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01
699화 빼앗긴 것, 얻은 것 (3)
오랜만에 발들인 서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롭고도 복잡했다. 영국은 초저녁 즈음이었지만 한국은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거리 곳곳 불빛이 물결쳤다. 런던에서의 난리가 생방송까지 타서인지 주택가도 아파트도 빛을 머금지 않은 창문이 드물었다.
‘채터박스 파티가 11월 말이었으니까.’
집 떠나고 한 달 이상 훌쩍 지나갔다. 시간 개념이 다른 공간에 들락거린 탓에 체감은 그보다 더 길었다. 유현이 생일도, 새해도 해외에서 보내고 말이야. 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아직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남은 상가를 바라보았다.
‘내 생일도 얼마 안 남았네.’
삼 주 정도 남았나. 길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때는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자체가 떠오르질 않았다. 평화롭게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끌 수도 있겠지.
어쨌든 그냥 왠지… 그때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마무리 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있든 없든.
“이쪽입니다.”
헌터 협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최영준이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실장님께선 무사하신 겁니까?”
“예. 복귀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런던 사태 때문이겠지요.”
송 실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곤 자리를 비우신건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설명해 두긴 한 모양이었다.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여러 번 발생했었지만… 이번과 같은 일은 없었으니까요.”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잃었다. 그것도 한 나라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난민들은 물론이요 그것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숨길 수도 없고 무조건적으로 안심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옆에 바싹 붙어 선 유현이가 내 손을 잡아왔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다고, 집에 가서 쉬자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을 터였다.
“…아빠.”
결이도 걱정스레 나를 불렀다. 표정이 너무 안 좋으면 안 되는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전부 다 체크하고 계시죠? 간략하게 설명을, 아, 석 팀장님. 서 팀장님.”
해연에서도 그새 협회에 도착했다. 석시명 옆으로 서경훈도 보였다. 두 사람이 재빠르게 다가와 최영준의 앞을 막듯이 섰다.
“길드장님, 해연으로 바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 시간의 전투를 막 끝낸 사람을 붙잡아 놓고 괴롭히는 게 헌터 협회의 방식입니까?”
경훈이 형이 날을 세우며 말했다. 그 눈빛이 석시명과 비슷해 살짝 걱정이 되었다. 석시명이 일은 잘하는데 말이야… 너무 닮아가진 마세요.
“방송은 한유진 소장님의 요청이었습니다. 해연 길드장님께서 혼자 돌아가실 리도 만무할 테고요. 원하신다면 해연 측은 먼저 가셔도 됩니다만.”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는 말에 석시명이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유진 소장님 없이는 물러날 생각 없습니다. 해연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소중한 분이시니까요. 그런 만큼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를 잘못 건드린다면 해연에서도 대응하겠다는 경고였다. 최영준이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헌터 협회에서도 한유진 소장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렴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한 소장님 덕분이지 않습니까. 어찌 감히 소홀히 대하겠습니까.”
…왜 여기서 날 두고 기 싸움을 하고 있어. 현재 상황 설명이나 해주세요. 다행히 셋은 그 정도로 멈추고 최영준이 다시 걸음을 옮겨가며 입을 열었다.
“각국의 헌터 협회로부터 정보 공유 요청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 또한 유럽과 미국, 일본처럼 한결 팀에 가입을 하고 싶다 합니다.”
“한결 팀이요?”
“런던 사태의 지원을 이끌어 낸 사람이 다름 아닌 한결 군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아뇨, 맞아요. 우리 결이가 해낸 일이죠.”
아빠 피곤하다고 나 대신 예림이 품에 안겨 졸린 눈을 깜박이던 결이가 내 시선을 받곤 방긋 웃었다. 정말이지 천사가 따로 없었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국내에서도 종말이 다가왔다며 시위나 약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런던의 완벽한 대피로 분위기가 잦아들긴 했으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많습니다.”
너른 회의실에 방송 카메라가 줄을 잇고 있었다. 해외 방송국의 로고도 보인다.
“그리고 도깨비는…….”
“제대로 알려야죠.”
한국에서는 도깨비의 존재를 숨길 수 없기에 정부도 헌터 협회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도깨비, 윤윤 덕분에 다들 쉬쉬하며 협조적으로 나왔다. 고위층들이 윤윤의 능력을 잘 알고 있고, 도깨비는 건드려선 안 된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한유진 소장님! 런던 사태에 대해 밝혀 주십시오!”
“미리 알고 있었던 겁니까?”
“왜 사람들에게 경고하지 않고-.”
유현이가 한 발 나섰다. 낮게 퍼져 나가는 기세에 나를 보자마자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붕어 떼처럼 뻐끔거리던 기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기자 회견을 위한 자리로 올라갔다. 꽤 피곤했기에 의자를 빼내 앉았다. 피스가 테이블 뒤쪽으로 돌아 와 내 발에 뺨을 대며 엎드렸다.
“장소는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게 된 것은 최근이며 몬스터 무리는 무작위로 도시를 침범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린다면 당연히 큰 소동이 일어났었겠지요. 그래도 대비책이 없었더라면 말하였을 겁니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노아가 윤윤과 도깨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도깨비들이 신기해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려 드는 것을 윤윤이 어른스럽게 막았다. 그러는 윤윤도 끼어들고 싶어서 안달 난 기색이었지만.
“여러분, 우리는 런던이라는 대도시를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동시에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생활해 주십시오. 절대 잃어선 안 되는 귀중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번과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날지는, 런던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 일상을 포기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윤윤.”
“응!”
윤윤이 내 옆으로 공간이동 해왔다. 다른 도깨비들도 줄줄이 뿅뿅 나타난다. 카메라가 도깨비들을 비추었다. 윤윤이 엣헴, 헛기침을 했다.
“친애하는 김서방들님, 저는 도깨비 대왕 윤윤이다, 입니다.”
“난- 읍!”
“바보야, 얌전히 있으랬잖아.”
“나도 김서방들한테 내 소개 하고 싶은데.”
도깨비들이 조그만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윤윤이 어흠, 재차 기침 소리를 낸다.
“우리 도깨비는 도깨비 문을 만들어 런던 김서방들을 도왔, 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김서방들을, 인간들을 도울 겁니다.”
“도깨비는 각성자 집단입니까?”
기자 하나가 물어왔다. 윤윤 대신 내가 대답했다.
“도깨비는 몬스터도 인간도 아닙니다. 던전이 나타나고 그 영향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종족, 사람입니다.”
도깨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이 세상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과 다른 종족임을 영원히 감출 순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밝히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몬스터들로부터 완벽한 대피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도깨비인 지금이.
기자 몇몇이 헛숨을 들이켰다. 속사정을 모르는 헌터 협회 직원들도 당황해했다.
“…위험한 건 아닙니까.”
“도깨비는 피를 무서워하며 살아 있는 것을 해치지 못합니다. 인간은 물론 몬스터를 해치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그렇게 타고난 존재이기에 인간을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극히 안전하면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기승수보다도 더 인간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쉬운 특성이었다. 다만.
“우리는 김서방들, 인간들을 해치지 못해. 하지만 김서방들이 우리를 해친다면 가만히 있진 않을 거, 업니다.”
윤윤이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깨비들이 윤윤에게 대롱대롱 매달린다. 도깨비는 타인을 공격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인간들이 도깨비들을 괴롭히거나 이용해먹을 생각을 쉽게 하게 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싸우지 못하지만 약하지도 않아. 만약 도깨비를 해친다면 나는 그 김서방에게 영원히, 달라붙을 거야.”
윤윤의 말에 기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달라붙는다니, 협박치곤 너무 가볍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24시간 어디서든 튀어나올 거야. 다치겐 못 해. 하지만 물을 끼얹고 다리를 걸 거야. 잠들 거 같으면 소리치고 밥 먹을 때면 밥상 뒤엎고 일할 때면 방해하고 화장실 갈 때면 발목 잡고 늘어질 거야. 어디로도 도망 못 쳐. 도깨비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물 끼얹고 다리 건다는 말에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갔다. 장난질이다. 하지만 저게 24시간 어디에서든 이루어진다. 공간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도망치지도 못한다. 설사 S급 헌터라 해도 윤윤을 잡을 수는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주일도 채 못 버틸 것이다.
“도담 기승수 사육소는 도깨비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해연 길드는 물론 헌터 협회와 세성 길드, 브레이커 길드 또한 협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도깨비들이 인간들을 도와주니 서로서로 좋게 어우러지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들끼리도 법이 없으면 난장판이 되곤 하는 세상이니까.
“유럽 헌터 협회와 힐러 협회 또한 협조하겠습니다.”
그때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녀 에밀리 스펜서였다. 그녀가 황림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저분이 왜 한국엘 와 계신대.
“도깨비 분들의 능력은 던전을 공략하는 힐러들에게 있어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힐러들은 보다 안전하게 더 높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맞아, 확실히 그랬다. 지금 힐러를 상급 던전에 쉽게 데리고 가지 못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니까. 하지만 공간이동이 가능한 도깨비가 붙는다면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아직은 윤윤 외엔 인간을 데리고 공간이동 할 수 있는 도깨비는 거의 없다지만 다들 막 각성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점차 늘어날 것이다.
윤윤에게 다가간 에밀리가 손을 내밀었다. 윤윤이 에밀리와 악수를 했다.
“힐러의 대표자로서 도깨비 분들을 환영합니다.”
“응, 고마워요, 성녀님!”
윤윤이 활짝 웃었다. 에밀리가 내가 앉은 의자 쪽으로 다가와 섰다. 헉, 일어나야 하나.
“앉아 있으세요.”
에밀리의 시선이 결이 쪽을 잠깐 향했다. 나 또한 결이를 바라보았다. 도깨비가 무사히 받아들여진다면, 결이에게도 한결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기승수들에게도.
“런던은 이대로 사라지게 되는 건가요?”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내게 묻고 있지만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예. 하지만 되찾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괜찮은가. 초월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될 수록 우리 세상을 보호하는 힘은 약해진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관여가 있었다. 또한 이번 내기가 무사히 끝나게 된다면, 초월자들은 우리 세상에 손대지 않기로 약속했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던전을 만들어 내는 바깥의 존재들이 있습니다.”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터박스의 파티의 여파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쳤다. 비록 비각성자와 하급 각성자들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 감각은 남아 있을 터였다.
“…신입니까?”
기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 저었다.
“한때는 우리와 비슷했던 이들입니다.”
초월자, 라고 해도 사람이다. 오랜 옛날에는 평범한 삶을 살았었을 이들.
“여러분이 직접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기억 속에서 흐려진, 던전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남자를.”
채터박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흐려져 떠올리기 힘들어진 존재였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 흐릿함 자체가 사람들에게 그가 세상 밖의 존재임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죽었습니다.”
그들 또한 목숨을 잃는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뒤흔들려는 순간에,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이다.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 내 동생의 힘이 함께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의 힘이 함께 있었다. 그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이상은 못 할까.
“그러니 괜찮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향해 말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침묵이 이어지다가.
“정확한 방법은 있습니까?”
“그들의 목적이 뭡니까!”
“제2의 런던 사태는 언제쯤 발생하게 될까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밀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그리곤 나를 대신해 대답했다.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답니다, 여러분. 저희들도 이제야 겨우 꼬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그만 가서 쉬라고, 에밀리가 나를 일으키며 작게 속삭여왔다.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머뭇거리자 눈웃음이 건네져 온다.
“원래 젊은 애들이 현장에서 뛰고 뒤는 우리가 맡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고생시키는 건데. 이런 일이야 이력이 났으니 걱정하지 말고.”
헌터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고 계신 분이니 나보다 더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곤 자리를 떠났다. 이제는 집에-.
“자기야~.”
…리에트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회의실을 나오는 우리를 성큼성큼 따라 나와 내게 다가오는 황림의 앞으로 불꽃이 팍 튀었다. 황림이 어이쿠, 하며 두 손을 들었다.
“전해 줄 말이 있어서 그래. 내 위쪽과 관련 된.”
위쪽이라면, 인형술사? 미간을 좁히며 황림에게 손짓했다. 황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둘이서만 따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허튼수작.”
유현이가 냉랭하게 황림의 말을 끊었다. 나도 저 인간과 단둘이 있기는 영 꺼림칙해서. 그때 결이가 하품을 하며 소리차단 아이템을 내게 건넸다.
“아빠, 이거 써.”
“고마워, 결아.”
그런데 이거 성현제 거 아니었냐. 결이가 계속 들고 다닌 건가. 아이템을 사용하고 황림이 입술의 움직임 거의 없이 말했다.
“내기가 끝나기 전까진 확실히 관여 못 해.”
“…영양가 없는 소리잖아. 당연히 그렇겠지.”
“그리고 인형술사와 함께 있는 누군가가 이 말을 전해 달랬어.”
황림이 속삭여왔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가 마지막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 설마.
“인형술사가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도 초월자야?”
“아니. 인형술사 소속인 모양이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인형술사가 꽤 아끼는 듯했어.”
…아낀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지금 만나 볼 수는-.”
“없지. 나한테 말을 전해 온 것도 런던이 그 난리가 난 덕분이야. 계속 통신 불량이었거든.”
황림이 내 어깨에 손을 툭 얹으며 나를 내려다봐왔다.
“친애하는 진아. 난 너 응원해. 나한텐 탈출구가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재밌으니까. 말하자면 자기한테 완전 반했-.”
“치워.”
소리차단 아이템을 끄며 말했다. 곧장 군림자의 검이 검집째 황림의 복부를 콱 질렀다. 황림 놈이 윽 소리를 내며 배를 감싸 쥐었다.
“열성 팬한테 너무하네!”
인형술사는 뭐 하나 저 새끼 안 데리고 가고.
* * *
“집이다! 다녀왔습니다!”
예림이가 만세를 부르며 신발을 던지다시피 벗었다. 결이도 잠이 다 달아난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아, 진짜 얼마만이냐. 그리웠어.
– 끼아앙!
피스도 오랜만에 집에 온 게 좋은지 뒹구르 몸을 굴렸다. 삐약이는 아직 안 왔나.
“호두야, 불 켜 줘.”
거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당장 소파에 늘어지고 싶은 걸 꾹 참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난리 통이었는데 바로 누울 수는 없지. 아직 기운이 넘치는 예림이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식품만 있는데,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기운이 넘치네. 거실로 다시 가 TV를 틀었다. 온통 런던 관련 방송들이었다. 다들-.
“이제 한결 군에게 건네주겠나.”
“깜짝이야!”
“악! 뭐야! 세성 길드장도 달고 온 거예요?”
예림이가 펄쩍 뛰고 결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목걸이를 풀어 결이에게 주었다. 성현제도 결이 어깨로 올라갔다.
“결이가 보살펴 줘야 해. 어쩔 수 없어.”
결이가 한숨을 포옥 내쉬곤 아이스크림 스푼을 쥐었다. 우리 결이, 책임감도 넘치지. 아, 이렇게 집에 왔으니까.
“결아, 동생들이랑 만나 볼래?”
설이와 별이도 집에 남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내 말에 결이가 아이스크림을 꼴깍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응! 잠깐만, 응! 준비됐어.”
자기 옷을 살피고 머리칼도 매만지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우선 별이부터. 긴장 어린 결이의 모습에 나도 살짝 긴장한 채 별이를 불러냈다. 내 손바닥에서 퐁 튀어나온 동그란 털짐승이 어린애로 변했다. 결이가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별이의 눈이 결이를 향하고 다들 숨죽이는 순간.
“안 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별이가 성현제를 덥석 잡아 반짝이는 머리통을 대뜸 입에 넣어 버렸다. 아이고, 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