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30
428화 한낮의 악몽 (1)
“개방된 건 확실하다는데.”
신입으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는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어린 혼돈이 말했다.
“이 구역은 한 명의 기억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구나. 그 사람과 연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가 있다나.”
“…연이요?”
“인식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받아들여진 사람, 이라고 할 수 있겠군.”
무심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주먹도 꽉 쥐어졌다. 그 말까지 듣고 나자 더는 의심하고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안 나와야 맞는 거 아닙니까.”
유현이는 회귀 직전에 죽은 거니까, 스물아홉 살의 내가 있는 시점에는 멀쩡히 살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토끼 말대로라면 구성되기 힘들 텐데. 자세한 건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봐야 알 수 있겠지. 토끼가 알아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잘 안 된다나. 이곳의 보스 몬스터는 무해의 왕의 권속이라.”
다른 곳과는 달리 무해의 왕의 힘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곳이라서인 모양이었다. 그럼 당연히 그 마왕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동생이 아니라.
숨을 크게 들이마셔 어떻게든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럼, 저와 유현이만 들어갈 수 있겠군요.”
“나도 막혔어.”
유현이가 허공을 매만지며 말했다. 뭐?
“너도? 아니 왜?”
“형과 쭉 화해하지 못한 채의 나라면… 그럴 거야. 충분히. 아니, 형이 회귀하기 전의 나도. 난 계속해서 나 자신을 누르고 멀리해야 했으니까.”
“둘째 녀석이 보통 외골수가 아니지.”
아니, 그래도……. 하지만 지금의 유현이도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데, 내 안위보다도 스스로를 위해 욕심을 내는 데 시간이 걸렸었다. 만약 스물네 살의 한유현이라면. 충분히 스스로를 밀어낼 법했다.
“…지금의 너라면 너도 들어갈 수 있었겠지. 어쩌면 예림이까지도.”
“박예림은, 어쩌면.”
확신은 안 간다는 듯 유현이가 말했다. 그래도 놀라운 발전이긴 했다. 나밖에 없던 녀석이 자기 자신과 예림이, 피스까지 들였으니. 이 정도로도 형은 무척이나 만족스럽구나. 이제는 많이 안 바란다. 지금 마음가짐을 쭉 유지라도 해다오.
“혹시 확인 못 해봐요? 궁금한데.”
나 못 들어가면 나도 길드장 놈 차단할 거라며 예림이가 말했다. 차단은 어떻게 하는 거냐.
“그럼 일단─”
“안 돼.”
내가 말머리 꺼내기가 무섭게 유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편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윤윤밖에 없을 듯했다. 얼른 들어가 보고 싶다는 저 호기심 가득한 눈빛 좀 봐라.
“지금은 은혜도 있고, 또 만약에 정말로 유현이 너라면.”
내 동생이라면.
“날 해칠 리가 없잖냐.”
몬스터든 무엇이든 한유현이라면.
“아니면 뭐 다른 방법 있을까요?”
어린 혼돈이 짧게 고개 저었다.
“현재로서는 첫째 네가 들어가서 설득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잖아.”
여기서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 밤이 되면 라우치타스가 다시 힘을 얻고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럼 결국 위험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 불로─”
“안 돼.”
“하지만─”
“안 돼. 게다가 공격이 먹혀들려면 안쪽의 몬스터가 맞대응해 줘야 한다며.”
“그건…….”
어차피 방법이 없다. 나는 유현이가 자신의 근원을 소모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설사 수명 일부를 희생한다고 해도 일단은 들어가서 안의 동생을 불러와야만 했다.
결국 동생이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작게 끄덕였다.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구역 안으로 발부터 들였다.
“은신 스킬은 통하지 않을 테니 실레키아를 걸치게.”
성현제가 조심하라면서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고.”
“걱정 마세요.”
“계속 이렇게 지켜보기만 하다간 몸 안에 사리라도 생기겠군.”
송 실장님은 댁 덕분에 이미 열댓 개는 생겼을 거 같습니다만.
“형, 내 예장이 더─ 형?”
유현이가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생의 시선이 향한 곳을 돌아보았다.
“야, 너!”
어느새 회귀 전의 내가 구역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케이크 상자를 안아든 채. 조용하나 싶더니 사람들이 나한테 정신 팔린 틈을 타서!
“나가 있어!”
“내가 왜.”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둘 중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면 그건 나여야지. 네가 아니라.”
스물다섯 살의 한유진이 아닌, 스물아홉 살의 한유진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에 녀석의 팔을 잡고 당겨… 젠장.
“망할 스탯! 아니, 장비를 걸치면…….”
“나도 장비 있거든.”
하나하나 갖춰 온 정수증가 장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본 스탯의 차이에 더해 레벨도 더 높을 테니 내가 힘으로 이기는 건 어려웠다.
“야! 진짜!”
“네가 자신할 정도라면 나도 무사할 거 아니냐.”
“그건…….”
“내 동생이야.”
말문이 막혔다. 내가 여기서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망할.
“형…….”
유현이가 안절부절못하다가 예장을 벗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회귀 전의 내게 던져 주었다.
“일단 입어.”
“아저씨! 반지도요! 이거, 한유현이면 불이랑 독은 안 통할 테니까. 세성 아저씨! 전기요, 전기.”
예림이가 끼고 있던 반지에 자신의 냉기를 넣으며 말했다. 성현제 또한 전류를 넣어 주었다.
“숄도 가지고 가세요!”
“이것도 챙겨 가십시오.”
송태원이 SS급 수갑을 벗어들었다. 굳어진 얼굴 위로 그늘이 짙었다. F급과 E급만 보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송 실장님에겐 마음 무거운 일이겠지.
“보조 스킬도 걸어 드릴게요. 지속시간 꽤 길어요.”
“난 응원할게! 힘내라! 파이팅!”
그래, 고맙다.
장비를 챙기고선 해연 길드 건물을 향해 돌아섰다. 아직 들어서기도 전이건만 가슴 안쪽이 약하게 욱신거렸다. 계단을 향해 몇 발 걸어가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야.”
“왜.”
“잠깐 이리 와 봐.”
회귀 전의 내가 불신 어린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넌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강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좀 기분 나쁜 소리다.”
“네 감정을 뚜렷하게 느낀 적도 있고 마나도 이어져 있었어. 그리고 기억도, 동시에 떠올렸지.”
이 정도면 반쯤은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기분 나빠지려 하네. 같은 사람 맞긴 하지만.
“그러니 어쩌면 스킬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스킬을?”
“어. 좀 더 이쪽으로, 올라가자.”
혹시라도 내 스킬들에 대해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나를 데리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장비까지, 은혜 능력까지 공유되면 더 좋고.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음, 이리 가까이 와 봐. 케이크 내려놓고.”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연결고리를 찾아서 더욱 강하게 이어 놓으면, 뭐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나와 내가 동일 인물이라고, 시스템에 인식시킨다면. 주춤거리는 회귀 전의 나에게 손을 대었다가 그냥 확 끌어안았다.
“으, 야!”
“나도 좋은 건 아니니까 가만히 있어!”
대체 둘이서 뭐 하는 건가, 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쪽팔리네. 눈을 감은 채 구경꾼들을 잊으려 애쓰며 마나의 흐름을 더듬어갔다. 마나각인의 힘이 더해지며 우리 둘 사이를 잇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내 감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이어져 있는 선들이 감은 눈앞으로 이미지화되어 떠올랐다.
“…너, 말이야.”
“조용히 해.”
“아니 이거, 뭔가…….”
마력을 움직이고 선생님 스킬을 더해 연결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서로의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동시에 으, 기분 나빠, 라고 생각했다. 내 스탯치가 올라갔다. 녀석의 스킬 또한 변하였을 것이다. 감정의 공유는 좀 줄이자. 그래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 스킬들…….”
“말하진 마.”
회귀 전의 내가 스킬창을 확인하곤 눈을 크게 떴다.
“와, 미친.”
“장난 아니지?”
“F급에겐 정말 쓸모없는 스킬들이다. 아까워 죽겠네.”
너무하네. 나도 동의는 한다만 그래도 잘 쓰고 있는데.
“피해무효화는 SS급으로 해놓을 거야. 마나 소모 크니까 멋대로 건드리지 마라.”
“예, 예.”
“그럼 가자.”
다시 몸을 돌렸다. 코트 자락이 길게 흔들렸다. 익숙한 유리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붙잡았다. 손바닥이 서늘했다. 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딸랑, 딸랑.
종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꼭대기에 금빛별을 얹고서 알록달록한 치장을 하고서. 색색의 전구가 반짝이고 비둘기며 아기천사, 지팡이, 양말 등의 장식품들이 흔들렸다. 솔잎 같은 초록색 모루와 가랜드가 천장 곳곳을 치장하고 접수대 위에는 산타가 앉아 있었다.
끼이익 열렸던 문이 닫혔다. 우리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갔다. 매끄러운 바닥 위로 발소리가 울린다. 너른 로비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서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노래였다. 내 목소리의 노랫소리.
[사랑하는 동생의… 생일 축하합니다.]짧은 침묵 후,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생일 축하한다, 유현아.]그리고 다시, 노랫소리가 반복되었다. 속이 아팠다. 회귀 전의 나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내 감정을 느끼는지, 아니면 저 노래 자체가 듣기 힘든 건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로비의 가장 안쪽에 서 있는 커다란 루돌프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선물더미가 담장처럼 한가득 쌓여 있고, 눈처럼 하얗고 푹신한 카펫이 깔리고, 그 가운데에.
“…유현아.”
동생이 잠들어 있었다. 늘어뜨려진 손에 들린 녹음기에서 계속해서 노래가 재생되었다. 계속해서. 절로 걸음이 멈추고 더는 다가가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는데.
“한유현!”
회귀 전의 내가 소리쳤다. 케이크 상자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막을 틈도 없이 달려 나간다. 동시에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야 이 나쁜 새끼야!”
“…형?”
튕기듯 일어난 유현이가 급히 녹음기를 끄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동생을 향해 내가 주먹을 휘둘렀다. 헌터일 하던 가락이 있다고 제법 날카롭게 날아간 주먹질을 유현이가 가볍게 피하며 미간을 좁혔다.
“이제 다시는 여기 오지─ 저건!”
동생이 팔을 뻗어 회귀 전의 나를 끌어안았다. 내가 발로 유현이의 다리를 차고 허리를 감은 팔을 마구 쥐어뜯는다. 물론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동생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떨어져 서 있는 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개새끼야! 시발, 네가 개새끼면 나도 개새끼긴 하지! 너 인마, 너! 이러려고 집 나갔냐!”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고, 슬프고. 내 감정이 얇은 막을 거쳐 흘러들어왔다.
“형!”
“사과해!”
내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사과하라고!”
비명 같은 외침에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형, 잠깐─”
“그럼 다 용서해 줄게……. 다. 뭐든지.”
전부 다. 동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퍽, 퍽! 다리를 차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유현이가 당황하며 나를 멈추려 들었다.
“그, 그러다 다쳐, 형.”
“유현아.”
내 목소리에 동생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뭐랄까, 약간 겁에 질린 듯도 한 얼굴이었다. 내가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많이 혼란스럽겠지.
“이제는 괜찮아.”
“…….”
“너도 아마,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거야. 여기는 던전 속이고, 너와 그 나는, 기억과 정보로 만들어진 몬스터야.”
“그게, 대체…….”
“그러니까 더 참을 필요 없어. 이제 다, 괜찮아. 너와 계약했던 초월자는 죽었고 던전 밖의 우리는 화해했어.”
사과해… 울음기 어린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훅,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이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혀, 형…….”
“이, 나쁜 놈아, 나쁜 새끼야…….”
이제 더는 나를 멀리할 필요가 없다.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그것을 힘겹게 이해한 동생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아니, 반대로 한참을 헤매다가 부모를 찾은 아이 같기도 하였다.
“…잘못, 했어.”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유현이의 목소리도 젖어들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버둥 치는 나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형…….”
내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하,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유현.”
“…응.”
“생일 축하한다.”
“…형.”
“생일 축하해, 내 동생.”
“난, 형. 나는…….”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워, 형. 정말로, 고마워.”
기분이 이상했다. 나와 동생이 화해하고 있었다. 나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이곳의 나는 그럴 수 있었다. 동생을 완전히 잃은 적 없는 나는, 동생을 완전히 되찾고서 환호했다.
미안하다는 말이면 충분했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돌아온다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
부러웠다.
아직 그럴 수 있어서.
“음, 좋은 분위기 방해해서 미안한데.”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잘되었군요, 하고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었다. 던전을 공략하고 나가야 하니까.
“일단─”
그그그긍─
공간이 떨렸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한유현이었다. 나를 낚아채다시피 한 채 유현이가 내 곁으로 미끄러져왔다. 그 직후,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루돌프와 선물 더미는 바윗덩이가 되었다. 매끄럽던 바닥이 울퉁불퉁한 흙바닥으로 바뀌고 천장도 벽도 모두 거친 암벽으로 변하였다. 그러니까, 거대한 동굴 속이었다. 무척이나 눈에 익은, 꿈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장소.
– 그르르르.
나직한 목울림 소리가 동굴 벽을 두드리며 무겁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