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85
제584화
“…이탈이다.”
이탈…
이탈한다.
“새로운 우주로… 악도, 지배도 없는… 우리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거야….”
아스모돈… 그러면 된 거야.
코돈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탈이다아! 눈사람!”
판데아가 있는 은하까지 단숨에 날아든 코돈.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이 힘이라면, 해낼 수 있어.
천뇌가 망연자실하여 쓰러진다.
털썩…
“아… 아아….”
그녀는 자책했다.
너무 큰 실책이다.
이토록 거대한 힘을, 심판관이 오랜 시간 그러모은 우주의 정수를 잃었다.
그녀는 패했다.
“…괘념치 말아라.”
“심… 판관님?”
강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눈을 감고 있는 심판관이 말했다.
“신앙도, 광기도 결국은 변질하는 것. 그것들은 전해지면서 누실한다. 아무리 형태를 바꿔도, 온전하게 전해지는 법은 없다.”
그것들은 헛된 것.
그저, 그것뿐인 가치이다.
타인에게 향하는 신앙은 결국 의심으로 변질하며 초월자에게 향하는 신앙은 결국 힐난으로 뒤바뀐다.
“도둑질이라니, 시간이여….”
심판관은 웃는다.
단언한다, 승리를.
“내가 이겼다.”
코돈의 손에 모인 도둑질한 신앙이 사라진다.
운명이 보이지 않았던,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던 쪽이다.
“어….”
거품처럼, 흩어진다.
“안 돼… 가지 마.”
가면에서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신앙과 광기가 뭉치지 못하고 그의 은하 전체로 비산한다.
휘오오오오오오오…
그 새하얀 빛이, 판데아의 은하와 우주로 날아간다.
마치 눈 쌓인 풍경처럼.
우주에 겨울이 온다.
“아… 아아… 안 돼에에에에에!”
이윽고, 코돈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운명은, 결정되었다.
우주에 겨울이 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코돈이 보는 운명은 마침내 뒷부분까지 내비친다.
가로막힘.
절망.
그게 전부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심판관의 강림.
지이이이이잉…
평화 유지군의 함선들이 전이를 시작한다. 감히 그들의 질서에 반한 혁명 세력을 짓밟기 위해.
겉으로는 그럴싸한 질서와 정의로 무장한 채로.
코돈은 절망한다.
몸이 굳는다.
도망칠 시간 선이 남지 않았다.
모든 시간 선을 건드려보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말한다.
“쓰레기 같은 놈! 결국엔 실패다! 실패했다고!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전부….”
아무것도… 소용없었어.
발버둥도 소용없었잖아.
코돈의 시선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향한다.
휘오오오오오!
심판관 강림.
포기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야 운명인걸.
결국은, 받아들이고 마는걸.
지배는 사라지지 않고 진정한 신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광기만이 가득한걸.
그런데… 왜지.
왜, 몸이 움직이는 거지.
“어째…서?”
분명 포기한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심판관을 막기 위해… 눈사람을 지키기 위해.
코돈은 깨닫지 못했다.
유리코는 깨달았다.
콰지지직…
가면의 반쪽에 금이 갔다.
그리고 정확히 반으로 나뉜 가면은, 그 안의 인격까지도 나뉘어 날려 버린다.
후우웅…
유리코는 추락한다.
심판관과 멀어진다.
남은 가면의 반쪽.
그것은 도리어 심판관과 가까워진다.
운명론자여.
“아스…모돈…? 어째서….”
아스모돈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한다. 등 돌리지 않는다, 싸움에서.
“유리코. 너를 찾아.”
아스모돈은 미소 지으며 심판관을 맞이한다.
최후의 언령 발동.
종언.
“운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우주에 선포한다.
“그것이… 운명이 맞이할… 운명일 테니까.”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파아아아앙-!
심판관의 검이 밀어닥친다.
인지의 범위를 초월한 검.
쒜에에에엑-!
아스모돈이 조각난다.
단 한순간에.
심판관의 검은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다.
유리코와 눈사람이다.
유리코는 추락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사람이 보였다.
…언제 이렇게 커졌지?
대체 언제 이렇게…
신은 어디 간 거야?
“너… 어째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지?
“…….”
눈사람은 우주에 검을 박아넣은 채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래, 우주에.
‘…그럴 리가 없어!’
눈사람이 하려는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고 만다.
터무니없다!
불가능해!
절대로!
안 될 거야!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
심판관의 검이, 눈사람에게로 향한다.
그럴 수는… 없어.
시간 정지.
지이이이이잉-
심판관의 칼날이 금방이라도 눈사람을 조각낼 것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멈추었다.
유리코가 발휘한, 마지막 힘.
우주의 마지막 티타임.
그는 눈사람에게로 스며든다.
* * *
도로로로로…
주사위가 좋았다.
6이 나오면 6칸을 이동.
운이 좋아!
도로로로로…
1이 나오면 1칸을 이동.
조금 아쉽지만 숨을 고를 수 있어.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규칙이니까.
도로로로…
주사위를 굴린다.
유리코, 너는 내 첫 말이야!
그러니까 의미가 굉장한 거야.
너한테, 행복을 줄 거야!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해줄 거라고.
유리코.
유리코! 널 지켜줄게!
내가… 운명과 맞설게! 그러니까…
…유리코?
스노우맨, 네가 내 첫 말이야!
그러니까 의미가 굉장한 거야.
…잘 부탁해.
실패야.
실패라고.
유적 사냥꾼인 질리악도, 맹금 사냥꾼인 키리도.
전부 죽었어.
내가… 잃게 만든 거야.
난… 실패자야.
서른 개의 말.
모두 실패했잖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난, 실패자야.
그래….
– 넌 오직 내 뜻대로 움직일 뿐이다. 네가 만들어진 목적 그대로, 네 삶은 내가 새긴 것일 뿐.
난, 가치 없다.
유리코… 네가 부정한다면, 나는 뭐지?
…아무것도 아닌 거잖아?
난… 만들어진 존재.
눈사람이다.
겨울이 지나면, 사라질 거야.
그거면 된 거야.
……
정말로?
나는 정말 그거면 된 거야?
도로로로…
주사위를 굴린다.
주사위를 굴려, 나는.
격자무늬 게임판에는 말들이 존재한다네.
주사위 눈마다 한 칸씩, 예외는 없어.
모두 규칙을 지켜야 해.
주사위의 눈이 형편없다고?
네 운명을 탓해.
넌 쓸모없는 녀석이니까, 당연한 거야.
격자무늬.
그래, 빌어먹을 격자무늬.
한 칸씩, 한 칸씩.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어.
혼자 게임판에 덩그러니.
혼자서는 게임을 할 수가 없는걸.
혼자서는… 조금 외로운걸.
게임판에 함께 남은 건 30개의 말뿐.
누구도 나를 위로하지 않네.
누구도 나를 일으켜 세우지 않네.
격자무늬.
빌어먹을 격자무늬.
눈 하나에, 한 칸씩.
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어.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말이야.
모험은 즐거웠고, 상실은 아팠다네.
나는 눈사람.
만들어진 존재.
너희가 정하는 대로, 나의 삶은 규정되지.
겨울이 가면 나는 사라진다네.
당연한 일이니까.
그게, 규칙이니까.
“으….”
사라지기 싫어.
아무것도 아니지 않아, 나.
그렇게 쓸모없지도 않고 최선을 다했어.
빌어먹을 격자무늬.
한 칸씩. 빌어먹을.
어째서 난 할 수 없는 거야?
어째서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는 거야.
그럴 거라면… 내게 다가오지 말지.
내게 당근 코를 달아주지 말지.
내게 나뭇가지 팔을 달아주지 말지.
오래된 중절모를 씌워주지 말지.
단추 눈을 달아주지 말지.
내게 빗자루를 건네주지 말지.
그랬다면, 포기했을 텐데.
싸우지 않고, 받아들였을 텐데.
내게 주어진 결말을 받아들였을 텐데.
너희가 나쁜 거야.
너희와 조금 더 있고 싶어.
겨울이 길었으면 좋겠어.
나는 태어난 순간에 결정지어지지 않았어.
너희가, 내가 함께 만들어갔잖아.
거대한 눈사람을.
【그래, 맞아】
“…어?”
아이가 된 강설은 고개를 돌린다.
【이리 와, 강설.】
“비탄!”
【재밌는 걸 하자!】
“재밌는 거?”
【음흐흐흐… 온 세계의 악당인 이몸께서 아주 음흉하고 사악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게 뭔데?”
【규칙을 어기는 거야!】
“…그러면 안 되는데?”
한 칸에 하나씩.
【어… 안 되는 거야?】
“규칙이잖아.”
【누가 정했는데?】
“…모르겠는데?”
【그럼 괜찮아! 내가 할 테니까! 너는 나를 이렇게, 뽑기만 하면 돼!】
“정말로 그거면 되는 거야?”
【그래! 내가 해볼게!】
“좋아!”
강설은 비탄에게 다가갔다.
온 세상은 하얗다.
끄으응…
“아, 안 되겠는데… 안 뽑혀.”
【도와달라고 해! 혼자서는 무리일 거야!】
혼자서는 무리.
하지만 어떡해.
혼자인걸.
모두 떠나갔는걸.
이제 곧 겨울이 갈 테니까.
눈사람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걸.
– 아니.
강설이 고개를 돌렸다.
“…너?”
– 으하하하하! 재밌어 보이는군. 좋아! 나도 끼지!
거대한 덩치.
질리악.
– 나도!
키리가 다가온다.
비탄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 으하핫! 비탄, 나를 빼놓고 혼자 재밌는 걸 하려는 거야?
【산토스! 어서 와!】
계속해서, 모여든다.
어째서?
“있잖아….”
몸이 떨려온다.
“안 될 거야… 아마도.”
–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스윽…
혜명이 강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강설, 넌 할 수 있어.
“…뭐?”
핀 모드리아가 말한다.
– 우리가 도울 테니까, 해보자.
아니야, 안 돼.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 어째서?
탈리아드가 묻는다.
– 그럴 리가 없는데?
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린, 너다.
“…뭐?”
밀란이 다가온다.
– 수없이 실패해 온, 너야.
새하얀 공간이, 검게 칠해져 간다.
밀란이 다가와 말한다.
– 네가 걸어온 발자국이며, 넘어진 흉터.
아즈란이 덧붙인다.
– 그럼에도… 다시 일어난 증거.
서른 번의 실패.
배운 것은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었음을.
떨쳐 일어나는 법이었음을.
강설이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우두커니 선 누군가 있다.
“…유리코.”
– 넌… 넌… 못 해.
“…….”
– 그럴 수 없어. 넌 해낼 수 없다고! 내가 알아! 넌… 그것뿐인 녀석이니까!
강설이 유리코에게 다가간다.
“유리코.”
– 넌 실패할 거야. 운명은 강해! 순식간에 널… 널…
“이제 알았어.”
재회했을 때, 해주지 못했던 말.
“나는… 너야.”
– …….
“그리고 너는… 나야.”
유리코가 뭔가를 깨닫는다.
강설은 말한다.
“그러니까… 한 번쯤은… 단 한 번쯤은… 나를… 아니… 너를….”
유리코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믿어줘.”
내게 가장 가혹했던 건, 나였음을.
나를 가장 불신했던 건, 나였음을.
유리코는 덜덜 떨며 말했다.
– 미안… 미안했어… 난… 더 잘하려고… 더….
강설이 끄덕였다.
“알아, 나는 너니까.”
화해한다.
저벅…
저벅…
유리코가 비탄에게 다가온다.
비로소, 소명은 완성된다.
강설이 심호흡한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실패인 말들이 심호흡하며 비탄을 손에 쥔다.
유적 사냥꾼 질리악.
맹금 사냥꾼 키리.
고행자 토키.
리안 쿠르오스.
도굴꾼 골런.
해적 산토스.
검투사 대산.
하나검 유현.
신립과 신현.
칼의 무희 유화.
광전사 볼드가.
암살자 카이라.
심문관 미다르.
기사단장 필소드.
수호자 몹스.
명장 오르고.
악마의 쌍둥이 그윈, 레그리프.
서리 대공 아즈란.
피의 성자 핀 모드리아.
외팔이 검성 신강.
순수혼 고리.
용 군주 카-잔.
찰리.
경계의 무기나.
대덕 혜명.
불사 탈리아드.
대현자 밀란.
그리고 마지막… 아니, 시작.
스윽…
시간 도둑 유리코.
유리코가 비탄에 손을 얹자 빛이 번뜩였다. 빛은 별자리처럼 뻗어 나가 31개의 빛을 만들었다.
그들은 마침내, 비탄을 뽑기 위해 힘을 주었다.
손이 포개어진다.
움직이지 않던 검이, 우주를 가르며 위로 향하기 시작한다.
아아.
빌어먹을 격자무늬.
그것은 한 칸에 나를 가두는 운명이다.
우주의 규칙.
30개의 말.
30번의 실패.
열 걸음까지, 걸음마를 배운다.
스무 걸음까지, 달린다.
서른 걸음까지.
날아오른다.
가시밭길의 활주로를 걸어온 그는, 길이 굽이졌는지 험난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침내, 하늘이라는 길이 열렸으니까.
어쩌면 이 한순간을 위해 이토록 달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진 어린 양이, 모진 고초를 겪은 후에야 진정한 신앙은 탄생한다.
자신을 믿는, 온전한 신앙이.
뒤섞이지 않으며, 누실하지 않는다.
그저 한없이, 팽창을 거듭할 뿐이다.
이 우주를, 찢어발길 만큼.
운명이 겁을 먹고 한 발 물러설 만큼.
“으으으….”
31의 생각.
무겁다.
무겁다 그뿐이다.
31의 생각.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으으으으으….”
31개의 손이 우주를 가르며 비탄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비탄이 하늘로 향한다.
그의 우주에, 격자무늬가 사라진다.
심판관이 말한다.
“…그대의 승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신은 소멸한다.
평화 유지군은 힘에 밀려나 추방당한다.
거대한 파동.
하나의 신앙에서 탄생한 그 힘은, 한계가 없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은하군 곳곳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새로운 신앙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연약한 존재가 운명의 심장을 찌르자 벌어진 일이다.
천뇌 바넷사가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정리했다.
“은하군… 공명. 평의회 개입 권한 박탈, 독립 우주 성립….”
더는 선택지를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우주. 창조하는 우주.
쟈넷이 헤로잉에 이송되며 그 빛을 바라본다.
“아아… 아름다워… 저게… 자유의 빛.”
바넷사가 새로이 이름 붙여진, 눈사람이 지켜낸 우주의 명칭을 확인하며 읊조린다.
“무한, 존재 확인. 이레귤러, 무한의 대제 명명.”
그래, 그렇게 비로소 도달한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31번째 말은 게임판을 뒤엎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