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63
ⓒ 목마
다크 크리처-1
“…공양이라니.”
로만은 떨떠름한 얼굴로 라덴에게서 쌈지를 받았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공양 받는 당사자인 아하베스가 승낙을 했기에 일단 하기는 하겠지만…
“뭔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나는 그런 심부름을 받았을 뿐이고.”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아라포니아에게 퀘스트를 받은지 몇 달이 지났다. 보하미르에서 시작해서 알라베스 산을 넘고, 이곳 제노미아까지. 그 길고 긴 여정의 끝이 지금에야 도달하는 것이다.
“나는 상관없단다. 공양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 안을 살펴 보아도 뭔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말이다.”
아하베스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늙은이 신은 아직까지도 저 아스트랄 바디를 유지하면서 현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신이라는 존재들이 죄다 저런 것인지는 라덴이 다른 신들을 만나 본 적이 없기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라덴은 아하베스에게 딱히 신으로서의 위엄은 아직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아하베스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뭐… 공양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로만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로만이 주저하고 있는 것은 공양을 올린다는 것보다는, 이 공양을 부탁한 것이 다름아닌 흑성 아라포니아라는 것 때문이었다. 로만이 젊었던 시절 그녀를 만나 인연을 맺기는 했지만, 로만이 기억하는 아라포니아는 항상 뭔가 꿍꿍이를 품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로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양 건을 둘째치고서라도 걱정거리는 태산이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이 신전은 어찌 보수한단 말인가 아하베스 교를 이단으로 몰아 넣은 황혼이 도시를 떠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하베스 교에 대한 믿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토착신앙 정도의 취급이었던 아하베스 교에 돌아올 만한 믿음도 없기는 하지만.
사실 로만의 그런 걱정은 신전과 아하베스 교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황혼은 이 도시를 완전히 떠났다. 그 말은 즉, 영지와 도시 유지들에게 걸려 있던 세뇌도 풀린다는 말이다. 세뇌가 풀리고서 영주와 유지들이 어떻게 나올 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제들의 피같은 돈이 빠져나가 영지민 복지에 들어갔는데, 그 욕심많은 돼지들이 광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치안도 엉망이 될 거야. 이걸 어쩐다…’
물론 당장의 로만이 고민할 이유는 아니었다. 로만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신단 위에 쌈지를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라덴과 아하베스, 다른 주교들이 보는 앞에서 신단 위에 올려진 쌈지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새하얀 빛에 휘감겨 사라졌다. 플레이어와 NPC들이 살아가는 이곳, 중간계에서 아스트랄 바디가 아닌 진짜 신들이 존재하는 신계로 이동한 것이다.
“…끝났습니다.”
“도착했구나.”
로만이 입을 열었고, 아하베스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끝났다. 라덴은 그런 실감을 확실하게 받으면서 주저앉았다.
“…저어, 앞으로는 어쩌실 셈입니까”
로만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라덴의 귀에 로만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신명나게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획득한 특수 타이틀이 둘. 제노미아의 첫 방문자 타이틀과 아하베스의 성기사 타이틀까지 포함한다면, 이번 퀘스트를 통해서 획득한 특수 타이틀만 다섯 개가 된다.
‘레벨도 4나 올랐어.’
그것으로 라덴의 레벨은 104가 되었다. 아직 상위 랭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슬하게 그 수준에 턱을 걸치게 되었다는 말이다.
“저… 라덴님”
“나중에.”
라덴은 손을 들어 로만의 말을 제지했다. 나중에, 그래, 나중에. 지금 당장은 로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틈이 없다. 지금 라덴이 생각해야 할 것은,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가 끝났다. 그럼 이 다음은’
발할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스토리 퀘스트, 황혼. 벨코브의 검은 저택에서 우연히 받았던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가 여기서 끝이 나버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다음 연계 퀘스트가 자동으로 갱신이 될 텐데. 퀘스트 목록을 노려 보아 보지만, 새로운 퀘스트는 나타나지 않는다.
‘조건을 채우지 못했나 제기랄, 조건이 뭔지 알아야 달성할 것 아냐…!’
라덴은 불친절한 발할라의 퀘스트 시스템에 역정을 삼키면서 퀘스트 창을 넘겼다. 일단 황혼의 추적자의 이후 퀘스트는 다음에 탐색하도록 하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네 라, 라덴님 잠시만. 할 말이…!”
로만이 급히 라덴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라덴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라덴은 즉시 손가락에 끼고 있던 텔레포트 링을 발동했다.
보하미르로 이동하고서, 라덴은 떨어진 체력을 회복한 뒤에 바로 알제른으로 이동했다. 어쩐지 전투 상황보다 텔레포트 링을 사용할 때에 체력을 더 많이 쓰는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제른으로 도착한 라덴은 우선 바로 경매장으로 향했다. 알제른의 어둠을 잡고 있는 카테리나 발레르와의 친분 덕에, 라덴은 알제른 경매장에서의 거래 수수료를 물지 않는다. 값싼 아이템을 처분할 때는 15%의 수수료가 크게 부담되지는 않지만, 비싼 아이템을 처분하는 경우에는 15%의 수수료가 큰 부담이 된다. 덕분에 라덴은 알제른 경매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우선 알라베스 산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처분하고.’
알라베스 산에서 필드 보스를 쓰러트리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는 질리도록 잡은 탓에 쓸만한 아이템을 많이 모아 두었다. 기껏해봐야 유니크 등급 아이템들이었지만, 알라베스 산의 몬스터가 드랍했다는 것만으로도 희소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레벨 제한이 높은 아이템이…’
라덴은 경매장의 검색 기능을 사용했다. 결과가 나왔다. 경매장에 올라 온 아이템 중에서 레벨 제한이 가장 높은 것은, 레벨 제한 130의 스태프였다. 에픽 등급 아이템에 가격은…
“…지저스.”
단위가 이상하잖아. 머릿속에서 부조화가 일어났다. 이게 도대체 얼마야 억… 억… 그냥 억이 아니라… 라덴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도대체 몇 대가 놀고 먹을 수 있는 거야’
라덴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스태프의 옵션은 봐도 뭔지 모르겠지만, 레벨 130의 에픽 아이템의 가격이 이 정도다. 라덴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인벤토리 안에 있는 백주 시시시네를 바라보았다. 레벨 제한 145. 추가 스탯도 그렇고 붙은 스킬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이쪽이 압도적이다. 도대체 얼마에 올려야 하는 거야 아니, 굳이 이쪽에서 가격을 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올리면 무조건 팔린다. 어마어마한, 라덴이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에.
‘그리고 자카이드가 사겠지.’
최상위 랭커는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다. 백주 시시시네를 올린다면 자카이드는 무조건 이 검을 구입할 것이다. 가진 전 재산과 길드의 금고까지 탈탈 털어서. 그것만큼은 라덴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 검을 가진 자카이드와 투기장, 혹은 필드에서 만난다고 해도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남 좋은 일을 해줄 수는 없지.”
솔직히 이런 심정이었다. 차라리 아는 사람한테 팔아넘길까. 라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친구 목록을 뒤져 보았다. 라덴의 친구 목록에 있는 이들 중에서 카타나를 사용할 만한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알케나. 하지만 알케나가 사용하는 검은 그녀의 고유 특성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녀의 특성이 그런 탓에, 알케나는 따로 무기를 구입하지 않는다.
‘게다가 알케나가 사용할 수도 없잖아.’
알케나의 레벨은 91. 백주 시시시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레벨을 50 넘게 더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루벡에게 아니, 루벡도 사용할 수는 없다. 현재 루벡의 레벨은 121. 알케나보다는 레벨이 높지만,
‘루벡 형은 대검을 써. 스킬과 특성도 그쪽이라고 했고. 백주 시시시네를 루벡 형에게 넘겨봤자 사용할 수도 없어.’
사용이야 할 수 있겠지만, 여태까지의 스타일과 특성, 스킬을 포기해야 한다. 결국 라덴이 알고 있는 지인 중에서 백주 시시시네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보류.’
처분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라덴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당장 돈은 급하지 않다. 라덴 역시 상위 랭커에 비벼볼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썩어나게 많으니까. 버추얼 피버에 냈던 방송으로 얻은 수익과, 아스가르드에 투고한 동영상 수익. 그리고 경매장을 통해 처분한 아이템의 수익 등.
‘일단은 아라포니아님을 만나야 해.’
퀘스트가 완료되었고, 경험치 보상은 얻었다. 하지만 그 외의 직접적인 보상은 얻지 않았다.
‘애초의 보상은 원할 때에 시즌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기로 한 것.’
하지만 그것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아. 라덴은 아라포니아의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생각했다. 몇 달이나 걸려 완료한 퀘스트고, 황혼과 엮여 이런 저런 고생도 많이 했다. 시즌 던전의 위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고 매력적인 보상이었지만, 여기서는 조금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다.
‘협상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것도 괜찮겠지. 라덴은 닫힌 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세 번, 그러자 문이 천천히 열린다. 들어오라는 신호인 것이다.
“오래 걸렸구나.”
아라포니아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파렴치한 모습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라덴은 더 이상 아라포니아의 그런 차림새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오래 걸릴 수밖에요. 엄청나게 고생했으니까.”
“하지만 성공했지.”
“아라포니아님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라덴은 살짝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아라포니아가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손으로 턱을 괴고서 라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 대한 보상은 일전에 약속해 두었었지. 그래. 지금 당장 시즌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랴”
“아뇨, 아직은 필요 없어요. 당장은 시즌 던전 공략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그리고…”
라덴은 숨을 삼켰다. 다시금 자각한다. 앞에 있는 것은 다크 세인트. 흑성 아라포니아. 염화, 검왕, 환룡, 악희와 더불어 발할라 내에 존재하는 다섯 괴물 중 하나다. 심기가 불편해진다면 언제라도 손쉽게 라덴을 죽일 수 있는 괴물인 것이다.
“추가 보상을 요구합니다.”
그를 염두에 두면서도, 라덴은 당당히 그를 주장했다.
“몇 달이나 걸린 퀘스트에요. 아라포니아님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하기는 했지만, 생각 외로 너무 고생했어요. 알라베스 산을 넘어 제노미아에 도착해서도 엄청 고생했고.”
“…호오. 지금 나와 협상하고자 하는 것이냐”
아라포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면으로 꽂히는 시선에 라덴은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안 된다. 협상은 우직하게, 때로는 숙여야 하겠지만. 적어도 라덴이 판단하기에는 지금은 숙일 타이밍이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아라포니아님도 저에게 신뢰에 대한 보답을 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신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냐”
“동등… 이라기보다는… 음… 제 쪽이 급이 낮죠. 그냥 어디까지나…”
“뭐, 나쁘지는 않구나.”
일단 한 발 물러서서 상황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으려 할 때, 아라포니아가 피식 웃으면서 라덴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나와 협상하고자 하는 이를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야. 그리 불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있구나. 그래… 추가 보상이라. 이건 어떨까”
아라포니아의 손이 위로 들렸다.
“보아 하니, 너는 처분하기 곤란한 아이템을 얻은 모양이구나. 추가 보상을 겸해서, 그 아이템과 이 아이템을 교환하는 것은 어떠냐”
“…교… 환이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만”
아라포니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위로 들어 올린 그녀의 자그마한 손 위에 시커먼 어둠이 모여 들었다. 동그랗게 뭉친 어둠은 그녀의 손바닥위에서 꾸물거렸다. 라덴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서 아라포니아를 바라보았다.
“교환이라면… 제가 가진 아이템 중에서 무슨…”
“기묘한 저주가 어린 검 말이다.”
“배, 백주 시시시네랑 그걸 교환하자고요 그 뭔지도 알 수 없는, 요상하게 꿈틀거리는 놈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했다. 이 다크 세인트가 고작 그런 검이 탐이나 너를 속일 것 같으냐”
아라포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라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어둠이 허공을 둥실거리며 날아 라덴에게 다가왔다.
“그 아이는 내가 예전에 취미 삼아 만들어 보았던 것이지. 그럭저럭 괜찮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아 방치하고 있던 것이야. 한 번 확인해 보거라.”
아라포니아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공중을 떠다니는 어둠을 잡는 라덴의 손에는 그리 믿음이 실려 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분 나빠.’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었다. 손에 잡힌 어둠은, 잡힌 것은 맞는데 무게도 없고 별 위화감도 없었다. 라덴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서 시스템 기능을 이용해 꿈틀대는 어둠의 옵션을 확인해 보았다.
-다크 크리처.
-레전드 등급 아이템.
-성장형 제작 재료.
진리를 손에 넣은 위대한 마법사가 창조하였다. 스스로의 의지는 갖고 있지 않지만, 손에 쥔 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
라덴의 입이 벌어졌다.
아직 발할라에는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크 크리처-1 끝