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42
540화 가볍게 (3)
“성현제 헌터와 에블린 헌터의 도움은 서로 주고받았기에 순위 변동은 없습니다!”
펑, 퍼엉! 웬 폭죽이 터졌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꽃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채터박스 놈 진짜 그냥 예능 쇼를 하려는 거냐. 왜 그 연예인들 모아 놓고 운동회 같은 거 하던. 어느 동네 장례식이 이 모양 이 꼴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전신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가 떨어진 곳 3미터쯤 뒤에 결승선이 그어져 있었다. 제대로 잘 맞출까 싶었는데 역시 S급 궁수다웠다.
유현이와 노아도, 그리고 리에트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보통 화살이 총알보다 느리지만 에블린 씨는 S급에 S급 활에 스킬까지 썼으니 속도가 장난 아니었겠지. 헝클어진 머리칼도 대충 다듬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카메라들을 올려다보았다. 뭔가 한마디 해야 하나.
“한유진 헌터.”
그때 진행요원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쿠키를 먹는 부분은 편집 처리되었습니다~”
“네?”
“계약서상 알려지지 않은 던전 아이템과 스킬을 사용하는 부분은 최대한 자동 편집해 드립니다. 다만 에블린 헌터의 경우처럼 직접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스킬은 그대로 방송됩니다.”
아… 그럼 내가 쿠키를 먹는 부분만 잘리고 작게 변해서 쏘아지는 부분은 그대로 나갔겠구나. 계약서에 따른 거라지만 생각보다 친절하네. 그래도 내가 작아질 수 있다는 건 밝혀진 셈이었다.
“2등! 노아 루히르 헌터, 3등 문현아 헌터!”
잠시 뒤 진행요원이 연이어 외쳤다. 금빛 용이 크게 날개를 치며 내 머리 위로 다가왔다.
“당연히 우리가 먼저일 줄 알았는데!”
– 유진 씨, 축하드려요.
“노아 씨도요.”
이어 유현이와 피스가 도착하고 예림이가 송태원을 들고 순간이동으로 결승선을 넘었다. 거의 곧장 리에트가 부서져라 땅을 짓밟으며 급정거를 했다. 흑룡의 등 위에서 헌터들이 우르르 굴러 떨어진다.
“윽, 허리야.”
“탑승감 최악이네.”
“몸에 비늘자국 났어.”
S급 헌터들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A급 헌터 하나는 아예 땅에 철푸덕 엎어져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리에트 덕분에 탈락은 면한 셈이었다.
초대장은 S급 두 명이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팀이 될 만큼 친분 있는 S급 헌터가 없어 대신 A급 헌터와 동행한 이들도 몇 있었다. 손발 잘 맞는 A급이 안 맞는 S급들보다 팀전에선 더 유리할 수도 있을 테고.
‘뭐, 들고 뛰어도 되었겠지만.’
유현이와 문현아도 사실상 피스와 노아만 열심히 날아온 셈이긴 하지.
“깜짝 놀랐어, 형. 다친 데 없는 거 맞지?”
– 끼앙!
유현이가 내 몸을 살피고 작아진 피스가 내 발치에서 맴돌았다. 예림이가 큼직한 물방울을 만들어 세수하라며 보내왔다.
“얼굴도 엉망이에요.”
“고맙다.”
– 노아 다음일 줄 알았는데!
“언니, 이럴 땐 축하한다, 잘했다, 대단해! 역시 우리 노아! 해줘야 하는 거예요.”
강소영이 부추기고 인간 모습으로 돌아간 노아가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소영 씨 오빠들이 저렇게 칭찬해 준 걸까. 거대한 드래곤이 머리를 갸웃 기울였다.
– 당연한 결과인데도? 이중에선 노아가 제일 빨라. 현아 스킬도 있고.
“전 걸음마 할 때도 엄청나게 칭찬받았다고요! 영상도 남아 있어요.”
“아니, 안 그러셔도, 됩니다.”
노아가 무척이나 어색해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각자 알아서 살기로, 했었잖아요. 누님께서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고요.”
– 맞아, 난 여전히 그래. 하지만 노아야, 너는 바뀌었잖아.
리에트가 경쾌하게 말했다.
– 말 잘 듣고 착하고 예쁘고 약한 내 동생이었는데. 어릴 때의 노아 넌 꼭 꽃 같았어.
“…네?”
– 예쁘긴 한데 쓸모없고 약하고 잘 죽고.
저게 칭찬이야 욕이야 싶었지만 리에트로서는 어느 쪽도 아닌 정말 순수한 감상일 것이다. 정확히는 호감… 쪽에 가깝겠지. 노아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신경도 안 쓰고 버렸을 테니까.
– 그런데 더 예뻐지고 제법 강해졌어! 그래서 나도 고민 끝에 흉내라도 내볼까 싶어졌지.
단순히 강소영의 조언 때문이 아니라, 노아가 변했기 때문에. 인간성 적은 태생 S급이 노아에게 조금쯤 맞춰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금속성 용의 눈이 웃음을 띠듯 가느다래졌다.
– 잘했어!
“…아, 네…….”
노아가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속을 완전히 알 순 없었지만, 싫기만 한 기색은 아닌 듯했다. 어쨌든 자신을 어릴 때부터 돌봐 온 가족이니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무 자르듯 뚝 잘라낼 수 있는 게 아니지.
게다가 노아 씨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나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그 누구보다 리에트의 칭찬이 가장 크게 다가올 듯싶었다.
약간의 차이를 두고 지프차도 도착했다. 차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던 에블린이 결승선을 넘기 직전, 차 앞쪽을 밟으며 가볍게 뛰어내려 가장 먼저 선 안에 내려섰다. 황무지 배경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모습이 광고라도 찍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차가 멈추고 성현제와 결이, 바네사도 내렸다.
“한유진 헌터님! 이쪽으로 올라와 주세요!”
어느새 단상이 생기고 진행요원이 나를 위로 끌어당겼다. 밝게 웃으며 수상소감을 말해야 할 분위기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아니 난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유현이와 예림이와 노아와 이하 생략 등등이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피스만 빼고. 송 실장님은… 지프차를 촬영 중이었다. 저기요, 설마 한국 가서 딱지 떼실 건 아니시겠지요. 아니면 압수하시려고 그러시나.
“1등인 한유진 헌터에게는 금화 열 개와 특별한 부상이 주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주는 건 좋지만 감사 대상이 채터박스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치사하다는 말도 있지만 시청자 반응은 무척이나 좋은 편입니다~”
규칙 완벽하게 지켰는데 뭐, 왜.
“에블린 헌터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성현제 헌터와 의외로 손발이 잘 맞았다는 평입니다!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은 잘못된 건가요?”
“금화 주고받는 거 못 보셨습니까. 비즈니스죠. 그리고 원래 해외 나오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돕는 법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말이다. 한국에선 원수라도 밖에서는 동포지. 그보다 이거 진짜 뭔데.
‘…쓸데없이 친근감 있잖아.’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프로그램~ 이라도 만들 셈이냐. 비록 내가 무면허 음주운전 무단투기를 저지르긴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밝았다. 이러다 진짜 요리대회나 노래자랑도 하겠네.
채터박스는 정말로 장례식, 축제 자체는 순수하게 즐기다가 마지막에 터뜨릴 생각인 걸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차라리 무겁고 피 튀기는 분위기가 더 마음 편할 듯했다.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애써 밝게 웃었다. 진행요원이 노아와 문현아, 유현이와 피스 팀에게 다가가고 성현제가 내 쪽으로 왔다.
“여기 코트와 차키라네.”
“감사합니다.”
차 다시 넣어 놓… 송 실장님이 나를 가만히 쳐다봐왔다. 머뭇거리다가 얌전히 차키를 내밀었다.
“한유진 씨.”
“이거 딱 한 대 있거든요. 제가 일반 면허면 바로 땄는데, 진짠데.”
“…취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심해 주십시오. 방송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콜라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차는… 가지고 계십시오. 던전 내 공략 수단에는 외부의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단, 밖에서는 절대 꺼내시면 안 되며 귀국 후 즉시 압수하겠습니다.”
송 실장님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차를 얼른 서랍에 도로 챙겨 넣었다.
2, 3등을 한 문현아, 노아 팀에는 금화 다섯 개씩과 부상이, 피스와 유현이에게는 금화 세 개씩이 주어졌다. 그 아래 20명까지 금화 한 개씩을 받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원래 있었던 홀이 아닌 너른 연회장이었다. 뷔페식으로 음식과 음료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한쪽에는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너무 휙휙 바뀌는구만.
“휴식 중 전투는 금지됩니다. 스킬 사용 또한 자제해 주십시오.”
“휴게실이 다수 준비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시다면 직원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연회장은 5분 후부터 촬영, 생방송됩니다. 원치 않으시면 휴게실로 이동해 주세요.”
한바탕 뛰었으니 식사하고 쉬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이동시키는 건 랜덤으로만 가능한지 또 애들과 뿔뿔이 흩어졌기에 찾아 나서려는데 헌터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잘 봤어, 한유진 씨.”
“…예?”
“거기서도 볼 수 있더라고.”
헌터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아… 방송 보면서 뛰었구나. 아슬아슬하게 탈락은 면했다며 헌터가 웃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곤 지나쳐간다. 나한테 꽤 호의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하는데 에블린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S급은 S급이라는 겁니다.”
“네?”
“한유진 씨를 거슬려하는 상급 헌터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비율이 더 높겠지요. 위협이 되질 않으니까요.”
에블린이 차분하게 말했다.
“설사 여기서 탈락한다 해도, S급은 여전히 S급입니다.”
그러니 쉽게 마음 주진 말라는 말을 남기고 에블린도 몸을 돌렸다. 그래, 여기서 나한테 망신을 당한다고 해도, 그래도 S급이 F급 되는 건 아니다. 그냥 좀 쪽팔릴 뿐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겠지. 아주 운 나쁘게 길드에 타격까지 간다 해도 그래도 여전히 S급이다.
‘…내가 딱히 큰 그림 그리고 이러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그저 내 개인적인 바람을 위해 달려왔다. 그러니 약간의 변화만 일어나도 짭짤한 덤인 셈이었지만. 살짝 기분 더럽긴 하네.
– 끄웅!
“형!”
피스가 먼저 나를 찾아내고 유현이도 함께 다가왔다.
“저쪽이요!”
스킬을 쓰는 대신 송태원 어깨를 짚고 폴짝 몸을 올린 예림이가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일단 휴게실 가서 옷 좀 갈아입고, 그리고 밥 먹자.”
애들은 괜찮았지만 나는 갈아입어야 했다. 아직 돌아가지 않는 카메라를 슬쩍 올려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화기애애한 모습 비춰 드려야지. 누가 뭐라 하든 말이야, 내가 여기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건 확실했다.
식사가 끝나고 탈락자들이 연회장을 떠나갔다. 그냥 아쉬워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발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차라리 던전 공략을 시켜! 내 스킬은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수중 이동이었으면 자신이 1위였다는 말도 나왔다. 예림이가 있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헌터 하나가 혼잣말로, 하지만 다 들리게 말했다.
“스탯 F급도 조용한데 쪽팔리지도 않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뭐, 능력치 가지고 불공평한 걸로 치자면 내가 제일 억울하긴 하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 이것도 방송 나가고 있겠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각종 경쟁 리얼리티라거나……. 항의하는 사람들 꼭 있긴 했었다.
“파티 진행에 따라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진행요원이 말했다. 확정 짓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터였다. 내가 탈락하면 채터박스는 분명 패자부활전 같은 걸로 데리고 오려 하겠지.
탈락자가 전부 퇴장하고 연회장 한쪽 벽에 커다란 모니터가 나타났다. 이어 직원들이 얇은 팔찌가 줄줄이 놓인 카트를 밀고 왔다.
[편집 기능이 들어간 촬영 아이템입니다.]채터박스의 목소리가 연회장 곳곳에 달린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왔다. 직원이 팔찌 하나를 들어 자신의 팔에 채워 보였다.
[신체 어느 부위든 자동으로 조절되어 착용 가능합니다.]모니터 화면이 켜지고, 팔찌를 찬 직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직원을 중심으로 주위 풍경이 주르륵, 비추어졌다. 문득 내 주식 또 망한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태미너 포션이 중점이긴 하지만 채터박스 놈……. 설마 초월자가 촬영 아이템을 먼저 들고 나올 줄이야. 아니, 어차피 여기서만 쓰고 상용은 안 하겠지만, 그래도! 화제성 다 가져갔어.
간단하게 키워드, 혹은 동작을 등록하면 된다고 하였다. 직원이 음성을 등록한 뒤 영상, 하고 말했다. 그러자 모니터 속 직원의 모습이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사라졌다. 이어 영상 자체가 아예 검게 변했다.
[착용자만 사라지게 할 수도, 영상 전체를 멈출 수도 있습니다. 단, 같은 장소에서 촬영 중인 타인의 영상은 그대로 송출됩니다.]다른 직원이 팔찌를 찼다. 모니터가 반으로 갈라지며 영상이 하나 더 나타났다.
[그러나 방송을 멈춘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영상을 완전히 끈 직원은 다른 직원의 영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경만 비춰 보일 뿐이었다. …기술 좋네.
[음성 또한 동일합니다.]음성만 끄자 직원이 말을 해도 방송으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입술을 읽지 못하게끔 입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스킬이나 아이템을 감추는 등, 그 밖의 조작 기능을 더 알려 준 뒤 직원들이 팔찌를 헌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방송을 하는구나.
[내일 오전 10시부터.]모니터 화면이 바뀌었다. 채널 채터박스 로고가 뜨고, 수많은 채널 목록이 주르륵 나타난다.
[통합 방송과 별개로 팔찌를 지닌 헌터는 각자 개인 채널을 가지게 됩니다. 방송을 하지 않으셔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채널 목록이 사라지고 채터박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얀 가면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파티의 손님은 많을수록 흥겨운 법이지요.]시청자가 많을수록 유리할 것이다. 그런 의미의 말을 남기고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방송 로고만을 남기고서.
작은 웅성거림 속에서 하나둘 나를 향한 눈길들이 늘어갔다. 그 속에서 팔찌를 천천히 매만졌다. S급들, 대단하지. 수천, 수만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제일 유니크하다.
‘물론 시시하면 제일 빨리 버림받겠지만.’
숨을 짧게 삼키며 채터박스 로고를 올려다보았다. 이래 봬도 회귀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인기는 많았답니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아무튼 경력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