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33
531화 파티 전 (4)
촤아아악! 모래를 파도처럼 높게 튀어 올리며 송태원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 약탈 외의 스킬은 금지, 마력으로 신체 강화도 금지. 오직 약탈만 사용하여 공격을 막아 내라는 조건에 송태원은 성실히 따랐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때 스킬을 적용하지 못해 어린 혼돈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 낸 팔뚝을 매만지며 송태원이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금 갔다, 이놈아. 예쁜아, 치료해라.”
대기하고 있던 노아가 송태원에게 치유 스킬을 썼다. 노아 씨가 예쁘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 대놓고 저렇게 부르는 건 좀……. 가만 보면 어르신도 센스가 영 아니라니까. 어르신과 하민이 녀석을 두면 내가 그나마 제일 낫지 싶었다.
송태원이 노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다시 혼돈의 공격을 받아 낼 태세를 취했다.
채터박스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어린 혼돈을 우르르 찾아갔다. 그사이에도 틈틈이 찾아가긴 했지만 이렇게 다 같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린 혼돈은 웬 떼거지냐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곤 유현이와 예림이, 나에 이어 송태원을 살펴봐 주었다.
“역시 이상하기는 해.”
송태원의 어깨를 밟듯이 차며 빙그르 돌아 내려선 혼돈이 말했다.
“아무리 제 그릇에 넘치는 힘이라 해도 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에 이다지도 미숙하다니.”
“송 실장님은, 윽, 싫어하셨거든요. 그래, 유현아아, 잠깐만. 그래서 무의식중에 거부한 게 아닐까요.”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송 실장님은 가진 능력치에 비해 약탈 스킬을 정말, 무척 못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 스킬 활용 자체는 뛰어났다. 하지만 약탈이 지닌 힘이 너무 약했다. 원래 송 실장님의 신체, S급 전투계라면 적어도 팔 하나 정도는 감쌀 만큼의 약탈을 끌어낼 수 있어야 맞다나.
“억누르고 있는 건 맞을 거다.”
혼돈이 시선에 송태원이 눈을 조금 숙였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랜 습관이 되었겠지. 이 정도라면 아마도 어릴 때부터. 혹시 어릴 적에 계기가 될 만한 일은 없었냐.”
“제 기억으로는 없었습니다.”
“송 실장님은, 못 믿, 악!”
유현아, 형이 말할 때는 살살 해주렴. 유현이가 내 몸을 주물러 주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입이 슬쩍 말했다.
“됐다니까.”
“형, 옆으로 돌아누워 봐.”
[딱 한 번만 경험해 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텐데!]신입은 최근 만날 때마다 촉수의 유용성을 내게 설파해댔다. 아마도 명우가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촉수를 거절했기 때문인 듯했다. 왜 자꾸 멀쩡한 사람 몸에 촉수를 붙이려 드는 건지.
“송 실장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요. 무조건 괜찮다, 아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예요.”
“첫째 너와 비슷하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송 실장님이 더 심하죠.”
송태원의 눈이 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왜요, 진짠데. 그래도 내가 송 실장님보다는 낫지.
“혹은 스스로가 무서운 거냐.”
혼돈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나무막대기가 무시무시한 위력을 품은 채 휘둘러졌다. 팡-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스킬도 마력의 보호도 없는 맨몸이라면 제아무리 S급이라 해도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파헤쳐질 기세였다. 검은 그림자가 송태원의 팔뚝에 휘감기며 나무막대를 막아 냈다. 막대기가 퉁, 튕겨 나가나 싶더니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송태원의 허리를 찔러 간다.
“힘을 나눠!”
어르신이 호통을 치며 가차 없이 송태원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보는 내가 윽 소리가 나올 것 같았지만 송 실장님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뒤로 물러나 자신의 몸에 박힌 막대기를 뽑아냈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면 갈라! 제 몸뚱이와 마력은 능숙하게 잘 다루는 놈이 왜 그림자는 제대로 나누지도 못해. 그것도 네 힘이다.”
어르신이 혀를 쯧쯧 차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첫째가 스킬 써줬을 때는 범위도 넓어졌다고 했었지. 그거 일종의 위약효과였을 거다.”
“진짜요?”
“그래. 스킬이고 뭐고 다 삼키는 힘에 첫째 네 스킬이 통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헐,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약탈 대상으로는 보조스킬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일까.
[가능성은 있어요, 허니. 공격 스킬 두 배 효과를 준다는 게 단순히 스킬 위력만 늘리는 건 아니거든요. 두 배가 된 스킬에 바로 적응도 하게 해주죠. 갑자기 힘이 배가 되면 자기 몸을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지잖아요? 그것도 보조해 주니까 그 보조 효과만으로 그림자 씨가 그림자를 더 잘 쓸 수 있게 된 걸지도 몰라요.]다른 보조 스킬들에도 기본적으로 있는 효과였다. 송 실장님은 묵묵히 우리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도 보통 힘을 스스로 누르고 있다면 제 몸이 위험해질 때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하긴 그조차 안 되니까 여태까지 무사했던 것이겠지.”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끝끝내 성현제를 삼키지 않았던 것처럼. 송태원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보다 훨씬 작은 혼돈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로 두는 편이 안전한 겁니까.”
“평범한 S급 헌터로 남아도 된다면 말이다.”
문제는, 송 실장님은 그러고 싶어도 주위에서 내버려 두질 않을 것이다. 그가 각성자가 되어 버렸듯이. 애초에 뒤로 물러나 눈감고 계실 성격도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문제인지 혹은 다른 개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우선 네 힘의 한계를 넓게 생각하고 사용하려 해봐라. 싫으나 좋으나 그림자도 네 것이다.”
그렇지.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도 했다. 오늘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성 모 씨쯤 된다면 모를까. 어르신에게 어지간히도 밉보였는지 성현제는 이번에도 바닥 신세였다. 그런 주제에도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난 역시 도련님이 닮은지 잘 모르겠다.”
문현아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예림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분위기가 전혀 달라.”
“외모 자체는 좀 비슷하긴 하잖아요.”
“그건 그런데, 눈 색은 완전 다르고. 아무튼 성현제 다루는 것만 봐도 좋은 분인 건 확실하지만.”
현아 씨 성현제가 얌전히 무릎 꿇는 거 보고 박수까지 쳤었지. 그리곤 어르신 팬 되겠다는 너스레에 어린 혼돈도 그녀가 꽤 마음에 든 듯했다.
쿵, 소리와 함께 송태원의 몸이 모래밭에 내팽개쳐졌다. 송 실장님도 체술은 장난 아닌데 역시 어르신은 못 당해내는구나. 문현아가 작게 감탄하고 예림이가 부러워하는 소리를 흘렸다.
“전 여전히 할아버지 움직임 따라가지도 못해요.”
다들 열심히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명우와 신입은 빼고. 신입이야 내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고 있었고 명우는 번역 아이템 마무리 작업 중이었다. 신입의 도움을 살짝 받아 번역 아이템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오류가 좀 있다고 하였다.
번역 아이템도 반가웠지만 명우가 빌려준 또 다른 아이템도 정말 쓸모가 많을 듯했다.
“그럼 슬슬 뽑기 할까.”
내 말에 신입이 둥근 통을 만들어 주었다.
“색깔 골라요. 유현이 너도 걸리면 아무 말 않고 가는 거다.”
“…피스 의견도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해.”
“피스가 너랑 가고 싶어 할 거라고?”
“형이 혼자 간다는 걸 알면 당연히 같이 가려고 하겠지.”
음, 그럴 것 같긴 했다.
“어쨌든 일단 제비뽑기로 정하고 나서. 피스 공도 넣어 줄게. 에블린 씨는 남는 사람 아무나 괜찮다고 하셨어요. 리에트는 소영 씨와 가기로 했고요. 그리고 성현제 씨는…….”
“선약이 있지.”
…결이 진짜 괜찮을까. 걱정되었지만 일단 남은 사람들에게만 색을 고르게 시켰다.
“뽑기는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S급들은 워낙 예민해서 말이야. 신입이 완벽하게 똑같은 공이라고 했지만 혹 모른다. 통 안에 손을 넣어 공을 뽑았다. 노란색, 예림이였다.
“유현이가 나오면 속성 문제로 다시 뽑겠습니다.”
제비로 정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기본 상성은 맞춰야지. 두 번째 공은 검은색이었다.
“공무원 아저씨네요!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은 조합이었다. 송 실장님은 든든하니까 예림이 걱정도 덜 수 있고. 세 번째 공은 파란색, 문현아였다. 그리고 네 번째 공은 빨간색, 노아였다.
“우리 예쁜이와 한 팀이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레이커 길드장님.”
“편하게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아니면 형님처럼 현아 씨라고 해.”
문현아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유현이와 에블린, 피스인데.
“유현아, 그냥 에블린 씨와 가는 게 어때? 괜찮을 듯한데.”
“피스가 좋아.”
동생이 완고하게 말했다.
“제일 자주 맞춰 보기도 했고. 원거리에 보조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제대로 한번 싸워 본 적도 없는 상대는 불편해.”
“아저씨, 저거 그냥 엄살이에요. 어차피 한유현 맨날 혼자 뛰쳐나가서 그런 거 신경도 안 쓸걸요. 피스랑 같이 가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저러는 거라고요. 아저씨랑 빨리 합류하려고요.”
유현이 말도 맞지만 예림이 말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게다가 에블린 씨도 팀원이 필요하긴 한데. 그런 내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성현제가 입을 열었다.
“초대장만 있으면 밀러 헌터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테니 걱정 말게나.”
“하긴 그렇겠네요. 에블린 씨 해외에 친한 헌터들 있어요?”
“있다면 있지.”
그러면서 성현제가 문현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턱을 괴고 있던 문현아가 왜,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정 안 되면 성현제 씨가 같이 가면 되겠지요. 제가 결이를 달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밀러 헌터의 세성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반드시 필요한, 정말로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곤 길드장과의 던전 공략 동행 거부였네만.”
남는 사람 아무나가 이미 팀원 정해진 성현제 빼고 아무나라는 뜻이었나 보다.
“아니면 나도 갈까?”
우리를 구경만 하고 있던 명우가 말했다.
“위험해!”
[맞아요! 후배님은 몸을 아껴야 해요!]나와 신입이 기겁하며 명우를 말렸다. 명우가 웃으며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금속 막대를 빙글 돌렸다.
“안전은 보장한다면서. 게다가 S급 헌터라면 내게 쉽게 손대진 못할걸.”
“그야… 그렇지만.”
심지어 명우가 SS급 무기 업그레이드한 사실이 모임에 참석한 S급들에게 알려졌으니까.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쉬쉬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면 S급들 사이에 소문이 퍼질 만큼 퍼졌겠지. 그러니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SS급 무기를 위해 명우를 적대시하느니 친절하게 양보하고 장기적인 거래를 노리는 편이 이득일 것이다.
[효도중독자들 쪽에서 노릴 수도 있다고요! 대장장이 씨는 세계를 지키는 데 무척 유리한 열쇠인 셈이니까요!]배구공이 통통 튀어 명우 앞으로가 빙글빙글 돌았다. 색마저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바뀌어댄다. 예전에 이 세상이 망한다더라도 명우는 빼내 줄 거라고 했었지.
[저랑 같이 즐겁고 유익한 만들기 놀이를 해요! 제 작업실 중 하나 보여 줄까요? 원래는 안 되는데, 살짝만요. 희귀한 재료도 많아요. 가지고 나갈 순 없어도 다루는 건 괜찮을 거예요.]신입 녀석 필사적이네. 이거 줄까 저거 줄까 하며 열심히 명우를 꼬드긴다. 말은 세상 지키는 데 필요한 사람, 이라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저러는 티가 팍팍 났다. 외출하려는 주인을 열심히 막아서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일단은 에블린 씨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했다. 에블린 씨도 유현이 말고 다른 아는 헌터와 동행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미국에서도 허니 던전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해놓을게요!]“응, 고마워.”
“첫째야.”
어린 혼돈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사람에게 너무 상처받진 마라.”
“뭐… 더 받을 것도 없어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 내 말에 어르신이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설사 세상을 몇 번이나 구한 영웅이라 해도,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어. 정말로 별거 아닌, 단순히 자기 앞을 지나갔다는 이유로 원수처럼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지.”
“그야… 혹시 경험담이세요?”
“나는 아니고. 잘난 모습을 일부러 과시했다면서 원망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진짜 억울하겠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잘못이 아니다. 설사 네가 세상 대신 네 주위 사람들을 선택한다더라도.”
“…엄청 욕먹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그럼 욕하는 놈들이 세상 구하라고 해! 구해 줘도 욕은 먹어. 덜 먹을 뿐이지.”
하기야 세상을, 정확히는 나를… 지키려고 던전을 공략했던 유현이도 욕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니까.
“어르신은 나름 세상 구하는 쪽 아니셨어요?”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라니까. 그렇다고 멋대로 살라는 건 아니야. 사람답게는 살아야지. 다만 희생할 필요는 없어.”
내 팔을 가볍게 토닥인 혼돈이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반대로 너는 멋대로 살아라.”
이미 그러고 있는 거 같은데. 어르신이 성현제 앞으로 다가갔다.
“항상 스스로를 첫 번째로 둬라. 지금 그대로. 네게 희생은 사치야.”
성현제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외로운 이야기로군요.”
“엄살은.”
어르신이 아주 희미하게, 정말 보일 듯 말 듯 여리게 동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린 혼돈과 신입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