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6
524화 내 초상권 (3)
“어떻게 된 거야?”
내 물음에 구경하고 있던 예림이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봤어야 하는 건데. 할아버지가 세성 아저씨 보자마자 이 미친놈아! 하고는 정강이 걷어차서 질질 끌고 갔어요.”
“그래? 맞고 끌려갔다고?”
“네. 할아버지 엄청났어요. 제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들었다니까요. 차는 거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세성 아저씨도 피하려고 했는데 못 피하더라고요.”
예지해 봤자 몸이 안 따라주면 헛거니까. 게다가 만약 성현제의 전투예지가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 거라면 어르신도 만만찮게 쌓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저리로 끌고 간 뒤론 소리가 전혀 안 들리더라고요.”
지금도 말은 하고 있는 듯하지만 어르신은 입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성현제는 말하는 티는 났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다. 성현제 진짜 뭘 했기에 어르신께서 저러시냐.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성현제를 쳐다보던 어린 혼돈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성현제의 이마를 딱 쳤다.
“아프겠다.”
예림이가 중얼거렸다. 동작은 가벼워 보였지만 분명 아프겠지. 성현제의 이마가 붉어졌다. 가만 보니 한쪽 귀도 불그레했다. 귀도 잡혔구나.
“신입아, 혹시 무슨 일인지 아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배구공이 기우뚱거리며 말했다. 궁금해 죽겠네.
“형, 앉아서 봐.”
유현이가 의자를 당겨 주고 차도 따라 주었다. 신입이 건강에 좋은 차예요! 허니 세상 인간 기준으로요, 하며 통통거렸다. 독극물이 보약인 세상도 있으려나. 하긴 우리 세상 보약도 순한 맛은 아니다만.
“채터박스에게 보상받기로 했어. 우리 초상권에 대해서 말이야. 이후 영상은 당사자가 직접 편집할 수 있도록 해준댔고.”
빳빳이 고개 들어 혼돈을 마주 봤다가 이내 다시 눈을 까는 성현제를 구경하며 말했다. 저걸 송 실장님에게도 보여 줬어야 하는 건데. 성현제가 평범하다 못해 살짝 안쓰럽게까지 느껴졌다. 이마 붓는 거 아냐? 얼굴은 때리지 말지.
“그럼 진짜 파티하는 거 방송에 다 나가는 거예요?”
“원한다면 모자이크 처리된대.”
“전 상관없는데요, 아저씨가…….”
“참석할 거야?”
유현이가 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날도 좋고 풍경도 좋고. 헉, 어르신이 회초리 같은 긴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 설마 종아리 때리시려는 건 아니겠지. 손바닥이라거나. 다행히 어깨만 툭툭 쳤다.
“여기서 빠지면 더 안 좋아. 난 앞으로 영원히 S급들에게 보호받는 F급이 되겠지.”
“대외적으로는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로 했었잖아.”
“채터박스가 저렇게 대중 앞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말이지. 이전에는 나도 공개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었으니까.”
오히려 감춰야 했으니 대외적인 이미지가 다른 편이 유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앞으로 나가야 하게 되었다. 내 말에 유현이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싫어하는 건 알지만, 형은, 사실. 보호받아도 되잖아. 형의 스탯이 낮은 건 단순한 사실이야.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야.”
“…그렇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F급의 스탯을 누군가가 탓한다면 탓하는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진 않으니까. 평화로울 때는 괜찮아. 약한 사람도 챙겨 줄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다 같이 도망쳐야 하는데 다리를 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잘못이 될 수밖에 없어.”
물론 끝까지 약자를 챙기려 드는 좋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도움 되지 않는 그 한 명을 버려서 다수가 살 수 있다면.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보호만 받지 않으려면 나서야 해. 계속 숨어 있을 게 아니라면 지금 터뜨리는 게 나아. 내가 방해되지 않고,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해. 사람이 꼭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필요하니까.”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것이 최고라지만, 나는.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하고 싶은 일도, 있고.”
포기하고 S급들이 감싸 주는 특수스킬 소유자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도 내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위치를 내세워서 자리 잡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나를 걱정하는 동생의 팔을 가볍게 토닥였다.
“위험하진 않다잖아. 그리고 별 활약 못 해도 마지막까지 발버둥이라도 잘 치면 좋게 봐줄걸? 그럼 그때 가서 타고난 스탯은 어쩔 수 없지만 노력했다는 식으로 잘 꾸미면 돼.”
물론 실제로는 최소 S급 한 명이라도 잡고 끝낼 거지만. 한둘 정도야 가능할 거 같은데. 내 주위 S급들처럼 압도적이진 않더라도, 동귀어진이라도 하고 만다.
“가끔은 전부 태워 버리고 싶어.”
유현이가 조금 뾰로통하게 말했다.
“사회가 유지되는 게 형에겐 더 편하긴 하겠지만.”
유현이 앞에선 나이 들면 시골이나 산골 들어가서 살고 싶단 소린 절대 하면 안 되겠다. 나도 그런 로망이 조금은 있긴 했는데. 뭐 요즘은 산골 들어가도 수도전기통신 다 된다지만. 역시 현대문명이 편하긴 하지.
“현대사회가 무너지면 난방이고 온수고 다 없어지니까. 나무 해오고 찬물도 길어 와야 한다고.”
“그건 나랑 박예림 있잖아.”
“무인도 떨어져도 끄떡없어요, 아저씨.”
든든도 하지. 그렇지만.
“예림아, 치킨도 피자도 햄버거도 콜라도 없어. TV도 못 보고 새 인형도 안 나와.”
“그러니까 제가 세상을 지키는 거잖아요.”
예림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신입도 동의했다. 반면에 유현이는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유현이 입장에서 저런 거 없어도 되다 못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지키자꾸나, 동생아.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 나오는 거 편하긴 하잖니.
“막내야.”
그때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혼돈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나도 저기 가서 무릎 꿇어야 하나. 유현이가 나보다 더 당황해하더니 의자의 방석을 건네주었다.
“미안, 형.”
“어, 할아버지가 다 아저씨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래, 그렇지. 방석 들고 가서 성현제 옆에 깔고 무릎 꿇었다. 어린 혼돈과 성현제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뭐 하냐.”
“자진납세요. 방석 뺄까요?”
이대론 좀 뻔뻔해 보이긴 하겠지?
“귀걸이도 뺄까요? 잡기 편하시게.”
귓불보단 위쪽을 즐겨 잡으시긴 하지만. 혼돈이 한숨 나온다는 표정을 짓고는 작은 손으로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듯 쓰다듬었다.
“저놈 옆에 있으니 손댈 맘도 안 생긴다.”
“상대적인 거고 저도 평범한 성인 남성입니다만. 근데 성현제 씨는 왜 혼나고 있는 겁니까?”
성현제가 침묵하고 어르신이 혀를 쯧 찼다. 그리곤 서늘하게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뒈질 거면 곱게 뒈져라.”
“네? 아니 왜요? 근데 어르신 혹시 이상한 드라마 보신 거 아닙니까?”
말이 너무 험하시네. 성현제가 혼나는 사람답지 않은, 평소 그대로의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로 끝내는 거지.”
말로 했다기엔 성현제 이마 벌겋습니다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둘 다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저놈 일이니 나는 말 못 한다.”
“성현제 씨?”
“누구나 다 개인적인 비밀 한 가지쯤은 있는 법이라네.”
나 역시 그렇지 않느냐고, 성현제의 시선이 말하는 듯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만. 마음 같아선 멱살이라도 잡고 뭔 일이냐고 캐묻고 싶었지만 나도 쌓아둔 게 여럿이라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어르신은 아신다니 잘 타일러 주셨겠지.
…성현제가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봤다.”
어린 혼돈이 짠해하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 채터박스가 방송한 영상 말하는 걸까. 어르신 눈에는 정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애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비쳐졌을지도.
“비각성자 상태였지.”
“네.”
“그래도 차이는 확연하건만 아득바득.”
“총 썼어요, 전.”
“어린 것들이 참……. 그래도 애썼다. 사슬장이 네놈은 빼고.”
송 실장님은 포함되는 건가. 하기야 원래라면 나랑 송 실장님은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지. 내 속은 서른이니까.
“성현제도 기억만 치면 사십 년도 못 살았는데요. 어르신에 비하면 어리죠.”
그래 봤자 어린것 취급할 나이는 절대 아니긴 하지만. 어르신이 갑갑~ 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첫째 넌 대체 어디가 문제라서 저런 놈도 품으려 드는 거냐.”
“아니 어쨌든 아는 사이잖습니까. 연락도 하고 사업도 하고 가끔 밥도 먹고. 그냥 나름 친한 사이니까요. 그보다 어르신.”
신입과 예림이가 못 듣게 해달라고 하곤 말을 이었다.
“인형술사라고 아십니까.”
“그런 이름은 여럿이다만.”
“송 실장님, 저번 악몽 던전에서 본 사람이요. 몸 좋고.”
“첫째 너 못지않게 갑갑한 애 말이냐.”
“그… 월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초월자래요.”
“뭐?”
어린 혼돈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르신도 모르시는 건가.
“씨앗을 뿌렸대요. 그 씨앗이 있던 흙을 가지고 오니까 송 실장님이 꼼짝을 못 했거든요.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없으세요?”
“씨앗을 뿌리는 거면 정원사밖에 모르겠는데.”
“정원사요?”
“좀 이상한 녀석 하나 있어. 하지만 정원사가 인형술사로 불린 적은, 내 기억으론 없다.”
정원사라. 씨앗에 흙이었으니 호칭만 보면 딱 걸맞기는 했다.
“어르신이 모르는 걸 수도 있잖아요. 첫 번째 근원 밖으론 나오지도 않으셨, 아야. 아무튼요, 정원사는 어떤 초월잡니까?”
“그놈도 제 영역 밖으론 거의 나오질 않아 잘 모른다.”
“그래요?”
“첫 번째 근원으로 기어들어오려 하기에 내쫓은 적은 있지만.”
“…혹시 사이 나쁩니까?”
“나는 별 감정 없어.”
그야 감정은 보통 맞은 사람이 생기니까. 인형술사가 정원사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조심해야겠다 싶어졌다. 일단은 어르신과 모르는 척해야지. 황림이 인형술사와 다시 연락 가능해지면 정원사에 대해 언급해 보면 될 것이다.
“첫째는 일어나고 넌 계속 꿇어.”
“방석 빌려줄까요?”
“첫째야.”
“옷 비싼 걸 거라서요. 세성 길드장 무릎은 안 닳아도 옷은 닳잖아요.”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이 정도로 어르신의 마음이 풀린다면 감수해야지.”
“머리도 박아.”
아니 뭘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얼른 어르신을 말렸다. 어린 혼돈이 신입과 애들에게 손짓했다. 먼저 통통 튀어 온 신입이 새로운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 냈다. 다들 자리에 앉았지만 성현제만 바닥이었다. 유현이야 아무렇지 않아했지만 예림이는 신경이 쓰이는지 성현제를 흘끔거렸다.
“세성 아저씨, 차 드릴까요?”
“꼬마 아가씨는 상냥하기도 하지.”
예림이가 진짜 착하긴 착했다. 성현제 주위 사람 중에선 그에게 손꼽히게 잘해 주지 않을까. 성현제가 무릎 꿇은 채 찻잔을 받아들었다. 예림이는 무려 과자까지 건네주었다. 천사다.
성현제와 어린 혼돈에게도 채터박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일단은 한 명이라도 잡는 게 목표입니다.”
“그런데 말이다.”
어린 혼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예?”
“보아하니 별별 것들로 다 경쟁을 하던데. 노래나 요리 같은 것들로도.”
어르신 드라마 한 편만 보신댔다더니. 예림이가 아, 하고 끄덕거렸다.
“맞네요, 요리대회를 열 수도 있죠. 파티니까 댄스대회일 수도 있고요.”
“…S급 모아 놓고서?”
웃기긴 하겠다. 뭘 하든 성현제가 제일 유리하겠구만. 노래도 잘하나?
“설사 요리를 시키더라도 스킬 같은 걸 활용해야 하겠지. 아니면 싸워서 선착순으로 재료 구하기라거나. 진짜 예능프로그램 같네. 신입 넌 도와줄 수 있는 일 없어? 채터박스를 감시한다거나.”
[저흰 허니 세계에 간섭하는 자체가 쉽지 않으니까요. 아, 신입, 이 아니라 대장장이 씨에게 와달라고 해주시겠어요?]명우를 왜 신입이라고 부르려 드냐. 명우를 놓아줘라.
“명우 괴롭히지 마.”
[제가 얼마나 잘해 주고 있는데요! 최선을 다해 가르쳐 드렸다고요!]“특히 촉수는 안 돼.”
[허니, 촉수가 얼마나 편한데요. 촉수를 가지면 스페인 랩소디도 칠 수 있어요!]그게 뭔데. 쳐서 뭐하게.
[대장장이 씨는 허니 세계 사람이니까요, 훨씬 자유롭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조오금만 더 가르치면 뭔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요. 아무튼 배워둬서 나쁠 건 없잖아요.]“명우에게 말은 해두겠지만 무리시키면 안 된다. 절대 안 돼. 촉수는 진짜 안 돼.”
[걱정 마세요! 소중한 후배님인걸요!]정말 못 미더웠다. 명우도 툭하면 밤새우는 타입이라…….
“상자 파티까지 여유가 있다면 첫째 너도 애들과 같이 들러라.”
“저도요?”
“그래. 조금이라도 가르쳐 주마. 크게 변하지는 않겠다만…….”
어린 혼돈이 땡볕에서 시들어가는 미나리 바라보듯 나를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저놈이랑 그 애도 시간 되면 한번 데리고 오고.”
“네. 송 실장님께 말해 보겠습니다.”
“전에 한 말도 생각은 해둬라.”
유현이의 어깨가 움찔 굳었다. 팔을 뻗어 동생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나만이라도 데리고 가주시겠단 그 제안 말이겠지. 미니미니쿠키를 꺼내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난리 통에 웬 던전에 들어갔느냐 트집 잡힐 수도 있으니 돌아갈 때도 모습을 숨기는 편이 나았다. 많이 사두긴 했지만 이러다 금방 동나겠네.
신입이 우리를 내보내고 원래의 던전이 나타났다.
– 그르릉!
몬스터가 이를 드러내기 무섭게 불길이 뻗어나가고 뒤지지 않고 얼음 창이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 빛이 튀어 오르고, 나 역시 총을 꺼내 혼란에 빠진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쓰러진다. 마나를 충전하며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유현아, 난 혼자 가겠어.”
“형?”
유현이에 이어 예림이와 성현제도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세 사람의 시선 속에서 미소 지었다.
“팀원 없이, 혼자서.”
반드시 2인 1조일 필요는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혼자 가는 것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