
코돈은 말한다.
“코돈은 존재해야만 해. 모든 것을 되돌려놓기 위해.”
“…넌.”
“…….”
“넌 어떻게 되는 건데?”
그는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강설, 네가 거쳐온 길엔… 언제나 보상이 있었을 거야.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란 기대감이, 너를 앞으로 향하게 했을 테니까. 단순한 거야.”
후우우우우우웅…
코돈의 최후의 힘.
“그러니까…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야.”
철컥-!
철컥-!
수면에서 불쑥, 괘종시계들이 솟구쳤다.
째깍…
째깍…
괘종이 바삐 움직였다.
천상에는 깨지고 조각난 괘종시계들이 잔뜩.
물에 젖었음에도, 초침을 돌린다.
거꾸로 도는 시계.
“시간 선 고정. 이곳에 닻을 내리며 기나긴 항해를 마친다.”
자신만이 아닌, 세계의 시간을 통제하는 건 신조차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가능하다.
심판관의 은닉품.
은하에 흩뿌려진, 새하얀 조각들 때문이다. 그것들이 더 멀리, 우주의 먼지로 날아가기 전… 단 한 번의 기회.
그 힘으로 거슬러 오른다.
휘오오오오오오…
새하얗게.
세상을 물들인다.
강설의 안에 잠시 머물렀던, 모든 시대의 영혼들이 지상으로 흩어진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 새하얀 것은 소복이 쌓여 까맣게 타 버린 행성을 뒤덮을 것이다.
아픈 상처를, 덮을 것이다.
“네게 겨울을 돌려줄게.”
그것이 마지막 모험의 보상.
츠즛…
츠즈즈즛…
코돈의 몸이 흐릿해진다.
그 역시도, 새하얀 힘에 이끌려 바스러진다.
영혼의 세계로.
윤회한다.
그러나 그는 남들보다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직, 훔친 것을 전부 돌려놓은 건 아니었기에.
“…안녕.”
그가 뒤로 몸을 누이며 천상에서 추락한다.
휘오오오오오오…
추락하며, 떠올린다.
아니 남몰래 숨겨뒀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영겁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그 순간으로.
“유리코. 무슨 생각해?”
“…아스모돈.”
그만의, 도피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워낙 방대한 시간을 훔쳤기에 찰나만큼의 시간이 그 안에서 빠졌더라도 들키지 않았다.
카곤의 한 때다.
언제나처럼, 중앙 광장.
시계탑 위.
아스모돈의 콧잔등으로,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는다.
“어? 눈이네. 들어갈까?”
“아니…. 조금만.”
“응…?”
유리코는 아스모돈을 바라보며 웃는다.
“조금만 이대로 있자.”
영겁의 시간을 준비해온 마도사.
그들은 자유를 손에 넣었는가?
모른다.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이 열렸는가?
이 역시 모른다.
하나, 확실해진 건 있다.
그들은 운명과 맞섰고, 끝끝내 일어섰다는 것.
선과 악을 넘나들며, 그 기준 역시 부숴가며.
온 힘을 바쳐 싸웠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식이니까.”
아스모돈은 물끄러미 유리코를 바라보다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러게.”
그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린다.
“겨울이야.”
그리곤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다시 유리코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있잖아, 유리코. 우리 눈사….”
그는 없다.
“…유리코?”
시간이 되돌아가며, 그들의 일상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아스모돈의 신체 역시,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구나.”
미소 짓는다.
“해낸 거야.”
* * *
쿵-!
“…누구세요?”
쿵쿵쿵…
“누구시냐니까?”
“저기… 그러니까… 제가 음….”
끼이이이이익…
“…트롤?”
“하하하… 맞습니다. 트롤.”
“트롤이 이 변두리에는 왜….”
“찾고 있는 분이 있어서요. 일단 이름이….”
트롤이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하자, 대수롭지 않게 집주인이 답했다.
“저어기! 저쪽으로 좀 걸으면 나올 거요. 아들이랑 같이 있을 거야.”
봇짐을 둘러맨 트롤이 감사를 표하고 집주인이 이야기한 곳까지 천천히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 때문에,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어? 트롤?”
“하하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괜찮아, 일은 다 끝났는걸.”
트롤의 시선이 작물로 향한다.
호박이다.
굉장히 잘 영글고 있는 호박.
호박밭.
“여기에, 리안 쿠르오스라는 분이….”
“…….”
사내가 머뭇거린다.
트롤은 이미 각오했기에 덤덤하게 답을 기다린다.
몇 번이나 허탕을 쳤었다.
그러니 괜찮다.
“아버지를 찾는 거야?”
“아버지…말입니까?”
“응. 아버지! 아버지 손님이에요?”
“으음?”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
“리안 쿠르오스를 찾아왔다는데?”
“그거… 난데?”
트롤은 웃는다.
원하는 삶을 찾았구나.
그의 책에 적힌 명단 중, 하나에 줄이 그어진다.
행복을 찾은 자.
줄이 그어진 이름은 꽤 많았다.
존경받는 수사가 된 토키.
절세의 검객으로 알려져 악을 벌하는 유현.
엄청난 유적을 찾아내 떼돈을 벌게 된 질리악 등.
그 나름의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된 자들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트롤의 이름은 마엘.
…그래요, 내 이름은 마엘입니다.
이제, 제 책에 기록된 많은 이름에 줄이 그어졌습니다.
확실히 전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군요.
“하하하하!”
“멍청아! 받아라!”
퍼어억-!
눈이 옵니다.
“하아… 올해는 유독 춥군요.”
겨울이에요.
이렇게 눈이 내리면, 온 거리에 불빛과 아이들이 가득합니다.
“거기! 둥글게 다듬으라니까! 삐뚤었잖아!”
“아니거든!”
신기한 건, 이렇게 눈이 올 때면…
“오!”
“멋있어!”
온 세상에 당신의 조각상이 세워집니다. 영문도 모르면서, 다들 흐릿한 당신을 기억하려는 것인지도요.
“이런….”
퍼어억-!
퍼어어억!
아이들이 엄한 눈사람에게 화풀이하고 있군요.
“얘들아, 그만두는 게 어떻니.”
“으아악! 트롤이다!”
“모, 못생겼어!”
…저는 그래도 트롤 중에서는 꽤 미남인 편이었을 텐데요. 상당히 야박한 평가입니다.
“무슨 상관이야!”
“도, 도망가자….”
“익….”
그래도 제가 못생겨서 다행입니다.
다툼을 택하기에는 어린 저들에게도 제 얼굴이 부담스러웠나 보군요.
“…….”
이렇게 형편없이 부서진 눈사람을 보면,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도, 그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요.
운명은 정말로 사라졌을까요?
인간의 악의를 품은 당신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결단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악은 교활하여 순수를 가장한 채로 모든 것을 비난하고 망가트리려 합니다.
“심지어… 자신마저도.”
그립습니다.
눈 쌓인 오솔길을 걸으면 당신과의 기억이 밀려옵니다.
당신과 함께 떠났던 모험길.
당신과 함께 웃고 울었던 날들이 가끔 떠올라 나를 괴롭힙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나뿐입니다.
나는 관찰자로서,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이따금 그것이, 사무치게 외롭곤 합니다.
언젠가…
“…음?”
누군가 부서진 눈사람을 원래대로 되돌려놨군요. 그뿐 아니라… 이것저것 많이도 갖다 붙였습니다.
어쩌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으윽…
“당신인가요?”
눈사람에게 상냥함을 건넨 사람은.
“으긱… 깜짝이야!”
또 놀라는군요.
못생겼다고만 말하지 말기를.
“트롤이네!”
휴.
“그래요! 트롤입니다!”
“아하하하하! 웃겨.”
“아까의 질문을 마저 하지요. 어째선가요?”
눈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평범한 소년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쓸쓸해 보여서.”
“…….”
“혼자 외로울 것 같았어. 그래서….”
“그렇군요.”
이것 참, 어린아이의 순수에 위로를 받게 됩니다.
“트롤이 이 외진 마을엔 무슨 일이야? 별 볼 일 없는 곳인데.”
“경치만큼은 괜찮습니다.”
“아! 역시! 그건 좋아!”
“그리고…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요.”
“찾지 못한 사람?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
“뭐랄까… 개인적인 일입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영원토록 계속될 일.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는군요.
“마엘, 나의 이름. 당신의 이름은?”
“아스모돈.”
“…….”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
설마…
설마, 그럴 리가….
이런 곳에서 찾게 될 리가….
“아스….”
“아스모돈! 찾았잖아!”
강설, 이 기록이 당신에게 전해질 리는 없습니다.
운명이란 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눈에 알아보고 말았거든요.
“어! 여기야!”
“으악! 트롤이랑 뭐 하는 거야!”
“응! 트롤이야!”
“아하하! 좋아, 트롤!”
이 아이를.
“내 친구야! 인사해!”
밝게 웃는 저 아이가, 자신을 소개합니다.
오늘, 두 이름에 줄을 그을 수 있겠군요.
강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자유로워진 겁니까?
아니면… 여전히 맞서고 있는 겁니까?
이곳은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제 뭐 하지….”
“제게 묻는 겁니까?”
“응! 트롤은 떠돌이야?”
“네, 떠돌입니다.”
“그러면, 재밌는 얘기를 많이 알고 있지 않아?”
“재밌는 얘기라….”
그렇군요.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 전해져야만 할지도.
파라라락…
책을 펼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될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아이들이라면,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한 소년이 신들의 주사위 판에 끼어들게 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에… 그게 뭐야. 용 나와?”
“나옵니다.”
“모험은? 모험도 나와?”
“나옵니다.”
“왕녀는! 마법사는? 영웅은?”
“전부 나옵니다. 그렇지만….”
펼쳐진다.
“아주… 사소하고… 은밀한 이야기입니다.”
운명과 맞서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
별의 아이 마엘이 전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